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을 여행해 본 분이라면 이 질문만으로도 머릿속에 몇 장면이 떠오를지도 모르겠습니다. 붉은 벽돌과 오래된 건물, 광장을 둘러싼 상점들, 사람들 사이로 울려 퍼지는 음악 소리, 그리고 어디선가 관객들의 웃음을 끌어내는 거리 공연까지. 코벤트 가든은 런던 웨스트엔드의 대표적인 관광명소이자, 여행자들이 런던의 분위기를 가장 쉽게 체감할 수 있는 장소 중 하나입니다.
코벤트 가든 밖 광장에서 열리는 공연 모습. ⒸCovent Garden London 홈페이지
특히 코벤트 가든의 중심에 있는 Market Building 주변은 늘 활기가 넘칩니다. 건물 밖 광장에서는 마술사와 악사, 각종 거리 공연자들이 사람들의 발길을 붙잡고, 건물 안에서는 상점과 식음료 매장, 때로는 클래식 공연이 어우러집니다. 런던 특유의 회색빛 정서가 도시를 은은하게 감싸는 가운데서도, 이곳만큼은 조금 더 밝고, 조금 더 들떠 있는 공간처럼 느껴집니다.
저 역시 학생 시절 처음 이곳을 찾았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합니다. 그때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건축물도, 상점도, 유명 브랜드도 아니었습니다. 제 기억에 가장 오래 남은 것은 그곳을 지나가던 사람들의 표정이었습니다. 관광객도, 현지인도, 잠시 걸음을 멈추고 공연을 바라보던 사람들도 모두 꽤 행복해 보였습니다. 좋은 공간은 사람의 기분을 바꾼다는 사실을, 그때 코벤트 가든에서 자연스럽게 느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리츠 투자자의 시선으로 이 공간을 다시 바라보면, 코벤트 가든은 단순한 관광지가 아닙니다. 누군가에게는 추억의 장소이고, 누군가에게는 소비의 공간이며, 또 누군가에게는 매우 중요한 투자자산입니다. 그렇다면 이 자산의 소유자는 누구일까요?
코벤트 가든의 주인은 바로 영국 상장 리츠인 Shaftesbury Capital입니다. Shaftesbury는 코벤트 가든의 상징적 중심 자산인 Market Building을 보유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코벤트 가든, 차이나타운, 소호 등 런던 웨스트엔드 핵심 상권 전역에 걸쳐 약 220개 건물, 약 11조 원 규모의 부동산 포트폴리오를 보유·운영하고 있습니다.
Shaftesbury가 소유한 소호, 차이나타운, 코벤트 가든 지역의 자산들. Ⓒ SHAFTESBURY CAPITAL 2025 Annual Report
만약 우리가 이 리츠의 주식을 조금이라도 보유하고 있다면 어떨까요? 코벤트 가든 광장에서 관광객들이 공연을 보며 박수를 치는 장면을 보고, 차이나타운에서 식사를 하고, 소호의 분위기 좋은 바에서 한 잔을 마시면서도 어쩌면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내가 오늘 이 거리에서 쓴 돈이 상점의 매출이 되고, 상점 주인은 리츠에 임대료를 내고, 그 임대수익이 다시 배당의 형태로 내게 돌아올 수도 있겠구나.”
물론 현실의 배당 구조가 그렇게 단순하게 1대1로 연결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리츠를 이해하는 데 이보다 직관적인 그림도 많지 않습니다. 소비자는 공간을 이용하고, 임차인은 그 공간에서 매출을 올리고, 건물주는 임대료를 받습니다. 그리고 상장 리츠 투자자는 그 건물주의 지분을 아주 작게나마 나누어 갖습니다.
리츠 투자의 매력은 바로 이 지점에 있습니다. 멀게만 느껴졌던 부동산이 어느 순간 주식계좌 안으로 들어오고, 복잡해 보였던 임대사업이 배당이라는 형태로 투자자에게 번역됩니다. 부동산을 직접 매입하지 않아도, 리츠를 통해 특정 도시와 특정 자산의 성장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저는 예전에 주식 운용팀에서 근무하면서 피터 린치의 ‘월가의 영웅’ 이라는 책에서 영감을 많이 받았습니다. 우리가 일상에서 직접 보고, 쓰고, 좋아하는 기업에 투자한다는 사고방식을 좋아했습니다. 소비자로서 먼저 좋은 회사를 발견하고, 투자자로서 그 회사를 다시 살펴보는 접근 방식입니다.
리츠 역시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자주 이용하는 쇼핑몰, 여행 중 인상 깊었던 거리, 사람들이 몰리는 식당가, 수요가 꾸준한 병원과 요양시설, 학생들이 거주하는 기숙사도 모두 투자자산이 될 수 있습니다. 물론 제가 보유한 지분은 매우 소소한 수준일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리츠에 투자할 때면 저는 종종 이렇게 생각합니다. ‘나는 이 건물의 아주 작은 지주이고, 임대료 대신 배당을 받는다.’ 그렇게 생각하면 리츠는 더 이상 숫자만으로 설명되는 금융상품이 아닙니다. 도시와 사람, 공간과 소비, 임대료와 배당이 연결되는 살아 있는 투자수단이 됩니다.
현재 저는 전업으로 리츠 투자 업무를 맡고 있고, 팀 내에서는 유럽 리츠 투자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다행히 유럽에는 국내 리츠 시장보다 훨씬 다양한 색깔의 상장 부동산 회사와 리츠가 존재합니다. 그래서 앞으로 딱딱한 숫자만 나열하기보다, 유럽 각국의 특색 있는 리츠 이야기를 해보려 합니다.
United States vs Not United Europe유럽 리츠를 이야기할 때 가장 먼저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이 있습니다. 유럽은 미국처럼 하나의 단일 국가가 아닙니다. ‘유럽’은 국가명이 아니라 대륙의 이름입니다.
물론 유로존이라는 단일 통화 공동체가 존재하고, 유럽연합이라는 제도적 틀도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유럽 각국은 서로 다른 언어와 문화, 세제와 법률, 부동산 제도를 가지고 있습니다. 런던의 부동산 시장과 파리의 부동산 시장이 다르고, 독일의 주거 임대차 제도와 스웨덴의 주거 시장 구조가 다르며, 스페인과 벨기에의 상장 부동산 회사들도 각자의 역사와 제도 안에서 발전해 왔습니다.
리츠는 기본적으로 국가별 제도 위에서 작동합니다. 따라서 각국의 제도와 시장 특성이 모여 유럽 상장 부동산 생태계를 이루고 있고, 유럽이라는 하나의 거대한 시장으로 단순화하기 어렵습니다.
이 점이 미국 리츠와 유럽 리츠의 가장 큰 차이입니다. 미국 리츠는 하나의 거대한 내수시장 안에서 전국 단위 플랫폼으로 성장한 회사들이 많습니다. 물류, 데이터센터, 셀프스토리지, 주거, 리테일 등 각 섹터에서 압도적인 규모를 가진 대형 리츠들이 존재합니다.
반면 유럽은 다릅니다. 한국 리츠 시장과 비교하면 규모가 크고 자산군도 훨씬 다양하지만, 미국과 비교하면 개별 기업의 규모는 상대적으로 작고 지역색은 더 뚜렷합니다. 유럽 리츠는 미국 리츠처럼 반듯하게 정리된 하나의 지도라기보다, 서로 다른 나라의 도시와 제도, 산업이 이어 붙은 조각보에 가깝습니다. 바로 그 점이 유럽 리츠를 어렵게 만들기도 하지만, 동시에 흥미롭게 만드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NAREIT vs EPRA미국 리츠 투자자라면 NAREIT라는 이름이 익숙할 것입니다. NAREIT(National Association of Real Estate Investment Trusts)는 전미리츠협회로, 미국 상장 리츠 시장의 대표적인 산업 협회이자 데이터 제공 기관입니다. 미국 리츠의 섹터별 수익률, 배당수익률, 시가총액, 산업 동향 등을 살펴볼 때 가장 먼저 확인하게 되는 곳 중 하나입니다.
그렇다면 유럽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유럽에는 EPRA가 있습니다. 보통 한국어로는 ‘에프라’라고 읽습니다.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볼까요? EPRA는 ‘European REIT Association’이 아닙니다. 정식 명칭은 European Public Real Estate Association, 즉 유럽 상장 부동산 협회입니다. ‘리츠 협회’가 아니라 ‘상장 부동산 협회’인 셈입니다.
이 차이는 생각보다 중요합니다. EPRA가 다루는 대상은 법적으로 리츠 지위를 가진 회사에만 한정되지 않습니다. EPRA는 상장 리츠와 상장 부동산 회사를 포괄하는 개념입니다. 2024년 기준 유럽 상장 부동산 회사는 총 452개이고 시가총액은 약 644조 원에 이르는데, 이 중 상장 리츠가 188개 (시총 245조 원)이고 리츠가 아닌 상장 부동산이 총 264개로 (시총 398조 원) 리츠보다 더 큰 규모로 형성되어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리츠는 1960년대 미국에서 처음 탄생했습니다. 반면 유럽 주요 선진국들이 리츠 제도를 본격적으로 도입한 것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전후였습니다. 출발점이 달랐던 만큼 시장의 모습도 다르게 형성되었습니다. 유럽에는 아직 리츠 제도가 도입되지 않은 국가도 있고, 리츠 제도가 있더라도 개발 활동이나 투자 범위 등에 제한을 두는 국가도 있습니다.
그래서 유럽 상장 부동산 시장에는 법적으로는 리츠가 아니지만, 리츠처럼 상업용 부동산을 보유·운영하고 임대수익을 배당 형태로 투자자에게 분배하는 ‘REIT-like’ 부동산 회사들이 함께 발달해 왔습니다. 기고글에서는 편의를 위해 모두 리츠로 지칭하겠습니다.
K리츠 vs 유럽 리츠규모 면에서도 유럽 상장 부동산 시장은 국내 투자자들이 충분히 관심을 가질 만합니다. EPRA에 따르면 선진유럽 국가에는 108개의 리츠가 상장되어 있고, 시가총액은 원화로 약 790조 원에 이릅니다. 단순 환산 기준으로 보면 K리츠 시장의 약 80배에 달하는 규모입니다.
더 흥미로운 것은 자산의 종류입니다. 국내 리츠 시장은 아직 오피스, 리테일의 중심의 색채가 강합니다. 반면 유럽에는 오피스와 물류뿐 아니라 병원, 요양원, 기숙사, 셀프스토리지, 주거, 호텔, 리테일, 등 다양한 리츠가 존재합니다.
다시 코벤트 가든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누군가에게 코벤트 가든은 런던 여행에서 꼭 들르는 관광명소일 뿐입니다. 누군가에게는 거리 공연을 보며 잠시 쉬어 가는 광장일 수 있습니다. 또 누군가에게는 친구와 식사하고, 공연을 보고, 기념품을 사는 소비의 공간일 수 있습니다.
관광명소이자 영국 상장 리츠이기도 한 코벤트 가든 마켓 빌딩. ⒸCovent Garden London 홈페이지
하지만 리츠 투자자에게 코벤트 가든은 조금 다르게 보일 수 있습니다. 좋은 입지와 좋은 공간이 사람을 모으고, 사람의 흐름이 매출을 만들고, 매출이 임대료를 지탱하며, 그 임대료가 다시 배당으로 연결되는 구조를 보여주는 살아 있는 사례이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이 연재에서는 이런 유럽의 특색 있는 리츠들을 하나씩 소개해 보려 합니다. 이 글을 읽는 독자분들도 유럽의 도시와 건물, 그리고 그 안에서 만들어지는 임대수익을 함께 나누는 작은 ‘유럽의 지주’가 되어 보시길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