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 거리에서 글로벌 핫플레이스로 진화한 홍대입구
예나 지금이나 ‘젊은 세대들의 자유로움을 상징하는 핫플레이스’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곳, 단연 홍대입니다. 지리적으로는 2호선 홍대입구역을 중심으로 한 마포구 동교동과 서교동 일대, 그리고 경의선 숲길을 따라 이어지는 연남동까지 아울러 홍대라고 부르곤 합니다.
홍대 상권의 시작점에는 미술대학을 중심으로 한 예술 커뮤니티가 있었습니다. 미대생들의 작업실이 모이며 자유분방한 분위기가 형성되었고, 작업실과 함께 운영되는 개성 있는 카페들이 입소문을 타며 자연스럽게 젊은 인파가 몰려들었습니다. 이러한 흐름은 공연 문화와 클럽 문화가 자리 잡는 계기가 되었고, 오늘날 홍대만의 고유한 상권을 만들어냈습니다. 골목 곳곳에 위치한 라이브 클럽과 소규모 공연장은 한국 락과 인디 음악 등의 전성기를 이끈 핵심 무대였습니다. 또한 홍대는 만화와 독립 출판 등 창작 문화가 뿌리내린 지역으로, 현재도 AK플라자의 ‘애니메이트’와 다양한 소규모 굿즈샵을 중심으로 ‘서브컬처의 심장’ 역할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독보적인 예술·문화 콘텐츠를 바탕으로 홍대는 오래전부터 서울 관광의 핵심 거점으로 기능해왔으며, 최근에는 K-뷰티와 K-콘텐츠 열풍에 힘입어 더욱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글로벌 핫플레이스’가 되었습니다. 실제로 전통 강호였던 명동의 방문 외국인 수가 지난해 540만 명에서 올해 455만 명으로 줄어든 반면, 홍대(서교동)를 찾은 외국인 관광객은 올해 313만 명으로 약 26만 명 증가한 수치를 보였습니다. 홍대를 찾은 관광객들은 주로 패션, 뷰티, 미용 의료 서비스 등을 소비합니다.
실제로 K-뷰티의 대표주자 ‘올리브영’은 현재 홍대 권역에서만 8개 이상의 매장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홍대입구역 대로변에만 4개의 매장이 포진해 있으며, 올해는 로데오거리에 남성 특화 매장인 ‘홍대놀이터점’과 팝업형 매장인 ‘트렌드팟 바이 올리브영’을 잇달아 선보이며 홍대를 '트렌드 테스트베드'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24년 4월에 오픈한 홍대 최대 규모 매장 ‘홍대타운점’은 연일 외국인 관광객으로 북적이는 홍대 필수 방문 코스로 자리잡았습니다.
[홍대입구역 하이스트리트]
홍대입구역 대로변(양화로)을 따라 걷다보면 애플스토어, 아디다스, 무신사, 카카오프렌즈 등 여러 브랜드의 플래그십 스토어들이 눈에 띕니다. 하층부에는 리테일, 상층부에는 오피스와 병원 등이 자리한 복합 빌딩이 줄지어 있어 서울 하이스트리트의 전형적인 풍경을 보여줍니다. 특히 이 일대 빌딩들에는 외국인 의료 관광의 핵심인 성형외과와 피부과가 다수 입점해 있습니다. 여기에 더해 대형 옥외 광고판들이 홍대 하이스트리트의 화려한 스카이라인을 완성하고 있습니다.
‘케이스퀘어 홍대’와 24년 12월 준공된 ‘코너 136’ 등 주요 오피스 자산이 홍대입구역 하이스트리트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합정역 방면으로는 ‘L7 홍대 바이 롯데’, ‘머큐어 앰배서더 서울 홍대’ 등 중대형 호텔이 나란히 위치해 있습니다. 경의선 숲길 및 연남동 일대에는 소규모 게스트하우스가 밀집해있어, 홍대는 쇼핑부터 숙박까지 원스톱으로 이어지는 관광 클러스터로 기능하고 있습니다.
홍대입구역 대로변 (동교동삼거리 방면 양화로) ©SPI 플랫폼 마케팅팀
[홍대 메인스트리트]
홍대입구역 대로변 뒤편으로 발걸음을 옮기면, ‘홍대의 심장’이라 할 수 있는 ‘걷고 싶은 거리’와 ‘로데오 거리’ 등 메인 상권을 마주하게 됩니다. 끊이지 않는 버스킹 사운드, 줄지어 늘어선 보세 옷가게들, 그리고 문화적 랜드마크인 KT&G 상상마당 등으로 대표되는 홍대 거리는 2000~2010년대 젊은 세대의 대표적인 핫플레이스였습니다. 하지만 최근 분위기는 이전과 사뭇 다르게 느껴집니다. 거리를 걷다 보면 인파 중 외국인 관광객의 비중이 크게 늘어난 것을 체감할 수 있습니다. 과거 ‘젊은 층의 놀이터’였던 홍대 거리가 이제는 글로벌 관광 핫플레이스로 변모하는 느낌입니다.
엄청난 인파를 자랑하는 홍대 로데오 거리 ©SPI 플랫폼 마케팅팀
홍대입구역 사거리에서 홍익로 언덕길을 따라 오르면, 오늘의 주인공인 홍익대학교 서울캠퍼스가 모습을 드러냅니다. 특히 건물 자체가 거대한 정문의 역할을 하는 ‘홍문관’의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하지만 홍대입구역에서 캠퍼스로 오는 길, 수많은 인파 속에서 정작 홍대생의 모습은 쉽게 눈에 띄지 않았습니다. 쉴 새 없이 북적이는 번화가 속에서 학생들의 대학 생활은 과연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을까요? 그리고 그들이 생활하는 ‘진짜 대학가’는 어디일까요?
이번 화에서는 홍대생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통해, 그들이 숨겨둔 ‘진짜 대학가’와 ‘핫플레이스에서 대학생으로 살아남는 법’을 전해드리겠습니다.
홍익대학교 서울캠퍼스 정문(홍문관) ©SPI 플랫폼 마케팅팀
홍대 미대는 그대로인데, 학원가는 선릉으로?
홍익대학교를 설명할 때 빼놓을 수 없는 키워드는 단연 ‘미술’과 ‘건축’입니다. 특히 미술대학은 국내에서 손꼽히는 위상을 자랑합니다. 이러한 특징은 캠퍼스 밖 상권과 문화 형성에도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정문을 나와 신촌 방면으로 이어지는 와우산로에는 전통적인 입시 미술 학원가가 형성되어 있습니다. 국내 대표 브랜드인 ‘C&C 미술학원’을 비롯한 다양한 규모의 입시 미술 학원들이 나란히 들어선 모습이 가장 먼저 눈에 띕니다.
그러나 ‘미대 입시의 성지’라는 정체성이 점차 흐릿해지고 있습니다. 2000년대 후반 100여 곳에 달했던 홍대 앞 미술학원은 현재 30~40곳으로 급감한 반면, 선릉역 인근 학원은 20여 곳에서 50곳 이상으로 늘어났습니다. 입시 미술의 중심축이 홍대에서 강남 선릉으로 상당 부분 이동한 모습입니다.
재학생들은 이러한 변화의 주된 원인으로 홍익대학교의 과감한 ‘비실기 전형’ 도입을 꼽습니다. 2013년부터 홍익대가 실기 시험이 아닌 내신, 수능 성적 및 미술 활동 보고서 등 위주의 선발을 시작했고, 타 대학들도 잇따라 내신 및 수능 반영비를 높였기 때문입니다. 한 입시 전문가는 “미대 입시에서 수능이 강화되면서 실기와 교과목을 동시에 준비할 수 있는 강남으로 미술학원이 몰리고 있다”라고 분석했습니다.
과거 학원과 함께 거리를 지켰던 화방들 또한 하나 둘 자취를 감추어, 현재 약 8곳 남짓만 남아 있습니다. 홍문관 내에 대형 문구 센터(한가람 문구센터)가 운영된 지 10년이 넘어가면서, 재학생들이 학교 밖에서 재료를 구매할 필요가 줄어들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대학의 입시 정책 변화와 교내 인프라 확충 등이 맞물리며, 학교 앞 예술 상권의 성격이 예전보다 옅어지는 추세입니다.
홍대 정문 앞에 위치한 C&C 입시 미술 학원 ©SPI 플랫폼 마케팅팀
💬 홍대생의 한마디
👤: 홍대 미대 입시가 실기 고사를 폐지하고 비실기 전형 위주로 개편되면서, 입시생 입장에서는 굳이 학교 앞 실기 학원을 고집할 이유가 사라진 것 같아요. 제 고등학교 친구들 역시 입시를 준비할 때 사는 지역과 무관하게 선릉 쪽 학원으로 많이 갔던 것 같습니다.
👤: 미술 재료를 사러 학교 밖으로 나가는 일은 거의 없어요. 홍문관 안에 있는 한가람 문구센터에 웬만한 재료와 도구가 다 구비되어 있거든요. 학교 안에서 모든 걸 해결할 수 있어서 외부 화방은 잘 안 가게 되는 것 같아요.
핫플레이스에서 대학생으로 산다는 것
홍대생들의 진짜 대학가, 상수
그렇다면 홍대생들은 과연 어디서 밥을 먹고, 카공을 하고, 술을 마실까요? 재학생들은 입을 모아 홍대생들의 ‘진짜 대학가’는 캠퍼스 후문 방면, 상수역 인근이 주된 생활 반경이라고 답했습니다. 실제로 한 학생은 “대학 생활의 99.9%가 상수역주변에서 이루어진다”라고 말할 정도입니다.
캠퍼스 후문을 나서면, 정문 쪽 거리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의 조용한 골목들이 펼쳐집니다. 오래된 다세대 빌라와 소규모의 식당, 카페들이 뜨문뜨문 자리하고 있습니다. 레트로 감성의 카페 겸 술집 ‘자유인들’, 정갈한 오징어와 제육 백반을 제공하는 ‘뜬뜬식당’ 등 아기자기한 가게가 학생들의 최애 장소입니다. 상수역 방향으로 좀 더 걸어가면 데이트하기 좋은 분위기의 식당과 카페들이 줄지어 있습니다. KREAM 홍대점, 칼하트WIP 등 패션 브랜드 스토어도 만날 수 있습니다. 전반적으로 합정 상권과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분위기입니다. 또한 홍대 번화가의 시끄러운 거리와는 다른, 비교적 차분한 느낌의 술집 골목이 상수역을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습니다. 대부분의 동아리 뒷풀이와 모임이 이곳에서 이루어집니다.
이들이 상수로 향하는 이유는 명확합니다. 첫째는 ‘접근성’과 ‘쾌적함’입니다. 기숙사나 주요 단과대가 상수역 방향의 골목과 연결되어 있어 이동이 용이할 뿐만 아니라, 관광객의 인파로 북적이는 정문 쪽과 달리 한적하고 쾌적합니다.
둘째는 ‘콘텐츠의 차별성’입니다. 학생들은 홍대 메인 상권에 대해 “관광객들을 타깃으로 한 고가의 식당과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프랜차이즈가 대부분이라, 매일 캠퍼스에서 생활하는 홍대생들에게는 매력이 없다”라고 말합니다. 반면 상수동은 합리적인 가격대와 감성 카페와 술집 등이 많아 독특한 로컬 감성을 형성하며 학생들의 실질적인 생활 공간으로 자리잡았습니다.
결국 홍대생들에게 상수는 단순한 뒷골목이 아니라, 거대 상권 속에서 소소한 대학 생활을 이어갈 수 있는 소중한 아지트이자 안식처인 셈입니다. 인터뷰에 응한 한 재학생은 “홍대입구역(관광지)과 상수역(대학가)이 분리되어 있는 만큼, 두 지역이 서로의 범주를 침범하지 않고 공존했으면 좋겠다”라는 바람을 전했습니다. 이는 화려한 핫플레이스에 빼앗긴 대학 생활 공간을 보장받고 싶은 홍대생들의 절실한 목소리이기도 합니다.
홍익대학교 후문 골목 전경 ©SPI 플랫폼 마케팅팀
지하철 6호선 상수역 인근 골목 입구 ©SPI 플랫폼 마케팅팀
캠퍼스의 경계를 허무는 '뉴홍익 프로젝트'
취재를 위해 방문한 홍익대학교의 관문, 홍문관 로비에는 ‘뉴홍익 프로젝트’를 소개하는 현수막과 건축 모형이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이 프로젝트의 핵심은 지하 공간의 대규모 확장입니다. 홍익대는 서울 내 대학 중 밀도 1위 캠퍼스로, 이미 법정 용적률 199.7%을 모두 소요한 상태입니다. 이에 홍익대는 2023년 10월 프리츠커상을 수상한 다섯 명의 거장이 경쟁하는 국제설계공모 심사를 진행하였고, 그 결과 글로벌 건축 그룹 OMA의 제안이 당선되었습니다.
건축 계획에 따르면 약 13만 6천㎡ 규모의 지하 캠퍼스가 조성될 예정입니다. 이는 캠퍼스 전체 면적(약 14만 3천㎡)과 맞먹는 규모로, 또 하나의 캠퍼스가 생기는 셈입니다. 황량한 운동장 부지는 미술관, 강의실, 연구시설이 유기적으로 연결된 복합 캠퍼스로 재구성됩니다.
뉴홍익 캠퍼스 중심에는 다양한 학부를 연결하고, 홍대 지역의 문화 허브 역할을 수행하는 아트센터(Art Center), 강의실·워크숍·연구실을 통합한 다목적 러닝 허브(Multipurpose Learning Hub), 2023년 준공된 ‘아트&디자인밸리’와 연결되어 학문·창작·창업을 실질적으로 이어주는 ‘메이커 스페이스(Maker Space)’ 등이 건축될 예정입니다. 지역과 대학 사이의 단절을 해소하고, 유입과 교류의 흐름을 새롭게 설계하는 것이 ‘뉴홍익 프로젝트’의 핵심입니다.
홍익대학교 혁신성장캠퍼스(뉴홍익프로젝트) 조감도 ©정림건축 홈페이지 https://junglim.com/new-hongik-project/
화려한 홍대입구역 대로변과 미술 학원들이 떠난 와우산로, 그리고 학생들이 생활하는 상수동 뒷골목까지. 지금의 홍대는 거대한 상권과 대학생들의 생활권이 뚜렷하게 분리된 모습입니다. 학생들은 관광객과 인파를 피해 학교 뒤편 상수 지역으로 생활 반경을 옮겨 그들만의 일상과 대학 생활을 이어가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홍익대학교는 ‘뉴홍익 프로젝트’를 통해 기존 캠퍼스 부지의 한계를 넘어서고, 홍대 지역과의 새로운 연결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담장을 허문 새로운 홍익대학교 캠퍼스는 앞으로 어떤 변화를 만들어 낼까요? 홍대 지역의 활기와 학생들의 일상이 함께 공존할 수 있는, 진정한 복합 캠퍼스로 거듭나기를 기대해 봅니다.
*본 아티클은 야작 경력을 서른마흔아홉시간 보유한 섬유미술패션디자인과 희주 님과 이 외 인터뷰에 응해주신 홍익대 재학생 분들의 도움으로 작성되었습니다.
[참고자료]
나건웅 · 최창원 기자, 「명동 넘어…을·충·당에 반하다 [데이터로 그려본 2025 외국인 상권 지도]」, 매경이코노미, 2025.07.30, https://www.mk.co.kr/news/economy/11377449
김민기 기자, 「"수학 잘해야 미대 간다" 미술학원도 홍대 대신 강남으로」, 조선일보, 2022.03.07,https://www.chosun.com/national/education/2022/03/07/VZGJKLT77BB3XDUOMTKBLHUEQ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