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하는 세상에 발맞춰 위기를 기회로 바꾼 글로벌 리츠들

헤르미온느 역할을 맡은 엠마 왓슨 특유의 영국 발음 때문에 더 기억에 남는 영화 <해리포터와 불의 잔>의 엔딩 대사입니다. 세상 모든 것은 변합니다. 새로운 것들이 출현하고 새로운 가치가 부여되며 기존의 어떤 것들은 새로운 변화에 밀려 쇠퇴합니다. 투자의 세계에서는 새롭게 성장하는 것에 대해 높은 가치를 부여하고 현재의 위상을 대체 당할 리스크가 있는 곳에 낮은 가치를 부여합니다.

세상이 변하기에 리츠도 제자리에 머물지 않습니다. 단기적 관점에서 일부 리츠들은 시장 사이클에 따라서 적극적으로 자산을 매각하며 포트폴리오를 축소하는 시기가 있고 반대로 자산을 순매수하여 외형 확장을 진행하는 시기가 있습니다. 또는 시기에 따라서 기존 자산을 매각하고 신규 자산을 개발하거나 포트폴리오의 지역적 변화를 추구하기도 합니다.

리츠가 역량이 높은 경영진을 보유하고 경영진이 적극적인 자산 운용을 통해 리츠의 장기적 이익 극대화를 추구한다면 그 리츠의 주가는 자산의 퀄리티뿐만 아니라 매니지먼트에 대한 평가도 함께 반영할 수 있어 비슷한 자산을 보유한 리츠 대비 상대적으로 프리미엄이 붙습니다. 일반적으로 특정 실물 부동산에 투자하는 것과 리츠 투자의 가장 큰 차이점 중 하나로 볼 수 있습니다. 오늘 소개하고 싶은 사례는 단순히 시장 사이클 흐름에 따른 전술적 변화보다는 보다 더 큰 틀의 전략적 변화 사례입니다.

미국리츠협회는 리츠가 보유한 자산에 따라 리츠를 오피스, 인더스트리얼, 리테일, 호텔, 주거, 팀버, 헬스케어, 개인형창고, 통신타워, 데이터센터, 복합, 특수(Specialty) 등 총 12개의 하위섹터로 구분하고 있습니다. 오피스, 리테일, 데이터센터 등 다른 섹터들은 모두 동일한 자산군의 집합이지만 특수 섹터는 유일하게 동종의 자산군 집합이 아니라 기존 11개의 섹터로 분류되지 않는 그 이외에 특이한 종목의 그룹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문서 파쇄 보관 서비스에서 데이터센터 리츠로 다시 태어난 '아이언 마운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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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특수 섹터에 '아이언 마운틴(Iron Mountain)'이라는 종목이 있습니다. 필자가 아이언 마운틴을 처음 접한 것은 2016년 개봉한 영화 빅쇼트에서였습니다. 당시 영화 속에서 리먼브라더스 은행이 파산하자 직원들이 아이언 마운틴이라고 쓰인 박스에 개인용품을 챙겨서 은행을 떠나고 있는 장면이 나왔습니다. 한국과는 사뭇 다른 박스를 들고 떠나는 미국의 해고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이후에 글로벌 리츠에 투자하는 펀드를 기획하며 투자 목적 차원에서 아이언 마운틴의 비즈니스를 살펴보게 되었습니다. 아이언 마운틴은 기업으로부터 문서를 받아 파쇄, 보관, 디지털화 서비스를 제공하는 B2B 사업자 리츠였습니다. 

 

 

아이언 마운틴의 IR자료에 따르면 문서보관 서비스의 경우 기존 고객 유지 비율이 매우 높아 서류 박스의 50%가 15년 전에, 35%가 22년 전에 맡겨져 여전히 보관 중이라 강조하고 있었습니다. 서류 보관 비즈니스는 매우 비용 효율적인 사업으로 회사는 규모의 경제를 통한 미국 내 시장 통합과 글로벌 확장으로 꾸준히 성장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기업들이 점차 종이 없는 디지털 사회로 변화를 추구하고 있었고 아이언 마운틴도 사내에 전자결제가 도입되며 이러한 변화를 체감하고 있었습니다. 서류 보관 서비스는 시간이 흐르면 쇠퇴할 수밖에 없는 비즈니스라고 판단했죠. 또한 지난 10년간의 주가 흐름 역시 지지부진했기에 큰 고민 없이 아이언 마운틴의 IR자료를 덮었습니다.

당시 아이언 마운틴의 P/FFO 밸류에이션이 14배로 타 섹터 대비 매우 저렴했으나 주식시장에서는 이미 현재 수익이 꾸준하게 발생하나 미래의 어떤 시점에는 비즈니스가 쇠퇴할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는 방증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당시 개인적으로는 이러한 가치주 성격의 투자보다는 현재 P/FFO밸류에이션이 25배가 넘어가나 구조적인 성장이 예상되는 에퀴닉스와 같은 데이터센터 섹터 종목을 더 선호했습니다.

이후로 글로벌 리츠에 투자하는 펀드를 운용하면서도 아이언 마운틴은 꽤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종목입니다. 기본적으로 장기적 성장성을 낮게 판단했습니다. 상대적으로 보다 중요한 섹터에 시가총액 비중이 큰 종목들의 변화를 먼저 보다 보니 특별히 해당 종목을 분석할 일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후 아이언 마운틴의 주가가 조금씩 리츠 시장과 다르게 상승하는 모습이 점점 눈에 띄기 시작했습니다. 그제야 다시 돌아보니 지난 2022년 가파른 금리 상승으로 대부분 리츠들의 최근 3년 주가 수익률이 마이너스를 기록하고 있는 반면 아이언 마운틴의 주가는 약 2배 상승했습니다. 마치 토끼와 거북이의 경주처럼 인덱스와 비교해서도 최근 가파른 상승으로 지난 10년간의 부진을 모두 만회하고 리츠 인덱스 수익률을 압도하고 있습니다.

이 같은 차별적인 주가 상승 흐름을 확인하고 나서야 다시 찾아본 아이언 마운틴의 IR자료에서는 과거 서류 박스 보관 서비스가 어떤 비즈니스인지, 얼마나 지속가능성이 높은지에 대한 이야기는 더 이상 찾아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 대신 새롭게 등장한 자산 이야기는 바로 '데이터센터'였습니다. 물론 서류 보관 서비스를 여전히 운영하고 있으나 기존 자산들을 꾸준히 매각하며 데이터센터 투자를 대대적으로 확장하고 있었습니다. 자산 매각뿐만 아니라 배당 성향도 65%대로 줄이며 재투자의 자본수익을 더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아이언 마운틴은 전략적으로 과감한 변화를 선택하면서 2023년 말 기준 26개의 데이터센터를 운영하고 있고 2023년 한 해에만 124메가와트(MW)의 임대를 수행했습니다. 이익이 늘어나는 속도는 아직은 연간 5% 수준에 머물고 있으나 전략적 변화를 통해 P/FFO 밸류에이션이 18배까지 상승하며 주가 상승을 이끌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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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에서는 스페인에 상장된 메를린 프라퍼티(Merlin Properties)가 가장 큰 변화가 나타나고 있는 리츠입니다. 메를린은 기존에 오피스와 리테일 자산 포트폴리오를 보유하였으나 대규모 쇼핑센터 자산을 매각 후 물류센터에 투자를 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데이터센터 투자로 중장기적으로는 디지털 관련 자산의 비중을 기존 전통 자산 대비 더 큰 비중으로 채울 예정입니다.

2017년 마이크로소프트와 메타가 공동으로 미국 버지니아와 스페인 빌바오에 남유럽을 직결하는 최초의 초고속 해저 통신 케이블 마레아(MAREA)를 완공하며 스페인이 새로운 네트워크 허브 지역으로 급부상했습니다. 이후에도 2022년 구글이 미국과 영국, 그리고 스페인을 연결하는 해저 케이블 그레이스 호퍼를 완공한 점이 메를린에게 큰 비즈니스 기회로 작용했습니다.

 

 

메를린 프라퍼티의 데이터센터는 빌바오, 바르셀로나, 마드리드 3곳에 올해까지 완공을, 내년까지 내부 장비 설치가 완료를 계획하고 있으며 총 60MW 규모의 데이터센터가 운영될 예정입니다. 빌바오와 바르셀로나 자산은 이미 선임대가 완료되었습니다. 추가로 빌바오와 리스본에 200MW의 대규모 데이터센터를 개발 중으로 해당 프로젝트가 완공되면 스페인 내에서는 압도적인 규모의 1위 데이터센터 사업자로 올라서게 됩니다.

매력적인 점은 안정화 단계를 기반으로 예상되는 개발 NOI 일드가 10%가 넘어갑니다. 현재 유럽 시장에서 데이터센터 거래 일드가 5% 내외라는 점을 감안하면 데이터센터 자산가치가 2배가량 증대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투자자의 기대가 단순하게 미래 산업에 대한 정성적인 가치 부여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필자는 주식 매니저 경험을 바탕으로 현재는 리츠에 전문적으로 투자하는 펀드를 운용하고 있습니다. 부동산 전문가가 아니지만 주식 투자 시절과 마찬가지로 전문가는 해당 산업과 기업에 있다고 생각하고 리츠에 접근하고 있습니다. 

리츠 투자는 상업용 부동산 직접 투자가 아니라 리츠의 경영진에게 상업용 부동산 투자와 운용을 맡긴다고 생각하는 점에서 자산의 현황뿐 아니라 경영진의 경영전략을 함께 살펴봐야 합니다. 그들의 고민과 아이디어를 통해 매니저도 새로운 변화에 함께하고 자본을 효율적으로 재배치하는 역할을 수행합니다. 리츠가 주주와 소통하는 것이, 그리고 투자자 역시 리츠와 소통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