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 방향에서 서울교를 건너 영등포 시장 맞은 편 골목에 들어서면 커다란 갈색 간판이 보인다. 이름하여 <함흥냉면>! 와아, 이 박력 넘치고 자신감 쩌는 네이밍 센스 무슨 일인가. 상호와 메뉴명이 같다. 어떻게 검색해서 찾아가라고? 아니 중국집 이름이 사천탕수육 내지 간짜장인 것과 뭐가 다르단 말인가? 무려 1967년에 창업했다니 거의 60년이 되어간다. 혹시 정말 맛있으면 이렇게 가까이에서 그 동안 모르고 살았던 세월이 억울해서 어떡하지 쓸데없는 걱정으로 설레는 마음을 다잡고 들어섰다.
허나 필자만 몰랐을 뿐 각종 방송과 유튜브 소개 사진이며 유명인사 싸인들이 가게 한 켠에 이미 가득하다. 회냉면, 비빔냉면(고기), 물냉면, 김치만두, 고기만두, 수육의 알찬 라인업. 냉면 전문점답게 메뉴는 비교적 단출하지만 작정한 것은 모두 있다.
이 집의 시그니처라는 회냉면을 주전으로 박고 그래도 서운하니까 한 입씩 나눠서 맛이나 보자며 물냉면을 모두의 반찬 삼아 시키고 김치만두, 고기만두를 섞어 반반만두로 주문했다. 앉자마자 육수가 담긴 양은 주전자와 사기 물잔을 내오는데 오오 이것은 추억의 엽차잔이 아닌가. 마늘, 야채, 여러 양념을 넣고 사골을 푹 고아서 만들었다는 이 온육수부터 벌써 만족스럽다. 세로로 골이 패인 갈색 잔에 감칠맛 충만한 온육수를 따라 홀짝홀짝 마시고 있으니 드라이브쓰루처럼 엄청난 속도로 냉면과 만두가 등장했다. 주문 넣으러 간 줄 알았는데 바로 들고 나오신 건가. 어찌나 빠른지 여의도에서 웨이팅 길기로 유명한 콩국수집 줄 서서 기다리는 시간이나 강 건너와서 냉면 받아드는 시간이나 얼추 마찬가지일 듯하다.
식초, 겨자를 신중하게 겨눠 넣고 한 치의 여백이 남을세라 꼼꼼하게 샥샥 비비는데 특이하게도 참기름이 비치되어 있다. 오!! 이건 너무 취향저격이라서 위험한데? 반반냉면처럼 냉육수를 자작하게 넣어주고 참기름까지 고소하게 두어 바퀴 돌려준 다음 한 젓가락 맛을 보니 절로 김혜자 쌤에게 빙의된다. 그래 이 맛이야! 고자극을 찾아 헤매던 혀끝을 단숨에 잠재우는 맛있는 양념장은 물론이고 사리 위에 얹은 간재미회도 뻐세지 않고 적당히 쫄깃하며 고구마전분 면발이 탱글하면서도 부드러워 흡족한 탄성이 절로 나왔다.
한평생 비빔냉면 외길을 걸어왔지만 그래도 궁금해서 시켜본 물냉면도 맛을 본다. 아, 이런. 한 입으로 끝날 수 없는 맛이다. 매콤 달콤 새콤의 삼각 밸런스가 완벽하다. 기어코 호기심이 돼지를 (배불러) 죽일 수도 있구나. 필자의 영원한 사랑, 만두도 성공적이었다. 한 눈에 보아도 공장형으로 떼어온 게 아니고 직접 빚은 만두였는데 알맞은 두께감의 보들한 만두피에 소가 아삭한 만두와 물냉면 육수의 페어링이 너무나도 훌륭했다. 국물을 아예 사발째 들이키고 있는 모습에 맞은편에 앉은 밥친구가 놀란다. 냉면을 그렇게 좋아하는지 몰랐는데 다음엔 그럼 칡냉면 먹으러 갈까? 아니 사실 냉면 별로 안 좋아하는데 사실대로 말하기 부끄럽다. 별로 안 좋아하는데 왜 좋아하는 사람보다 많이 먹는 걸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