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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을 완성시키는 것, 콘크리트가 아닌 고객입니다

2025.03.11 07:30:01

부동산 산업
상권분석
공간기획
부동산 시장 변화
도시개발
부동산도 변화하고 있습니다. 더 이상 지어놓으면 팔리는 시대, 투자하면 수익을 보장받는 시대가 아닙니다. 실제 미분양 주택, 상가 등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이기도 합니다. 시티&은 이런 변화의 시대에 부동산 사업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고객의 마음을 설계합니다. 변화하는 부동산 사업 기획 프로세스' 시리즈를 통해 단순한 상권 분석이 아닌 고객 중심, 사람의 라이프에 맞춰진 관점으로 부동산 사업을 다시 점검할 수 있는 인사이트를 공유합니다.   


잘 지어 놓으면 팔리는 시대는 끝났습니다. 이와 함께 부동산에 투자해 놓으면 무조건 가격이 오르는 시대도 저물어 가고 있습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2024년 12월을 기준으로 미분양 아파트는 7만 세대가 넘었으며, 악성 미분양인 준공 후 미분양은 2만 1,480세대입니다. 이 수치는 2023년 대비 2배, 2022년 대비 3배 가까이 증가한 것입니다. 이는 2014년 1월(2만 566세대) 이후 가장 많은 수치로, 특히 준공 후 미분양의 80%는 지방에 편중되어 있다고 합니다. 

주택 시장뿐만 아니라 상가 시장도 어렵기는 마찬가지입니다. 한국부동산원에서 발표한 2024년 4분기 상업용 부동산 임대 동향에 따르면 공실률은 중대형 상가의 경우 전국 평균 11.2%, 소규모 상가는 5.8%로 조사되었습니다. 높아지는 공실률에 맞춰 상가의 임대가격 지수도 지속하게 하락하고 있으며, 서울을 제외한 대다수 지역의 자본수익률은 마이너스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시시포스의 형벌처럼 반복되는 부동산 시장의 문제


부동산 시장에서 이 같은 문제가 발생한 것은 비단 오늘만의 일은 아닙니다. 1998년 IMF 경제위기, 2009년 말 글로벌 금융위기로 인해 경기가 침체된 2013년까지 수도권 외곽지역 신규 택지와 지방의 대규모 미분양 문제는 끊임없이 제기되어 왔습니다. 이러한 시장의 순환을 토대로 10년 주기설로 부동산 시장의 미래를 예측하는 사람들까지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미분양 주택의 수는 주택 매매가격 지수가 증가할수록 줄어드는 형태를 보이고 있다는 것입니다. 즉, 가격이 오르는 상황에서 시장의 수요가 증가하기 때문에 “물 들어올 때 노를 저어야 한다.”며 분양을 하고, 상황이 바뀌어 “썰물이 빠지면 누가 벌거벗고 수영했는지” 알 수 있는 상황이 매번 끊임없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주택, 상가뿐만 아니라 지식산업센터, 오피스텔, 생활형숙박시설 등 다양한 분양형 상품에서 동일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시시포스의 형벌처럼 똑같은 실수와 고통을 매번 반복해서 겪고 있는 것인지 돌아보아야 할 때입니다.

수도권 지식산업센터 우편함 내 미납 관리비 영수증  ⓒ조훈희

야누스의 두 얼굴을 가진 도시개발의 목적지


한국의 도시개발은 서울과 지방이 다른 양상으로 전개되었습니다. 서울은 한강의 기적에 발맞춰 성장하였습니다. 지방에서 상경하는 수많은 사람들로 인해 증가하는 수요에 따라 지속적으로 택지를 개발하였습니다. 결국 서울시 내의 택지가 부족하게 되자 서울은 정비사업을 통해 점차 고밀도 거대도시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긍정적인 측면에서는 경제의 발전이라는 장점도 있지만 반대로 주거비 부담의 증가, 개발에 따른 지역 간 불균형의 심화, 계층 간의 갈등과 같은 부정적인 측면이 함께 나타날 가능성도 있습니다.  

지방 도시 역시 서울의 초기 개발 모습과 유사하게 기존의 도심을 유지하고, 신도시를 개발하는 방식으로 발전하였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부족한 수요가 개발의 발목을 잡기 시작했습니다. 외형적으로는 도시가 확장되었지만, 수요가 한정되었기 때문에 구시가지에서 신시가지로 도시가 이동하는 현상이 벌어졌습니다. 이에 따라 구도심은 상권의 쇠퇴, 인구 감소와 고령화, 노후주택 증가 등 중심지의 기능이 약화 되었습니다. 반대로 지방 신시가지의 과도한 주택 공급은 미분양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도시 개발의 목적은 도시의 외형적 확장이 아니라 도시를 이용하는 주민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 경쟁력을 발전시켜 도시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현재의 도시 개발은 세 가지 주체의 서로 다른 목적이 공존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개발을 통해 세수를 확보하고 정치적 입지를 굳히고자 하는 목적, 개발의 목적에 맞는 실질적인 수요 분석과 장기적 운영보다 우선적으로 분양을 통해 수익을 높이고자 하는 목적, 마지막으로 이를 통해서 자신이 투자한 부동산 가격의 상승을 기대하는 소유자들의 목적까지 도시를 개발하는 주체들 사이의 서로 다른 목적이 만나서, 실제 도시와 부동산을 사용할 수요자를 외면한 채 각자의 방향으로 달려 나가고 있습니다.

너도나도 핫플레이스를 꿈꾸며 닮아가는 모습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2024년 전국의 출렁다리는 238곳에 만들어져 있습니다. 이 중 72%에 해당하는 164개는 2010년 이후에 설치되었고, 지자체들은 가장 긴 출렁다리를 만들었다며 서로 자랑을 하고 있습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관광용 모노레일은 46개, 케이블카는 스키장용을 제외하고도 41개에 달합니다. 도시마다 설치된 높은 전망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도시의 발전을 위해서 설치한 유사한 시설들은 과도한 출혈경쟁으로 이어지고 있으며, 사람들의 흥미를 잃어가고 있습니다.
전국 관광용 시설 현황 ⓒ서울신문

핫플레이스를 향한 도시의 욕심은 국내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2021년 포항에 설치된 ‘스페이스 워크’는 도시의 랜드마크로 주목받고 있지만 이는 2011년 독일 뒤스부르크에 위치한 ‘Tiger & Turtle’이라는 작품과 매우 닮아 있습니다. 또한 2019년 광교 호수공원에 설치된 전망대는 1995년 독일 프라이부르크 제파크(Seepark in Freiburg, Germany) 에 설치된 전망대를 모델로 만들어서 똑같은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독일 프라이부르크 전망대와 광교 호수공원 전망대 ⓒ(좌)de.wikipepia.org, (우)광교호수공원 홈페이지
독일 뒤스부르크의 ‘Tiger & Turtle'와 포항 스카이워크 ⓒ(좌)commons.wikimedia.org, (우)포항시 홈페이지

민간 역시 지자체와 다르지 않습니다. 전국 어디를 가더라도 초대형 브런치 베이커리 카페를 볼 수 있습니다. SNS 사진을 찍기 좋게 만들어진 인테리어와 포토존, 그리고 커피와 소금빵은 빼놓을 수 없는 요소가 되었습니다. 대형 카페뿐만 아니라 키즈 카페, 무인 스터디 카페, 애견 카페 등 트렌드에 따라 비슷한 상점들이 비슷한 시기에 생겼다가 비슷한 시기에 사라지기를 반복하고 있습니다. 

수도권 인근 유사한 형태의 대형 베이커리 카페의 모습 ⓒ네이버 


고객이 변하면 결국 공간도 변화해야 합니다


현재 한국의 도시개발과 부동산 시장은 반복되는 문제에 직면해 있으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고객을 중심으로 한 장기적인 관점의 계획이 필수적입니다. 기존의 개발 방식은 단기적인 분양 성과를 목표로 소비자 분석을 진행하고 있지만, 이러한 방식은 지속 가능한 도시 성장과 지역 사회의 발전을 담보하기 어렵습니다. 이제는 단순한 부동산 공급을 넘어 고객의 변화하는 수요를 반영하고, 장기적인 생활 패턴과 공간 활용 방식을 고려한 개발 전략이 필요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중앙정부와 지자체, 부동산 개발 기업, 그리고 실제 공간을 사용하는 지역 주민들이 같은 방향성을 가질 수 있도록 조정하는 과정이 필수적입니다. 단순히 행정적인 규제와 개발 사업의 추진에 머물 것이 아니라 시장의 변화를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고, 도시 공간이 유기적으로 변화할 수 있도록 대규모 개발보다는 유연한 개발 방식을 도입해야 합니다.

과거의 도시 개발과 부동산 시장에서는 공급자 중심의 계획이 주를 이루었지만, 이제는 고객의 실질적인 니즈를 반영하고, 시대의 흐름에 맞춰 유동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합니다. 우리가 익숙하게 받아들였던 기존의 도시 및 부동산 개발 이론과 사례가 현재 시장에서 얼마나 유효한지 점검하고, 변화하는 사회적·경제적 트렌드에 맞춰 재해석해야 합니다. 도시와 부동산 개발은 단순히 건물을 짓는 것이 아니라 그 공간을 활용하는 사람들이 지속적으로 만족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단기적인 개발 논리를 넘어, 고객을 디벨롭(Develop)하는 관점에서 장기적인 계획을 수립하는 것이야말로 지속 가능한 도시 개발의 핵심이 될 것입니다. 

앞으로의 이야기는 현 시장에서 변화하고 있는, 아니 변화해야 하는 미래의 부동산 사업 기획 방식에 대해서 말하고자 합니다. 부동산 입지 선정이 단순한 교통과 상권 분석을 넘어 어떻게 발전하고 있는지, 외형과 기능 중심의 공간 기획이 고객을 중심으로 어떻게 재편되고 있는지를 살펴볼 것입니다. 기성복처럼 만들어진 기존의 부동산 시장에서 이제는 맞춤복처럼 고객의 핏에 맞게 변해가는 부동산 시장의 미래에 대해서 함께 고민해 보고자 합니다.


[참고 자료]
1) 국토교통부 자료에 따르면 2023년 12월 기준 미분양 아파트는 1만 857세대, 2022년 12월 기준 미분양 아파트는 7,518세대로 조사됨
 2) 이호일, 허준명, 노승한. (2024). “국내 주택 미분양 결정요인에 관한 연구: 수도권과 비수도권을 중심으로”. 주택금융연구, 8(2), 127-148.
 3) 진선미, 서충원. (2019). "주거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에 관한 특성 연구 -서울시를 중심으로-". 부동산학연구 25(3), 7-22.
 4) 김예슬, 김형보. (2015). "도시재생과 활성화를 위한 구도심 쇠퇴분석연구", GRI 연구논총, 17(3), 341-361.
 5) 김정호, 이종익. (2024.4.17). “전국에 ‘복붙’ 출렁다리 227개… 물건너간 ‘지방 핫플의 꿈’” 서울신문.
 
조훈희

조훈희

부동산 개발/컨설팅사 대표. 부동산학 박사

부동산과 콘텐츠를 결합한 다양한 개발을 합니다. 현) (주)투에이치파트너스 대표. 한양대학교 부동산융합대학원 겸임교수. 전) 현대캐피탈, 코람코자산운용, CBRE Korea 근무. 저서로는 <아빠, 부동산이 뭐예요?>, <부동산 투자, 농사짓듯 하라>, <밥벌이의 이로움>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