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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후반전으로 접어들수록 돈의 액수보다 무서운 것이 바로 '마음의 소모'다. 젊은 시절에는 밤잠을 설쳐가며 리스크의 파도를 타는 것이 패기이자 용기였을지 모른다. 그러나 나이 들어서까지 부동산과 금융시장의 급등락에 영혼을 저당 잡힌 채 매일 아침 시세 창을 보며 가슴을 졸인다면, 그것은 투자가 아니라 자신의 수명을 갉아먹는 무모한 도박이다.

불과 몇 년 전까지 자산 시장과 소비 트렌드를 지배했던 단어는 단연 '가성비(價性比, 가격 대비 성능)'였다. 최소한의 비용으로 최대한의 물질적 이득을 얻는 것이 합리적 소비의 미덕으로 통했다. 그러나 최근 시장의 기류가 급변하고 있다. 단순히 지갑의 무게를 아끼는 것을 넘어, 내 정신적 에너지를 방어하려는 생존형 신조어가 등장한 것이다. 바로 일상의 감정 소모를 극적으로 줄이려는 '심성비(心性比)'다.

심성비는 현대인이 물질적 풍요나 단순 수치상의 평가익보다 ‘정신적 평온(Mental Peace)’을 훨씬 더 귀한 자산으로 여기기 시작했음을 보여주는 결정적 증거다. 이제 노년의 이들에게 필요한 투자의 절대 기준은 단순한 숫자상의 ‘수익률’이 아니다. 내 마음에 들이는 노력과 감정 소모 대비 평정의 크기를 뜻하는 ‘심성비’다. 돈과 수명을 바꿀 수는 없는 법이다. 돈보다 중요한 것은 건강이며, 내 마음이 평온한 것이 최고다.
 

밤잠 설치는 자산은 내 자산이 아니다


나이가 들수록 시장의 출렁임에 심장이 먼저 반응하곤 한다. 젊은 날의 호기로 넘기던 변동성도 세월의 무게 앞에서는 가팔라진 숨 가쁨으로 다가온다. 노년에 감행하는 공격적인 투자는 자산뿐만 아니라 심신마저 갉아먹는 질환의 근원이 되기 십상이다.

17세기 스페인의 현자 발타자르 그라시안은 일찍이 경고했다. "절대로 마음의 평정을 잃지 마라. 감정이 북받칠 때마다 지혜는 병이 든다." 이 격언은 격변하는 자산 시장에서 우리가 추구해야 할 진짜 지혜가 무엇인지 말해준다.

가성비가 돈 대비 물품의 객관적 성능을 따지는 잣대라면, 심성비는 '내 마음의 에너지를 얼마나 아꼈는가'를 측정하는 척도다. 굳이 껄끄러운 인간관계를 유지하거나 골치 아픈 일에 에너지를 쏟느니, 차라리 돈이나 손해를 감수하더라도 내 '멘탈 에너지'를 지키는 것을 최우선으로 삼는 태도다.

나이 들어 최고의 심성비는 최소한의 감정 소모로 내면의 평화를 유지하는 것이다. 아무리 수억 원의 평가익을 올린들, 그 대가가 극심한 스트레스와 불면증, 그리고 타인과의 비교에서 오는 질투와 불안이라면 그 투자는 완벽한 실패다. 밤마다 해외 증시를 모니터링하느라 잠을 설치고, 부동산 정책 하나에 가슴이 내려앉아 일상생활이 흔들린다면 그것은 최악의 심성비다.

철학자 아르투어 쇼펜하우어는 인생의 고통을 줄이는 가장 확실한 방법으로 "외부 세계에 과도한 기대를 걸지 않는 것"을 꼽았다.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시장의 광기에 내 노후의 행복을 통째로 베팅하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은 없다. 마음의 에너지를 100만큼 쏟아부어 겨우 5의 수익을 올리는 '고비용 저효율' 삶에서 과감히 탈출해야 한다. 목숨 걸고 투자의 사선에 서기에 우리의 남은 시간과 건강은 너무도 고귀하다.

 

수익은 불안과 두려움을 견딘 ‘위자료’다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다. 투자 시장에서 수익이란 결국 불확실성과 변동성을 온몸으로 견뎌낸 고통의 위자료와 같다. 수익과 위험은 정비례한다는 것이 경제학의 불변 법칙이다. 수익은 가격의 변동성에서 나오며, 그 변동성이 없으면 수익도 없다. 그러나 그 변동성에 따라 내 마음도 출렁인다. 수익은 심리적 불안과 두려움이라는 비싼 감정 비용을 치러야만 비로소 얻을 수 있다. 그만큼 남의 돈 따기가 어렵다.

유럽의 전설적인 투자자 앙드레 코스톨라니 역시 "주식시장에서 버는 돈은 고통의 대가로 받는 위자료(Schmerzensgeld)"라고 잘라 말했다. 고통 없이 쉽게 얻는 수익은 그만큼 쉽게 신기루처럼 사라지는 법이다. 단박에 거둔 이익은 단박에 공중으로 사라지기 쉽다.

미국의 세계적인 투자자 존 템플턴 경은 "최고로 다급한 순간에도 냉정함을 유지하는 것이야말로 투자자가 가질 수 있는 가장 귀한 자산"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그 감정 비용을 감당할 수 없다면 스스로 성향을 직시해야 한다. 내 멘탈의 그릇 크기를 정확히 아는 것이 먼저다.

요즘 주가가 급락하면서 뒤늦게 상승대열에 뛰어들었던 투자자들이 속앓이하고 있다. 현장에서 만난 한 자산가는 "가진 주식이 별로 없으니 오히려 속은 편하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무주식이 상팔자"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 장세다.

쌈짓돈으로 로또를 사듯이 소액으로 놀이 삼아 하는 투자는 나쁠 것이 없다. 적당한 스트레스는 살아가는 데 활력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금액을 키우면 상황이 완전히 달라진다. 변동성 자산이 커지면 커질수록 마음의 평온을 찾기 어렵다. 백척간두의 배팅이 된다. 모 아니면 도 식의 도박적 투자를 반복하면 스트레스 건강을 해친다. 투자하더라도 수명 단축형 투자는 하지 말아야 한다.

투자는 결국 재능보다 감정 조절 능력이 승패를 좌우한다. 치열한 감정 지능 게임이자 자신과의 싸움이다. 가격 변동성의 심리적 '박해'를 받지 않고 사는 것도 평온한 삶을 유지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아무리 투자가 필수인 시대라지만, 정신적으로 감당할 수 있는 수준에서, 건강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투자하는 것이 옳다.

 

‘심성비’ 중심으로 재편하는 영혼의 포트폴리오


내 남은 삶에 최고의 심성비를 선물하고 정신의 중심추를 단단히 잡기 위해서는 투자와 삶의 포트폴리오를 완전히 재편해야 한다. 많은 부자가 이미 숫자만을 좇는 무모함을 버리고 수익과 위험을 분산하는 전략을 구사한다. 금액이 많을수록, 나이가 들수록 보수적인 대응을 하는 것이 현명하다.

주식시장은 초 단위로 가격이 변하고 온갖 뉴스가 쏟아지는, 그야말로 '감정 소모의 극치'를 달리는 공간이다. 여기서 찾아낸 전략이 '심성비 중심의 투자'다. 과거에는 고수익을 좇아 개별주나 테마주를 분석하고 밤새 해외 뉴스를 뒤지는 것이 유능함의 표상이었다. 지금은 개별 종목 대신 미국 지수 ETF(S&P500, QQQ)나 매달 현금이 꽂히는 고배당 ETF로 돈이 몰린다. 적립식으로 자동 매수를 걸어두고 스마트폰에서 시세 창을 아예 지워버리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이는 감정을 철저히 배제하고 투입하는 정신적 에너지 대비 효율을 극대화하는 전략이다.

부동산시장이나 실물 자산 관리에서도 마찬가지다. 한때 은퇴자의 로망이었던 빌딩에 대한 인기가 예전 같지 않다. 실물 부동산을 처분하고 리츠(REITs)나 우량 배당 자산으로 이동하려는 움직임이 포착된다. 공실 리스크, 악성 임차인과의 갈등, 누수나 수리 스트레스가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매 순간 부딪히는 관리 스트레스가 마음의 평정을 짓밟는다면 그것은 심성비 측면에서 낙제점이다.

부동산투자와 시장에도 흐름과 경향이 있지만, 그 속에서도 본질과 투자자의 평정심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 Ⓒ셔터스톡

그래서일까. 과거에는 '조물주 위에 건물주'라는 유행어가 나돌았지만, 요즘은 '건물주 위에 배당주'라는 신조어가 더 신빙성 있게 회자된다. 관리의 수고로움 없이 안정적인 현금 흐름을 확보하는 것이 정신건강에 훨씬 이롭다는 계산이다.

내 마음의 평정심이라는 바탕이 없이는 자산이 눈덩이처럼 굴러가는 복리의 마법도 결코 누릴 수 없다. 워런 버핏의 평생 동반자인 찰리 멍거는 "복리의 첫 번째 법칙은 불필요하게 이를 자르거나 방해하지 않는 것"이라고 했다. 불필요한 감정의 흔들림이야말로 복리 효과를 깨뜨리는 가장 큰 적이다.

사람의 성격과 기질은 바꾸기 어렵다. 외부 자극에 민감한 사람도 있고 무던한 사람도 있다. 결국 자신이 누구인가를 제대로 아는 ‘자기인지’가 중요하다. 투자는 결국 숭고한 멘탈 게임이다. 나이 들어 마음 편한 자산을 늘리는 것이 좋을 것이다. 반대로 마음이 불편한 자산을 가급적 줄이는 게 바람직하다. 욕심을 덜어내고 내 정신이 감당할 수 있는 테두리 안에서 자산을 운용하는 것, 그것이 바로 노년에 누릴 수 있는 가장 영리하고 고결한 ‘심성비의 완성’이다.
박원갑

박원갑

KB 국민은행 부동산 수석전문위원

30년 경력의 부동산 전문가입니다. 고려대 정치외교학과,건국대 부동산대학원을 거쳐 강원대에서 부동산학 박사를 받았습니다. 시장의 흐름과 통계를 넘어, 그 안에 담긴 인간의 심리와 행동 관점에서 부동산과 삶을 분석합니다. 복잡한 시장 상황 속에서 파편화된 정보에 휩쓸리지 않도록 생각의 균형추를 잡고, 치우침 없는 중도적 가치 밸런스를 추구합니다. 저서로는 『10년 후에도 흔들리지 않는 부동산 성공 법칙』, 『한국인의 부동산 심리』, 『박원갑 박사의 부동산 심리수업』, 『박원갑 박사의 부동산 트렌드 수업』 등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