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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 시절, 신간 만화책이 입고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부리나케 동네 만화방으로 달려간 순간이 있습니다. 매주 출석 도장을 찍으며 다녔는데 어느새 만화방은 사라지고 만화는 웹툰’(디지털 만화) 형태로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오프라인 공간에서 종이 만화책을 볼 수 있는 공간은 점점 사라졌습니다. 프랜차이즈식의 만화 카페가 여럿 생기긴 했지만 어쩐지 예전만큼 자주 가지는 않게 되었습니다. 만화책에 관심이 사라져 갈 때쯤, 이태원 경리단길에 어른’만 갈 수 있다는 만화 카페 그래픽이 생겼습니다.


초호화 스케일의 새로운 만화 카페 그래픽

이태원 경리단길에서도 깊은 골목 안에 위치한 그래픽은 2022 3, 3층의 100평 규모로 문을 열었습니다. 만화책을 보는 서점이라고 말하지 않으면 모를 정도로 건물 외관은 외국의 미술관 같은 모습입니. 그래픽 노블 컬렉션을 메인으로 소개하며 SF, 로맨스유머역사 등 다양한 장르의 만화책들이 도서관처럼 분류되어 서가에 꽂혀 있습니다. 20,000원의 입장료만 내면 시간제한 없이 하루 종일 이용할 수 있고 음료나 간단한 간식도 무제한 제공입니다게다가 맥주나 하이볼과 같은 주류도 판매하고 있어 왜 어른만 입장이 가능한지 알 수 있는 부분입니다.

지리적 접근성도 상대적으로 불편하고이용할 수 있는 연령에 제한도 있어 운영 지속성 면에서 우려가 있었지만이는 기우였습니다오히려 마니아층을 불러 모았으며설령 마니아가 아니더라도 자기만의 취향을 오롯이 발견할 수 있는 경험의 공간으로 거듭났습니다. 기존의 평범한 만화 카페와는 다른 지점이 사람들의 흥미를 이끌어 낸 것이죠하드웨어가 되는 건축물 자체가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했고소프트웨어 부분은 색다른 만화 콘텐츠 큐레이션으로 차별화를 두었습니다여기서 멈추지 않고 그래픽은 2호점을 냈습니다. 2호점인 만큼 유동 인구가 더 많은 지역에 생길 줄 알았는데조금 의외의 지역인 위례신도시에 자리 잡았습니다

대신위례센터 1동에 자리 잡은 ‘그래픽 바이 대신’ ⓒ박지수
그래픽 노블은 물론 다양한 만화책이 있는 ‘그래픽 바이 대신’ ⓒ박지수


증권 회사와 만화 카페의 특별한 만남


그래픽 2호점은 조금 더 특별합니다. 증권 회사인 대신증권과 협업을 진행했습니다. 이름도 ‘그래픽 바이 대신’입니다. 대신증권은 위례 지역에 3개동으로 이루어진 대신위례센터를 가지고 있고, 그래픽은 이 중에서 연수원동으로 쓰던 1동에 지하 1층부터 2층까지 자리 잡았습니다. 증권 회사와 만화 카페의 만남은 의외일 수 있습니다. 다만 대신증권이 위례센터를 어떤 목적과 역할로 활용하고자 했는지를 이해하면 수긍이 되는 선택이기도 합니다. 대신증권은 기획 당시 건물 내 도서관을 기획했습니다. 실제 대신증권의 다른 지점도 도서관으로 운영 중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위례에서는 ‘책을 보는 공간’이라는 아이덴티티는 살리면서도 공간을 찾아와야 하는 이유를 높여줄 콘텐츠 기업과의 협업이라는 운영 방식을 선택했습니다.

1층에서 바라본 그래픽 바이 대신의 홀 좌석 ⓒ박지수

그래픽은 만화 카페여도 시끌벅적하지 않고 안락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만화책에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위례점을 기획한 대신증권도 이 점을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기존 그래픽의 브랜드 가치는 훼손하지 않으면서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하려고 했습니다. 실제 공간에 들어서는 순간 이태원점보다 더 고급스럽고 편안한 독서 환경을 만들기 위해 고민을 많이 했다는 관계자의 인터뷰 내용이 납득되었습니다.

높은 층고와 탁 트인 창문 덕분에 공간에서 개방감이 느껴져 답답하지 않습니다. 창문으로 시간의 흐름도 자연스럽게 확인할 수 있으며, 실내지만 곳곳에 자연 조경이 연출되어 있어 심적인 편안함까지 느껴집니다. 한 쪽에는 ‘불멍’을 할 수 있는 공간도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런 실내 공간 인테리어만으로도 힐링과 릴렉싱도 경험할 수 있는 안락한 공간을 만들고자 했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실내에 구현된 조경 ⓒ박지수
'불멍'을 하면서 책도 읽고 대화도 할 수 있다. ⓒ박지수

그렇다고 공간의 본질인 책을 읽는 공간이라는 점을 소홀히 한 것은 아닙니다. 독서에 방해되지 않는 선에서 잔잔하게 흘러나오는 음악과 적절한 조도 또한 안락하고 편안한 독서 경험을 제공하기 위한 집중과 노력이 엿보인 지점이었습니다.

편안한 좌석과 적절한 조도의 조명 ⓒ박지수


지속가능한 공간을 위한 전략적인 지역 선택


대신증권은 꽤 오래전부터 위례신도시라는 지역에 관심을 가지고 전략적으로 접근했습니다. 위례신도시는 2008년 개발 계획이 확정된 수도권 2기 신도시로 2013년부터 주민들의 입주가 시작되면서 대규모 주거 중심의 신도시로 성장했습니다. 위치 또한 서울시 송파구와 경기도 하남시, 성남시에 걸쳐 있기 때문에 인구 유입에 유리한 지역적 특색을 가지고 있습니다. 분양 당시 젊은 세대와 신혼부부를 타겟으로 정책적 배려가 많았고 가족 단위 인구 비율이 높습니다.
대신증권은 미래 가능성을 보고 위례 지역 내에 처음으로 입점한 증권사입니다. 위례신도시에서 금융 상품, 부동산, 세무 등 지역민들의 종합자산관리 서비스를 제공하려고 한 것이죠. 위례 WM센터 역시 위례 지역을 대표하는 금융, 문화 복합공간으로 기획되었습니다. 연수원과 1동, 2동 총 3개 동의 단지형으로 개발되었으며 그 중 1동은 라운지 1962라는 공간을 통해 경제나 부동산에 대한 강연은 물론 문화나 예술, 영화 등을 주제로 강의 프로그램도 운영됩니다.

다양한 주제를 바탕으로 지역 주민이 참여할 수 있는 강연 프로그램이 운영 중이다. ⓒ대신증권 공식유튜브 

여기에 일반적인 기업의 복합문화공간과 차별점을 만들고, 동시에 해당 지역에 거주하는 젊은 가족 단위 주민들이 선호할만한 캐주얼한 콘텐츠 공간이 필요했습니다. 소위 위례를 대표할 만한 핫플레이스가 필요했던 것이죠. 지역 활성, 주민과의 소통 강화, 빈번하게 공간을 찾는 이유 등을 만들기 위해 상가들이 입점한 1동의 메인 공간으로 이미 이태원에서 매력을 인정받은 그래픽 2호점을 옮겨왔습니다. 단순히 만화책만 보고 떠나는 공간이 아니라 편안함과 안락한 경험까지 제공할 수 있는 공간으로 구현해 그래픽 바이 대신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편안한 좌석과 적절한 조도의 조명 ⓒ박지수

운영 방식은 이태원점과 비슷합니다. 음료나 간단한 간식들은 무제한으로 이용할 수 있습니다.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층층이 소파가 있는 중앙 홀은 입장료가 20,000원이고 노트북을 사용할 수 있는 리딩룸(랩톱룸)은 18,000원입니다. 이용 시간은 3시간으로 제한을 두고 있으며 주류는 팔지 않고 있습니다. 이에 더해 위례점은 가족 단위가 많은 주거 지역이고 아이가 많은 동네인만큼, 아직 열지 않은 2층을 예스 키즈존으로, 아이들이 책을 읽을 수 있는 어린이 도서관을 구성해 4월 말에 오픈 할 예정입니다.

4월 중으로 어린이 전용 공간을 오픈 할 예정이다. ⓒ박지수
 
지역을 대표하는 앵커 리테일, 핫플레이스가 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존재하지만, 대신증권이 활용한 방법은 꽤 인상 깊고 똑똑한 방법입니다. 딱딱하고 어려울 것만 같은 증권 회사의 편견을 깨고 가장 캐주얼 하면서도 모객 효과가 좋은 만화 콘텐츠를 선택했습니다. 게다가 이미 만화 카페라고 하면 그래픽을 떠올릴 정도로 검증된 리테일 브랜드와 협업해 위례 지역의 새로운 대표 공간으로 만들었습니다. 위례점은 작년 11월에 가오픈을 마치고 3월에 정식으로 오픈했습니다. 이제 시작해 나가고 있지만, 이미 입소문과 SNS 공유를 통해 오픈런과 웨이팅이 필수인 곳으로 거듭나는 중입니다. 평소 보기 어려웠던 만화책도 보고, 책에만 몰입할 수 있는 공간을 경험해 보니 제한 시간인 3시간이 훌쩍 지나가고 오히려 연장해서 장시간 머물고 싶다는 마음도 들었습니다.
대신증권은 지역 주민과 호흡할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공간을 자체 운영하는 동시에 ‘만화’라는 콘텐츠를 다루고 있는 브랜드와 협업해 공간이나 브랜드의 고객 접점을 확대했습니다. 이는 증권 회사가 자체적으로 공간을 기획하고 운영하는 것과 콘텐츠 브랜드와 함께 협업할 때의 시너지를 동시에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합니다. 많은 고객과 만나려고 하는 목표는 같지만 공간 구현과 인테리어, 운영에 차이를 두니 위례 지역민은 물론 서울의 다른 지역에서도 방문하는 공간으로 확장되었습니다. 긍정적인 효과의 극대화인 것이죠. 대신증권과 그래픽의 협업은 단순한 서비스 제공을 넘어 브랜드 철학, 공간 마케팅 전략, 소비자 경험 전반에 대해 중요한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습니다.

📍 공간 정보
인스타그램: @graphic.fan
주소: 서울 송파구 위례순환로 387, 대신위례센터 1관 지하1~지상 2

 

[시리즈 소개]
시티&은 도시, 사람, 자본의 움직임을 탐색할 수 있는 영감의 라이프 스타일공간을 소개하기 위해 시티& 트렌드카테고리를 확대, 서비스합니다. 서울은 경제 성장이 본격화하면서 예술 공간들도 빠르게 변화해 왔습니다. 라이프 스타일의 변화로 예술을 소비하는 성향도 변화하고 있습니다. 관람과 감상에 머물기보다 직접 체험하며 경험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이에 예술 공간에 대한 인식 역시 거창하고 대단하게 영감을 얻는 곳이 아니라 일상적인 공간으로 달라졌습니다. 우리의 일상에 함께 하는 곳, 일상의 영역 안에서 예술적 영감을 받을 수 있는 곳으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이런 공간들을 타운 매니지먼트 관점을 더해 살펴보고자 합니다.


[참고자료] 
https://dealsite.co.kr/articles/134885
https://www.newswatch.kr/news/articleView.html?idxno=61958 
https://www.donga.com/news/Economy/article/all/20230127/117600328/1
https://www.chiefexe.com/news/ArticleView.asp?listId=NDUxOHx8bGltaXRfZmFsc2Ug
https://ko.wikipedia.org/wiki/%EC%9C%84%EB%A1%80%EC%8B%A0%EB%8F%84%EC%8B%9C 
 

 

박지수

박지수

에디터

영화를 공부하고 다양한 IT 회사에서 에디터로 일을 했습니다. 일상에서 영감을 받을 수 있는 공간을 찾아 다니며 글을 쓰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