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젊은이들 사이에서 인기라는 임장크루에 직접 참여해 보았습니다. 임장크루는 한 지역을 정해서 그 지역에 있는 아파트 단지나 시설에 무리 지어 다니며 부동산 정보를 얻는 사람들을 뜻하는 신조어입니다. 임장을 진행하는 호스트는 포털사이트나 취미 모임 어플을 통해서 함께 할 크루를 모읍니다. 참가비를 내고 크루에 참여한 사람들은 함께 해당 지역에 있는 아파트 단지를 걸으며, 호스트가 안내하는 아파트 시세나 주변 편의시설 등의 정보를 듣습니다.
이 같은 임장크루 활동에 대한 논란은 많습니다. 실제로 주변에 있는 젊은 친구들과 이야기를 해보면 지역을 답사하거나 공인중개사 사무실에 들어가는 것을 두렵게 느끼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따라서 임장크루는 여러 사람이 함께 다니며 그 두려움을 극복하고자 하는 목적이 큽니다. 크루를 모집한 호스트가 수집한 부동산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고, 더 나아가 해당 지역에 대해 여러 사람이 머리를 맞대어 고민할 때 집단 지성을 발휘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반면에 한 개인과 가족의 주거공간인 아파트 단지를 해당 거주민이 아닌 임장크루가 떼 지어 다니는 모습은 아무래도 거주민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기도 합니다. 실제 임장크루에 참여해서 아파트 단지 앞에 다같이 서서 설명을 들을 때마다 어르신들이 ‘여기 뭐 볼 게 있나?’ 라며 궁금해하셨습니다. 더 나아가 임장크루가 공인중개사 사무실에 방문하여 부동산 거래의 목적 없이 정보만 얻는 일이 많아지면, 공인중개사뿐만 아니라 임대인, 임차인에게 피해를 주며 더 나아가 부동산 시장에 혼란을 줄 수 있다고 주장하는 의견도 있습니다.
부동산 사업을 기획하는 우리 역시 임장크루의 활동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지 고민이 필요할 때입니다. 임장크루는 단순한 젊은이들의 모임을 너머 부동산 소비자들의 인식과 행동, 부동산 시장을 변화시키는 중요한 발화점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임장크루 사진 ©조훈희
임장크루가 바꿔 놓은 부동산 소비자들의 시선
부동산을 바라보는 소비자들의 변화는 시대의 발전과 함께해 왔습니다. 과거의 주거지 입지는 자연환경의 피해를 막고, 이를 이용하는 것에 중점을 두었죠. 차가운 계절풍을 막고 생활용수 공급을 원활히 하기 위해서 산을 등지고 물을 마주 보는 배산임수(背山臨水)의 입지가 중요시되었습니다. 철도 중심의 산업화 시대에는 지금처럼 기찻길 옆이 ‘역세권’으로 좋은 거주지로 여겨지지 않았습니다. 오두막처럼 작고 초라한 집(오막살이)이 모여 있거나 물자 수송을 원활히 하기 위한 공장이 위치하기 좋은 입지였습니다. 한강 주변 아파트 역시 한강 상류의 댐 건설과 대규모 치수 사업이 없었다면, 지금처럼 부의 상징이 아닌 비만 오면 물이 넘쳐 사람이 살기에 좋지 않은 입지로 남아있었을 것입니다.
최근까지는 자연환경이나 산업환경과 같은 외적인 요소로 입지가 결정되었습니다. 따라서 소비자 역시 외적인 요소로 결정되어 공급되는 부동산 상품에 대해 당연하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사회가 안정되고 풍요로워지며, 개성이 존중되는 분위기 속에서 자란 젊은 세대의 생각은 달랐습니다.개인마다 필요로 하는 좋은 주거지의 가치는 모두 다르게 형성되고 있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2020년 이후 생긴 부동산 신조어로 역세권이 아닌 스세권 (스타벅스 주변 지역), 쿠세권(쿠팡 배송이 가능한 지역), 다세권 및 편세권(다이소 및 편의점 주변 지역) 등이 있습니다. 이 신조어는 개인이 중요시하는 주거지 주변의 다양한 요소들을 표현하며, 변화하는 소비자들의 취향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다양한 O세권 용어 정리 ©국토교통부 블로그
‘임장크루’가 알고 있는 부동산 시장의 진실
또 하나의 재미있는 사실은 임장크루가 부동산을 공부하기 위해 함께 방문하는 곳이 아파트의 모델하우스가 아니라 실제 아파트가 있는 현장과 주변 지역이라는 점입니다. 임장크루는 매주 지역을 다르게 선정하여 해당 지역에 있는 아파트 단지와 주변 환경을 살펴보면서 비교하는 방식으로 진행됩니다. 이는 소비자들이 아파트의 내부 구조뿐 아니라 실질적인 외부 주거 환경도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부동산은 움직일 수 없습니다. 따라서 개별 부동산의 가치는 주변 환경에 의해 큰 영향을 받습니다. 예를 들어 아무리 좋은 자재와 디자인으로 지어진 아파트 단지라고 할지라도 주민들이 혐오하는 시설이 바로 옆에 있다면 해당 아파트 단지에 사는 주민들의 만족도는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과거에는 ‘부정적인 외부효과’라고 불리는 이 현상에 대해서 소비자들이 직접 살아보기 전에는 쉽게 알기 어려웠습니다.
지역과 관련된 정보는 더 공급자 중심적 측면이 있었습니다. 소비자는 공급자들이 제공하는 정보만을 바탕으로 지역을 이해할 수 있었죠. 그렇기에 장점만 제한적으로 부각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임장크루의 활동은 이런 상황을 바꿀 수 있습니다. 부동산 상품이 외부효과에 의해 만족도와 가치가 달라질 수 있고, 제한적인 정보가 유통된다는 사실에 대해서도 인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확장해서 생각해보면 ‘임장크루’로 대변되는 소비자들의 행동 변화는 시장의 발전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관습처럼 시행사, 시공사 혹은 분양대행사에서 제공하는 단편적이고 일률적인 정보나 마케팅에 의존하여 부동산 상품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소비자 스스로 학습하고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어 가고 있는 것입니다.
지하철에 붙어있는 부동산 광고, 미사여구가 가득하지만 구체적인 정보는 제공하지 않는다. ©조훈희
그뿐만이 아닙니다. 지속적으로 증가세를 보이는 부동산 투자에 대한 사교육 역시 부동산 소비자들의 지적 수준을 높이고 있습니다. 소비자들은 이제 누군가가 장점만 부각해 제공하는 데이터나 정보를 신뢰하지 않는 경향까지 보이고 있습니다. 실제로 부동산 포털에는 과반수 이상의 허위 매물이 등록3되었을 수 있다는 보고서가 있거나 일부 중개인이 가담한 전세사기 문제까지 대두4되면서 소비자들의 부동산 시장에 대한 불신 현상은 더욱 뚜렷해지고 있습니다.
부동산 소비자들은 자신이 직접 경험한 정보와 본인의 만족 요소까지 고려하면서 부동산을 직접 평가하기 시작했습니다. 일부 부동산 공급자 혹은 중개사가 제공하는 정보보다 온라인 부동산 정보 플랫폼이 제공하는 정보 또는 온라인을 통해 직접 수집한 정보를 선호하는 현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렇게 모은 정보를 바탕으로 ‘임장크루’ 활동을 통해 현장에서 본인이 직접 정보 수집에 나서고 있습니다. 자체적 검증을 통해 보유한 정보의 질을 발전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임장크루의 경험을 어떻게 소비와 연결시킬 것인가?
임장크루는 이제 하나의 트렌드를 넘어, 부동산 소비자 행동의 변화 그 자체를 보여주는 현상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과거 소비자들처럼 번호표를 뽑고 모델하우스에 줄을 서서 내부 구조만 보고 부동산을 소비하는 시대는 지났습니다. 이제 소비자들은 스스로 동네를 걸으며 상권과 교통, 조망과 소음, 학군과 인프라까지 직접 보고 느끼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변화의 이면에는 '체험 중심 소비'라는 흐름도 함께 자리 잡고 있습니다.
소비 트렌드 관련 연구에 따르면, 젊은 세대일수록 물질적 소비보다 경험적 소비를 즐기는 현상이 강화5되고 있다고 합니다. 소비를 결정하기 전에 '체험'이 반드시 선행되어야 하고, 이러한 소비 성향은 팝업스토어의 확산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가구나 패션, IT 제품 등을 구매하기 전 잠시라도 직접 써보거나 체험하려는 태도는 단순한 마케팅 기법을 넘어, 소비자 행동의 구조적 전환을 의미합니다.
부동산도 예외는 아닙니다. 물론 부동산 상품은 일반적인 상품처럼 매장에 전시할 수 없고, 오랜 시간 이용해 보기 전까지는 진정한 체험이 어렵다는 한계가 분명히 있습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 건물의 내부를 둘러볼 수 있는 가상현실(VR) 모델하우스 혹은 VR 홈 투어 서비스도 출시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서비스가 부동산 소비 시장의 혁신적인 변화인지 혹은 과거 소비 방식의 연장인지에 대해서는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부동산 경험 서비스의 발전을 위해서는 단순 탐색과 위치 확인의 개념에서 벗어나 사용자 관점의 몰입형 체험을 제공해야 합니다. 주변 탐색을 위한 도보 이동속도에 따른 시야 전환, 해당 지역의 소음, 냄새 등 사람이 느낄 수 있는 모든 감각을 구현하기에는 높은 비용과 오랜 시간이 필요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부동산 소비자들에게 온라인과 오프라인으로 ‘내가 이곳에 살면 어떤 느낌일까?’를 경험하게 해줄 수 있는 시도를 지속적으로 해야 합니다.
실내·외 공간 가상체험 콘텐츠를 제공하는 Matterport Discover의 홈페이지
우리는 ‘임장크루로 변화하는 소비자를 어떻게 맞이하고, 어떻게 하면 더 풍부한 경험을 제공할 수 있을까?’에 관심을 기울여야 할 때입니다. 부동산을 '정보 전달을 통한 상품 판매'의 관점이 아니라, '경험을 설계하고 소비'하는 관점에서 다시 바라보아야 합니다. ‘임장크루’를 비판하고 불편해하기보다 그들이 필요로 하는 정보를 어떻게 제공하고, 더 나은 경험을 설계해 부동산 소비로 연결시킬 방법에 대해서도 심도 있게 고민해야 합니다. 결국 소비자의 변화를 수용하고, 반영하는 부동산 기획자가 미래 시장을 선도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