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들어 기준금리가 한번 인하되면서 다시 2%대로 떨어졌지만, 국내 상업용 부동산 시장은 여전히 적지 않은 도전과 해결 과제에 직면해 있습니다. 정치적 불확실성, 글로벌 경제 환경의 변화 등 녹록지 않은 대내외적인 변수는 우리나라 부동산 시장에 대한 극단적 전망을 낳는 배경이 되고 있습니다.
부동산 전문가에게 늘 따라붙는 질문은 “언제 사야 하나요?”라는 것이죠. 그러나 여기 세 가문의 부동산 투자법을 보면, 진정 부동산 투자 타이밍을 시장의 전문가에게 묻고 의존하는 것이 합리적인 방법인지에 대해 다시 한번 고민하게 합니다. 50년에 걸쳐 하나의 부동산을 둘러싼 세 가문의 투자 이야기를 통해 부동산 투자 타이밍에 대한 여러분의 관점이 깊어지길 바랍니다.
사용 가치가 낮은 자산 매각, 가치 있는 투자로 집중
자, 그럼 저와 함께 2018년으로 돌아가 볼까요? 은행에서 Wealth Management 부서의 부동산 전문가는 부동산 투자를 통해 자산을 늘려가는 고객을 만날 확률이 가장 높은 조직입니다. 제가 근무했던 은행의 오랜 고객이셨던 A고객은 2018년 개인으로 소유한 강남 토지 매각을 희망하셨습니다. 해당 토지는 강남구 논현동에 위치한 879.8㎡(266평)의 번듯한 대로변 토지로 상업용지와 3종주거지역이 혼재된 노선상업 용도지역이었습니다.
A고객은 당시 연세가 80대 중반이셨지만 오랫동안 사업을 통해 길러진 숫자 감각, 조직과 사람을 통솔하는 능력이 젊은 사람 못지 않았습니다. 일반적으로 연세가 드신 분들이 고가 부동산을 매각하는 것은 상속 플랜의 절세 측면에서 이익이 되지 않을 수 있고, 가격이 더 오를 가능성이 높다는 전문가들의 조언이 있었지만 A고객의 선택은 ‘매각’이었습니다.
A고객은 해당 토지를 1977년 3천만 원에 매입해 호텔 부속건물을 지어 호텔업으로 사업을 크게 일으켰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건물이 노후화되고, 호텔 부대시설 운영이 녹록지 않아지면서 부대시설이 있던 토지를 매각해 호텔 신축 자금으로 활용하겠다는 결정을 한 것입니다.
2018년은 부동산 가격이 오르는 시기라 강남 소재 대로변 879.8㎡(266평) 규모의 토지는 부동산에 식견이 있는 투자자에겐 매력 있는 자산이었습니다. 단점이 있다면, 나대지라 개발의 부담이 있다는 점입니다. 그러나 경험이 있는 투자자를 만난다면 명도와 철거까지 완료된 토지는 최상의 컨디션을 갖춘 토지가 될 수 있죠.
A고객은 호텔 부대시설로 사용했던 해당토지(두 건물사이 가운데 낮은 건물)의 활용가치가 낮아지면서 호텔 신축 자금 활용 등의 목적으로 해당 부동산 매각을 결정했다. 사진은 2018.4월 매각 직전 모습 ⓒ네이버 로드뷰
컨트롤 할 수 없는 변수는 위기, 어깨에서 팔기
고객의 니즈 대로 해당 자산 매각에 착수해 2주 만에 매입 희망자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매수 의향을 보인 고객은 대전에서 건설업과 부동산 임대업을 통해 안정적으로 자산을 늘려가는 고객이었습니다. 유한회사로 가족법인을 만들고 대전 요지에 토지를 매입하고 건설하여 임대 및 관리 중인 법인의 대표였습니다.
서울 부동산에 투자 경험이 없던 B고객에게 서울 강남의 토지는 또 다른 기회였습니다. 은행의 신용도가 높았던 고객은 레버리지를 최대한 활용하여 2018년 315억 원에 A고객으로부터 해당 토지를 매수하는 계약을 했습니다. 주인이 바뀌면 토지의 운명도 바뀌는 경우가 많습니다. 더욱이 신축을 해야 하는 부동산이라면 더욱 그렇죠.
B고객은 서울과 대전을 오가며 신축을 위해 설계와 인허가를 준비했습니다. 대전과 달리 서울에는 인적 네트워크가 충분치 않고 낯선 환경이 부담으로 작용했지만, 인허가를 위해 직접 모든 것을 챙기며 꼼꼼하게 사업을 준비했습니다.
인허가를 완료하고 건설을 준비하던 중 B고객은, 2020년 예상치 못한 코로나 팬데믹과 맞닥뜨리게 됩니다.
B법인이 2020.5 매각하기 전 모습 ⓒ네이버 로드뷰
코로나가 얼마나 길어질지 불확실성이 커지는 상황에서 B고객은 해당 부동산을 허가권과 함께 매도하기로 결정합니다. 시장은 늘 기회와 위기가 공존하기에 ‘무릎에서 사서 어깨에서 파는’ 전략을 선택한 것입니다.
자금 조달과 관리 전문 조직 활용, 위기를 기회로
2020년 8월 해당 토지는 C법인에게 넘겨집니다. 매매가격 480억 원. B고객이 잔금을 치르고 1년 반만의 일입니다. 코로나 팬데믹은 일상생활에는 위협이 되었지만, 초저금리라는 자금 조달에 유리한 환경이 조성된 상황을 기회로 받아들였습니다. C법인은 해당 토지를 신축하면 가치가 높아지는 밸류애드 전략이 통할 것으로 판단했던 것입니다.
C법인은 사업을 통해 축적한 자산을 운용하기 위해 요지의 부동산 매입을 결정하고, 자산운용사를 설립해서 매매계약과 대출, 건축 및 임대까지 전문가를 활용해서 조직적으로 대응했습니다. 실질적으로 단일 가문을 위한 패밀리오피스 조직을 갖추고 해당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진행한 셈입니다.
해당 토지는 2023년 지하 4층 지상 11층(연면적 1,900평 규모)의 업무용 건물로 탈바꿈하게 됩니다. 빌딩명도 붙여졌고 영동대로의 스카이라인을 바꾸는 건물이 되었습니다.
C법인이 업무시설로 개발한 건물(가운데 건물)의 모습 ⓒ안명숙
해당 자산의 시세를 2025년 3월 초 기준으로 탁상 감정해 보니 1,100억 원 수준으로 평가됩니다. 연면적 1,900여 평의 건축비와 부대비용을 고려한다고 해도 C법인의 자산 이득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현재 해당 건물은 C법인 계열사가 사무실로 일부 사용하고 나머지는 임대 사용 중입니다.
매매 결정은 나의 관점에서 접근, 통제권 내가 가져야
부동산과 관련한 스토리를 소개하는 이유는 누가 얼마 벌었다는 식의 얘깃거리를 만들기 위한 게 아닙니다. 하나의 토지를 두고 인연을 맺은 세 가문이 동일한 부동산을 활용해 본업을 어떻게 확장하면서 자산을 증식하고, 또 정리해 나갔는지를 가까이서 지켜보면서 느낀 바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 0.01% 안에 드는 자산가들의 부동산 투자에 대한 태도와 식견을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 싶었습니다.
첫 번째는 부동산을 사고 파는 시기에 대한 결정입니다. 부동산 매매에 대한 결정을 얼마나 더 오를지, 아니면 얼마만큼 더 받을지에 따라 좌지우지하지 않고 자신의 관점에서 접근했다는 점입니다. 적지 않은 투자자들은 전문가나 시장의 상승 지표를 확인하면 허겁지겁 투자에 나서게 되므로, 좋은 물건을 살 기회를 놓치고 이른바 ‘뒷북’을 치게 되곤 합니다. 또한 매입한 부동산을 어떻게 사용하고 어느 시점에 처분해야 하는지에 대한 자신의 계획이 불명확합니다. 그러나 자산가들은 본인의 직감이나 경험 또는 전문가 집단의 의견을 토대로 자신만의 타이밍을 결정합니다. 바꿔 말하면 변수가 많고 예측하기 어려운 시장의 불확실성에 연연해서 흔들리기보다는 확실하게 통제할 수 있는 자신의 결정에 의의를 두는 셈입니다.
두 번째는 지속적으로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 자신의 한계와 가능성에 대해 냉철한 평가를 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결국 투자의 결정은 개인이라면 당사자, 법인은 최고 경영자의 몫입니다. 미래에 대한 투자를 하는 부동산은 자금, 전문성 등 리소스를 활용해 시간을 뛰어넘는 지구력을 갖춰야 투자 성공 확률이 높아집니다.
아무리 좋은 부동산이라도 내가 감당할 리소스 이상으로 덩치가 커지거나 목적대로 활용할 수 없다고 판단한다면 냉정하게 나의 투자 포트폴리오 바구니에서 꺼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오랫동안 자산가로 가업을 일구고 지켜낸 자산가들은 본능적일 만큼 철저하게 자신이 설정한 범주 안에서 리스크를 관리하고 있었습니다.
세가문의 투자 결정에 따른 동일한 부동산의 자산 가치
피터 린네만 “부동산 개발은 자본 경쟁의 장”으로 진화
투자시장에서는 자산의 크기가 많은 것을 결정합니다. 더욱이 큰 자금이 투자되고 오랜 기간 자금이 묶이는 부동산의 경우에는 더욱 그런 경우가 많습니다. 미국의 부동산 교과서 중에서도 기본서로 평가되는 "Real Estate Finance and Investments: Risks and Opportunities"를 저술한 피터 린네만(Peter Linneman)은 그의 저서에서 “부동산 개발 시장은 단순한 물리적 자산 창출의 장이 아닌 '자본 경쟁의 장'으로 진화하고 있다”고 설명합니다.
자본의 접근성 차이에 의해 소수 대형 개발업체가 프라임 입지의 대규모 프로젝트를 독점하는 현상이 강화되고, 개발 성공의 핵심이 건설·임대 관리 능력에서 자본 구조화와 금융 혁신 능력으로 변화하게 된다는 점을 적시하고 있습니다. 또한 미국의 경우 월스트리트 자본 시장의 유동성 변화가 부동산 개발 활동의 주요 결정 요인이 되고 있고, 단순 개발 마진 모델이 지속 불가능해지면서 복잡하고 전문적인 가치 창출 방법으로 진화하고 있다고 분석하고 있습니다.
위와 같은 흐름은 비단 미국만의 얘기가 아닌 듯합니다. 우리나라도 PF조건이 강화되면서 피터 린네만의 분석처럼 앞으로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능력의 차이가 개발 가능성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될 것으로 전망됩니다. 패밀리오피스 투자가 직접 투자 및 단독 개발에서 사모펀드나 구조화된 투자로 확장될 가능성이 커지는 이유도 이와 맥락을 같이합니다.
지금도 영동대로를 지날 때면 세 가문의 손길을 스쳐 간 부동산에 눈길이 머뭅니다. 또 앞으로는 언제 누구와 다른 인연을 맺게 될지 궁금하기도 합니다. 모쪼록 세 가문이 대를 이어 건승하기를 기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