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한국과 일본은 트럼프의 첫 번째 공략 목표입니다. 이 두 나라가 취하는 신의에 기반한 협력의 태도가 트럼프에게는 약함으로 해석되기 때문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수탈할 수 있는 부 자체가 많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트럼프 1기에서는 아베 신조 정부와 문재인 정부가 끈질긴 지연 전략을 활용하여 버텨 냈습니다. 하지만 그 당시에는 트럼프의 임기가 끝나가는 시점이었습니다. 2025년의 트럼프는 아직 3년이 넘는 시간적 여유를 가지고 있을 뿐 아니라 더 근본적 문제로 현재 미국을 장악하고 있는 극우 포퓰리스트적 MAGA 세력의 압도적 강세가 미국에서 계속 이어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일본은 국내 정치가 분열하며 지지가 약해지자 너무도 쉽게 굴복해서 트럼프에게 횡재와도 같은 상황을 선사했습니다. 트럼프로서는 마치 10억원짜리 아파트를 100억원의 호가를 부르며 협상을 시작했는데 덜컥 100억원에 팔린 것과도 같은 상황인 것입니다. 이러한 일본의 굴복은 트럼프에게 ‘신의’의 신호가 아니라 ‘약함’의 신호입니다. 일본보다 한국이 더 약하다고 판단한 트럼프가 더욱 강한 압박을 가하는 이유입니다.
밀리면 더욱 밀고, 버티면 물러선다
트럼프는 2018년 회담 이전에 김정은을 무시하며 조롱했습니다. 그러나 가진 것도 거의 없는 국가가 도리어 당당하게 미국을 압박하는 카드를 자유자재로 사용하며 맞서는 모습에 대해 “우리는 사랑에 빠졌다(We fell in love)”고 말했던 것을 기억합니다. 독립성과 자율성을 힘으로 뒷받침할 수 있는 상대에 대한 트럼프의 평가는 매우 일관적입니다. 푸틴이 주변국까지 침략하며 권위주의적 힘을 투사하자 “훌륭한 지도자”라고 존중한 반면 미국과 서방의 지원에 의존해서 가까스로 생존을 유지했던 우크라이나의 젤렌스키에 대해서는 “너한테는 협상 카드가 없어!(You don’t have the cards)”라고 몰아붙이며 치욕적 수모를 가했습니다. 심지어 영토를 러시아에 넘기라고까지 압박했습니다. 얼핏 보면 무작위적인듯 이해할 수 없는 그의 행보는 ‘힘에 기반한 독립성’이라는 변수를 대입하면 손쉽게 해석됩니다.
트럼프는 2018년 회담 이전에 김정은을 무시하며 조롱했습니다. 그러나 가진 것도 거의 없는 국가가 도리어 당당하게 미국을 압박하는 카드를 자유자재로 사용하며 맞서는 모습에 대해 “우리는 사랑에 빠졌다(We fell in love)”고 말했던 것을 기억합니다. 독립성과 자율성을 힘으로 뒷받침할 수 있는 상대에 대한 트럼프의 평가는 매우 일관적입니다. 푸틴이 주변국까지 침략하며 권위주의적 힘을 투사하자 “훌륭한 지도자”라고 존중한 반면 미국과 서방의 지원에 의존해서 가까스로 생존을 유지했던 우크라이나의 젤렌스키에 대해서는 “너한테는 협상 카드가 없어!(You don’t have the cards)”라고 몰아붙이며 치욕적 수모를 가했습니다. 심지어 영토를 러시아에 넘기라고까지 압박했습니다. 얼핏 보면 무작위적인듯 이해할 수 없는 그의 행보는 ‘힘에 기반한 독립성’이라는 변수를 대입하면 손쉽게 해석됩니다.
피동적 방어를 대등한 거래로 착각하지 말자
통화 스와프 따위의 안전 보장은 마치 네가 나를 두들겨 패려면 치료비만이라도 보장하라고 애걸하는 식입니다. 수탈의 규모와 피해를 어떻게든 줄여 보려는 피동적 대응은 바로 트럼프가 원하는 대응입니다. 강하게 압박한 이후 상대를 배려하는 듯 으스대며 압박을 조금 낮추기만 해도 원하는 수탈을 행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통화 스와프 따위의 안전 보장은 마치 네가 나를 두들겨 패려면 치료비만이라도 보장하라고 애걸하는 식입니다. 수탈의 규모와 피해를 어떻게든 줄여 보려는 피동적 대응은 바로 트럼프가 원하는 대응입니다. 강하게 압박한 이후 상대를 배려하는 듯 으스대며 압박을 조금 낮추기만 해도 원하는 수탈을 행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대등한 위치에서 존중받는' 거래를 이끌어 내는 것이지 수탈의 규모를 줄이는 것이 아닙니다. 설사 한국이 경제 파탄을 감수하며 3,500억 달러를 선불로 트럼프에게 안겨 준다고 해도 다음 수탈에서 가장 먼저 공격해야 할 손쉬운 먹잇감이라는 것을 학습시킬 뿐입니다. 핵심은 우리가 얼마를 내든 그에 상응하는 대등한 대가를 돌려받는다는 등가 교환의 원칙입니다. 이를 위해 한국은 대등한 동반자의 위치에서만 미국 국민들과 함께할 것이라는 사실을 미국 국민들과 트럼프에게 학습시켜야만 합니다.
대등한 거래의 예를 들면, 미국이 당장 패권을 유지하기 위해 필수적인 군함을 한국 내에서 생산하여 미국 정부가 구매하면 그 구매대금의 50%를 한국 정부가 미국 내 조선업에 투자하는 것과 같은 상생이 가능한 협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미국의 미래 경쟁력을 담보하는 원자력에서 한국이 독점적으로 설비를 수출해서 미국에 SMR 원자력 발전소를 건설하고 미국 정부가 매출을 보장하는 방식 역시 상생의 협력일 것입니다.
약속을 파기하는 습성
국가 간의 약속 따위는 언제든 파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트럼프는 약속을 파기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는 것을 자신이 더 강력한 힘을 차지한다는 증거로 해석합니다. “이번이 마지막이며, 단 한 번만 용납하면 평화를 보장하겠다”는 약속을 반복하며 영토를 확장해 나갔던 히틀러는 목적을 달성하기가 무섭게 자신의 약속을 깨뜨렸습니다. 약속 파기를 특권이자 권력이라고 여기는 트럼프와 같은 리더에 대해 신의(信義)를 군주의 존재 기반으로 삼아온 유교식 정치철학에 익숙한 한국인들은 제정신이 아니라고까지도 느끼지만 사실 서양의 마키아벨리식 정치철학, 즉 약자와의 약속 불이행을 당연시하는 현상의 극단적 사례일 뿐입니다.
국가 간의 약속 따위는 언제든 파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트럼프는 약속을 파기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는 것을 자신이 더 강력한 힘을 차지한다는 증거로 해석합니다. “이번이 마지막이며, 단 한 번만 용납하면 평화를 보장하겠다”는 약속을 반복하며 영토를 확장해 나갔던 히틀러는 목적을 달성하기가 무섭게 자신의 약속을 깨뜨렸습니다. 약속 파기를 특권이자 권력이라고 여기는 트럼프와 같은 리더에 대해 신의(信義)를 군주의 존재 기반으로 삼아온 유교식 정치철학에 익숙한 한국인들은 제정신이 아니라고까지도 느끼지만 사실 서양의 마키아벨리식 정치철학, 즉 약자와의 약속 불이행을 당연시하는 현상의 극단적 사례일 뿐입니다.
“군주는 약속을 지킬 필요가 없다. … 사람들은 악하기에 그들은 당신에게 약속을 지키지 않을 것이므로, 당신 또한 그들에게 약속을 지킬 의무가 없다.”- 마키아벨리,군주론-
한국인이 이해하는 신의
서양의 신용은 상인들의 계약에서 발전해 제도화되었으며, 법적 배상액이나 담보를 통해 약속 파기의 손실액을 확정합니다. 더 나아가 신용은 CDS(신용부도스와프) 같은 상품으로 만들어져 가격까지 매겨집니다. 계산적 시스템을 통해 약속 이행의 이익이 불이행의 이익보다 크도록 유지하는 것이 서양의 신용 시스템인 것입니다. 약속을 보증함으로써 이익을 얻는 신용 창출의 근본인 금융기관조차도 약속불이행의 이익이 폭증하는 순간에는 신뢰를 저버리는 사태가 벌어지는 이유입니다.
서양의 신용은 상인들의 계약에서 발전해 제도화되었으며, 법적 배상액이나 담보를 통해 약속 파기의 손실액을 확정합니다. 더 나아가 신용은 CDS(신용부도스와프) 같은 상품으로 만들어져 가격까지 매겨집니다. 계산적 시스템을 통해 약속 이행의 이익이 불이행의 이익보다 크도록 유지하는 것이 서양의 신용 시스템인 것입니다. 약속을 보증함으로써 이익을 얻는 신용 창출의 근본인 금융기관조차도 약속불이행의 이익이 폭증하는 순간에는 신뢰를 저버리는 사태가 벌어지는 이유입니다.
반면 동양의 신용은 절대적이며 도덕적 차원이 강합니다. 신용에 가격을 매기는 것은 고사하고 친족 등 밀접한 사회관계 속에서 도덕적 체면에 의해 유지되는 약속은 강제가 어려웠습니다. 체면은 주관적이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이웃사촌끼리 계를 했는데 먼저 탄 사람이 갚겠다고 말만 하면서 죽을 때까지 못 갚더라도 소송까지는 하지 않는 것이 상호부조적인 한국 사회였습니다. 절대적이기에 도리어 강제되지 못하는 역설이 생긴 것입니다.
국가 간 조약도 마찬가지여서 전쟁이 빈번했던 근세 유럽과 달리 동아시아에서는 조약 불이행을 전쟁으로까지 강제하는 일이 드물었습니다. 따라서 조약의 세부 조항보다 수백 년에 걸쳐 형성된 신의가 더 중요했고 조약에는 “언제까지 얼마를 내고 무엇을 받는다”와 같은 구체적 조항이 아예 포함되지 않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예컨대 명이나 청에 조공을 바치면 신의와 보답의 원칙에 따라 패권국은 받은 것보다 훨씬 더 많은 하사품을 보내 체면을 유지하는 의례에서 계산이 들어갈 여지는 없었습니다. 체면을 유지하기 위한 손실비용으로 인해 오히려 패권국 쪽에서 과도하고 빈번한 조공을 꺼리는 관계에서 손실은 체면을 누리는 대가였던 것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파기할 필요조차 없는 느슨한 조약을 파기까지 한다는 것은 상대국의 체면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배신과 도발로 여겨졌습니다. 한국인에게 트럼프가 국가 간 조약을 대놓고 파기하거나 파기하겠다고 협박하는 행위는 단순한 실리적 문제를 넘어서 배신과 모욕에 대한 분노로까지 이어지는 이유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분노를 억누르고 트럼프가 단지 한국이 얼마나 강한지를 묻고 있을 뿐이라는 사실을 이해해야 할 것입니다.
분노하지 말고 약속을 강제하라
한국민은 트럼프가 요구하는 선불을 결코 상국에 대한 충성의 표시로 해석해서는 안 되며 동양식 신의와 보답의 원칙에 따라 충성을 먼저 바치면 더 많은 보답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큰 착각입니다. 서양식 계약에서 너무 많은 것을 너무 일찍 상대에게 주는 것은 상대가 계약을 파기하도록 만드는 결정적 실수입니다. 신뢰가 부재한 상대에게는 물건을 받기 전에 돈을 건네지 않는 법입니다.
한국민은 트럼프가 요구하는 선불을 결코 상국에 대한 충성의 표시로 해석해서는 안 되며 동양식 신의와 보답의 원칙에 따라 충성을 먼저 바치면 더 많은 보답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큰 착각입니다. 서양식 계약에서 너무 많은 것을 너무 일찍 상대에게 주는 것은 상대가 계약을 파기하도록 만드는 결정적 실수입니다. 신뢰가 부재한 상대에게는 물건을 받기 전에 돈을 건네지 않는 법입니다.
게다가 한국은 미국에게 위협이 될 수 있는 언급 자체를 자제하는 것을 신의라고 생각합니다만 다시 강조하지만 트럼프를 포함한 대부분의 서양인은 이를 약함으로 해석합니다. 무례함으로 가득찬 극단적 협박을 한국과 같은 국제적 신의를 표방하는 국가가 굳이 따라할 필요는 없습니다. 서양의 과도함은 사실 자신의 약함을 감추기 위한 블러핑입니다. 한국이 굳이 부풀리지 않아도 매우 강대하며 수많은 협상 카드를 지니고 있다는 것은 진실입니다. 정중하게 사실만 적시해도 한국의 강함을 보여줄 수 있는 여지는 충분합니다.
예를 들어 한국은 북한의 위협을 혼자서도 제압하고도 남는 강력한 군사력을 가지고 있으며 미국을 포함한 동맹국들이 중국에 맞서기 위해서는 핵심적 국가라는 것은 진실입니다. 만약 한국이 중국과 협력할 경우 미국의 동맹국들은 치명적 타격을 입고 패권은 중국에게로 넘어가게 되는 것 역시 사실입니다. 정중함 속에 담긴 육중한 무게를 상대가 이해하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트럼프가 반복적으로 비판한 것은 미국에 의존하는 동맹국들의 나약함이었습니다. 힘을 추구하는 인물은 강함을 존중하기에 트럼프는 굴종하는 한국이 아니라 강대함 속에서 스스로 존엄을 지키는 한국을 존중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