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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산은 이제 단순한 부동산을 넘어문화와 콘텐츠가 흐르는 글로벌 컬처 공간으로 진화하고 있습니다이번 시리즈는 공간 기획자의 시선에서 글로벌 컬처 공간의 대표 사례들을 통해 공간의 기획운영 그리고 자산 가치를 새롭게 연결해 봅니다단순한 임대 수익을 넘어, ‘문화적 자산으로서 공간이 지닌 잠재력과 그 가치를 지속적으로 확장하는 방법을 깊이 탐구합니다. 글로벌 컬처 공간이 어떻게 도시의 맥락을 담아내고커뮤니티와 브랜드 가치를 창출하는지를 살펴봅니다.

공간 기획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결국 사람이며
, 사람들 간의 연결과 경험이 교류되는 커뮤니티가 핵심입니다. 이렇게 형성된 커뮤니티는 공간에 활력을 불어넣고, 공간은 다시 사람들의 경험을 풍부하게 하는 선순환을 만듭니다. 상호작용은 투자 관점에서도 큰 가치를 창출하고 있습니다. 최근 중국 리테일 시장에서도 이런 변화가 다양하게 감지되고 있습니다. 공간 자체가 커뮤니티로 진화하며 '소비' 중심에서 벗어나 '경험', '교류', '연결'이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새로운 만남의 가능성을 설계하고 있습니다.


낡은 몰을 되살린 커뮤니티 다이닝 공간 


중국 후난성 헝양(Hengyang)의 오래된 쇼핑몰은 한때 특색 없이 텅 빈 공간이었습니다새로운 개념의 식음 공간 ‘MEET&EAT’이 들어선 이후이 장소는 음식을 매개로 사람들을 연결하며 지역 주민들의 사랑방으로 거듭났습니다식사를 서비스하는 공간을 넘어 도시의 제3공간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MEET&EAT’은 개방형 전면 공간과 초대형 공유 테이블을 중심으로 한 공용 공간이를 유기적으로 둘러싼 다양한 식음 매장들이 조화를 이루어 커뮤니티와 리테일 기능이 자연스럽게 융합된 분위기를 연출합니다지역 농산물 마켓쿠킹 클래스직장인들의 네트워크 모임 등 다양한 활동이 이루어지는 열린 플랫폼으로 탈바꿈한 것이죠식음공간과 코워킹 스페이스커뮤니티 센터가 결합한 듯한 이 곳은 특색 없던 낡은 몰에서 특별한 이유 없이도 찾아와 머물고 싶은일상에서 활용도가 높은 리테일 공간으로 변화했습니다.  

낡은 몰을 되살린 MEET&EAT © yuuuunstudio
지역의 열린 플랫폼이 된 MEET&EAT © yuuuunstudio

'MEET&EAT’의 성공은 상하이 줄루(巨鹿)로에서 첫 선을 보인 ‘More Than Eat’ 프로젝트에서 이미 입증된 바 있습니다‘More Than Eat’은 단순 임대형 다이닝 공간이 아니라 운영사가 공간과 입점 업체들을 적극적으로 관리하는 커뮤니티 다이닝 모델입니다평범한 소규모 음식점이라도 독특한 운영 방식으로 새로운 브랜드처럼 느껴지도록 세심한 관리를 하고 있습니다이런 전략이 장기적인 브랜드 가치와 커뮤니티 형성으로 이어지며, 일반적인 임대 사업과 차별화된 성공을 이뤄냈습니다. ‘기본 임대료+ α (매출연동파트너사 지분참여이벤트 대관부가 판매 등)’ 구조로 수익 모델도 다각화해 공간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했습니다.

적은 비용으로 특색 없는 공간을 활력 넘치게 변화시켜 자발적 방문이 반복되고커뮤니티 활동이 일어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 냈습니다공간의 콘텐츠 소비까지 이어지는 이 구조는 장기적인 가치를 담보하는 공간 활용과 임차 안정성을 실현한 사례가 됩니다

기술 브랜드의 멀티 유즈 커뮤니티 공간


세계 최대 드론 제조사인 DJI는 선전에 위치한 약 4,000㎡ 규모의 4층 건물을 과감히 커뮤니티 허브로 재탄생시켰습니다. 선전은 베이징, 상하이, 광저우와 함께 중국 4대 대표 도시 중 하나이자 첨단 산업 도시입니다. 디지털, 가전 등의 산업이 발전된 도시죠. DJI 역시 이런 특징을 살려 선전에 플래그십 스토어를 만들었습니다. 건물 내부에는 제품 판매 존과 고객 지원센터, 드론을 직접 날려볼 수 있는 실내 테스트 존, 편하게 앉아 토론할 수 있는 라운지와 공유 작업 공간, 드론으로 찍은 예술사진을 비롯해 다양한 전시를 진행하는 갤러리가 공존합니다. ‘DJI 오아시스’라는 이름의 옥외 공원에서는 드론 비행 퍼포먼스도 정기적으로 열립니다. 저녁이 되면 도심 속 공원에 삼삼오오 모여든 사람들이 하늘을 수놓는 드론 쇼를 감상하며, 자연스럽게 DJI가 만든 기술 커뮤니티의 일부이자 참여자가 됩니다.

DJI 플래그십 스토어 © SFAP
실내 드론 비행 테스트존 © SFAP

초보자부터 프로 조종사사진작가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교류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단순한 매장을 넘어 드론 커뮤니티 모임워크숍체험 이벤트가 열리는 소셜 플랫폼이 되었습니다. DJI는 이러한 공간 실험을 통해 충성도 높은 팬 커뮤니티를 육성하고브랜드에 대한 체험과 소속감을 제공하며 결과적으로 매장의 지속적인 활기를 도모했습니다.

경험 기반 복합 공간으로쇼룸을 넘어서는 제3의 공간으로 탈바꿈시킨 것이죠이와 같은 체험형 커뮤니티 허브로서의 공간은 브랜드 충성 고객이 자발적으로 모이는 목적형 유입을 만들어냅니다. DJI 사례는 브랜드 공간과 커뮤니티가 어떻게 서로 윈윈(win-win)하는지공간과 사람의 관계가 곧 장기적인 기업가치의 상승과 어떻게 연결될 수 있는지를 가늠해 볼 수 있는 좋은 사례입니다

브랜드는 더 이상 홍보 주체가 아닌, 도시의 문화 플랫폼이자 기술 커뮤니티의 연결망으로 기능합니다. 이런 역할을 수행하는 공간은 도시 브랜드 가치를 상승시키는 자산이 되며, 공공성을 품은 사적 공간의 이상적인 형태가 됩니다.

()드론 사진 갤러리존 ©SFAP, (드론 비행 퍼포먼스 © DJI

 

현지 커피 문화에 뿌리내린 하이퍼로컬 플랫폼 


공간의 특성도 점차 변화합니다. 글로벌 브랜드의 획일화된 공간이 주는 편안함을 즐기던 시대를 넘어 지역의 정서, 골목의 분위기, 단골의 취향을 담은 하이퍼로컬 공간에서 새로운 관계 형성이 이뤄지고 있습니다. 상하이의매너커피(Manner Coffee)’ 2㎡ 남짓한 작은 창가 매장에서 시작해 지역 주민의 일상적 거점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고급스러움보다 소탈함, 크기보다 밀도를 택하며 작은 창가 매장을 통해 사람과 사람을 잇는 새로운 커피 문화를 만들어냈습니다.

매너커피의 매장은 지역마다 다른 분위기와 문화에 맞게 기획됩니다. 이런 차이점은 지역 커뮤니티 거점으로 자리 잡는 주요 포인트가 되었습니다. 지역별로 차별화된 공간 구성과 지역 내 아티스트 협업을 통해 지역 결속력을 강화했습니다. 지역 작가의 작품을 전시하고, 지역 내 농가의 원두를 소개하며 공간을 이용하는 사람들에게 커피 이상의 의미를 전달했습니다. 또한 자체 바리스타 양성 센터를 만들고, 일반 고객들을 위한커피 동호회(애호가 클럽)’를 운영하여 커피 문화를 함께 만들어갔습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매너커피는 지역민이 함께 즐기는, 지역에 뿌리내린 하이퍼로컬 문화 커뮤니티 공간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습니다.

최초의 매너커피 매장 ©Manner's only 공식 웹사이트
 
 
 
 
 
 
 
 
 

지역 예술과 놀이 요소를 접목한 운영전략은 사람들의 발길을 지속적으로 끌어들이는 힘이 됩니다외국 브랜드는 미처 공략하기 어려운 부분으로차별화 지점도 됩니다지역의 정서와 생활 패턴을 파고들어 커뮤니티를 형성했고커뮤니티 참여자들이 열렬한 지지층이 되었습니다공간 자체는 크지 않아도 회전율이 높고 충성 고객이 탄탄해 수익성도 확보했습니다. 스타벅스 맞은편에 매너커피를 열면 스타벅스 고객이 30%는 빠진다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입니다동네에 밀착한 하이퍼 로컬화의 성공적 사례입니다

상권을 살린 지적 커뮤니티 공간, ‘아카데믹 바트렌드 눈길


베이징, 상하이 등 대도시에서는술 한 잔, 음료 한 잔사회적 학습을 더한 북살롱, 사이언스 바(Science Bar)와 같은 공간이 주목받고 있습니다. 음주 문화가 아닌, 나와 비슷한 세계관을 가진 사람과의 자연스러운 연결을 즐기는 젊은 직장인들에게 핫한 나이트 문화가 되었습니다. 문화 살롱으로서의 기능을 갖춘 공간에서는 가벼운 음료와 함께 AI, 철학, 페미니즘, 환경 등 다양한 주제로 토론을 합니다. 또한 책을 읽고 의견을 나누는 등 의미 있는 대화, 배움, 연결의 장으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중국 대표 커뮤니티 플랫폼 '샤오홍슈'는 상하이 도심에서 2024년 9월 '아카데믹 바(学术酒吧)'를 열었습니다. 여러 차례 과학 커뮤니케이터부터 인기 코미디언까지 다양한 인물들을 초청해 오픈 마이크 토론회를 개최했습니다. 2024 6월 상하이에서 시작된 이 트렌드는 불과 몇 달 만에 베이징, 광저우, 선전 등으로 퍼져 나갔습니다. 베이징의유니버스 살롱(宇宙客)’도 매달 주제를 바꿔가며 교수, 연구자, 스타트업 창업자 등이 참여하는 강연을 여는 전용 사이언스 바(Science Bar)로 운영됩니다. 2024 10월에는사이언스 바관련 검색량이 전달 대비 142%나 급증하는 등 술을 마시며 지식과 문화를 즐기는아카데믹 바트렌드가 젊은 층의 폭발적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샤오홍슈가 상하이에 개최한 아카데믹 바 전경과 실내에 부착된 사용 안내 포스터 ©cj.sina.com.cn

운영 방식은 간단합니다. 평범한 술집이나 카페에 평일 저녁 시간대에 독서 모임, 미니 세미나 등의 학술 강연, 예술 공연 등 다양한 활동을 끼워 넣는 것입니다. 공간 운영자는 장소를 제공하고 커뮤니티 촉매자로 활동합니다. 공간이 운영되면서 점차 대학원생부터 교수까지 다양한 연사들이 자발적으로 나서서 지식을 공유하는 자발적 커뮤니티가 형성됩니다. 상하이의 한 유명 사이언스 바 ‘벙커(Bunker, 街垒)’는 예술, 철학부터 사회과학까지 폭넓은 주제의 커뮤니티를 열고 있으며, 옥스퍼드나 하버드와도 정기적으로 협업하고 있습니다. 지적 커뮤니티 중심의 공간은 밤 시간대의 새로운 소비 형태를 만들어내고 있으며, 공간 운영자에게는 평일 저녁에도 꾸준한 고객을 확보하는 수단이 됩니다.

평일 바에서 자기계발휴식커뮤니티를 즐기는 직장인들 ©QQ.com

시안(Xian) 외곽에 위치한 소규모 바는 사이언스 바 컨셉을 도입한 이후 거의 모든 강연 세션이 만석을 기록하며, 매출 또한 월 10-13만 위안(한화 약 1,800-2,400만 원) 정도를 올리고 있습니다. 인적이 드문 입지임에도 사람들이 모이자 매일 커뮤니티가 운영되며, 자연스럽게 연사풀도 형성되어 무료 강연을 자청하는 대기자까지 생겼습니다. 불 꺼졌던 동네 술집이 지적 커뮤니티의 힘으로 활력 지수를 향상시킨 것입니다. 이러한 공간은 단순한 바가 아니라 지역 문화 거점으로 기능하며, 지역의 매력도뿐만 아니라 지역 내 개별 자산의 가치를 높여주는 역할도 합니다.

중국의 리테일 공간들은 사람들에 의해 완성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습니다. 사람이 모이며 공간의 기능이 완성되고, 커뮤니티를 기반으로 공간의 성장이 일어납니다. 공간의 가치는 단순히 규모나 위치가 아니라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얼마나 빈번하게 방문하며, 어느 정도의 시간을 머무는지 등에 따라 달라집니다. 궁극적으로 공간과 사람이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에 따라 공간의 가치가 달라지는 것이죠

사람이 머무는 곳에 투자하고, 사람이 모이는 흐름을 설계하는 안목으로 '머물고 싶은 이유'를 제공한다면 살아있는 공간과 자산을 완성할 수 있습니다. 더 많은 철근과 유리로 공간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쌓일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가야 합니다.


[참고 자료]

archdaily.com
ifanr.com
beijingscroll.com
https://archello.com/project/meeteat-hengyang-community-store
반선아

반선아

글로벌 영감수집가. 스튜디오 럭키즈 이사

국내 광고 대행사의 공간 마케팅을 경험하고, 하나은행에서 컬쳐 공간 기획을 담당했다. 현재는 온∙오프라인 공간 콘텐츠를 기획/운영하는 스튜디오 럭키즈에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