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글로벌 경제 위기 당시 양적 완화를 통해 추가적인 경제 붕괴를 막는데 성공한 각국의 중앙은행은 2010년 초 지나치게 커진 중앙은행의 자산 매입 규모를 어느 정도 줄이고, 양적 완화 정책의 출구전략을 모색하고 있었다. 물론 미국에서는 2010년 10월 이후 2차 양적 완화를 통해 추가적인 채권 매입에 나서는 등 연착륙에는 어려움을 겪었지만 대부분의 양적 완화 정책은 채권 매입을 통한 유동성 공급에 치우쳐 있었다.

일본 리츠 시장을 떠받친 BOJ의 리츠 직접 매입

반면 일본은행(BOJ)는 2010년 다른 국가들과 다른 행보를 보이기 시작했다. 2010년 10월 28일 BOJ는 이사회 미팅에서 추가적인 단기 금리 하락 여지가 부족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BOJ의 선택은 향후 양적 완화를 위한 장기 금리 하락과 리스크 프리미엄의 축소 노력이었고, 이를 위해 다양한 자산 매입 프로그램 시행을 결정했다. 다른 중앙은행과 마찬가지로 매입 대상 자산에는 국채, CP, 담보부채권 등이 있었으나 특이한 점은 4,500억엔 규모의 상장지수펀드(ETF)와 500억엔 규모의 일본 리츠도 매입 대상에 포함되었다는 것이다.

[2010년 최초로 발표된 일본은행의 자산 매입 프로그램 규모]

최초 자산 매입 프로그램의 발표 이후 1주일이 지난 11월 5일 BOJ는 ETF와 일본 리츠 매입을 위한 기준을 발표했다. 매입 대상 리츠는 적절한 담보를 보유한 신용등급 AA 이상으로 연간 200억엔 이상의 거래량과 200일 이상 거래된 종목으로 한정되었다. 개별 리츠 기업에 대한 지분율은 5%를 초과할 수 없다는 제한 조항도 삽입되었다. 또한 BOJ는 매입한 리츠 지분에 대한 의결권을 행사해야 하며 적절한 가격 하에서 공개 매수 또는 블록딜을 통해 보유 지분을 매각할 수 있다는 조항도 포함했다.

상장되어 거래 중인 주식에 연기금 및 국부펀드가 투자하는 경우는 국민연금 등을 포함해 매우 일반적이다. BOJ의 경우도 책임투자에 따른 의결권 행사 등은 다른 연기금의 투자 방식과 유사하다. 다만 일반적으로 벤치마크를 추종하는 것과는 달리 BOJ는 종목 선택과 투자 비중에 자체 기준을 적용해 투자를 집행하는 액티브 방식이라는 점이 가장 주요한 차이로 보인다.

매입 기준을 발표한 1개월 후 BOJ는 일본 리츠와 ETF 매입 준비가 끝났다고 언급한 후 매입을 시작했다. 최초 500억엔에 대한 매입 종료 시점은 1년 후인 2011년 12월 말이었지만 2011년 3월에는 자산 매입 프로그램에서 리츠 매입 규모를 기존 대비 2배 늘린 1,000억엔으로 확대했다. 이후 BOJ의 일본 리츠 매입 대금과 기간은 점점 늘어 2021년에는 약 6,800억엔까지 상승했고 2022년에는 약 7,700억엔으로 전년 대비 매입 한도가 13% 늘어났다.

[BoJ의 일본 리츠 매입 한도 및 매입 추이 (단위 : 10억 엔)]

이렇듯 BOJ가 리츠 주식들을 매입하기 시작하면서 종목 별로 지분 차등이 나타나기 시작했고, 2016년 1월에는 기존 지분율 한도인 5%에 근접한 종목들이 나오며 기준 변경을 발표해 개별 종목의 지분율 한도를 10%로 상향했다. 이후 2016년 5월에는 당시 상장되어 있던 48개 리츠 중 12개 리츠에서 5% 이상 지분 보유 공시를 내며 본격적인 큰 손으로 등장했다.

2021년 말 평가가치 기준 8,500억엔의 리츠 주식을 보유한 BOJ는 총 22개 리츠에서 5% 이상 지분 보유 공시를 냈고, 그 중 7개 리츠의 지분율은 9%를 상회하는 등 집중적으로 투자하고 있다. 다만 종목과 비중 선택에 자체 기준을 적용함에 따라 대량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리츠들은 모두 2013년 이전에 상장한 회사들이며, 호텔 자산을 보유하고 있는 리츠들은 포함되지 않는 등 선별적으로 투자하고 있다.

[2021년 말 22개 상장리츠에 대한 BoJ의 5% 지분공시 내역]

출처=Bank of Japan, Mizuho Securities Research

이와 같이 중앙은행이 직접적으로 리츠를 매입하는 경우 투자자 입장에서는 사실상 지지선이 있는 것으로 여겨질 수 있다. 여타 연기금이 매입하는 것도 비슷한 효과를 주지만 상대적으로 더욱 강한 시그널로 이해할 수도 있을 것이다. 실제로 일본 리츠 지수가 1% 이상 하락한 거래일이 많았던 2015년과 2016년, 2020년에 BOJ는 70회가 넘는 리츠 매입을 통해 낙폭을 일부 상쇄시키는 역할을 했다. 또 상대적으로 상승세를 보였던 2018년, 2019년, 2021년에는 매입 횟수를 크게 줄이며 시장에 개입했다.

[일본 리츠 지수인 TOPIX REIT Index와 BoJ의 리츠 주요 매입 시점]

BOJ의 리츠 매입을 둘러싼 논란

물론 중앙은행의 직접적인 매입이 좋은 시그널로만 보이지는 않을 수 있다. BOJ는 리츠 매입 기준을 통해 은행의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도록 의결권을 행사해야 한다고 못박았으나, 실제 BOJ는 여러 위탁운용사를 통해 리츠의 지분을 매입했기 때문에 운용사가 의결권을 행사하면서 대리인 문제가 불거지기도 했다. 또한 일본 리츠 및 금융 시장의 특징이 우려를 낳을 수 있다. 일본 상장 리츠는 모두 스폰서를 두고 있고 스폰서는 대부분 노무라, 미쓰비시, 다이와증권 그룹 등 대형 기업집단이다. 문제는 이러한 스폰서와 직간접적으로 관련된 사람이 BOJ의 정책을 결정할 수 있게 되는 경우인데, 2021년 6월 노무라자산운용의 전 대표인 나카가와 준코가 BOJ의 이사회 멤버로 선임되면서 이해상충 문제가 대두되었다. BOJ가 리츠와 함께 매입하던 ETF 관련하여 노무라자산운용이 운용 중이던 ETF 지분도 보유하고 있어 직접 수수료를 수취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리츠 투자 또한 자체 기준을 적용하여 선별적으로 투자하는 만큼 스폰서와 관련된 인사가 BOJ 이사회에 들어가게 된다면 이해상충 이슈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BoJ 이사회 멤버와 이해상충 문제가 대두되었던 나카가와 준코]

이에 더해 증시에 상장된 시장성 자산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중앙은행 입장에서는 잠재 손실에 대한 충당금을 확보해야 하고, 더 나아가 낙폭이 큰 경우 손실을 보고 지분을 매도해야 할 수도 있다. 2020년 3월 팬데믹으로 인해 일본 리츠 지수가 전월 대비 21% 하락하면서 BOJ는 평가손실을 기록했고, 이 때문에 159억엔을 손상차손 처리한 바 있다. 이와 함께 BOJ가 보유한 33조 5,000억엔 규모의 ETF 또한 약 3조 5,000억엔의 미실현손실을 기록하고 있다고 알려졌고, 중앙은행의 안정성에 대한 우려로 인해 증시 변동성이 확대되었다. 중앙은행이 손상차손을 인식하는 경우에는 정부가 BOJ로부터 확보할 수 있는 자금이 줄어들기 때문에 납세자들의 부담이 커지는 결과로 돌아올 수 있기 때문이다.

투자자들의 심리에 직접적인 영향을 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미 9%가 넘는 지분을 확보한 7개 리츠의 경우 추가적인 매입 여력이 적고, BOJ가 자체 기준에 따라 매입 여부와 비중을 결정함에 따라 개별 종목 또는 섹터에 대한 시그널을 줄 가능성도 있다. 한편 증시 전반의 악재가 발생하거나 통화 정책의 변화에 따라 BOJ가 지분을 매도하게 되는 경우 일본 상장리츠 투심에 직접적인 악영향을 줄 것이 자명하다. 아직 BOJ가 유의미한 규모의 지분 매도를 실행한 적은 없으나 올 초 미 연준이 MBS 및 국채 매입을 줄이기 시작하고 금리 인상과 함께 대차대조표 축소에 대한 논의도 시작하는 등 통화정책의 변화에 따라 BOJ가 일본 리츠 매입 정책을 일관적으로 시행할 수 있을지는 재고의 여지가 있다.

중앙은행의 상장리츠 직접 매입이라는 BOJ의 독특한 정책은 현재까지는 별다른 문제 없이 지속되어 오고 있다. 다만 2011년 이후 양적 완화를 위한 장기 금리 하락 및 리스크 프리미엄 축소를 리츠 매입의 근거로 발표했던 BOJ가 그 당시의 스탠스를 유지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당시 1.2%를 상회하던 일본 10년물 금리는 현재 0.1~0.2%를 기록하고 있으며, 세계적으로 매파적 통화 정책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BOJ의 선택은 어떠할 지 지켜봐야 할 것이다.

[리츠 위클리]일본중앙은행의 리츠 직접 매입 효과와 이를 둘러싼 논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