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비싼 층을 비우는 계산법 : 저층부 개방이 자산이 되는 다섯 가지 방식
오피스 개발에서 저층부는 가장 비싼 면적입니다. 1층 리테일 임대료가 기준층의 몇 배에 이르는지는 실무자라면 굳이 설명이 필요 없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공개공지1는 오랫동안 인허가 과정에서 용적률 인센티브와 맞바꾸는 '비용'으로 취급되어 왔습니다. 최소 면적만 채우고, 벤치 몇 개를 놓고, 관리의 대상으로 남겨두곤 합니다.
그런데 최근 임차인의 선택지가 넓어지고 오피스 간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국내외를 불문하고 글로벌 도시 핵심 오피스들은 이제까지와는 정반대의 선택을 하고 있습니다. 값비싼 저층부를 임대 계약이 아니라 시민에게 내주는 방식입니다. 서울 용산과 광화문, 도쿄 아자부다이, 홍콩 센트럴에서 확인한 다섯 가지 사례는 각기 다른 방식으로 같은 결론에 도달합니다. 저층부 개방은 비용이 아니라, 건물 전체의 가치를 끌어올리는 투자라는 점입니다.
이번 글에서는 제가 직접 다녀온 국내 세 곳과 해외 두 곳을 통해, '비어 있는 저층부'가 어떤 경로로 가치로 되돌아오는지 살펴보겠습니다.
문화로 비우다 : 아모레퍼시픽 본사, 용산
2017년 준공된 아모레퍼시픽 본사는 프리츠커상 건축가로도 알려진 데이비드 치퍼필드가 이끄는 데이비드 치퍼필드 아키텍츠 베를린이 설계했습니다. 이 건물의 저층부 전략은 명확합니다. 1층부터 3층까지 이어지는 아트리움에서 상업시설을 최소화하고, 그 자리에 지하의 미술관으로 연결되는 출입구와, 꽃집, 카페, 전시도록 라이브러리 등 문화공간을 두어 임직원뿐 아니라 방문객과 시민에게 개방한 것입니다.
단순 수익성 관점에서 봤을 때에는 쉽게 납득하기 어려운 결정입니다. 신용산역과 지하 공공보도로 직접 연결되어 막대한 유동인구가 보장된 입지라면, 그 저층부를 임대료로 프리미엄을 취할 수 있는 리테일로 채우는 것이 통상의 셈법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아모레퍼시픽은 그 면적을 과감히 문화 공간으로 비웠고, 결과적으로 이 건물은 '용산에 가면 꼭 한번 들르는 곳'이 되었습니다. 실제로 방문해 보면 평일 낮에도 로비에 머무는 사람의 상당수가 외부인입니다. 전시를 보러 온 사람, 라이브러리에서 아트북을 보는 사람, 인근 오피스 근무자, 지나다 들어와 쉬는 사람이 한 공간에 섞여 있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이런 개방성이 건물의 형태와도 맞물려 있다는 점입니다. 치퍼필드는 화려한 장식이나 형태보다는 순백색의 달항아리가 떠오르는 단정한 큐브를 택했고, 저층부를 회랑을 통해 크게 열어 건물 주변의 길가에서도 건물 내부로 시선이 가도록 했으며, 번잡한 용산 도심에서 건물 자체만의 새로운 질서 역시 부여한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건물이 스스로를 과시하는 대신, 비워진 곳을 역으로 방문객들이 채울 수 있게 환대하는 구조인 셈입니다.
이 개방이 구축한 것은 매출이 아니라 '브랜드 자산' 입니다. 뷰티 기업의 본사가 도시의 문화적 좌표가 되면서, 건물 자체가 기업 철학을 전달하는 매체가 되었습니다. 단기적인 임대수익으로 환산되지 않는 이 가치는, 기업 사옥이라는 자산의 성격을 고려해본다면 오히려 가장 합리적인 투자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한 블록, 두 개의 답 : 광화문 D타워와 KT 광화문빌딩 East
광화문 청진구역은 저층부 전략을 비교 관찰하기에 가장 좋은 현장입니다. 같은 재개발 구역 안에서 두 건물이 서로 다른 답을 내놓았기 때문입니다.
2014년 준공된 D타워는 '상업 개방'을 택했습니다. 통상 1층에 두는 오피스 로비를 지하 1층으로 내려보내고, 1층부터 5층까지를 리테일 공간인 '리플레이스'로 채웠습니다. 오피스 건물의 얼굴과도 같은 로비라는 상징적 자리를 지하로 내주고, 그 자리에 거리의 활력을 불어넣은 결정으로 볼 수 있겠습니다.
벤치마킹한 모델은 도쿄 마루노우치였습니다. 업무시간에만 붐비고 저녁이면 비어버리는 오피스 밀집 지역의 한계를, 저층부 리테일로 풀어낸 사례입니다. 실제로 D타워 준공 이후 이 일대는 평일 저녁과 주말에도 사람이 머무는 상권으로 바뀌었고, 언론은 이를 '구도심 상권 부활'로 기록했습니다. 오피스 자산의 가치가 건물 내부와 연결된 주변 거리의 활력에서도 만들어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경우입니다.
같은 블록의 KT 광화문빌딩 East는 '녹지 개방'을 택했습니다. 프리츠커상 수상자이자 퐁피두 센터의 건축가 렌조 피아노의 국내 첫 작품인 이 건물은 지상 1층을 필로티로 비워 공공성을 확보했고, 2022년에는 사옥 주변을 도심 정원인 '디지코가든'으로 새롭게 조성했습니다. 주목할 점은 이 정원이 KT 사유지와 종로구청 구유지를 합쳐 1,865㎡ 규모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입니다.
민간과 행정의 경계를 지우고 정원 2곳과 숲길 3곳을 하나의 녹지로 엮었습니다. 남원에서 옮겨온 수령 100년에 가까운 팽나무, 거울 연못을 둔 바람정원, 필로티 지형을 활용한 하늘정원이 배치되었습니다. 이 정원은 등산로를 닮은 도심 속 새로운 산책로가 되었고, 2022년 서울시 조경상 대상을 받았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KT가 이 답 하나에 만족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바로 옆 West사옥 역시 오랫동안 KT 역사의 상징적 공간이었지만, 2025년 리모델링을 거치며 East와는 정반대로 저층부에 공개공지와 상업시설을 배치했습니다. 한 회사가 같은 블록 안에서 녹지와 상업이라는 두 갈래 답을 동시에 실험하며, 시민들을 향해 열려 있게 되었습니다.
마주하고 있는 두 건물이 보여주는 것은, 저층부 개방에 정답이 하나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리테일로 거리를 살리는 방식과 녹지로 시민을 초대하는 방식 모두, 건물 바깥의 경험을 설계해 건물 안의 가치를 끌어올린다는 점에서는 같은 전략일 것입니다.
광장에서 시작하는 마스터플랜 : 아자부다이 힐스, 도쿄
2023년 11월 개장한 아자부다이 힐스는 모리빌딩이 34년에 걸쳐 완성한 8.1ha 규모의 복합개발입니다. 총 사업비는 약 6,400억 엔, 우리 돈으로 5조 원을 넘습니다. 330m 모리JP타워를 포함한 세 개의 타워가 들어섰지만, 이 프로젝트에서 시민들에게 주목 받은 곳은 초고층이 아니라 저층부에 있습니다.
모리빌딩은 설계의 순서를 뒤집었습니다. 건물을 먼저 배치하고 남은 공간을 녹지로 채우는 통상의 방식 대신, 6,000㎡의 중앙 광장(센트럴 그린)을 먼저 놓고 그 경관 속에 타워의 위치를 정한 것입니다. 그 결과 전체 부지의 약 3분의 1에 해당하는 2만 4,000㎡가 녹지로 조성되었습니다. 부지의 10분의 1가량을 녹지에 할애했던 롯폰기 힐스와 비교하면, 20년 사이 저층부에 대한 개발사의 계산이 얼마나 달라졌는지 드러납니다.
저층부 가든 플라자의 설계는 토마스 헤더윅이 이끄는 헤더윅 스튜디오가 맡았습니다. 구릉지의 고저 차를 지우는 대신 언덕의 지형을 살렸고, 파고라에서 영감을 받은 곡선의 구조물이 녹지와 상업시설을 하나의 풍경으로 엮습니다. 직접 걸어 보면 곳곳의 작은 스케일과 디테일들로부터 이곳이 '단지'보다 '동네'로 설계되었다는 것을 몸으로 느낄 수 있습니다. 타워의 존재감은 광장에 들어서는 순간 오히려 배경으로 물러납니다.
일본 최고층이라는 기록보다, 저층부가 벌어들이는 방문객이 이 프로젝트의 실질적인 자산입니다. 개장 이후 아자부다이 힐스는 연간 3,000만 명 수준의 방문객을 끌어모으는 목적지가 되었고, 럭셔리 브랜드들이 저층부 리테일에 들어섰습니다. 광장이 사람을 모으고, 사람이 임대 수요를 만드는 선순환 구조인 것입니다.
세계 최고가 땅의 역설 : 더 헨더슨, 홍콩
마지막 사례는 이 계산법의 극단값입니다. 홍콩 센트럴 2 머레이 로드, 44년간 정부 공영주차장으로 쓰이고 있던 땅이 2017년 입찰에 나왔고, 헨더슨 랜드가 치열한 입찰 경쟁 끝에 232억 8,000만 홍콩달러, 약 3조 5,000억 원에 낙찰받았습니다. 당시 세계 최고가 상업 필지 기록입니다.
땅값이 모든 것을 압도하는 필지라면, 통상적인 개발의 계산은 임대면적 극대화를 향하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헨더슨 랜드는 다른 전략을 가져왔습니다. 자하 하디드 아키텍츠가 설계한 190m 타워의 저층부를 지면에서 들어 올려, 인접한 채터 가든과 이어지는 시민 정원과 플라자를 냈습니다. 홍콩의 상징화인 바우히니아 꽃봉오리를 재해석한 곡면 유리 파사드와 함께, 저층부의 개방감이 이 건물의 정체성이 되었습니다.
결과는 화려한 입주사 명단으로 돌아왔습니다. 칼라일, 오데마 피게, 크리스티, 캐나다연금투자위원회 같은 글로벌 금융·럭셔리·아트 하우스가 입주했고, 2025년 CTBUH(주2)는 이 건물을 아시아 최우수 고층건축으로 선정했습니다. 개장 당시 홍콩 오피스 시장이 기록적인 공실에 시달리던 상황 속에서도, 초프리미엄 테넌트를 끌어들인 힘은 임대면적이 아니라 건물의 상징성이었습니다. 땅값이 비쌀수록 저층부를 과감히 비우는 전략의 수익률이 높아진다는 역설이 관찰되는 지점입니다.
이제까지 살펴본 다섯 곳의 공통점은, 저층부를 꽉 채운 '임대면적'이 아니라 '건물 전체의 가치를 끌어올리는 장치'로 계산했다는 겁니다. 아모레퍼시픽은 문화로, D타워는 리테일로, KT는 녹지로, 아자부다이 힐스는 광장으로, 헨더슨은 상징으로 저층부를 열었습니다. 방식은 다르지만 경로는 같습니다.
개방된 저층부가 사람을 모으고, 사람의 밀도가 장소의 서사를 만듭니다. 그 이야기는 어떤 건물에서는 임대 프리미엄으로, 어떤 건물에서는 브랜드 자산으로 환산되어 최종적으로는 자산가치의 상승을 이끌어냅니다.
저층부는 오피스 건물에서 유일하게 도시와 직접 맞닿는 면적입니다. 그 접면의 인터페이스를 어떻게 설계하느냐가 준공 이후 수십 년의 자산 성과를 좌우합니다. 도심 오피스 공급이 이어지고 임차인의 선택지가 넓어지는 서울의 여건에서, 동일한 입지와 연면적을 가졌다면 임차인과 방문객은 결국 '머물 이유가 있는 건물'을 선택하게 됩니다.
저층부는 오피스 건물에서 유일하게 도시와 직접 맞닿는 면적입니다. 그 접면의 인터페이스를 어떻게 설계하느냐가 준공 이후 수십 년의 자산 성과를 좌우합니다. 도심 오피스 공급이 이어지고 임차인의 선택지가 넓어지는 서울의 여건에서, 동일한 입지와 연면적을 가졌다면 임차인과 방문객은 결국 '머물 이유가 있는 건물'을 선택하게 됩니다.
이 선택의 이익은 건물 안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담장과 주차 진입로만 이어지는 길에서 보행자는 목적지까지 통과할 뿐입니다. 그러나 정원과 아트리움과 광장이 이어지는 길에서는 잠시 앉고, 누군가를 만나며, 다시 그 장소를 찾을 이유를 얻게 됩니다.
도시의 풍요로움은 건물의 높이가 아니라 건물과 건물 사이, 사람의 보행 속도에서 만들어집니다. 그리고 그렇게 시민들이 머무는 시간은 궁극적으로 건축주에게도 돌아갑니다. 시민은 도심에서 머물 곳을 얻고, 건축주는 그 머무름이 만든 장소성을 임대 프리미엄과 브랜드로 회수합니다. 저층부 개방은 수익을 양보하는 결정이 아니라, 공공의 시간과 사업의 수익을 같은 궤도 위에 놓는 계획이 될 수도 있습니다.
연면적과 임대료 테이블만으로는 부동산의 자산가치가 완성되지 않습니다. 조감도에 담기지 않는, 저층부에서 시민이 보내는 일상의 시간이야말로 장부 바깥에서 건물의 진정한 가치를 써 내려가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