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찌는 듯한 한여름 폭염 속에서도 명동 거리는 발 디딜 틈 없이 붐비고 있습니다. 지하철 4호선 명동역에 내리는 순간부터, 굳이 데이터나 통계가 아니더라도 명동 상권이 완전히 회복했음을 느낄 수 있을 정도입니다.
명동은 지금도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쇼핑 메카이자 상권이지만, 뼈아픈 암흑기도 겪었습니다. 사드(THAAD) 사태와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며 상권은 급속도로 무너졌고, 당시 H&M과 유니클로, 에이랜드, 아리따움 등 주요한 대형 패션·뷰티 매장들이 줄지어 문을 닫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최근 원화 약세와 더불어 K-콘텐츠가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면서 외국인 관광객이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했고, 명동은 코로나19 이전 수준을 뛰어넘는 활기를 되찾고 있습니다. 과거의 명동은 대형 면세점과 뷰티 로드숍, 보세와 브랜드 옷가게, 그리고 명동교자 같은 핵심 F&B가 상권을 지탱하곤 했습니다. 그렇다면 다시 뜨거워진 지금, 명동의 거리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요?
한여름 평일 오후 6시의 명동 거리 모습. 사람이 많아 줄지어 이동해야 한다. Ⓒ시티폴리오
 

뷰티 브랜드 대신 올리브영과 약국


한때 명동은 화장품 로드숍 브랜드들의 치열한 격전지였습니다. 에뛰드, 더페이스샵, 네이처리퍼블릭, 토니모리 등 K-뷰티의 토대를 다진 로드숍들이 거리를 메웠고, 10장씩 묶어 팔던 마스크팩은 '명동 특산품'과도 같았죠.
하지만 로드숍 브랜드의 전성기가 저물고, 사드와 코로나19가 연이어 덮치면서 명동 상권은 공실이 넘쳐나게 되었습니다. 여기에 관광객 대상으로 장사하는 곳이라는 부정적인 인식까지 더해지면서, 새로운 모습으로 변화하기에 어려운 여건에 놓여있었습니다.
그런데 요즘 명동을 걷다 보면 그러한 침체기는 흔적조차 찾기 어렵습니다. 평일 오후 4시에도 거리가 북적이고, 주말이면 보행이 어려울 정도로 많은 인파로 가득합니다. 명동 메인 거리는 확실히 외국인 관광객이 압도적으로 많습니다. 반면, 한 블록 안쪽의 이면 도로나 롯데·신세계백화점 본점, 그리고 명동성당 주변으로는 목적성을 갖고 방문하는 내국인과 인근 오피스 상주인구들이 꾸준히 오가며 상권의 전반적인 밀도를 채우고 있습니다.
명동극장 인근 올리브영 명동타운점 앞. 매장 앞에서 기념 사진을 찍기도 한다. Ⓒ시티폴리오
뷰티 상권의 명맥은 올리브영과 약국이 이어가고 있습니다. 과거 여러 매장을 돌아다니며 화장품을 구매하던 패턴에서, 이제는 한 곳에서 다양한 브랜드를 비교하고 구매할 수 있는 편집숍 형태가 상권의 새로운 표준으로 자리 잡은 것입니다.
현재 명동 일대에만 무려 7개의 올리브영 매장이 들어서 있습니다. 놀랍게도 하나의 상권 내에 이토록 점포가 밀집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느 지점을 가나 어깨에 물건이 가득한 올리브영백을 들고 있거나 제품을 구경하는 외국인 관광객들로 붐빕니다. 올리브영 쇼핑을 마친 외국인들은 저렴한 가격과 할인율을 내세운 오프뷰티로 두 번째 쇼핑을 떠나는 모습도 볼 수 있습니다.
 오프뷰티와 올리브영. 사진 속 올리브영 매장은 최근 문을 닫았지만, 30걸음이 채 되지 않는 곳에 명동거리점이 있다. Ⓒ시티폴리오
약국도 다르지 않습니다. 레디영약국을 비롯해 빠른 시간 안에 매장을 늘린 약국 브랜드들의 매장도 있지만 명동에서 자생한 약국 매장들도 많습니다. 체감상 한 집 건너 한 집이 약국이라고 느껴질 정도로 최근에는 그 수가 급증했는데, 현재는 을지로입구역에서 명동역에 이르는 상권 구간에만 약 50개에 달하는 약국이 영업 중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명동 거리 곳곳에 위치한 약국. Ⓒ시티폴리오

 

트렌디한 K-패션 브랜드의 중∙대형 매장


또한 곳곳에 무신사, 29cm 등에서 높은 인지도와 팬덤을 갖춘 K-브랜드들 또한 명동 상권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타 상권 매장 대비해서 조금 더 넓은 평형대의 매장을 유치한 곳도 적지 않습니다.
프리미엄 이미지를 굳힌 젠틀몬스터는 인근 백화점에 입점하며 고급화 전략을 택한 반면, 상대적으로 진입 장벽이 낮고 합리적인 가격대를 앞세운 블루엘리펀트나 더블러버스 같은 브랜드들은 명동 길거리에 직접 단독 매장을 냈습니다. 관광객들이 거리를 오가며 부담 없이 지갑을 열 수 있는 적절한 객단가가 로드숍 상권의 소비 패턴과 맞아떨어진 셈입니다.
우측에 젠틀몬스터, 블루엘리펀트와 함께 언급되는 아이웨어 브랜드 더블러버스 매장이 있고 왼편에는 팝마트가 보인다. Ⓒ시티폴리오
올리브영 매장 바로 옆에서 돌출된 파사드로 브랜드를 알리는 블루엘리펀트. Ⓒ시티폴리오
이러한 브랜드의 세대교체는 패션 영역에서도 나타납니다. 과거 상권을 채우던 보세 옷가게와 편집샵을 대신해, 무신사, 마리떼 프랑소와 저버, 더바넷을 비롯한 핵심 K-패션 브랜드들이 명동 중앙길 곳곳에 쇼룸을 마련했습니다. 온라인과 SNS를 기반으로 뚜렷한 정체성을 구축한 브랜드들이 글로벌 소비자들과의 오프라인 접점을 넓히기 위해 명동을 일종의 전초기지로 적극 활용하는 모습입니다.
명동 극장에서 롯데백화점 본점으로 향하는 거리에 위치한 무신사 스토어 명동. Ⓒ시티폴리오
액세서리 전문 브랜드 뉴뉴는 올리브영과 K-POP 굿즈 매장과 인접해 있다. Ⓒ시티폴리오
 

유니클로의 상징적 귀환


명동 상권의 흥망성쇠를 이야기할 때 결코 빼놓을 수 없는 브랜드가 바로 유니클로입니다. 한때 명동역 6번 출구 앞 밀리오레와 마주한 빌딩에 약 1,200평 규모의 명동중앙점을 운영하며 상권의 주요 테넌트였지만, 2021년 뼈아픈 폐점을 겪어야만 했습니다. 그랬던 유니클로가 지난 5월 명동 상권의 화려한 부활과 함께 다시 돌아왔습니다. 이는 글로벌 메가 리테일러가 명동 상권의 잠재력을 다시금 인정했다는 상징적인 의미를 지닙니다.

명동 중앙길 초입에 위치한 밀리오레와 과거 유니클로 매장이 있었던 타비 빌딩. Ⓒ시티폴리오
지난 5월에 르메르디앙 호텔 저층부에 문을 연 유니클로 명동점. Ⓒ시티폴리오

흥미로운 부분은 새롭게 문을 연 유니클로의 입지 전략입니다. 과거처럼 명동 메인 거리 입구를 선점하는 대신, 명동 중앙 거리와는 조금 거리가 떨어져 있지만, 대신 신세계백화점과 중국대사관 사이에 위치한 르메르디앙 호텔 건물 1층부터 3층에 터를 잡았습니다. 이러한 입지 전략은 현재 명동을 찾는 핵심 소비층의 동선을 정확히 겨냥한 행보로 볼 수 있습니다.

중국대사관 담장을 따라 유니클로 명동점으로 향하는 골목. Ⓒ시티폴리오

유니클로 명동점은 같은 건물에 위치한 5성급 호텔 르메르디앙과 메리어트 계열의 3성급 호텔 목시에 투숙하는 외국인 관광객들과의 접점을 자연스럽게 확보할 수 있습니다. 주변에 여행객들에게 유명한 환전소가 밀집해 있다는 점도 집객 요소가 됩니다. 더불어 명동 거리에서 백화점 상권으로 이어지는 동선에 자리하고 있어, 쇼핑을 목적으로 오가는 유동인구를 흡수하기에도 유리합니다.   

중국 대사관과 유니클로 명동점 사이에 위치한 환전소. 환율도 저렴한 편이다. Ⓒ시티폴리오

무엇보다 체계적으로 관리되는 호텔 건물에 입점함으로써 얻는 브랜딩 효과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과거 '가성비' 중심의 길거리 로드숍 이미지에서 벗어나, 한층 쾌적하고 정돈된 글로벌 리테일 공간으로서의 브랜드 이미지를 구축할 수 있습니다. 

제품과 매대가 빼곡하지만 피팅룸을 포함해 내부 인테리어에도 신경을 많이 썼다. Ⓒ시티폴리오
유니클로가 돌아와 자리잡은 명동의 의미와 지역성을 전달하는 VMD와 공간 기획 또한 인상적입니다. 과거에는 유니클로 매장을 랜드마크화하는 데 집중했다면, 이번에는 주변 상권과의 연결성 또한 놓치지 않았습니다. 고객이 직접 티셔츠를 디자인할 수 있는 'UT' 커스텀 공간에는 인근의 대표적인 로컬 브랜드나 한국적인 요소를 살린 그래픽을 배치해 지역적 특색을 강조했습니다.
 직접 커스텀한 UT를 구매할 수 있는 공간. 대기가 길어 테이블링을 사용할 정도로 붐볐다. Ⓒ시티폴리오
한국의 문화, 현대적인 먹거리, 그리고 주변 상권을 일러스트화한 UT 제품들. Ⓒ시티폴리오
 
매장 곳곳에 서울을 새로운 시각으로 조명한 감각적인 큐레이션 도서를 비치하고, 옛 서울의 패션과 당시의 멋을 기록한 한영수 작가의 사진 작품을 함께 전시했습니다. 명동이라는 상권의 헤리티지와 로컬 문화를 글로벌 방문객들에게 전달하면서, 유니클로 역시 글로벌 리테일러를 넘어 서울의 문화적 맥락과 연결하고자 하는 의도를 엿볼 수 있습니다.
매장 내에 서울을 소개하는 아트북과 서적을 열람할 수 있게 꾸며둔 모습. Ⓒ시티폴리오
20세기 한국의 패션과 거리를 담은 한영수 작가의 작품을 휴게 공간에 전시해두었다. Ⓒ시티폴리오
명동 상권의 부활과 유니클로의 귀환은 이 거리가 단순히 과거를 회복한 것을 넘어, 또 다른 전성기에 진입했음을 보여줍니다. 글로벌 관광객의 체류 거점이라는 특성상 외부 변수에 크게 흔들리며 힘든 시기를 겪기도 했지만, 오히려 그 경험을 자양분 삼아 과거의 특징을 요즘 시대에 맞춘 리테일 문법으로 재편되고 있습니다.
과연 앞으로 20년 후의 명동은 또 어떤 리테일 지형도를 그리고 있을까요? 지금의 타이틀과 한계를 넘어, 내수 고객들의 발길까지 다시 이끄는 매력적인 상권으로 진화할 수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 1970년대부터 대한민국 유행과 패션의 1번지로서 켜켜이 쌓아온 명동만의 고유한 헤리티지가 앞으로도 시대의 흐름에 맞춰 유연하게 변모하며 그 명맥을 이어가길 바랍니다.
이은송

이은송

서울프라퍼티인사이트 콘텐츠 매니저

시티폴리오 콘텐츠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도시와 건축, 공간과 브랜드가 교차하는 이야기를 기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