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발발 이후, 상업용 부동산 투자시장은 급변했다. 투자자들은 코로나와 관계없이 안정적 운영이 가능한 오피스와 B2C 물량이 증가한 물류창고를 집중적으로 검토하기 시작했다. 해외투자가 막힌 투자자들까지도 모두 오피스와 물류창고를 검토하기 시작하자, 우량오피스와 물류창고의 가격은 매번 가격을 경신하고 있다. 반면 코로나에 직격탄을 맞은 리테일 시설과 호텔은 주요 검토 대상에서 제외되기 시작했다. 가격이 내려갔다기보다 거래 빈도 자체가 줄어들고 있다.
많은 사람이 물어본다. "온라인 소매 매출 증가에 따라 물류가 가속화되면, 앞으로의 리테일 시설들은 어떠한 역할을 해야 할까요?" 리테일의 미래는 과연 어떻게 변할까? 분명한 것은 단순히 물건을 판매하던 기능만으로는 매출과 비용의 손익분기점을 맞추기 어렵다는 것.
리테일의 미래에 관해 고민하던 중, 모노하 한남을 다녀온 지인이 이야기했다. "사물의 물성을 중시한 사조 '모노하'를 공간에 잘 표현했더라. 곽인식, 이우환 선생님의 작품 및 현대 도자 작가님들까지 스펙트럼이 넓어. 함께 가보지 않을래?" 곽인식 선생님 작품이 있다는 말에 귀가 솔깃했다. 이우환 선생님 등 1970년대의 모노하 사조를 이끈 작가들에게 많은 영감을 준, 시대를 앞서간 작가였기 때문. 주로 일본에서 활동해 우리에게 널리 알려지지 않은 그의 작품까지도 전시했다는 이야기에 일반 라이프스타일 편집숍과는 조금 다를 것 같다는 기대감이 들었다.
토요일 오후, 모노하 한남을 찾았다. 니트 공장 자리였다고 했는데 사진에서 보던 그런 깔끔한 공간이 있을까? 싶은 동네 한가운데 모노하 한남이 있었다. 인더스트리얼 한 동네에 물성에 집중한 비움의 공간이라니.
건물 안으로 들어서자 김봉찬 선생님께서 설계하셨다던 정원이 보였다. 이거였구나. 인더스트리얼 한 동네와 모노하 공간의 연결고리는 자연스럽고 정성껏 가꾼 정원에서부터 시작하고 있었다. 아직은 듬성듬성해 보이는 정원이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풍요로워질 것 같았다.

공간에 들어가자 1층 한쪽에는 차탁이 다른 한쪽에는 김인식 작가의 도자 작품들이 보였다. 작가의 기물들을 즐기고 체험할 수 있는 공간적 배려가 좋았다. 2층에는 국내외 작가들의 다양한 생활 속 작품과 모노하 프로젝트에서 직접 제작한 이지웨어가 보였다. 함께 방문한 지인께서 이지웨어를 보고 촉감과 재질이 좋다고 구매를 고려하는 모습을 보며 여러 생각이 들었다. 옷에 대한 감도가 상당히 높은 분의 마음을 사로잡은 데에는 이 차분한 공간도 한몫하지 않았을까.

패션 디자이너로 경력을 쌓은 이 공간의 기획자가 결과적으로 이곳에서 만들고 싶었던 것은 무엇일까? 과연 갤러리뿐이었을까? 어쩌면, '하나의 결을 지닌 모노하 철학은 담은 브랜드'가 아니었을지. 그리고, 브랜드의 가치를 저 이지웨어에 담고 있는 것은 아닐런지.
과거에는 미디어를 통해 광고하고 브랜딩을 했지만, 오늘날에는 오프라인 리테일 시설을 통해 '브랜드의 철학'을 보여주고 그것이 다시 SNS를 통해 재확산되며 브랜딩이 이뤄지고 있었다. 리테일 시설들의 미래는 '브랜드의 철학을 잘 비춰주고 보여주며, 소비자에게 감동을 얼마나 잘 전달하는지'에서 성패가 갈리지 않을까. 차분하고 단아한 모노하를 거닐며 이런저런 생각이 들던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