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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과 한국은 여러 면에서 닮았습니다. 두 나라 모두 제조업과 수출 대기업이 경제를 이끌고 있으며, 주식시장 시가총액 상위 기업을 살펴보면 그 공통점이 더욱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독일 증시의 상위권에는 지멘스와 같은 산업재 기업, 인피니온과 같은 반도체 기업, 벤츠와 같은 자동차 기업들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시가총액 순위를 40위권까지 내려가다 보면 조금 뜻밖의 이름이 눈에 들어옵니다. 바로 독일 최대 임대주택 운영 회사인 Vonovia(보노비아)입니다.
Vonovia의 독일 증시 내 순위는 한국 시장으로 치면 KT&G와 비슷한 위치이고, 시가총액은 약 30조원으로 LG전자와 유사한 규모입니다. 다시 말해 독일에는 LG전자만한 규모의 ‘집주인 회사’가 상장돼 있는 셈입니다.
보유한 자산의 규모는 더욱 놀랍습니다. Vonovia는 약 53만 채의 임대주택을 직접 보유하고 있으며, 6만2천여 개 건물에서 1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에게 주거 공간을 제공합니다. 한 기업이 보유한 주택만으로도 웬만한 대도시 하나를 만들 수 있는 규모입니다.
 
유럽연합의 대표적 ‘월세 국가’, 독일
독일 주거 리츠를 이해하려면 먼저 이 나라가 어떻게 ‘임대주택의 나라’가 되었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 독일의 주요 도시는 폐허에 가까웠습니다. 전쟁으로 수백만 채의 주택이 파괴되거나 거주가 불가능해졌고, 피난민과 귀환 인구까지 몰리면서 1950년 무렵에는 450만 채가 넘는 주택이 부족했던 것으로 추산됩니다. 독일 정부가 전후 복구 과정에서 가장 시급하게 해결해야 했던 과제 중 하나가 바로 주택이었습니다.
폐허가 된 베를린 거리 ⒸWIKIMEDIA COMMONS 
정부가 모든 주택을 직접 지을 수는 없었습니다. 대신 저리 대출과 보조금, 세제 혜택을 제공하고 지방정부, 주택협동조합, 비영리 주택회사, 민간 사업자가 대규모 아파트를 공급하도록 유도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오늘날 독일 도시 외곽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표준화된 중층 아파트 단지들이 대량으로 들어섰습니다. 철도회사와 대기업은 직원용 사택을 지었고, 지방정부와 비영리 주택회사는 수천에서 수만 채 단위의 임대주택을 보유하게 됐습니다.
2019년 완공된 Vonovia 소유의 보훔 주거 단지 ⒸVonovia홈페이지 
이처럼 전후 주택 공급이 임대주택을 중심으로 이뤄지면서, 독일에서는 집을 소유하는 것보다 장기간 안정적으로 임차하는 것이 자연스럽게 자리 잡았습니다. 2024년 기준 독일 국민의 52.8%가 임차주택에 거주하며, 독일은 유럽연합 국가 가운데 임차인 비중이 주택 소유자보다 높은 유일한 국가입니다. 
오늘날의 대형 임대주택 회사들은 이러한 전후 주택 공급 체계에서 만들어진 자산을 계승한 결과입니다. 독일 통일 이후 지방정부와 공기업들이 재정 확보를 위해 보유 주택을 매각하면서 거대한 주택 포트폴리오가 민간 자본시장으로 넘어오기 시작했습니다. 2000년대에는 부동산 투자자들이 공공주택, 공공기관과 대기업의 사택을 대량으로 인수했고, 여러 차례의 합병과 상장을 거치며 지금의 대형 주거 부동산 회사들이 탄생했습니다.
 
리츠는 아니지만 리츠처럼 움직이는 회사들
독일 주거 부동산 시장의 대표적인 상장사는 Vonovia, LEG Immobilien, TAG Immobilien입니다. 이들은 수만에서 수십만 채의 임대주택을 보유하고 임대료와 관리수익을 얻는다는 점에서 전형적인 주거 리츠와 유사합니다. 그러나 법적으로는 리츠는 아닙니다.
독일 리츠법은 2007년 1월 1일 이전에 준공된 기존 임대주택을 원칙적으로 투자 대상에서 제외하고 있습니다. 세입자 보호와 기존 임대주택의 금융상품화를 막으려는 정치적 판단이 반영된 제도입니다. 독일 대형 주거 회사의 자산 대부분은 전후부터 20세기 후반까지 지어진 아파트이기 때문에 리츠 구조를 활용하기 어렵습니다.
법적으로는 리츠가 아니지만 자본시장에서는 사실상 리츠와 같은 방식으로 평가됩니다. 이들은 FTSE EPRA Nareit와 같은 글로벌 상장 부동산 지수에 편입돼 있고, 순자산가치와 임대수익, 공실률, 배당을 중심으로 투자자에게 평가받습니다. 따라서 편의상 리츠라고 표현하겠습니다.
 
임대료 상승 규제로 임차인을 보호하는 독일 사회
독일은 임차인의 권리가 매우 강한 나라입니다. 임대인이 계약을 일방적으로 해지하기 어렵고, 임대료 인상 역시 지역별 비교임대료를 중심으로 엄격하게 관리됩니다.
대표적인 제도가 ‘임대료 브레이크’, 즉 Mietpreisbremse(미트프라이스브렘제, 일종의 임대료 상한제)입니다. 주요 인구 밀집 지역에서는 신규 임대계약의 임대료를 원칙적으로 지역 비교임대료보다 10% 이상 높게 받을 수 없습니다. 다만 신규 공급을 지나치게 위축시키지 않기 위해 2014년 10월 이후 처음 사용된 신축 주택 등에는 예외가 적용됩니다.
투자자 측면에서 재미있는 점은, 임대료 브레이크가 임대료 상승 자체를 막는 제도라기보다 그 시점과 속도를 늦추는 제도에 가깝다는 것입니다. 시장 임대료가 빠르게 오르더라도 기존 계약의 임대료에는 그 변화가 한꺼번에 반영되지 않고, 여러 해에 걸쳐 점진적으로 반영됩니다. 그 결과 상승 폭은 제한되지만 임대료가 급격히 하락하는 구간도 드물어, 현금흐름은 완만하면서도 꾸준한 우상향 흐름을 보이게 됩니다.
 
아이러니 1: 임차인을 위한 규제가 집을 더 부족하게 만들다
임대료 규제는 현재 집에 살고 있는 임차인에게 분명한 혜택을 제공합니다. 장기간 한 집에 거주하는 임차인은 시세보다 낮은 임대료를 내면서 안정적으로 거주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그 주택을 필요로 하는 새로운 임차인입니다.
기존 계약의 임대료가 낮게 유지되면 현재 임차인은 주택을 쉽게 옮기지 않으려 합니다. 반면 새로 집을 구해야 하는 청년과 이주민, 다른 도시에서 이동해 온 근로자는 제한된 신규 매물을 놓고 경쟁해야 합니다.
그 결과 기존 임대료와 신규 호가 임대료 사이의 격차가 커졌습니다. 독일 7대 도시의 신규 호가 임대료는 2013년 이후 약 75% 상승했지만 기존 임대차계약의 임대료는 상대적으로 완만하게 상승했습니다. 같은 도시와 같은 주택시장에서 오래 거주한 임차인과 새로 진입하는 임차인이 전혀 다른 가격을 부담하는 이중구조가 만들어진 것입니다.
신규 공급도 충분하지 않습니다. 2025년 독일에서 완공된 주택은 약 20만6천 채로 전년보다 18% 감소했습니다. 2024년에도 주택 완공이 14.4% 줄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공급 감소가 2년 연속 이어진 셈입니다.
물론 공급 부족의 원인을 임대료 규제 하나로 돌릴 수는 없습니다. 금리 상승과 건축비 급등, 토지 부족, 높은 에너지 효율 기준이 동시에 신규 개발의 수익성을 떨어뜨렸습니다. 또한 임대료 규제와 반복되는 정책 변경은 장기간 자금을 투입해야 하는 민간 임대주택 개발의 기대수익과 예측 가능성을 낮춥니다. 
현재 임차인을 보호하려는 정책이 장기적으로는 신규 임차인이 들어갈 주택을 줄이는 의도하지 않은 결과를 만든 것입니다.
 
아이러니 2: 규제가 만든 높고 안정적인 임대율과 꾸준한 임대료 성장
기존 임대주택을 대량으로 보유한 회사의 관점에서 보면 상황은 정반대입니다. 새 아파트가 충분히 공급되지 않으니 기존 아파트에 대한 수요는 더욱 견고해집니다. Vonovia의 2025년 독일 주택 공실률은 1.8%에 불과합니다. LEG의 공실률도 2%대이며, 독일 동부와 중소도시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은 TAG조차 공실률이 대체로 3%대 후반에 머물고 있습니다. 사실상 임차인을 구하지 못할 위험보다, 입주를 원하는 수요를 모두 받아들이지 못하는 상황에 가깝습니다.
기존 계약의 임대료가 신규 시장 임대료보다 낮다는 점도 중요합니다. 규제로 인해 임대료를 한 번에 크게 올리기는 어렵지만, 시장 임대료 상승분은 시차를 두고 기존 계약에 점진적으로 반영됩니다.  
실제로 2022년 글로벌 인플레이션으로 발생한 임대료 상승 압력이 약 3년의 시차를 두고 반영되면서, 2025년 Vonovia의 유기적 임대료 증가율은 4.1%까지 높아졌습니다. 주택 공급은 부족한 반면 기존 임대료는 시장가격보다 낮기 때문에, 경기 변동에도 임대료가 장기간에 걸쳐 꾸준히 상승할 수 있는 구조입니다.
 
아이러니 3: 너무 안정적이어서 금리 상승에 취약했다

 
 자료=GPT 생성
그렇다면 독일 주거 리츠의 주가는 최근 몇 년 간 왜 그렇게 크게 하락했을까요? 공실이 거의 없고 임대료가 안정적으로 상승하는 독일 임대주택은 오랫동안 가장 안전한 부동산 자산 중 하나로 평가받았습니다. 위험이 낮다고 평가될수록 투자자가 요구하는 수익률, 즉 일드는 낮아집니다. 실제로 Vonovia의 일드는 2021년 2.6%에 불과했습니다. 투자자들은 독일 주거 리츠를 안정적인 국채와 유사하게 평가했습니다.
하지만 2022년 글로벌 인플레이션과 금리 상승은 독일 주거 회사의 가장 큰 장점을 한순간에 약점으로 바꿨습니다. 임대료와 입주율은 여전히 안정적이었지만, 국채금리와 조달비용이 급등하면서 Vonovia 주가는 2022년 한 해 동안만 54.6% 하락했습니다.
독일에서 주택이 갑자기 남아돌게 된 것도 아니고, 세입자가 월세를 내지 않게 된 것도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임대주택의 영업 펀더멘털은 다른 부동산 섹터보다 견고했습니다. 문제는 견고한 펀더멘털로 너무 낮은 일드가 형성되어 있었다는 점입니다.
독일 주거 리츠는 임대수익이 잘 줄어들지 않는 대신 장기간에 걸쳐 발생하는 현금흐름의 현재가치가 중요합니다. 그만큼 채권처럼 듀레이션이 길고, 금리 상승에 대한 가격 민감도가 높습니다. 가장 안전하다고 평가받았던 자산이 금리 충격에는 가장 취약한 자산 중 하나가 된 것입니다.
 
가장 견고한 독일 월세 제국의 역설
독일 임대주택의 사례는 투자에서 가장 안정적으로 보이는 자산조차 결코 절대적인 안전자산이 될 수 없다는 교훈을 줍니다. 주택 부족과 낮은 공실률, 꾸준한 임대료 상승은 기업의 현금흐름을 견고하게 지지했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 안정성 때문에 자산의 요구수익률은 지나치게 낮아졌고, 금리가 상승하자 자산가치와 주가는 크게 흔들렸습니다.
결국 좋은 회사가 언제나 좋은 주식인 것은 아닙니다. 아무리 사업의 펀더멘털이 견고하더라도 투자자가 지나치게 높은 가격을 지불하거나 시장 환경이 급변한다면, 좋은 회사의 주식도 위험한 투자가 될 수 있습니다. 
반대로 금리가 하락하고 요구수익률이 낮아지는 국면에서는 할인율 축소가 동시에 나타나면서, 금리 상승기에 가장 크게 하락했던 이들 주식이 누구보다 높은 반등 탄력성을 보일 수도 있습니다.
이지스자산운용 대체증권투자파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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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츠와 투자자 간의 거리를 좁히기 위한 글을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