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의 목적과 책임은 주주의 이익 극대화라고 언급한 1970년 9월 밀턴 프리드먼의 뉴욕 타임스 기고글 이후 수십년 간 주주 자본주의는 기업 운영과 관리의 바이블처럼 여겨져 왔습니다. 기업의 모든 의사결정은 주주의 이익을 제고하는 방향으로 이행해야 하며 다른 모든 기업의 활동도 이윤 극대화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다만 이와 같은 주주 자본주의는 경영자의 능력과 의도에 따라 다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단점도 가지고 있습니다. 공격적인 외형 성장과 매출 다변화를 통해 GE의 가치를 30배 이상 끌어올린 잭 웰치 같은 CEO가 있는 반면 주주 자본주의라는 이름 하에 방만한 경영과 과도한 비용 지출로 인해 실제로는 주주 가치가 떨어지는 와중에도 경영자 개인의 축재에 집중하는 경우나 이해 상충이 발생하는 경우도 생깁니다. 개인 주주 입장에서 이런 상황에 대응하기는 힘들지만, 자신들을 포함한 주주들의 이익 제고를 위해 기업과의 전면전을 불사하는 투자 기관이 있습니다. 행동주의 투자자들이라고 불리는 이들은 기업의 M&A, 이사회 구성, 자산 배분 및 운영 전략 등에 개입해 기업 가치를 끌어올리는 방식으로 대규모 투자를 집행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반대, 삼성전자에 대한 주주 제안, 현대차와 현대모비스의 합병 제안 등으로 우리에게도 익숙한 엘리엇 매니지먼트가 대표적인 행동주의 투자자입니다. 이와 같은 행동주의 투자자들은 시가총액 6천억 원 이상의 종목에서 연 200건 가량의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분기별 5억 달러(약 6,000억원) 이상 회사에 대한 행동주의 투자자의 프로젝트 진행 건수>

행동주의 투자자들의 레이더에 포착된 상장 리츠
상장리츠 또한 행동주의 투자자의 레이더에서 벗어나 있지 않습니다. 버지니아 커먼웰스 대학의 연구에 따르면 2006년부터 2014년까지 총 4,119건의 행동주의 투자 프로젝트 중 114건이 리츠를 대상으로 한 것이었으며 이는 주식시장 내 리츠의 비중을 고려할 때 평균적인 수준입니다. 리츠 섹터 내에서 가장 눈에 띄는 행동주의 투자자는 역시 엘리엇 매니지먼트입니다. 엘리엇은 2009년 이후 부동산 섹터에 100억 달러 이상을 투자했으며, 2016년 이후 20억 달러 이상을 상장 부동산회사 및 상장리츠 프로젝트에 투자한 바 있습니다. 팬데믹 이후로도 2020년 개인용창고 리츠인 Public Storage, 2021년 데이터센터 운영사 Switch 등에 대해 적극적인 주주행동을 진행해 왔습니다.
Public Storage에 대한 주주 제안을 자세히 살펴보면 회사에 대한 높은 이해도와 적절한 제안을 하기 위해 고심한 흔적을 엿볼 수 있습니다. 엘리엇은 투자 집행 이전에 컨설팅을 통한 미국 전역의 2,200개 개인용 창고 조사, Public Storage와 경쟁사 자산에 대한 방문 조사 등을 진행했습니다. 이후 회사에 대한 주주 제안에서는 소극적 투자에 따른 시장 점유율 정체, 자본의 부적절한 활용, 제3자 운영 매장, 부정적인 고객 경험 등 다양한 이유가 상대 수익률 하회로 귀결됐다고 언급하면서 6명의 추천인을 이사로 선임해 이사회 재편, IR 강화 등 기업 체질을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엘리엇 Public Storage에 제시한 상대적 성장률 지표 예시>

결과는 절반의 성공이었습니다. Public Storage는 엘리엇과의 협상을 통해 최종적으로 2명의 추천인을 이사회에 포함시켰지만 경쟁사 대비 아웃퍼폼하는 데는 실패했습니다. Public Storage는 주주제안 이후 6개월 간 34% 상승하면서 리츠 지수 대비 4%p 더 좋은 결과를 냈음에도 경쟁사인 Extra Space Storage와 National Storage가 같은 기간 45% 이상 상승했기 때문입니다.
<엘리엇 투자 이후 Public Storage와 미국 리츠 지수의 주가 수익률 추이 비교>

또한 엘리엇은 2021년 8월 데이터센터 운영사 Switch의 보통주 지분 11%를 편입하면서 이사회에 신규 진입했고 경영진과 전략적 인수합병 및 리츠 전환 등 다양한 가능성을 모색했습니다. 다양한 기업을 대상으로 M&A, 자산 배분, 운영 전략 등에 많은 경험을 가지고 있는 엘리엇과 협업을 통해 주주 가치를 극대화하겠다는 결정이었습니다. 여러 선택지 중 회사는 매각을 선택했고, 2022년 5월 DigitalBridge와 호주 투자자 IFM에 주당 $34.25 가격으로 합병을 결정하면서 약 9개월 만에 60%의 수익률을 기록했습니다.
이 외에도 전 Citi Group 출신 Jonathan Litt의 Land & Buildings, 2016년에 설립된 Blackwells Capital 등이 리츠를 대상으로 적극적인 행동주의 투자자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특히 Blackwells Capital은 최근 주주 의견 행사에 대한 부당한 거부를 이유로 미국 넷 리스 위탁관리리츠 Global Net Lease와 Necessity Retail REIT 및 그 AMC인 AR Global을 상대로 소송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행동주의 투자자들의 행보는 결국 성공적인 투자와 높은 수익률을 기록하기 위한 방법 중 하나지만 리츠 입장에서도 운영 상 주주 가치 제고와 이해상충 방지를 위한 환기의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국내에서는 돈만 쫓아가는 악덕 투자자로 인식되기도 하지만 엘리엇은 이미 60% 가까이 상승했던 Public Storage 주식을 2022년 초까지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본인들이 주장했던 회사의 체질 개선과 그에 따른 투자 수익률 증대를 기다린 것으로 보이며, 일종의 책임투자로 해석할 수도 있겠습니다.
주주가치 제고를 넘어 지속가능성에 대한 고민 필요
한편 프리드먼의 주주 자본주의가 등장한 지 50년이 지난 지금 기업들의 화두는 주주 자본주의가 아니라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로 바뀌고 있습니다. 2019년 미국 경제단체 비즈니스 라운드테이블에서는 아마존, 애플, GM 등 181개 기업의 CEO가 기업의 목적을 주주 이익 극대화에서 이해관계자의 번영으로 바꾸는 성명을 발표했고 국내에서도 SK그룹이 2020년 초 이해관계자의 행복을 핵심 가치로 내세우는 SK경영관리체계를 발표한 바 있습니다.
이는 GE의 신화를 만들었던 잭 웰치의 별명 중 하나가 무자비한 정리해고와 효율화, 비용 절감 등으로 대표되는 중성자탄 잭이었고 결국 GE가 금융 부문 회계 부정에 휩싸일 정도로 주주 자본주의의 한계가 나타나는 상황에서 새롭게 대두된 개념입니다. 글로벌 리츠들과 행동주의 투자자들 또한 무조건적인 주주 가치 제고보다는 지속 가능성, 임차인 및 이용자와의 우호적인 관계 및 사용자 경험 등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를 도입해 가고 있습니다.
한편 대표적인 글로벌 리츠 지수에 이미 4곳의 국내 리츠가 편입되었고 시장이 성숙해지면서 글로벌 기준에 대한 공감대가 생기고 있어 국내 상장 리츠 또한 많은 경험이 있는 국내외 행동주의 투자자들의 목표가 될 수 있습니다. 또한 많은 리츠들이 2023년 거시 환경의 개선과 그에 발맞춰 주주 가치 제고를 계획하고 있는 만큼 행동주의 투자자들이 리츠에 제시했던 내용들을 참고해 보는 것도 도움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