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오프라인 상권은 유동인구, 주중/주말 소비 패턴, 인근 경쟁 점포 유무, 교통 접근성과 같은 ‘입지’ 중심의 분석이 핵심이었습니다. 소비자는 목적지까지 이동하면서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매장을 찾았고, 그에 따라 유동인구가 많은 입지가 매출로 연결되는 구조였습니다. 그러므로 상권분석은 리테일 입점에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는 부분이었고, 상권이 좋은 자리에 매출이 높은 매장일수록 높은 권리금이 형성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었습니다.
하지만 과거 오프라인 중심의 전통적인 리테일 상권분석 시대는 종말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정보통신기술의 발전과 함께 소비자들은 물리적인 거리를 극복했고, 온라인이라는 ‘비가시적 상권’을 중심으로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게다가 코로나19가 불러온 탈 집단화와 비대면의 시대는 이러한 현상을 더욱 앞당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기존의 상권 분석은 여전히 ‘소매와 유통을 통해 고객에게 판매가 가능한 공간’을 중심으로 사고하고 있습니다. ‘리테일’이라는 단어 자체가 의미한 ‘소매와 유통’이라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애타게 임차인을 찾는 오프라인 리테일 매장 공실. ©조훈희
하지만 태어날 때부터 디지털 기기의 사용이 익숙한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는 다릅니다. 그들은 단순한 정보의 수용자였던 이전 세대와 달리, 정보를 구분하고 재생산하며 참여하는 방식을 터득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소비하는 성향 역시 기존의 소비자들처럼 눈앞에 주어진 매장에 들어가서 수동적으로 구매하는 개념에서 벗어나 있습니다. 그들은 소비를 ‘경험’과 ‘연결성’ 그리고 ‘정체성의 표현’으로 판단하고 있죠. 이들은 물건을 사기 위해 오프라인 매장을 찾는 것이 아니라, 사진을 찍고 콘텐츠를 만들며 자신의 가치를 표현하고 경험할 수 있는 ‘공간’을 찾고 소비하기 위해 움직입니다. 이 지점에서 오프라인 리테일 상점은 ‘판매처’가 아닌 ‘스토리와 경험을 주는 양질의 정보를 가진 무대’로 전환되어야 할 것입니다.
매출 중심의 오프라인 상권분석의 한계
기존의 상권분석은 오랫동안 점포 출점 여부와 입지의 적정성을 평가하기 위한 도구로 활용되어 왔습니다. 이러한 분석은 매장의 성공 가능성을 입지와 유동인구 중심의 외부 요인으로 판단하는 경향이 강했죠. 따라서 상점에서 판매하는 물건의 개별적인 종류보다 일반적이고 통계적인 데이터가 입지를 결정하는데 더 큰 비중을 차지했습니다. 그 결과 일정한 분석 방법에 따라 상권의 질을 판단할 수 있었습니다.
(1) 지역분석(Macro Analysis)
상권분석의 첫 단계는 거시적인 지역분석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이는 행정구역의 인구밀도, 상업지역의 위치, 도로망 및 대중교통의 접근성, 인근지역 개발계획 등 지역 전반의 특성과 성장 잠재력을 파악하는 과정입니다. 해당 지역의 인구, 소득 및 소비수준, 도시계획 자료 등을 활용하여 도시 전체 혹은 지역 단위의 경제적인 흐름을 읽는 데 초점을 두었습니다.
(2) 부지분석(Micro Analysis)
지역분석을 통해 적합한 지역을 선정한 후 그 지역 내에서 점포가 입점할 세부적인 부지분석을 진행합니다. 이 단계에서는 해당 부지를 지나가는 유동인구수, 경쟁 매장의 위치, 건물 형태, 면적, 도로 조건, 소비자의 유인력을 높일 수 있는 지하철역 혹은 대형 집객시설과의 거리 등을 평가하죠. 선정된 여러 점포의 개별적인 부지들을 비교 분석하며, 대형 프랜차이즈의 경우 그들만의 표준화된 입지 모델에 따라 평가가 이루어지기도 합니다.
(3) 가능 매출 추정(Sales Estimation)
최종적으로는 앞선 지역 및 부지분석을 바탕으로 예상되는 매출(매상고)을 정량적으로 추정합니다. 이에는 1인당 평균 소비액, 예상 유입 소비자 수, 회전율, 재방문율 등이 포함되며, 이를 기반으로 상권 내 유동인구 통계 및 상주인구 대비 구매 비율 등을 반영하기도 합니다. 통상적으로 입점할 매장의 면적당 예상되는 매출을 추산해서 수익성을 계산하는 방식입니다.
이러한 상권분석의 단계는 소비자 행동의 기본 원칙을 따라 설계됩니다. 소비자들은 무의식적으로나 의식적으로 가장 가까운 위치에 있는 점포를 선택하고, 위험하고 낯선 위치보다는 익숙하고 안정적인 공간을 선호하며, 브랜드의 신뢰도가 높고 많은 사람이 선택하는 실패 확률이 낮은 매장을 선택해 이를 기반으로 자신에게 가장 높은 만족감을 줄 수 있는 곳에 방문한다는 것입니다. 전통적인 상권분석의 틀은 최적의 입지를 정량적으로 판단하는 상권분석 모델을 통해 예상 매출액을 추정하는 실용적인 목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상권분석은 과거 오프라인 입지 중심의 매출 예측 모델에 머물러 있기 때문에 온라인 시대를 살고 있는 현재의 소비자들에게 적용하기에는 분명 한계가 존재합니다.
다양한 상점과 배후 수요가 뒷받침된 1기 신도시 상권의 모습 ©조훈희
경험과 스토리 중심의 상권 재정의 : 입지에서 관계로
오프라인 공간은 이제 단순히 상품을 거래하는 공간이 아니라 경험과 스토리의 플랫폼으로 진화해야 합니다.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의 소비자들은 더 이상 가깝고 싸다는 이유로 선택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브랜드의 정체성과 감성, 스토리를 경험할 수 있는 지역과 공간을 찾아 ‘즐거운 소비의 여행’을 떠납니다. 변화한 소비자들을 위한 소비 여행은 다음의 세 가지 기준을 중심으로 설계되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브랜드의 감성과 세계관을 전달하는 체험형 공간입니다. 단순히 브랜드 제품을 전시하고 판매하는 백화점 형태에서 벗어나 브랜드가 가진 철학, 미학, 라이프 스타일 등을 감각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공간 디자인과 경험의 집합소가 중요해졌습니다. 그들은 애플스토어의 전자기기가 주는 단순함의 아름다움에 매료되거나, 젠틀몬스터 매장에서 제공하는 색다른 예술품의 해석에 귀를 기울입니다. 두 매장 모두 본인들이 판매하는 제품을 꽉 차게 진열하거나 홍보하는 대신, 많은 여백을 두고 그 안에 체험과 공간이 주는 감성을 채워 넣는 방식을 채택하고 있습니다.
젠틀몬스터는 선글라스를 판매하는 곳이지만 상품보다 전시 요소에 집중한다. ©조훈희
두 번째는 지역 고유의 이야기와 연결된 스토리텔링 상권입니다. 소비자들은 본인의 주된 생활권 내에서 편리한 소비를 선호했지만, 이제는 그 범위가 달라졌습니다. 오히려 특정한 지역이 담고 있는 스토리에 반응하고, 그것이 소비와 연결될 때 즐거움을 느낍니다. 전주 한옥마을, 경주 황리단길처럼 전통적인 배경 위에 현대적인 감각을 결합한 상권이 발달하고 있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성수동의 빨간 벽돌 건물, 문래동의 철공소를 기반으로 발달한 상권은 지역이 가지고 있는 스토리를 바탕으로 개성 있는 상점을 만들어 냈습니다. 이곳을 방문한 소비자들은 자연스럽게 지역의 이야기를 즐길 수 있게 되었죠. 그리고 이는 지역 경제와 도시 브랜딩에 강력한 파급력으로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기존의 빨간 벽돌 창고, 공장 그리고 신축 오피스빌딩이 섞인 성수동 상권 ©조훈희
소형 공장과 철공소 사이로 생긴 문래동 상권 ©조훈희
세 번째는 소비자와 소비자 사이의 연결과 소속감을 창출하는 커뮤니티의 거점 역할입니다. 리테일 공간은 더 이상 소비자를 대상으로 하는 일방향 커뮤니케이션이 아닙니다. 소비자와 소비자 혹은 소비자와 공급자 간 상호작용을 유도하는 커뮤니티 허브로 진화하고 있습니다. 무신사는 패션 회사이지만 공유오피스인 무신사 스튜디오를 통해 공간을 대여해주고 그곳에 입주한 기업을 대상으로 네트워킹과 협업의 기회를 제공하기도 합니다. 또한 무신사가 가진 공간에서 다양한 팝업스토어를 열거나 전시회를 개최하며 소비자와의 연결고리를 지속적이고 다양하게 확장해 나가려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소비자와의 연결과 소속감을 늘리고, 커뮤니티를 형성하기 위한 무신사의 모습 ©조훈희
O4O 상권의 미래, 지금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
이제 우리는 오프라인을 위한 오프라인 상권의 시대를 지나, 온라인이 오프라인을 이끄는 O4O 시대로 진입하였습니다.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는 오프라인 공간을 먼저 방문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유튜브, SNS 등을 통해 공간과 지역을 먼저 경험하고, 그 경험이 자신에게 적합하다고 판단될 때 비로소 실제 공간을 방문합니다.
이러한 변화는 상권의 기능과 분석 방법을 근본적으로 바꾸게 될 것입니다. 단순히 물리적인 입지만을 정량적으로 분석하기보다 온라인에서의 존재감과 소비자와의 연결 방식까지 포함하는 정성적이고 입체적인 상권 분석이 요구됩니다. 따라서 미래의 상권은 오프라인 공간 그 자체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온라인과 지속적으로 상호작용을 해야 존재 가치를 인정받게 될 것입니다.
(1) 상향식 상권분석 전략의 시대
변화한 환경에서 상권분석의 접근 방식은 어떻게 새로워져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져야 할 때입니다. 과거 상권분석이 지역과 부지를 중심으로 개별 매장의 위치를 판단하는 ‘하향식 분석’이었다면, 이제는 개별 매장이 가진 브랜드와 소비자의 경험을 중심으로 그에 적합한 공간을 개발하고, 지역을 선정하는 ‘상향식 분석’ 전략이 필요합니다.
상향식 상권분석을 위해서는 먼저 소비자들의 온라인 터치 포인트를 알아야 합니다. 소비자가 어떤 계기를 통해 브랜드를 인식하고, 어떤 제품에 어떤 소비자들이 관심을 두는지를 분석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다음에 상권에 방문할 소비자가 어떤 경로를 통해 오프라인 매장까지 도달하는지 추적할 수 있습니다. 앞서 설명한 무신사의 경우가 상향식 상권분석을 잘 이용한 사례입니다. 무신사는 온라인 패션 회사로 시작했고, 스트리트 브랜드 편집숍의 느낌이 강합니다. 이런 온라인 소비자를 먼저 파악해 연령과 성별, 추구하는 패션 분위기에 적합한 성수동에 주요 오프라인 매장을 열었습니다.
(2) 온라인 브랜드와 오프라인 공간을 연결하는 스토리를 기획하는 시대
스트리트 패션 브랜드 ‘KITH’는 소비자들의 성향에 맞춰 미국에서는 브루클린에 첫 번째 매장을 열었고, 한국에서는 브루클린과 비슷한 분위기인 성수동에 첫 매장을 오픈하였습니다. 이 브랜드는 상향식 상권분석뿐만 아니라 브랜드와 공간이 얼마나 어울리는지에 대해서도 집중하였습니다. 브랜드의 세계관, 감성, 가치가 공간의 성격과 일치하게 되면 소비자들이 오프라인 공간에 방문해야 하는 이유가 생기기 때문이죠. KITH에 들어서면 창립자인 로니 피그(Ronnie Fieg)가 좋아하는 자동차 브랜드, 음반, 서적, 캐릭터 등을 만날 수 있습니다. 오프라인 공간에 들어서는 순간 온라인에서 소비자들이 좋아하는 브랜드 창립자의 집에 들어온 것 같은 느낌을 받게 되죠. 물론 KITH는 신발과 의류를 주로 판매하는 패션 브랜드입니다. 하지만 오프라인 매장 구성은 판매보다 브랜드 체험과 스토리를 전달하는 것에 공간을 더 많이 할애하였습니다. 이로 인해서 소비자들이 오프라인 공간을 방문하는 이유를 만들어 주고, 온라인에서보다 더 큰 소비로 이어지는 시너지 효과가 발생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패션브랜드 KITH의 성수동 매장, 공장지대인 외부에 비해 매장 내부는 매우 고급스럽다. ©조훈희
(3) 오프라인과 온라인이 상호작용을 할 수 있는 플랫폼을 설계하는 시대
소비자는 오프라인 매장에 단순히 물건을 사러 오지 않습니다. 사진을 찍고, 유튜브를 통해 콘텐츠를 만들고, 기억에 남는 경험을 하고 싶어 하며, 그 경험을 SNS를 통해 공유하기를 원합니다. 따라서 미래의 소비자들에게 상권이란 다양한 매장이 있어서 여러 가지 물건을 고를 수 있고,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는 곳이 아니라 ‘와볼 만한 곳이다.’라는 인상을 심어주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사진을 찍고 싶은 욕구가 생기도록 아름다운 미적 요소가 충분히 존재하여야 하고, SNS로 퍼질 만한 구조가 있어야 합니다. 또한 색다른 체험과 경험을 유도할 수 있어야 합니다.
또한 해당 오프라인의 공간 요소들이 어떻게 온라인에서 소비되고 있는지도 조사해야 합니다. 소비자들은 검색, SNS 피드, 리뷰, 인플루언서 콘텐츠, 쇼츠, 블로그 후기 등을 통해 공간을 간접 경험합니다. 온라인 콘텐츠의 소비가 또 다른 오프라인 콘텐츠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오프라인과 온라인이 상호작용을 할 수 있는 플랫폼의 역할을 충분히 하지 못하면, 마치 단절된 상권처럼 소비자들의 발길이 끊어지게 될 수도 있습니다.
상권은 고정된 구조물이 아닙니다. 상권은 살아있는 생명체로 끊임없이 소비자와 소통하고, 성장하며, 진화합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반드시 온라인에서의 공감과 오프라인에서의 경험이 함께 놓여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소비자들은 넓은 상권을 방문하기 전에 손바닥보다 작은 스마트폰 액정 속에서 이미 그 상권이 가진 공간을 소비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이제 우리는 작은 액정 속에 시선을 빼앗긴 소비자들을 어떻게 오프라인 공간으로 걸어 나오게 할지 끊임없이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1 주민재. (2022). ‘디지털 네이티브’ 개념 재정립의 필요성 고찰 - 「‘모바일 네이티브’ 개념과 특성」을 중심으로. 한국문예비평연구, 75, pp.213-253.
2 안성우, 이상윤, 김판진, 윤명길. (2009). ‘국내 대형슈퍼의 개량확률모델에 관한 실증연구’. 유통과학연구, 7(3) pp.5-23.
3 젠틀몬스터의 이 전시는 자기유사성이라는 테마로 수학적 개념에서 영감을 받은 프로젝트이다. 자기유사성이란 부분을 확대할 때 자기를 포함한 전체와 유사한 모습을 보여주는 성질이며, 매장에 위치한 영상과 로봇 등의 설치물은 이 개념을 젠틀몬스터의 시각으로 표현하고 있다. (출처: 젠틀몬스터 전시 설명서에서 일부 발췌)
[시리즈 소개]
부동산도 변화하고 있습니다. 더 이상 지어놓으면 팔리는 시대, 투자하면 수익을 보장받는 시대가 아닙니다. 실제 미분양 주택, 상가 등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이기도 합니다. 시티&은 이런 변화의 시대에 부동산 사업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고객의 마음을 설계합니다. 변화하는 부동산 사업 기획 프로세스' 시리즈를 통해 단순한 상권 분석이 아닌 고객 중심, 사람의 라이프에 맞춰진 관점으로 부동산 사업을 다시 점검할 수 있는 인사이트를 공유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