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히 필자는 음식에 관해서도 여러 편견이 있다. 그 중 하나가 몸에 좋은 음식은 진실로 맛있을 리 없다는 예감이자 믿음이다. ‘건강한 맛이네’는 누구에겐 찬사이고 누구에겐 외교적 혹평이다. 이게 다 「몸에 좋은 약은 쓰다」는 조기교육에서 세뇌된 것일지도 모른다. 이 편견은 언젠가 북경 출장에서 국빈에게도 꼭 대접한다는 요릿집에서 그 유명한 불도장을 맛본 이래 더욱 공고해졌다. ‘스님도 담장을 넘게 한다’더니? 불경스러운 칭송이 붙을 만큼 유명한 고급 본토 요리는 달래 간장이나 초장이라도 주면 좋을 텐데라는 촌스러운 본인의 취향만 확인하고 말았다. 좀 고소하기는 해도 어렵사리 집을 나간 며느리가 고작 이 맛에 돌아올 리가 있나 배신감을 느꼈던 전어에 비길 만한 충격이었다. 그런 맥락에서 보양식의 대명사이자 식당 벽 하나를 가득 채우는 오리의 효능이 아무리 넘쳐난들 오리 구이도 오리탕도 그다지 즐겨 찾는 장르는 아니다. 사실 치킨만으로도 조류 섭취는 이미 한도 초과이기도 하니까.
오리와 편견, 하지만 자슐랭 맛집은 인정
유서 깊은(?) 여의도 로컬 맛집을 꼽을 때 웬만해선 빠지지 않는 「산삼골」을 처음 접한 것은 신발 벗고 마루에 올라가던 「여의도 백화점」 지하 밥집 시절이다. 여기에 등장하는 여의도 백화점으로 말할 거 같으면 무릇 동여의도에서 생계를 의탁하는 자라면 모를 수 없는 증권가의 함바집 스트릿이다. 다만 명칭이 백화점인 탓에 네이버 지도가 없던 시대에는 ‘여백’을 찾아 헤매던 사람들에게 여기가 여의도 백화점이다 알려 주면 물어본 이도 답해준 이도 숙연해지던 그런 랜드마크다. 어쨌건 세월이 흘러 지금은 원조 사장님의 따님들이 같은 건물 7층에 어엿하게 본관 신관으로 나누어 그 명성을 잘 이어가고 있다. 엄청난 점심 러시, 갖가지 명분의 회식이 난무하는 여의도 밥집 전쟁에서 살아남아 이렇게 2세가 대를 이은 집을 일컬어 필자는 ‘子슐랭’이라 부르며 개인적인 맛집 지표로 삼는다. 얼마나 맛있고 자신 있으면 남 안주고 자식에게 줬겠나를 기준으로 하는데 웬만한 미슐랭, 블루리본 못지 않게 적중률이 높다고 자부한다.

「산삼골」의 정갈한 여섯가지 반찬 ©여의도 먹장금
산낙지를 추가한 오리전골을 주문하고 입맛을 돋울 여섯 가지 찬이 놓이면 벌써 정갈하고 푸근하다. 연두부, 치커리 무침, 무생채, 땅콩절임, 생마늘과 풋고추, 갓김치가 늘 나오는데 평범해 보이는 조합이지만 내공이 느껴지는 맛이다. 여기에 인당 하나씩 특제 소스가 보시기에 담겨 나오는데 이게 바로 이 집의 킥이라 할 수 있다. 딱히 오리고기 매니아가 아닌 필자가 예외적으로 「산삼골」을 좋아하는 이유의 8할은 바로 커다란 돌냄비에 넘치도록 가득 넣어주는 채소를 전골육수에 살짝 익힌 후 겨자, 들깨가루, 고춧가루 등이 섞여 뻑뻑한 이 소스에 적셔 먹는 그 황금 조합 때문이다.

오리전골 위에 들깨가루, 깻잎, 부추, 미나리가 푸짐하게 올라가 있다. ©여의도 먹장금

산낙지를 추가한 오리전골 ©여의도 먹장금
그러고 보니 신기하다. 이 집은 필자의 음식 취향을 두 가지나 거스른다. 보양식을 즐기지 않는 것 외에도 타고난 육식파이자 돼지테리언으로서 건강검진을 앞둔 시기가 아니면 자발적으로 채소를 즐기지 않는데 이 집에만 오면 족히 서너 번은 채소 더미를 리필해 먹고 마치 혹독한 자기 관리에 성공한 듯한 착각을 하게 된다.
이 정도면 그렇게 부드럽다는 오리고기는 그저 유독 신선한 깻잎, 미나리, 부추를 거들 뿐인 거지. 그리고 이제 한국인의 밥상 공식 클로저, 주방에서 볶아 나오는 맛깔난 볶음밥이 라스트 팡이다. 요즘 탄수화물을 사회악으로 여기는 사회 풍조로 인해 대부분의 사람들이 밥을 남기다 보니 점점 양이 줄어들고 있어 아쉽다. 용기를 내어 수줍게 볶음밥을 많이 먹고 싶다고 미리 말하면 사발에 담긴 푸짐한 볶음밥을 확보할 수 있다.
산삼 없는 「산삼골」은 오리 별로 안 좋아한다더니 어떻게 좋아하는 사람보다 더 많이 먹냐는 힐난을 견딜 가치가 있다. 클래식은 몰라도 파바로티는 듣는 것처럼, K 리그 팬은 아니라도 국대 축구 경기는 챙겨보는 것처럼 평소의 호불호와 취향을 넘어설 만한 이 정도의 준수한 맛집이 대자본 프랜차이즈에 휩쓸리지 않고 건재하는 것이 여의도 살이에 가끔 기쁨이다.
[시리즈 소개]
어떤 지역을 갔을 때, '이 동네 맛고수, 놀이고수를 만나고 싶다. 그들이 노는 곳, 단골인 가게를 알고싶다'라는 마음이 들었던 적 있으시죠? 낯선 지역에서 괜찮은 공간을 찾을 때 신뢰도 높은 방법 중 하나가 고수의 추천을 받는 것이기 때문이죠. 또한 그들의 추천과 콘텐츠는 동네의 매력을 느끼는데 도움이 되는 정보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시티&'이 일상의 즐거움을 1g 더해줄 숨은 고수, 로컬 크리에이터의 공간 소개 시리즈를 선보입니다. 시작은 직장인으로, 동네 주민으로 수십년간 여의도 안에서 맛을 탐험한 맛고수의 '맛기행' 장소입니다. 앞으로도 꾸준히 살아있는 동네 찐 고수를 발굴해 여러 지역의 매력적이고 개성 강한 공간들을 소개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