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고, 놀고, 살고 싶은 동네 이야기를 담아내는 '시티&'의 두 번째 시리즈는 여의도입니다. 여의도는 도시를 움직이는 주요 기능이 모두 위치한 지역입니다. 국회의사당으로 대표되는 정치지구, KBS를 주축으로 한 방송지구, 국내 최초의 초고층 빌딩의 상징인 63빌딩, 한강공원과 여의도공원 등 대규모 녹지와 공원들, 한국거래소가 위치한 경제지구까지 다기능을 수행하고 있으며 다면적 경험을 제공합니다. 아파트로 이루어진 주거지구 기능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그렇기에 도시 변화가 어떻게 개인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지 알아보기에 최적화된 지역이기도 합니다. 동시에 에리어 매니지먼트의 순기능을 살펴보기 좋습니다. 여의도 지역의 변화를 통해 사람, 커뮤니티, 기업이 함께 만들어 가는 동네의 움직임을 소개하겠습니다.
여의도는 주거 공간의 변화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재건축을 앞둔 아파트 단지가 16곳 가까이 됩니다. 그 중 재건축의 전통적인 주요 포인트, 속도감으로 눈길을 끄는 단지가 있습니다. 여의도 대교 아파트입니다. 조합창립총회에서부터 정비계획 결정고시까지 단기간인 210일안에 진행됐습니다. 평균과 비교해도 굉장히 빠른 속도입니다. 하지만 여의도 대교 아파트는 단순히 속도만이 아니라 파트너 사와의 밸런스 있는 협업, 조합원과 주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이해를 높이는 소통을 통해 여의도 지역의 새로운 기준을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이에 대교 아파트 정희선 조합장을 만나 여의도의 주거 환경 변화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봤습니다.

재건축 조합 운영의 핵심, 매니지먼트
지금도 카리스마 넘치는 조합장의 인기가 여전합니다. 불도저처럼 재건축 속도를 높이는 것이 최고의 가치로 여겨지기 때문입니다. 물론 재건축에서 속도는 결코 놓칠 수 없는 포인트입니다. 다만 누군가는 포기하고, 누군가는 분노한 상태로 그저 속도만 빠르다면 성공적인 재건축이라 할 수 없겠죠. 속도를 높일 수 없는 상황이 만들어지거나 사업이 좌초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정희선 조합장의 운영 노하우인 ‘소통을 담보한 속도’가 인상적입니다.
저의 직업은 전혀 다른 분야이지만, 서울에서 가장 진행 안되었던 도시환경정비사업 재개발 조합에서 10년간 이사로 재직했습니다. 시작은 재건축, 재개발이 어떤 프로젝트인지 이해하지 못한 채 3년후에 입주할 수 있다는 말을 듣고 아파트를 산 것이었습니다. 당시만 해도 유명한 건설사들이 모두 참여하는 프로젝트라는 설명이 있었고, 금융사 담당이 소개하기도 했기 때문에 큰 의심이 없었어요. 3년만 지나면 내 집을 가질 수 있다는 기대감만 있었죠.
새 아파트의 동호수가 정해진 집을 샀는데, 3개월 후 공사 시작 소식이 아니라 시공사가 계약을 해지한다는 내용이 들려왔습니다. 불안한 마음이 들어서 조합에 문의했지만 돌아온 답은 ‘걱정 말라’는 것이었죠. 그때까지도 재건축 또는 재개발, 정비사업 등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어요. 걱정되긴 했지만 잘 진행되고 있다니 그런 줄 알았죠. 그러던 어느 날 이주비에 대한 이자를 자납하거나 보증을 서야 한다는 안내를 받은 거예요. 그때 정신이 들었어요. 하나씩 따져보니까 제가 가진 부동산 가치는 50% 이상 하락해 있었습니다. 집이 사라질 상황인데 할 수 있는 게 없었어요. 왜, 무엇 때문인지 알아야겠다는 마음으로 조합을 찾아갔고, 우연한 계기로 조합 임원 보궐선거에 나갔어요. 지금 생각하면 참 무모한 도전이었습니다.
그 당시 서울에서 제일 주목받는 재개발 정비사업에서 조합 임원이 되는 것은 하고 싶다는 마음만 가지고는 어렵습니다. 조합원들에게 진행 상황에 대해서 어떤 비전을 제시할지, 어느 정도의 경제적 가치를 만들어 낼 것인지 등을 명확하게 보여줘야 합니다. 이미 프로젝트가 시작된 지 10년이 지났고, 원활한 진행도 되지 않았기에 40대 여성이 나와서 살기 좋은 집을 만들겠다는 꿈같은 이야기를 하는 건 사실 의미가 없는 일이었어요. 그런데 제가 투표에서 1등으로 당선되었습니다. 당시에는 ‘역시 진심이 통한다’고 생각했는데, 시간이 한참 지나고 보니 중도라는 포지션이 중요했던 것 같아요. 당선된 후에는 수험생 모드로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매일 새벽 3시까지 쉬지 않고 서류와 싸우며 '내가 이걸 대체 왜 하고 있지?'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다 10년이 흘렀고, 드디어 끝이 났죠. 입주와 동시에 다짐했습니다. 내 인생에 두 번 다시 정비사업은 없다고요.
대교 아파트 재건축 추진을 도와달라는 요청도 6년을 거절했어요. 준비위원회에서 물어보시는 내용에 답변을 드리는 게 다였습니다. 그러다 2022년 10월 설명회를 하신다고 하셨고, 재건축경험이 없는 주민들이 준비하기에는 어려운 면이 많아 설명회 자료준비를 도와드렸습니다. 설명회 반응은 굉장히 좋았습니다. 바로 추진위원회를 만들게 되었죠. 추진위원회를 만들려면 조합원들에게 동의서를 받아야 했는데 그 동의서에 추진위원장, 부위원장, 위원들 명단이 인쇄되어 나가야 했고, 진행 상황상 부위원장으로 이름을 올리게 됐습니다. 위원장이 정해지면 인계할 마음이었거든요. 그런데 마음처럼 되지 않는 일도 있고, 원래부터 인연인 일도 있는 것 같습니다. 시작을 하기 전에는 최대한 피하고자 했지만, 일단 하기로 한 다음부터는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시작한 이상 성과를 내야 하고, 시작한 이상 끝을 맺어야 하는 성격입니다.
재건축의 경우 속도가 중요합니다. 속도가 결국 조합원들의 수익과 비례하기 때문이죠. 그러나 그냥 속도만 빠르면 안 됩니다. 조합원들의 동의에 기반한 속도여야 합니다. 아무리 짧아도 10년 여정이에요. 그 시간동안 같은 배를 타고 항해를 하는 것과 같죠. 배에서 내릴 수도 없어요. 적어도 70%는 목적지까지 함께 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서로에게 상처를 주지 않는 것이 정말 중요해요. 재건축을 통해 재산이 늘어나는 건 중요하지만, 그것이 삶의 유일한 이유나 목적은 아닙니다. 감정 싸움을 하면서 삶 자체를 힘들게 만드는 일은 피해야 합니다. 물론 감정이 상하면 속도를 올리는 건 아예 불가능한 이야기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감정을 상하지 않게 하는 것, 서로에게 상처를 주지 않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모든 일이 잘 되는 기본 조건은 원활한 소통입니다. 그래서 소통에 무엇보다 집중하고 있습니다. 그 외에도 이전 정비사업 재개발 조합에서 10년간의 실무 경험을 바탕으로 폐해를 최대한 줄이는 방법을 고민하는 것 같습니다.
재건축을 통해 변화할 대교 아파트 모습 ⓒ대교 아파트 재건축정비사업 조합
재건축 사업의 비즈니스 매니저 역할
재건축은 분명한 규정과 지식, 절차가 있는 사업입니다. 그런데 사람이 하는 일이다 보니 사실과 다른 이야기들이 퍼지는 경우가 있을 수 있습니다. 오해가 쌓이고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게 되는 일들도 생깁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사람이 조합장입니다. 그렇기에 조합장은 비즈니스 매니저, 프로젝트 PM처럼 일을 해야 하는 것 같습니다. 특히 운영과 디테일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정비 사업을 한번 경험하고 나니 힘을 줘야 하는 것과 힘을 빼야 하는 점이 보이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힘을 줘야 하는 지점은 입주 후에 바꿀 수 없는 지점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설계와 외관, 디자인은 한번 짓고 나면 바꾸는 것이 불가능하죠. 현재 여의도 아파트가 50년이 넘게 유지되는 것처럼 새로 지어지는 아파트는 100년간 이 지역을 지키고 있을 겁니다. 모든 계획을 세울 때 그 사실을 잊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또한 인테리어와 조경을 특화하여 함께 진행하며 생활하는 사람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최우선적으로 노력하고 있습니다.
프로젝트 인가가 가장 어려운 부분입니다. 정비계획 수립에서 특히 이슈가 되었던 부분이 공공기여시설 중 ‘데이케어센터’였습니다. 서울시 심의를 받으려면 데이케어센터가 포함된 설계를 해야 했죠. 문제는 주민들 사이에 데이케어센터가 혐오 시설이라는 인식이 퍼져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피한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었죠. 정면돌파를 하기로 결정하고 설명회를 계획했습니다. 1년 반 동안 잘한 일들이 많았는데, 그걸 정확하게 설명한 적이 없더라고요. 차분히 우리가 해온 일과 계획하고자 하는 방향을 설명했습니다. 특히 공공부문과의 협의를 통해 공공기여로 주민들이 선호하는 체육시설을 계획했다는 점을 강조했어요. 선호 시설과 비선호 시설은 사실 한 세트에 가깝습니다. 좋은 것만 다 가질 수 없는 것은 일의 이치기도 하고요. 체육시설과 데이케어센터가 한 세트임을 설명했고, 참석한 300분의 주민들 중 단 한 분도 반대하지 않으셨어요.
그렇죠. 정비사업이라는 단어에도 포함되어 있지만, 이건 사업입니다. 비즈니스예요. 하고 싶은 일들만 주장하는 건 사업이 아니죠. 프로젝트 운영할 때 생각해보면 조율을 잘 하는 게 중요합니다. 재건축도, 정비사업도 동일합니다. 조율을 잘 해서 사업이 성공적으로 완료되게 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저는 객관적인 사실 인지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편입니다. 물론 모든 조합원은 우리 단지에 대한 자부심이 있습니다. 최대, 최고, 최초 같은 수식어를 좋아할 수도 있죠. 그런데 사실과 다른 기대감이 커지는 건 원활한 사업 진행에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부동산은 입지가 중요한데 한강이 보이지 않는 지역에 지어진 아파트가 한강 조망이라고 홍보하면 안 되는 거잖아요. 동일합니다. 저도 “입지는 강남을 따라가기 어렵고, 여의도 안에서 규모는 시범아파트보다 작아요.”라고 이야기합니다. 핑크빛 미래를 그리기보다 현실적인 지금을 서로 알고 이해하는 게 최대, 최고보다 중요합니다. 현실적인 상황을 인지하고 조금씩 개선되는 부분에 기뻐하는 것이 더 큰 만족감을 줄 것이라 생각합니다.
사람들의 시선에서 만족감을 줄 수 있는 디자인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대교 아파트 재건축정비사업 조합
주거 공간은 사람의 삶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해야 한다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이 있습니다. 건축 설계 단계에서 반영해야만 누릴 수 있는 기능들이 대표적입니다. 예를 들어 30억의 가치가 있다고 하는 집인데 들어가는 현관은 오피스텔보다 작거나 집 중간에 기둥이 있으면 어떨까요? 집에 사는 내내 만족감이 떨어질 수 있습니다. 저 역시 주부로 살았기 때문에 집은 보는 곳이 아니라 사는 곳이라는 사실을 많이 느꼈습니다. 화물 엘리베이터가 없으면 이사를 할 때 얼마나 힘든지, 택배나 새벽배송 동선이 정리되지 않으면 어떤 문제들이 생기는지, 빨래를 널 공간이 없으면 얼마나 당황스러운지를 고려합니다. 설계를 할 때 이런 부분들까지 고려해야 살기 좋은 집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짓고 난 다음에 해결하기 어려운 부분들이기도 하고요. 보여주기 위한 공간보다 사람이 생활하는데 필요한 공간, 만족할 수 있는 공간을 구현하려고 노력 중입니다.
솔직히 커뮤니티에 대한 목적과 기준이 좀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주제가 저의 석사논문 주제이기도 하고요. 최고 프리미엄을 내세우기보다 관리할 수 있는 수준에서 고급스럽게, 공간을 이용할 수 있는 곳으로 만드는 것이 필요합니다. 호텔급의 피트니스센터를 지으면 운영비도 그에 합당하는 수준만큼 발생합니다. 아파트에서 그런 비용을 관리비로 쓸 수 없어요. 멋있게, 크게 보다는 일상에서 주민들이 쓸 수 있고, 관리할 수 있는 범위의 커뮤니티를 만드는 것이 중요합니다. 아파트 정원의 경우도 몇 억의 비용이 들어가는 소나무가 꼭 있어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관리를 하기 위해 비용은 계속 들어갈 텐데 소나무의 기능은 보기 좋은 것 또는 우리 아파트 단지에 몇 억 가치의 소나무가 있다는 사실을 말할 수 있는 정도인 것 같아요. 그보다 작아도 숲 속에 들어온 기분을 만끽하며 짧은 일상의 힐링을 할 수 있는 정원이 우리에게는 더 필요하지 않을까요? 사계절의 변화를 느낄 수 있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요? 이런 고민들을 하면서 돈을 꼭 써야 하는 지점에 쓰고자 합니다.
아무래도 생활자의 눈으로 공간을 봐서 그런 것 같습니다. 얼마 전에 아자부다이힐스를 비롯해 일본 주상복합 건축물들을 보고 왔습니다. 그 공간에서 느낀 부분은 거창한 지점이 아니었어요. 보도블록을 걸을 때 구두 굽이 빠지지 않는지, 걷는 동선에서 어떤 환경을 만나게 되는지, 짧은 길이지만 산책하는 기분이 느껴지는지, 조명 불빛이 얼마나 편안하게 느껴지는지 등을 체크했습니다. 매일을 보내야 하는 집이라면 이런 부분들이 결국 편안함의 차이로 다가올 것이니까요. 건축 디자인에서도 아파트 브랜드보다 오래 기억에 남을 디자이너의 건축물로 인식될 수 있을지에 대해서 생각합니다. 50층 아파트에 거주한다고 해도 사람의 눈 높이 범위인 3m가 경험을 만든다고 할 수 있어요. 최근에는 그 지점에서 어떤 경험을 제공할 것인지를 늘 생각하고 있습니다.
기부채납 시설로 수영장을 계획했습니다. 아파트 내부 커뮤니티를 키우는 대신 가까운 거리에서 주민들이 이용 가능한 25m 6레인 규모의 수영장과 다목적 체육시설을 포함한 영등포구청 복합문화센터를 짓습니다. 조식 서비스도 용산에서 3년 넘게 사용해보니 음식의 질과 비용의 밸런스를 어떻게 맞춰야 하는지 느낀 부분들이 있습니다. 지하주차장도 끝 라인이 만들다 만 것처럼 되지 않도록 땅을 한층 더 팠어요. 상가 구성도 주민들이 생활에서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시설들이 들어올 수 있는 임대료 수준이나 동선을 고려하고 있습니다. 이미 서비스를 계획하는 것부터 실제 사용하는 것까지 경험해봤기 때문에 찾아야 하는 타협점을 알고 있습니다. 그 조율을 잘 하는 것이 제 역할인 것 같습니다.
버려지는 공간 없이 사람들의 생활 만족도를 높여줄 특화 디자인 ⓒ대교 아파트 재건축정비사업 조합
“여의도는 제 시작과 끝이 될 것 같습니다. 한 때 떠나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적도 있지만, 결국 운명처럼 여의도에 돌아왔습니다. 다시 제 세상의 전부가 되어 가고 있죠. 더불어 앞으로의 여의도는 도시에 살아야 하지만, 도시 같지 않은 곳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알맞은 지역으로 발전해 갈 것이라 생각합니다. 재건축이 되고 나면 주거 인프라가 바뀔 것이고, 집값이 달라지고 인구도 2배 이상 늘어날 것입니다. 입주편의나 거주편의도 훨씬 좋아질 것이고요. 저는 여의도가 누구나 살고 싶은 장소가 될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