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미국 리츠 시장에서는 여러 가지 화제와 이슈가 있었습니다. 그중에 대표적인 이벤트를 꼽으라면 ‘페르미 아메리카(Fermi America)’라는 곳의 상장을 들 수 있습니다. 영업이익은 물론 매출 역시 사실상 ‘제로’, 임대수익 역시 '제로'인 상태로 상장에 성공했기 때문입니다. 또한 성공이라는 단어 앞에는 ‘폭발적 열기’라는 수식어가 자리해야 할 정도로 투자자들의 뜨거운 호응과 구애 속에 증시에 입성했습니다. 당시 상장 이후 최고로 인정받은 시장 가치는 230억 달러(원화 31조원, 시가총액) 가량에 육박했습니다.
페르미 아메리카는 기존 리츠 상장의 방식을 완전히 깨고 상장했습니다. 기상장 리츠들이 안정적인 성장과 매출, 배당 등을 전면에 내세워 시장의 평가를 받았다면, 페르미 아메리카는 과거보다는 오늘, 오늘보다는 내일의 전도유망함을 앞세워 투자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즉, 리츠의 ‘포텐셜’ 하나로 화려하게 미국 증시에 입성한 곳입니다. 리츠로 상장하긴 했지만 달리 보면 '리츠가 맞나?'란 생각이 들 수도 있을 정도였습니다.
미국인들은 왜 페르미 아메리카에 열광했을까요
그렇다면 페르미 아메리카는 무엇을 하는 곳일까요. 단순화하면 데이터센터와 전력(발전기) 등 AI(인공지능)산업의 핵심 시설을 개발하고 임차인들에게 대여해주는 역할을 할 예정인 리츠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일종의 AI 인프라 산업을 영위하는 리츠입니다. 매출과 영업이익이 아직은 없다고 말하는 이유는 데이터센터와 전력 시설 등을 짓고 있는 단계이기 때문입니다. 현 시점에서는 개발 리츠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페르미 아메리카가 구상한 프로젝트를 통해 대규모 데이터센터와 전력 시설이 가동되게 되면 막대한 수익을 올릴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지지를 받았습니다. 리츠 주주들의 배당 재원으로 연결되는 구조죠. 페르미 아메리카는 상장 과정에서 미국은 물론 전 세계를 통틀어 역대 최대 규모 수준의 데이터센터를 짓고 입주 업체들, 가령 하이퍼스케일러들의 유치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어필했습니다.
구체적으로 페르미 아메리카의 사업은 계획대로만 되면 전망이 매우 밝습니다. 극심한 공급 절벽을 겪는 공공 전력망에 의존하지 않고, 자체적으로 전기를 생산해 데이터센터에 직접 공급하는 '독립형(Behind-the-Meter) 전력망'입니다. 사설 전력망인 셈입니다. AI 연산에는 막대한 전력이 필요해 기존 미국의 공공 전력망은 이미 과부하 상태죠. 이 틈을 파고 들어 일종의 니치마켓을 선점하고 확장해나가겠다는 포석입니다.
실제로 페르미 아메리카는 텍사스 팬핸들 지역에 최대 17GW(기가와트) 규모의 초대형 프라이빗 전력망 및 AI 데이터센터 캠퍼스를 짓고 있습니다. 전력 확보를 위해 천연가스, 태양광뿐만 아니라 '원자력 발전'을 결합하겠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현대건설, 현대엔지니어링, 두산에너빌리티 등 국내 기업과 설계 및 원자로 개발 협력 계약을 맺어 국내에서도 큰 화제가 되기도 했죠.
우리나라의 반도체로 비유해보겠습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로 대변되는 메모리 반도체 강자들은 과거 석유 국가들에 비견되는 포지셔닝을 구축하고 있습니다. 메모리 반도체의 숏티지 현상(공급부족) 때문인데요. 반도체가 들어가는 데이터센터, 그리고 이를 가동할 전력 시설 모두 AI 시대의 핵심 인프라로 묶입니다. 페르미 아메리카는 이러한 풍부한 수요와 가능성에 베팅해 차별화된 데이터센터 개발에 나선 셈입니다.
하지만 흔들리는 페르미 아메리카의 구상, 그래서 어떻게?
하지만 상장 후 1년여가 지난 지금 시장의 시선은 싸늘하게 식었습니다. 정확히는 주식시장에 평가받는 대우가 확연히 달라졌습니다. 상장 후 급상승하던 주가는 한때 30달러를 넘었는데요. 지금은 70% 이상 하락하며 7달러대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리츠가 어떻게 단기간에 이렇게 떨어질 수 있을까요. 일정 수준 이상의 수익과 배당을 유지하는 리츠라면 불가능한 이야기입니다. 이 역시 '포텐셜' 의지했던 결과물이기도 합니다.
페르미 아메리카는 대규모 데이터센터를 짓기 시작하면서 빅테크 고객 유치 가능성을 높게 점쳤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이들의 입주 가능성에 의구심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페르미 아메리카 자체를 불신하기 보다 데이터센터와 발전기를 구축하는 시간이 길다보니 촌각을 다투는 빅테크 입장에서는 지금 당장 수요를 충족할 수 있는 방향들을 찾게 됩니다. 결국 하이퍼스케일러 수요가 1년, 2년 후에도 유효해야겠죠.
만약 페르미 아메리카가 이미 보유 자산이 원활하게 운용되고 있고, 이를 기반으로 실적이 나오고, 배당이 지급되는 상황이라면 어땠을까요. 하락은 할 수 있지만, 지금처럼 급락에 가까운 장세가 나올 일은 없습니다. 하지만 투자자들과 시장에서 잠재 고객들의 이탈, 그리고 준공 시점에 수익 재원인 고객 유치에 대한 불확실성 등에 대한 여러 우려가 모두 주가에 반영되고 있습니다. 그것도 무섭게 말입니다.
물론 그럼에도 페르미 아메리카를 지지하는 이들은 여전히 성장성과 잠재력을 유효하다고 보고 있습니다. AI 인프라 수요는 건재하고, 내년과 내후년에도 폭발적일 것이라고 보기 때문입니다. 특히 페르미 아메리카가 건설 중인 세계 최대 규모의 데이터센터는 앞부분에 언급했듯이 규모 면에서나 발전기를 가동하는 사설 기관이라는 점 등 차별화 대목이 분명한 자산입니다. 준공 시점 수요 역시 부정적이 아닌 긍정적 시선이 강합니다.
미국 리츠 이야기를 다루면서 다양성과 유연함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했습니다. 페르미 아메리카는 그 '끝판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시장 참가자들은 페르미 아메리카의 성장 잠재력 하나만을 보고 베팅했습니다. 지금 주가는 기대에 어긋나고 있지만, 상장 열기 자체가 대단한 결과입니다. 과연 우리나라라면 실적이 전무한 상태의 리츠가 ‘앞으로 충분히 달성할거다’란 어필로 상장을 할 수 있었을까요. 1년 후 혹은 5년 이후의 성공을 담보로 선제적이고 파격적으로 길을 열어주는 미국 리츠 시장의 방향에 새삼 놀랍다는 생각이 듭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