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은 지난 2년 간 전세계에 커다란 변화를 준 코로나19 팬데믹 사태로부터 한걸음 벗어나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는 한 해였습니다. 적극적인 백신 접종과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치명률 하락으로 곳곳에서 방역 봉쇄를 풀고 위드코로나 정책을 개시하였고 사람들의 활동이 재개되자 대부분의 상업용 부동산은 다시 활기를 띠며 리츠의 펀더멘털이 회복세를 보였습니다.
하지만 글로벌 리츠의 주가는 펀더멘털 회복세에도 불구하고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한 각국 중앙은행의 강력한 금리인상 정책에 따라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가장 가파른 하락세를 기록하였습니다. 현재 시장에서는 2023년 상반기 중 금리인상이 종료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어 올해는 금리인상에 따른 밸류에이션 조정은 완화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하지만 아직 물가상승률이 높고 높은 수준의 금리 역시 당분간 지속된다는 측면에서 2023년은 ‘경기둔화’가 중요한 키워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경기둔화의 폭은 글로벌 IB마다 다르게 전망하고 있으나 특히 유럽에서는 물가상승률이 10% 수준으로 매우 높고 금리인상의 여파로 가계의 실질구매력이 하락하는 측면에서 소비감소로 인한 경기둔화는 피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예상됩니다. 따라서 투자관점에서도 경기 둔화 사이클에서도 안정적인 수요가 뒷받침되는 섹터나 종목의 선택이 중요한 시점입니다.
필수소비재 섹터는 다른 섹터 대비 상대적으로 성장성은 낮으나 매출이 견고하여 주가 역시 안정적인 경향을 보입니다. 경기침체 시 가계에서는 외식을 줄이고 가정식을 늘리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식료품(Grocery)은 리테일 내에서도 안정적 매출이 예상되는 분야로 경기둔화 사이클에서 경기방어주 역할을 할 수 있는 영국 슈퍼마켓 리츠를 소개 드립니다. 종목 추천의 의미는 아니며, 영국의 식료품 시장 현황과 국내와의 차이점에 대해서 비교해보는데 의의가 있습니다.
영국에 상장된 'Supermarket Income REIT'는 시가총액이 원화기준 약 1조 2,300억원이며 영국 전역에 76개의 대형마트 포트폴리오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LTV는 19%로 타 국가 리츠 대비 매우 낮은 수준에서 유지되고 있어 고금리 상황에 상대적으로 영향도가 낮습니다. 2017년 상장 이후 누적 총수익률은 연간 6.50%로 절대적 수치에서 높은 편은 아니나 아래의 차트에서 볼 수 있듯 변동성이 매우 낮아 안정적 주가 흐름을 보이고 있고, 일반 주식과의 상대수익률 측면에서 매우 우수한 모습입니다.

포트폴리오 임차인은 8개의 슈퍼마켓 오퍼레이터로 1~2위 사업자인 Tesco와 Sainsbury’s의 비중이 82% 수준으로 높습니다. 가중평균 임대차만기 기간은 15년으로 길고 공실률이 없는 만큼 안정적인 임대료를 수취할 수 있으나 그만큼 임차인의 신용도와 장기적인 영업활동이 중요한 구조입니다. 대형마트 자산은 용도가 특정된 자산으로서 기존 임차인과 동일한 수준의 대체 임차인을 찾기 어렵기 때문에 임차인의 영업활동이 어려워지게 된다면 당장 계약된 임대료가 들어올지라도 주가는 장기적 관점에서 미래 임대료 하락 가능성을 반영하여 조정을 받을 수 있습니다.

온라인 식료품 시장
영국 식료품 시장에서 특기할 만한 것은 오프라인 식료품 사업자들의 높은 온라인 시장 점유율입니다. 1위 사업자인 Tesco는 전체 시장 점유율이 27.1%인데 온라인 시장 점유율의 경우 36.7%로 훨씬 더 큰 수치를 보입니다. 2위 사업자 Sainsbury’s 역시 마찬가지로 온라인 시장 점유율이 더 높습니다. 기존 오프라인 사업자들이 온라인에서 더 잘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국내 대형마트가 대부분 도심 내 단독건물로 형성되어 있는 반면에 영국의 대형마트는 넓은 주차장 부지를 갖춘 형태입니다. 온라인 배송에 있어 물류센터는 핵심 자산이라고 할 수 있는데 영국은 넓은 공간을 활용하여 도심 물류센터로 활용하고 있는 점이 온라인 점유율 확대에 기반이 되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Supermarket Income REIT에서는 도심 밖에 있는 대형물류창고 보다 이미 도심 내에 있는 슈퍼마켓을 물류기지로 활용하는 것이 빠른 배송에 유리하여 중요한 경쟁력이 된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국내 식료품 시장의 경우 이마트, 롯데마트, 홈플러스 3개 사업자가 과점 형태를 가지고 있는데 오프라인 시장에서는 수익성이 악화되고 온라인 시장에서는 온라인 사업자들과 경쟁심화로 펀더멘털과 주가 모두 악순환을 겪고 있습니다. 하나금융투자의 조사에 따르면 작년 국내 식품 온라인 시장은 쿠팡과 마켓컬리, 오아시스가 빠르게 성장하여 국내 대형마트 1위 사업자인 이마트(쓱닷컴)의 시장 점유율이 하락하였습니다. 특히 2위 사업자인 쿠팡의 가파른 성장 추세를 감안한다면 아마 올해는 이미 쿠팡이 이마트를 역전했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식료품 시장은 일반적인 공산품과 달리 유통기한이 짧고 관리가 어려워 폐기율이 높기 때문에 온라인 업체가 쉽게 침투하기 어려운 시장인데 쿠팡은 최근 폐기율을 절반 이하로 낮추는데 성공하였다고 발표하였습니다.

1위 사업자인 이마트는 대형마트 부문의 수익성이 지속적으로 하락하여 올해 1~3분기 누적 영업이익률이 1.21%에 지나지 않습니다. 3위 사업자 홈플러스는 올해 2월 말 기준 감사보고서에서 1,300억 수준의 영업적자를 기록하였습니다. 1위 사업자인 이마트의 경우 주가가 2018년 초 30만원 선이였지만 지속적인 하락세를 겪으며 현재 10만원 초반 수준까지 하락하였습니다. 따라서 국내에는 대형마트 사업자들의 자산 유동화를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도 존재합니다.
인구구조 측면
한국의 총인구는 5,200만명을 정점으로 지난 2021년 처음으로 감소를 기록하였고 앞으로는 출생률 저하로 인해 지속적인 감소 추이를 보일 것으로 전망하고 있습니다. 인구 감소는 구조적 변화로서 외부 유입이 없다면 피할 수 없는 총소비량의 둔화로 이어지기 때문에 식료품 산업 역시 양적(Quantity) 감소를 피할 수 없는 리스크에 직면해 있습니다. 반면 영국은 향후로도 완만하게 인구가 증가할 것으로 전망되어 장기적으로 안정적인 소비 기반을 유지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PB의 나라 영국
마지막으로 영국 대형마트 시장의 큰 차별점 중 하나로 높은 PB 상품 비중을 들 수 있습니다. PB상품은 Private Brand Products의 약자로 유통업체들의 독자적인 브랜드 제품을 지칭합니다. 이마트, 롯데마트, 홈플러스의 PB상품 비중은 각각 20%, 15%, 8.6%로 알려져 있는데 영국은 PB상품의 비중이 50%로 선도적인 국가입니다.

영국 대형마트에 들어가면 우유, 빵, 시리얼, 각종 소스류, 공산품 등 대부분의 상품군에서 유통업체 자체 상품을 취급하고 있습니다. 소비자가 NB 상품 브랜드 충성도가 높다면 유통업체는 제조업체에 끌려 갈 수밖에 없지만, 반대로 유통업체 고유의 PB 상품 경쟁력이 높을 경우 유통업체가 제조업체보다는 부가가치를 높게 가져갈 수 있습니다.
높은 PB 상품 비중은 유통업체의 온라인 판매에서도 유리한 측면을 제공합니다. NB 상품은 어떤 온라인 업체이든 똑같이 취급할 수 있기 때문에 유통업체의 경쟁력이 낮지만 PB상품은 독점적인 상품이자 가격경쟁력이 높은 상품으로서 차별화를 꾀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영국의 높은 PB 상품 비중은 국내 대비 유통업체의 경쟁력이 더 높다고 볼 수 있고 리츠 투자자 입장에서도 임차인의 경쟁력이 곧 리츠의 안정성으로 이어진다고 할 수 있습니다.
투자에는 다양한 방법이 존재합니다. 변화하는 세상에서 변화를 이끄는 기업 또는 변화의 수혜를 얻는 기업에 투자할 수 있습니다. 다른 방식으로는 변화하는 세상에서도 변하지 않는 것에 투자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필수소비재인 식료품 취급, 인구구조적 성장, 온-오프라인 옴니채널 구축 등 다양한 측면에서 영국의 대형마트는 해자를 가진 기업으로 평가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공간을 임대하는 리츠 역시 안정적 펀더멘털을 갖춘 경기방어주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