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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인프라가 도시와 만나는 방식이 달라지고 있습니다데이터센터는 이제 단순한 전력 소비 시설이 아니라 생활 인프라의 한 부분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공공 교육 자산은 엣지 연산(데이터를 중앙 서버(클라우드)로 보내지 않고데이터가 발생한 '근처(엣지, edge)'에서 바로 처리하는 기술)의 거점 역할을 새로 맡게 되었고유휴 공공건축과 도심 플라자는 디지털 공론장으로 재해석되고 있습니다이러한 모델들은 기존 자산을 최대한 활용하면서가역적인 개입과 촘촘한 운영 일정으로 그 가치를 입증해 보이고 있습니다

 

옛 석탄창고를 서버 거점으로 바꾼 브레시아의 라마르모라 열병합발전소(이탈리아)


한때 석탄을 저장하던 이탈리아 브레시아의 라마르모라 열병합발전소가 2025 6월 데이터센터로 탈바꿈했습니다액체 냉각 고성능 컴퓨팅(HPC) 설계를 도입하여 석탄 저장고를 지역의 서버 거점으로 변모시킨 상징적 사례입니다. 2025 1단계에서는 30개의 모듈로 운영을 시작해 연간 다량의 폐열을 약 65℃의 온도로 회수합니다회수된 열은 별도의 히트펌프 없이 도시 난방망에 바로 공급되도록 설계되었습니다. 2단계에서는 옛 석탄 저장고 전체로 데이터센터 활용 범위를 확장하여 가구 단위의 난방과 온수 수요까지 충당할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브레시아의 라마르모라 열병합발전소 유휴 석탄창고의 전경 ⓒserviziarete.it
데이터센터 개관식 모습 ⓒx.com/Qarnot
프랑스 기업 Qarnot과 공동 개발한 이 시설이 완전히 가동되면 연간 약 16GWh의 깨끗한 열을 공급할 수 있으며이는 약 1,350채의 아파트를 난방하기에 충분한 양입니다또한 매년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약 3,500톤가량 줄이는 효과도 있습니다이로써 데이터센터는 단순히 전력을 소비하는 시설이 아닌 도시의 열 공급 인프라로 자리하게 됩니다생활 편익탄소 절감산업 자립성까지 한 번에 구현한 사례인 셈이죠무엇보다 석탄에서 컴퓨팅 열이라는 어휘가 전환되며장소에 담긴 이야기도 새롭게 바뀌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지역 사회의 수용성을 높이는 문화적 효과도 가져왔습니다.
(내부가 공개된 열병합발전소의 데이터센터 ⓒdatacenterdynamics.com (우) 에너지 전환을 설명하는 그래픽 패널 cbs42.com

운영과 수익 측면에서도 다양한 전략을 도입했습니다추가 발전 설비를 짓는 대신 배관과 열 교환기제어 시스템에 초기 투자를 집중하여 열 손실을 최소화했습니다. IT 부하 스케줄을 열 판매 계약과 연동해 계절에 따른 수익 변동을 안정적으로 관리하고 있습니다. ‘데이터센터를 열 공급 설비로 활용한다는 도시적 효용 가치를 수치로 입증해 보였습니다또한 난방망 운영자, HPC 사업자지자체가 참여하는 3자 거버넌스를 구축하여 인허가환경홍보에 관한 리스크도 분산했습니다이 모든 요소가 맞물려 유휴 설비 재활용도시 서비스 편입데이터와 열의 이중 수익 창출이라는 포트폴리오를 완성했습니다.

 

1900년대 조선공장을 도심 실험 플랫폼으로 바꾼 네이비야드의 뉴랩(브루클린)


브루클린 네이비야드의 뉴랩(New Lab)’ 1900년대 초 지어진 조선공장(군함이나 선박의 건조 및 수리시설) 128을 리노베이션해 84,000ft²( 7,800규모의 기술·제조 클러스터로 탈바꿈시킨 공간입니다. 로보틱스에너지, AI 등 하드웨어 중심 스타트업들이 한 지붕 아래에서 프로토타이핑부터 실증사업화까지 진행할 수 있는 도심형 실험 플랫폼이죠유휴 공장의 기존 구조를 최대한 유지한 채 각종 장비와 파일럿 실증 공간을 확보했고 스타트업 코호트 운영데모데이 개최스폰서십 유치 등을 통해 복합적인 수익 구조도 갖추었습니다.

브루클린 네이비야드에 위치한 뉴랩의 모습 ⓒarchitecturalrecord.com
브루클린 네이비야드의 뉴랩의 내부모습 ⓒarchitecturalrecord.com

인근 ‘300 애슐랜드(300 Ashland)’ 공공 플라자는 35,300ft²( 3,300규모로 최대 2,186명을 수용할 수 있는 열린 광장입니다평소에는 지역 문화기관들이 상시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야외무대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2025년 여름에는 예술가 스테파니 딘킨스(Stephanie Dinkins)가 업사이클된 컨테이너를 개조한 인터랙티브 AI 랩을 설치해 시민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데이터로 기록하는 참여형 AI 실험을 진행하기도 했습니다개발사가 조성하고 지역 파트너십이 운영과 기획을 맡는 구조로 유지되며 대규모 야외 프로그램을 통해 입주자 경험 향상주변 상권 활성화브랜드 스폰서십 유치 등을 동시에 견인하고 있습니다공장과 플라자가 각각 제조 혁신 커뮤니티와 공공 AI 문화 프로그램의 거점으로 기능하면서도심 자산의 사회적 환류를 구체화하고 있습니다.

(노란 컨테이너형 AI 랩. () The Plaza at 300 Ashland  ⓒdowntownbrooklyn.com
뉴랩은 운영의 측면에서는 입주 임대료와 프로젝트 수익에 더해 기업 스폰서십까지 확보하며 다중 축의 수익 구조로 리스크를 분산하고 있습니다플라자 역시 시즌별 설치물 전시행사 대관브랜드 협업 등을 통해 운영 수익을 다변화하고 있습니다두 공간 모두 최소한의 공간 변주를 전제로 개발하며 초기 투자비(CAPEX)를 줄이고 지속적인 신규 프로그램 기획을 통해 화제성을 유지합니다. 

 

철도 대수선 공장이 거대한 클래스룸이 된 OGR 토리노(이탈리아)


폐쇄 위기에 놓였던 옛 철도 대수선 공장이 약 35,000㎡ 규모의 문화·테크 허브로 되살아났습니다. 2013 CRT 재단이 부지를 인수한 후 이 건물은 공장의 재해석이라는 실험의 장이 되었는데요과거의 산업 현장이 연결과 성장이라는 현대적 코드로 재편되고 있습니다.

(좌) 1980년대 철도 대수선 공장 시절 내부 모습 ⓒmuseotorino.it (우) 현재 혁신 허브 ‘OGR Tech’ 모습 ⓒgaribaldiarchitects.com

Officine Grandi Riparazioni, 줄여서 OGR이라고 불리는 이 공간은 산업 유산이 단순히 보존의 대상에 그치지 않고새로운 형태의 생산성을 탐구하는 플랫폼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OGR에서는 학습 활동이 핵심입니다전통적인 교실과 달리 공동 작업과 토론물리적 공간의 재구성을 통해 배움이 이루어집니다 또한 ‘OGR Education’ 프로그램을 통해 토리노 공과대학과 유럽 스타트업 커뮤니티공공기관 등이 협력하여 학문과 산업의 경계를 넘나드는 교육 체계를 구축했습니다. OGR가 일종의 도시형 지식 생산 인프라’ 기능을 하고 있는 것이죠배움이 경제예술기술의 교차 지점에서 재정의되는 과정을 실시간으로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합니다.

() 2025 AI·디지털 이미지를 다루는 전시 ⓒfinestresullarte.info () 2023년 미디어 아트 전시 모습 ⓒwww.stirworld.com

2025년 봄 열린 전시 <Almost Real: From Trace to Simulation>에서는 생성형 AI 이미지 시대의 진위를 묻는 큐레이션을 선보였습니다전시세미나페스티벌이 한 공간에서 동시에 열렸습니다. OGR의 문화 부문 ‘OGR Cult’에서는 공연전시미디어 아트 등 다양한 실험을 펼치며기술 부문 ‘OGR Tech’는 스타트업과 연구기관이 교류하는 혁신 허브로 운영됩니다운영의 이중 구조를 통해 창업 지원을 넘어 ‘지식을 운영하는 방식’ 자체를 실험하는 장으로의 역할을 수행합니다.

쇠퇴한 산업 도시에서 기능을 잃은 공간을 지식 인프라로 치환하며쇠퇴를 재생의 동력으로 전환했습니다과거 기계 노동에 쓰이던 공간이 이제는 아이디어의 조립 공장알고리즘의 실험실예술적 사유의 플랫폼으로 작동하며 새로운 형태의 생산을 만들어 내는 것이죠. OGR는 산업 유산이 기억의 보존을 넘어 지식의 생산성으로 어떻게 확장될 수 있는지를 가장 현대적인 방식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퇴역 광산이 최고성능의 슈퍼컴이 된 레프달 광산 데이터센터(노르웨이)


한때 감람석(올리빈)을 채굴하던 지하 광산 갱도가 2017년 대규모 데이터센터로 탈바꿈했습니다이 레프달 광산 데이터센터(Lefdal Mine Datacenter, LMD) 프로젝트는 전통 산업 인프라의 축소가 디지털 자산화를 통해 새로운 생산성을 얻은 대표적인 사례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갱도에 설치된 덕트·케이블 트레이·보안 게이트 ⓒDatacenterDynamics

LMD는 총 120,000㎡ 규모의 지하 복합 공간으로 조성되어 있는데요주변의 풍부한 수력 전기를 사용하고 인접 피오르드의 차가운 해수를 냉각수로 활용합니다전력은 100% 재생에너지로 공급되며내부 폐열은 인근 산업 시설이 재활용해 사용하는 에너지 순환 구조를 갖추고 있습니다이 덕분에 LMD는 유럽에서 탄소 효율이 가장 높은 초대형(hyperscale) 데이터센터 중 하나로 꼽힙니다.

(컨테이너 모듈 스택(2) & 철골 구조 ⓒRittal () ‘LEFDAL MINE’ 서브홀 운영 전경 ⓒLMD 공식 사이트

2025 6월에는 노르웨이 정부가 지원한 슈퍼컴퓨터 올리비아(Olivia)’의 가동으로 이곳이 다시 한번 주목을 받았습니다. HPE Cray EX 아키텍처 기반의 노르웨이 최고 성능 슈퍼컴은 피오르드의 수냉 시스템지하 공간의 물리적 방호고밀도 GPU 친화적 환경을 결합하여 AI·기후·해양·의료 연구 등 노르웨이 국가 연구망(NIRD)의 핵심 백본 역할을 수행합니다.

이 프로젝트의 본질은 거대한 기술 장치를 자랑하는 것보다 공간 자산의 재구성에 있습니다레프달 광산은 기존 채굴 인프라(방폭방습차열 구조)를 거의 건드리지 않고 데이터센터로 전환함으로써 토목 분야 초기 투자비를 50% 이상 절감했습니다동시에 지하 입지의 물리적 안전성과 첨단 사이버 보안성도 확보했습니다.

레프달 광산 데이터센터는 더 이상 광물을 캐는 대신 연산력알고리즘에너지 효율이라는 새로운 광맥을 채굴하고 있습니다산업의 흔적이 디지털 자본으로광산의 물리적 깊이가 데이터의 안정성으로 바뀐 이 프로젝트는 보이지 않는 자산과 부동산을 연결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되고 있습니다. 

 

산업의 쇠퇴로 기능을 잃은 유휴공간들이 새로운 역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채굴이 멈춘 광산과 가동이 중단된 공장은 디지털 시대에 잠재적 인프라로 다시 주목받고 있습니다앞선 사례들이 보여주듯에너지원이 풍부하고 구조적으로 안전한 장소를 데이터와 연산의 거대한 저장소로 재구성하면 산업의 종말이 새로운 효율성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한때 자원을 캐내던 땅에서는 이제 연산력이 생산되고열을 내뿜던 공장은 냉각 순환 구조의 한 부분으로 편입되고 있습니다. 이는 규모의 확장이 아니라 공간의 역할 자체를 재해석한 변화입니다. 더 나아가 풍력·수력 에너지와 폐열 재활용 기술이 결합된 데이터센터는 단순한 IT 인프라를 넘어 지속 가능한 도시의 기초 설비로 기능하고 있습니다이러한 시설들은 디지털 격차 해소와 인재 순환을 고려한 설계를 통해 혁신 커뮤니티와 공공 문화까지 잇는 복합 생태계를 구축하기도 합니다데이터 인프라와 문화 인프라를 하나의 지역 전략으로 받아들인다면 경제적 성과와 사회적 가치가 함께 확대될 것입니다.

반선아

반선아

글로벌 영감수집가. 스튜디오 럭키즈 이사

국내 광고 대행사의 공간 마케팅을 경험하고, 하나은행에서 컬쳐 공간 기획을 담당했다. 현재는 온∙오프라인 공간 콘텐츠를 기획/운영하는 스튜디오 럭키즈에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