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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고, 놀고, 살고 싶은 동네 이야기를 담아내는 '시티&' 첫 시리즈 도쿄편에 이어 두 번째 시리즈인 여의도편을 시작합니다. 여의도는 도시를 움직이는 주요 기능이 모두 위치한 지역입니다. 국회의사당으로 대표되는 정치지구, KBS를 주축으로 한 방송지구, 63빌딩이라는 국내 최초의 초고층 빌딩이 자리잡은 상업지구, 한강시민공원과 여의도 광장 등 대규모 녹지지구, 증권거래소가 위치한 경제지구 등 다기능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아파트로 이루어진 주거지구 기능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그렇기에 도시 변화가 어떻게 개인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지 알아보기에 최적화된 지역이기도 합니다. 동시에 에리어 매니지먼트의 순기능을 살펴보기 좋습니다. 여의도 지역의 변화를 통해 사람, 커뮤니티, 기업이 함께 만들어 가는 동네의 움직임을 소개하겠습니다.  
여의도 풍경 ⓒSPI 플랫폼 마케팅팀
여의도는 조금 특별한 지역입니다. 서울은 물론 다른 나라의 대도시에서도 보기 어려운 특색을 가졌습니다. 섬이라는 공간적 특징뿐 아니라 대규모 개발 계획에 따라 기능이 강화되고, 건축과 도시 공간의 모습이 달라졌으며, 시대에 따라 각기 다른 역할을 수행하며 독특한 도시·사회적 지형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여러 변화의 한 가운데 있던 지역이기도 합니다. 여의도의 발전 과정을 살펴보면 이런 특징이 이해됩니다. 모래톱으로 이뤄져 한강 수면이 올라가면 침수되던 쓸모없는 땅에서 서울을 대표하는 도심으로 자리잡은 과정은 우리나라 도시 개발의 역사이기도 합니다. 
자연스럽게 수식어도 다양합니다. 우리나라 최초, 최대의 초고층 빌딩이 자리잡았던 곳, 국제 금융도시 서울의 핵심이 되었던 지역 등 어떤 측면에서 이야기하는지에 따라 여의도를 설명하는 내용은 달라지죠. 이 중에서도 저희는 "부동산 금융이 어떻게 도시를 가치있게 하는가"라는 측면에서 여의도 지역의 변화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자본으로 자산이 만들어진 최초의 지역이자, 현재도 자본에 의해 도시의 모습이 달라지고 있는 지역으로의 여의도에 집중했습니다. 이와 함께 개인의 생활에 영향을 미치는 도시 변화와 관련된 여의도 지역의 움직임을 소개하겠습니다.   

개화를 시켜야 했던 곳이 개화의 최상단에 위치하다 


여의도 콘텐츠를 기획하면서 사내 임직원과 "내가 기억하는 여의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부모님과 함께 63빌딩 수족관을 방문하고 뷔페에 갔던 기억, 한강공원에서 자전거를 배우던 기억, 여의도 광장에서 선거 유세를 본 기억, 여의도 아파트로 이사했던 기억 등 각기 다른 기억 속 여의도를 꺼냈습니다. 그 과정에서 여의도라는 지역에 대해 다시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도시 변화 과정에서 독특한 도시·사회적 지형을 형성했다는 설명이 좀 더 삶과 밀접하게 연결되었습니다. 도시의 변화는 추억과 기억을 바꾸며 개인의 삶에 영향을 줍니다. 특히 여의도는 시대별 변천사가 명확해 이런 특징이 더 두드러지는 지역입니다. 

조선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면 여의도는 쓸모 없는 섬이었습니다. 모래톱으로 되어 있으며, 비가 올 때마다 물에 잠기는 ‘큰 섬’일 뿐이었죠. 나라에서 관리하는 목축 공간과 세도가의 정자가 있던 공간으로의 쓰임만 있었습니다. 섬이라는 지형적 특성상 고립되어 있을 수밖에 없었고, 소수지만 이 곳에 정착해 사는 사람들은 국가의 통제에서 비교적 자유로웠습니다. 이 때문에 여의도는 오히려 국가적 차원에서 교화를 해야 하는 지역에 해당되었죠. 
개화 대상 지역에서 벗어난 것은 일제강점기입니다. 1916년 일본은 여의도를 군용지로 매수해 간이비행장을 건설합니다. 한국 최초의 비행장이 만들어진 것이죠. 도쿄와 만주 다롄을 연결하는 항공노선의 중간 정착지 역할을 했습니다. 점차 '일본과 조선, 만주 항공로의 요충지'라는 위상에 걸맞게 야간 착륙을 위한 항공 표식(조명탑) 등 다양한 설비들이 추가적으로 갖춰지며 '동양 제일의 비행장'으로 자리잡게 됩니다.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에서 금메달을 딴 손기정 선수의 귀국 이벤트, 한국인 비행사의 대표격인 안창남의 비행도 이 곳에서 진행됐습니다. 
그럼에도 이때까지 여의도는 시민들의 삶과 큰 접점이 없는 곳이었습니다. 실제로 여의도 비행장이 삶의 영역으로 들어온 시기는 1956년입니다. 대대적인 공사를 하며 국제공항으로 거듭났죠. 개화의 대상이었던 여의도가 현대화 최상단의 역할을 수행하며, 우리나라와 세계를 연결하는 기점으로 변화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서울 도시 개발의 ‘최초’는 여의도에 모여 있다


1967년부터 본격적인 여의도 개발이 시작됩니다. 여의도 주변에 제방을 쌓는 윤중제 공사가 진행되었죠. 이어 1968년 밤섬이 폭파됩니다. 윤중제 공사의 건설 자재를 충당하기 위한 목적이었습니다. 이때부터 여의도는 서울 도심 개발의 주요 거점 지역이 되었습니다. 서울 시장이 바뀔 때마다 계획이 달라지며 현실화되지 못했지만 국가 주도의 여러 개발 계획이 설계되었습니다. 그러다 1970년 박정희 대통령이 여의도 중앙을 가로지르는 대광장 건설을 지시하며, 여의도 개발이 구체화됩니다. 이후 1971년 9월 여의도 광장이 준공되었죠. 여의도 광장은 국가의 큰 행사가 진행되는 장소로의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서울을 대표하는 공간이 된 것이죠. 실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방한 행사, 이산가족 찾기 행사 등이 여의도 광장에서 진행됐습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참석한 한국 천주교 200주년 대회(1984) ⓒ서울역사박물관 
여의도의 변화도 점차 가속화되었습니다. 시작은 국회의사당 건설입니다. 1968년 국회의사당 부지가 여의도로 확정된 것이죠. 여의도에 가장 ‘처음’ 들어선 대형 시설이기도 합니다. 1975년 국회의사당이 준공되며, 여의도는 서울의 새로운 도심으로 발전하며 입법부가 중심이 되는 '민주 정치'의 상징이 되었죠. 흔히 한국의 정치를 이야기할 때 '여의도 정치'라는 단어를 쓰는 것도 이런 영향을 받은 것입니다. 
1971년 10월 준공한 여의도 시범아파트는 강남보다 앞서 서울 ‘최초’의 고층아파트 붐을 일으켰습니다. 이후 삼익아파트, 한양아파트 등 16개 단지의 민간아파트가 연달아 지어지며 주거지로서의 여의도를 완성해 갑니다. 현재 여의도에 단독주택이 없는 이유도 이와 관련 있습니다. 개발 초기 아파트지구가 지정되며 개발이 본격화되었기 때문이죠. 지금은 익숙하고 일반적인 모델하우스 설치를 통한 분양 광고가 ‘처음’ 시도된 것도 여의도 시범아파트 분양이었습니다. 냉난방시설과 에스컬레이터가 갖춰진 ‘최초’의 아케이드형 상가, 놀이터, 수영장, 유치원 등 부대시설을 갖춘 ‘최초’의 단지, 중앙난방과 도시가스 사용, 여러 개의 주거동을 연결하는 공동구를 ‘최초’로 적용한 아파트 역시 여의도 시범아파트입니다. 최초 타이틀이 많은 아파트였죠. 이후 시범아파트는 서울 아파트 단지 설계의 기준이 됐습니다. 
1980년대 여의도 아파트 단지의 모습(1984) ⓒ서울역사박물관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당시 일본 신주쿠에 위치한 선샤인 빌딩보다 25m나 높아 동양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자, 서울 시내 '최초'의 최고층 빌딩인 63빌딩도 여의도에 자리잡습니다. 소도시 규모의 인구와 맞먹는 1만명의 상주인구, 2만명의 유동인구가 63빌딩을 찾았습니다. 1층부터 60층까지 3초만에 도착하는 초고속 엘리베이터 8대를 비롯해 층별로 구분된 24대의 엘리베이터가 운행되며 국내 최대 규모를 자랑했습니다. 국내 '최초'로 모든 외벽이 유리로 마감된 A.G.C.W(All Glass Curtain-Wall)공법으로 지어졌죠. 이전까지의 건물에서는 찾을 수 없는 다양한 시설이 반영되었습니다. 63빌딩은 최첨단, 최고, 최대 규모의 건물인 동시에 국제사회에 한국과 서울의 이미지를 만들어 내는 랜드마크였죠. 1988년 서울올림픽 당시에는 대한민국 경제발전을 상징하는 아이콘의 역할도 했습니다. 이 시기를 여의도 공간 개발의 1단계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본격적으로 도심으로서의 기능을 갖추기 시작한 시기인 셈입니다. 
1980년대 중반 63빌딩의 모습(1984) ⓒ서울역사박물관

여의도 도시 특성의 본격적인 발현 


1970년대 이후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는 여의도 도시 특성의 발현이 본격화되는 시기였습니다. 동여의도 쪽에는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고, 서여의도 방향에는 세계 최대 규모의 교회인 순복음교회가 자리잡았습니다. 여의도 전체 면적의 1/8에 달하는 국회의사당도 위치했죠. 이렇게 여의도의 동쪽과 서쪽을 나누는 기준은 중앙을 가로지르는 여의도 광장입니다. 
여기에 1976년부터 KBS를 시작으로 1991년까지 TBC, MBC, SBS가 여의도에 이전 및 개국하며 여의도는 한국 방송의 중심지가 되었죠. 정부 정책의 영향으로 증권거래소가 여의도로 이전하며 증권타운이 형성되기 시작합니다. 지금의 여의도의 틀이 완성된 것이죠. 당시 최대한 현대적인 공간으로 보이기 위해 5층 이상의 건물만 지을 수 있는 높이제한까지 존재했습니다. 미관지구로 지정되며 다른 지역에서는 보기 어려운 대규모 시설과 고층 건물들이 여의도에 자리잡기 시작했죠.

세계화, 민주화에 맞춰 진행된 여의도 지역의 현대화


1990년대가 지나면서 여의도는 세계화, 민주화라는 사회적 변화에 맞춰 달라집니다. 광장이라는 이름과 달리 권력과 권위의 상징처럼 활용된 여의도 광장이 온전히 시민들을 위한 공간으로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광장이 아니라 공원으로 변모한 것이죠. 지역적 특징 또한 좀 더 강화되었습니다. 세계화 정책에 맞춰 '서울 국제화를 위한 도시구조 개편과 전략지역 개발계획'의 일환으로 여의도 지역은 국제적 금융 업무 중심 기능을 특화합니다. 
여의도 공원이라는 문화 예술 공간의 조성과 국제 금융 업무 지구로서의 특성 강화와 함께 여의도는 서울을 대표하는 도심지로서의 역할이 강화됩니다. 이 과정에서 정부 주도의 일방적인 개발보다 지역적 특색을 살리면서 도시 전체의 미래를 고려한 개발이 이뤄집니다. IFC(국제금융센터)로 대표되는 금융 시설이 초고층 빌딩의 형태로 자리잡고, 마천루들이 들어서며 새로운 스카이라인이 형성됐습니다. 여의도 지역에 자본의 영향력이 더 강해진 것이죠.
현재의 여의도 풍경 ⓒSPI 플랫폼 마케팅팀
이로써 여의도는 크게 5가지 권역으로 나뉘어집니다. 금융 상업 권역, 방송 종교 권역, 주거 권역, 정치 권역, 공원 녹지 권역이죠. 계획도시로 시작된 여의도는 기능과 용도가 확실하게 구분되어 구역별 특성이 명확합니다. 이는 건물의 높이만으로도 구분이 될 정도이죠. 시대의 흐름에 따라 모습은 달라지고 있지만, 여의도 지역이 갖춘 도시의 특성은 여전히 유지되고 있습니다. 이런 특성은 결국 여의도만의 라이프 스타일이 만들어지는 배경이 되었죠.


‘직주락’이라는 키워드를 대표하는 공간


 현재의 여의도는 직주락의 대표 지역입니다. 여의도 이외의 지역으로 이동해야 하는 이유가 없죠. 백화점, 영화관, 병원, 공원 등 생활에 필요한 모든 인프라가 여의도 안에 마련되어 있습니다. 이런 이유 때문인지 여의도가 주거지역으로 자리잡았던 1970년부터 이 곳에 살던 사람들이 여전히 여의도를 지키고 있습니다. 압구정과 강남이 생기기 전 가장 현대적인 동네의 주민이라는 자부심, 서울에서도 다른 지역보다 앞선 문화적 환경에 대한 만족감 등의 영향이겠죠. 

 주거 공간과 상업 공간이 어우러지는 여의도 모습ⓒSPI 플랫폼 마케팅팀 
여의도는 현재도 계속해서 변화하고 있습니다. 더현대가 문을 열면서 '놀러 오는 동네'로서의 역할이 강화됐습니다. 운동과 여가생활을 중요시하는 라이프 스타일의 변화에 맞춰 샛강 공원, 여의도공원 등 대규모 공원을 찾는 사람들의 발길도 늘어났죠. 업무지구의 특성은 꾸준히 유지되며 서울 자본의 움직임이 시작되는 지역으로서의 명성도 여전합니다. 놀고, 일하고, 생활하기에 최적화된 공간으로서의 특성을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서울을 대표하는 놀일터로 거듭나고 있죠.


또 다른 변화의 출발지점에 있는 여의도


여의도 개발은 원도심 중심이었던 서울의 단핵 구조를 다핵 구조로 변화시키는 신호탄이 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큽니다. 그뿐 아니라 도심의 다양한 기능을 온전하게 수행할 수 있도록 계획된 동네라는 것도 놓칠 수 없는 지점입니다. 자본의 움직임을 통해 여의도는 천천히 모습을 바꿔가고 있습니다. 다만 시작부터 갖춘 기능을 유지하며, 더 발전적인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죠. 
앞으로의 여의도 또한 여러 변화 포인트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주거지역의 대규모 재개발을 앞두고 있죠. 새롭게 건설된 하이앤드 브랜드 아파트도 점차 확장되고 있습니다. 여의도 업무지구를 대표하는 금융 브랜드들의 사옥 건설과 리모델링, 신규 빌딩 건설까지 여의도 지역을 변화시키는 개발이 지속되는 중입니다. 또 다른 변화의 출발지점에 위치하고 있는 것이죠. 앞으로 달라지는 여의도의 모습은 자본의 영향이 더욱 강하게 반영될 것이라 생각됩니다. 그렇기에 부동산 금융이 어떻게 도시를 가치있게 변화시키는지에 대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자본은 사람을 끌어당기는 기반을 만듭니다. 사람들의 시선과 발길을 머물게 하는 공간이 지속적으로 만들어지면 지역은 활성화될 수밖에 없습니다. 더 나은 생활이 가능해지면 사람들은 지속적으로 유입되고, 결국 지역 발전이 꾸준히 이뤄지는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지는 것이죠. 지금 여의도는 그 선순환을 구축해 나가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도쿄에서 발견한 에리어 매니지먼트의 순기능이 여의도에서도 조금씩 진행되고 있는 듯 보입니다. 운영 능력을 가지고 있는 곳들이 모며 더 많은 사람을 끌어당기는 힘을 얻고, 자본과 긍정적 상생을 통해 비즈니스 역시 지속성을 가지게 되는 것이죠. 여의도는 이런 변화의 힘을 가진 지역입니다. 
이런 관점을 가지고 여의도 지역을 좀 더 다양하게 살펴보려고 합니다. 실제 여의도에서 일하고, 생활하는 사람들을 만나 그들에게 삶의 무대인 여의도를 알아보겠습니다. 명확히 구분된 5개 구역별 특징과 발전 과정을 통해 자본과 자산, 도시는 어떻게 연결되고 영향을 주고받는지에 대해서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일상이 더 편리하고 풍요롭게, 우리의 공간이 더 가치롭게, 사람, 커뮤니티, 기업이 만들어가는 동네의 움직임을 함께 찾아볼까요? 

[참고자료] 
1) 서울역사박물관 서울생활문화자료조사 여의도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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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이라는 그릇 안에 자본, 도시, 사람의 움직임을 담아 투자 감각을 깨우고, 자산을 운영할 수 있는 정보와 콘텐츠를 만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