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 감소와 고령화로 인한 지방 도시의 상권 쇠퇴와 빈 건물 증가는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일본은 10여 년 전부터 이런 문제에 직면했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일본 내 각 지역에서 판매 공간과 문화 공간을 결합한 지역 커뮤니티 허브가 등장하고 있습니다. 카페나 서점, 식료품점 등 단순 상업시설을 넘어 지역 주민이 모이는 거점 기능을 하며 지역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는 역할도 수행합니다. 사례도 다양합니다. 대형 브랜드를 중심으로 지방자치단체와 협력해 노후 건물을 복합 문화공간으로 리노베이션 하거나 지역 스타트업이나 소규모 기업이 주도하는 공간 개발 사례 등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번 아티클에서는 숙박시설, 주거시설, 교육시설의 특징을 가진 3개의 공간의 배경과 구성, 커뮤니티 전략, 경제적 가치 제고를 살펴보겠습니다.
책과 숙박이 만난 시모노세키의 문화공간, 네오하스(NEOHAS)
2024년 11월에 야마구치현 시모노세키시에 개장한 ‘네오하스(ねをはす)’는 지역 서점과 호텔을 결합한 7층 규모의 복합 문화시설입니다. 일본 출판 유통기업의 자회사인 ‘히라쿠(hiraku)’가 기획을 담당했습니다. 생활밀착형 서점과 숙박 공간을 붙여 '머무르는 곳이 아니라 머무는 시간을 풍부하게 늘려주는 체험 공간'을 지향합니다. 건물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문화공간으로, 1층에는 약 2만 권의 서적을 갖춘 지역 서점과 카페, 이벤트 스페이스가 있으며 2층에는 워크 & 스터디 공간, 3층은 지역 식재료를 활용한 레스토랑과 호텔 프런트로 구성되었습니다. 4층부터 7층까지는 39실 규모의 호텔 객실이 자리합니다. 각 객실에는 북(book) & 호텔이라는 네오하스의 테마에 맞게 큐레이션 된 도서가 비치되어 있습니다. 이곳에 투숙하는 고객들에게 새로운 경험을 제공하는 요소로 활용됩니다. 층별로 서점, 카페, 호텔, 이벤트 공간이 유기적으로 연계되도록 구성되어 한 건물에서 다양한 체험이 가능하다는 특징을 가집니다.
네오하스의 철학을 상징하는 나무가 1~2층 중간에 위치해 눈길을 끈다. ⓒ PRTIMES.jp
북 & 호텔이라는 컨셉에 맞춰 독자적 테마의 큐레이션 도서가 비치된 호텔 객실. ⓒ PRTIMES.jp
단순히 호텔을 찾는 투숙객의 경험만 고려하기보다 지역 주민과 외부 관광객이 동시에 모이는 공간이 될 수 있도록 운영합니다. 1~2층을 책이 있는 카페 'BOOK STORE NEOHAS’로 운영하며 지역 주민들의 사랑방으로 만들었습니다. 서점에서는 지역의 매력을 알리는 소규모 이벤트, 잡화 마켓 등을 열어 주민과 관광객이 어우러지는 기회를 제공합니다. 투숙객 한정 '밤의 서점' 같은 특별 이벤트도 진행합니다. 3층 레스토랑도 열린 공간입니다. 투숙객이 아니어도 누구나 이용할 수 있습니다. 동네 F&B 공간으로 자리 잡으며 안정적 매출원으로 기능합니다. 서점, 호텔, F&B 등 상호 보완이 가능한 다기능 공간으로 운영하며 공간의 지속가능성을 높인 셈입니다.
복합 공간 내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F&B 매장을 구성해 안정적 매출원 확보. ⓒ PRTIMES.jp
네오하스라는 이름에는 ‘이 땅에 뿌리를 내려 큰 나무처럼 성장하고 싶다’는 철학이 담겨 있습니다. 실제로 1~2층 서점 중앙에 이를 상징하는 큰 나무를 배치해 공간의 정체성을 드러냅니다. 지역 커뮤니티와 외부 방문객의 활발한 교류 공간이자 도시의 새로운 랜드마크가 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이처럼 서점+카페+호텔+이벤트 공간이 결합된 네오하스 사례는, 지방 도시 유휴 건물에 문화적 콘텐츠를 입혀 부동산 가치를 높이는 모델로 주목해 볼 수 있습니다.
노후 단지에 불어넣은 숨결, 치바 하나미가와 단지의 커뮤니티 카페
노후화된 대단위 주거단지를 복합 문화공간으로 재생시키는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습니다. 치바시 하나미가와구의 하나미가와 단지에는 2025년 4월, 단지 내 상가의 공실 공간을 리노베이션해 ‘복합 커뮤니티 카페’가 문을 열었습니다. 1968년 입주가 시작된 당시에는 지역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주거단지였으나 50여 년이 지나 주민 고령화, 상권 쇠퇴가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었습니다. 이에 2022년부터 도시재생기구(UR), 치바시, 그리고 무인양품(MUJI) 본사 및 자회사 MUJI House가 협약을 맺고 지역 활성화 프로젝트를 추진하기 시작합니다. 수익 극대화보다 단지 활성화라는 사회적 가치에 초점을 맞춘 신관민 협업이 이뤄진 결과 복합 커뮤니티 숍이 탄생했습니다.
하나미가와 단지 공간 구성도. ⓒ goodroom.jp
복합 커뮤니티 공간은 크게 세 가지 기능으로 구성되었습니다. 첫 번째 기능은 전국에서 수집한 헌책을 누구나 읽을 수 있는 카페입니다. ‘카페 공간 및 창업 체험 스토어’로 107호실 1층에 문을 열었습니다. 커피와 헌책을 매개로 세대 간 교류가 이뤄지며 단지의 거실 역할을 합니다. 소규모 창업자를 위한 1평 창업 스페이스도 자리하고 있으며, 하루 단위의 팝업스토어 운영도 가능합니다.
헌책과 커피가 있는 단지의 거실, 107호 1층 커뮤니티 카페. ⓒ goodroom.jp
107호 2층에는 '단지 생활 체험룸'이 있습니다. 무인양품 가구와 수납 용품으로 모델하우스를 만들어 젊은 층에서 리노베이션한 주거 공간을 직접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합니다. 노후 단지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고 젊은 수요층의 유입을 도모하는 공간으로 계획되었습니다. 106호에는 '커뮤니티 및 동아리 공간'도 만들었습니다. 소규모 워크숍, 여러 주제의 모임 등을 할 수 있는 다목적 모임룸입니다. 입주민은 물론 지역 주민들도 이용할 수 있어, 단지를 중심으로 지역 커뮤니티 네트워크가 형성되는 데 기여합니다.
무인양품 가구를 활용해 꾸민 라이프 스타일 체험룸. ⓒ goodroom.jp
여러 목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모임룸. ⓒ goodroom.jp
판매(카페), 체험(주거), 모임(커뮤니티)이라는 세 가지 기능이 한 번에 가능하도록 꾸려 다양한 세대와 목적이 다른 이용자들이 한곳에 모일 수 있도록 운영합니다. 오픈 이후 이곳에는 동네 어르신들의 손공예 취미 모임부터 아이들의 독서회, 플리마켓, 작은 음악회까지 다양한 커뮤니티 활동이 전개되며 지역에 입소문이 났습니다. 그 결과 단지 입주민 만족도 향상과 외부 방문객 유입 증대까지 이어졌습니다. 이는 카페의 매출 상승을 견인하며 단지에 새로운 활기를 채우고 있습니다. 운영에서도 민관 협력을 통해 생활용품과 식료품을 판매하는 무인양품의 이동 판매 코너를 정기적으로 유치해 상업 기능까지 보완했습니다.
하나미가와 단지 사례에서는 건물의 물리적 가치보다 공간에서 형성된 커뮤니티 네트워크의 가치가 단지 매력도를 끌어 올렸다는 점을 눈여겨보아야 합니다. 이는 노후 단지의 자산 가치를 높이는 데 하드웨어적 투자 이상으로 소프트한 콘텐츠 어프로치 효과가 유의미하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대표적 예시입니다.
옛 학교 건물이 지역 커뮤니티 허브로 재탄생, 효고현 SAKIA
인구 감소로 문을 닫은 효고현 북단 아와지시는 옛 오자키 초등학교 건물을 활용해 ‘사키아(SAKIA)’라는 복합공간을 조성하였고, 2024년부터 본격적인 운영을 시작했습니다. 사키아는 식음료(Food)・예술(Art)・교육(Learning)을 매개로 지역 주민과 외부인이 함께 어우러지는 열린 배움터를 지향하는 공간입니다. 지방자치단체와 민간이 협력하여 만든 지역 활성화 프로젝트의 하나로, 대형 디벨로퍼인 파소나(Pasona) 그룹 등이 아와지섬 일대에서 진행 중인 지역재생 사업들과 맥락을 같이 하며 지역 상생형 관광・커뮤니티 거점으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다목적 커뮤니티 공간으로 활용되는 사키아 외부 전경. ⓒsakia.jp
사키아(SAKIA)는 옛 학교 건물 3층 전체를 리노베이션하여 층별로 특색 있는 복합 기능을 넣었습니다. 1층은 어린이 교육 공간과 지역 상점 기능을 결합해 세대와 용도가 어우러지는 커뮤니티 공간을 조성했습니다. 지역 아동과 주민을 위한 ‘코도모 도서관(KODOMONO)’은 전국에서 기증받은 아동 도서로 채운 작은 도서관입니다. 방과 후 또는 주말이면 아이들이 책을 읽고 학습하는 공간으로 활용됩니다. 동시에 지역 IT 단체인 A-TECH가 주관하는 로봇 프로그래밍 교실도 정기 운영하여 섬마을 아이들이 최신 기술을 접할 기회를 제공합니다.
한편, 1층의 다목적실은 지역 식재료를 활용한 ‘오자키 식당 카페테라스’로 변신했습니다. 이곳에서는 아침 식사와 커피, 현지 농산물로 만든 런치 메뉴 등을 제공합니다. 또한 전통 발효종으로 구운 빵과 섬 채소로 만든 빵 요리를 선보이는 베이커리 ‘시마노네코’는 지역 농가와의 협업을 진행합니다. 이런 협업으로 개발된 상품은 지역 경제 활성화에도 이바지합니다.
지역 식재료를 활용해 운영 중인 1층 레스토랑. ⓒsakia.jp
2층은 외부 방문객 유치를 위한 부티크 호텔 ‘SAKIA STAY’가 운영됩니다. 옛 교실 14개를 개조해 미니멀한 디자인의 더블룸과 업무용 싱글룸으로 구성했습니다. 투숙객 전용 대형 사우나 시설도 갖춰 워케이션(Workation)족과 관광객의 관심을 얻고 있습니다. 섬 밖의 젊은 디지털 노마드에게 아와지섬을 찾을 만한 이유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3층은 개방형 공유오피스 ‘사토야마 데스크’가 자리 잡았습니다. 통유리창 밖으로 보이는 아와지섬의 풍광을 바라보며 일할 수 있는 리조트형 코워킹 스페이스입니다. 일반 데스크부터 회의실, 방음 된 웹 미팅 부스까지 갖췄습니다. 최근에는 청년들을 위해 e스포츠 전용룸까지 신설해 팀 단위 e스포츠 훈련이나 대회 합숙 공간으로도 활용되고 있습니다. 사토야마 데스크는 운영 시간 동안 지역 주민에게도 개방되어 있어, 섬 내 다양한 직종의 사람들이 모이고 교류하는 지역 혁신의 실험실 역할도 톡톡히 하고 있습니다.
지역 혁신의 실험실로 활용되는 리조트형 공유 오피스 사토야마 데스크 ⓒsakia.jp
지역 혁신의 실험실로 활용되는 리조트형 공유 오피스 사토야마 데스크 ⓒsakia.jp
사카이의 커뮤니티 전략의 핵심은 지역 문화와 외부 문화의 연결입니다. 예술가들의 장기 체류를 지원하고 완성된 작품을 지역 주민과 공유하는 아트 레지던시 프로그램, 옛 학교 운동장과 강당을 활용하여 매년 열리는 지역 축제 ‘사키아 마츠리’, 지역 농산물 직판장 등 다양한 참여형 이벤트를 꾸준히 진행합니다. 농산물 직판장으로만 300만 엔 상당의 판매고를 올리며 지역 경제에도 직접적인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폐교를 숙박시설로 바꾸는 것에 그치지 않고 주민들의 자발적 참여와 자부심을 이끌어내는 커뮤니티 행사로 발전시켰다는 점에서 의미 있습니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 사키아는 아와지섬 북부 지역의 새로운 핵심 거점으로 성장하고 있습니다. 워케이션을 온 외부 인재들은 숙박과 식사를 통해 지역에 소비를 일으키며, 아와지의 매력에 이끌려 아예 이주를 결정하는 사례도 생겼습니다. 오랫동안 방치되었던 학교를 문화시설로 다시 누리게 된 주민들 역시 삶의 만족도와 지역에 대한 애착이 높아졌습니다. 방치된 상태로 자산 가치가 하락하던 폐교 건물은 수익 창출이 가능한 지역 자산으로 탈바꿈했습니다. 특히 민관 협업으로 초기 투자 부담을 낮추고, 유명 카페와 다양한 프로그램 유치를 통해 랜드마크 효과도 높였습니다. 임대수익과 가치 역시 크게 높아졌습니다. 사키아 사례는 대규모 개발이 아니더라도 브랜드 파트너십을 통한 소프트 콘텐츠 중심의 재생 모델이 충분히 경제성을 가질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매년 열리는 지역 축제 ‘사키아 마츠리’에서는 푸드트럭, 마르쉐, 댄스 공연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운영된다. ⓒsakia.jp
지역 밀착형 복합공간 트렌드의 이면에는 민간 기업들의 새로운 전략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과거 대규모 점포 확장에 집중했던 브랜드들이 이제는 스스로 ‘지역 커뮤니티 허브’ 역할을 자처합니다. 지역과의 상생을 통해 브랜드 이미지를 제고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지역 주민에게 사랑받는 거점을 만들면서 브랜드의 로열티와 사회적 가치를 함께 높이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노리는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나아가 이러한 거점형 공간은 자산 가치 측면에서도 시사점을 남깁니다. 브랜드 파트너십을 통한 혁신적인 콘텐츠 입점은 낙후된 건물의 가치를 끌어올리는 촉매제가 됩니다. 네오하스 등과 같은 콘텐츠력 있는 운영자가 참여한 시설은 지역 부동산 가치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칩니다. 지역 특성에 맞는 유망 콘텐츠 업체를 유치하여 낙후 자산을 밸류애드(value-add) 하는 ‘커뮤니티와 동반 성장하는 자산 모델’은 이미 일본 지역 곳곳에서 효과가 입증되고 있습니다. 인구 감소와 경기 침체로 고민하는 지역일수록 이러한 커뮤니티 기반 복합공간 전략을 통해 브랜드와 부동산의 동반 활로를 모색할 수 있을 것입니다.
[참고자료]
PR TIMES 일본 보도자료 (https://PRTIMES.jp)
MUJI House 공식 홈페이지 (https://house.muji.com)
Yamaguchi 트라이앵글 (https://tryangle.yamaguchi.jp)
SAKIA 공식 홈페이지 (https://sakia.jp)
[시리즈 소개]
자산은 이제 부동산을 넘어, 문화와 콘텐츠가 흐르는 ‘글로벌 컬처 공간’으로 진화하고 있습니다. 이번 시리즈는 공간 기획자의 시선에서 글로벌 컬처 공간의 대표 사례들을 통해 공간의 기획, 운영 그리고 자산 가치를 새롭게 연결해 봅니다. 숫자적인 임대 수익을 넘어, ‘문화적 자산’으로서 공간이 지닌 잠재력과 그 가치를 지속적으로 확장하는 방법을 깊이 탐구합니다. 글로벌 컬처 공간이 어떻게 도시의 맥락을 담아내고, 커뮤니티와 브랜드 가치를 창출하는지를 살펴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