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은 삶을 담는 그릇에 가깝습니다. 하나의 자산이 가진 시간에는 한 사람의 인생 철학과 비즈니스 가치가 담길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기에 오래 한 사람과 함께해 온 자산은 매물 이상의 가치가 있습니다. 리치라운지 아너스클럽은 패밀리오피스가 가진 부동산 자산을 '소유'의 대상이 아닌 시간, 철학, 삶의 가치까지 담긴 개인의 헤리티지 공간으로 접근해 이야기를 풀어냅니다. 개인의 삶과 연결된 자산의 역할과 정체성을 바탕으로 변화의 과정을 담아내고, 전환의 순간을 기록합니다.
다양한 부동산이 모여 도시를 이루고 그 안에서 인간은 각자의 삶을 꾸려 갑니다. 누군가에게는 인생의 열정을 쏟아부은 치열한 일터이기도 하고, 다른 이에게는 행복했던 가족의 보금자리기도 하며, 또 어떤 여행자에게는 스쳐 지나간 추억의 장소이기도 합니다. 이렇듯 다양한 삶의 찰나들이 모여 지금 이 순간 도시의 모습을 만들고, 한 사람의 인생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부동산이 한 장인의 인생과 함께할 때, 그 장소는 추억으로 남아 후대에 의미 있는 곳으로 보존되기도 합니다. 건축가는 건축물로 자신의 이름을 오랫동안 남기고, 노포는 대를 잇는 손맛과 정취로 그 깊이를 후대에 남기는 것이죠.
일례로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에 위치한 옛 ‘공간’ 사옥(현 아라리오뮤지엄 인 스페이스)은 우리나라 현대 건축 1세대 건축가의 대표주자인 김수근(金壽根, 1931~1986)의 작품으로 생전에는 그의 사무실이자 건축 설계 작업실, 그리고 잡지 ‘공간’의 편집 사무실로 사용되었습니다. 김수근의 명성과 취향이 반영된 이 건물은 전시와 공연이 열리고 문화예술계 인사들의 교류의 장으로 활용되었던 장소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현재는 아라리오가 매입해 뮤지엄과 갤러리로 사용하고 있는데요. 건축물의 멋과 의미를 더 잘 살린 공간으로 재평가받기도 합니다. 이렇게 보면 건축물도 노후화되고 사용자나 소유자가 바뀌면서 쓰임이 달라지기나 용도로 변경되는 등 다른 여정을 걷게 됩니다.
패밀리오피스의 가업은 부를 일군 원천이기도 하고 개인에게는 명예를 높여준 삶의 기반이기도 합니다. 한때는 인생을 바쳐 일했던 공간으로 부와 명예를 일궈준 공간이지만, 세월 앞에 장사는 없습니다. 하지만 관점을 달리하면, 자연스럽게 그 시대에 걸맞은 부동산으로 다시 개발되고 도시의 새로운 모습을 만드는 퍼즐 조각이 되어 가는 것이죠. 이런 관점으로 여기 한 가계의 성실했던 외길 인생을 따라가 볼까요?
지하철도 없던 강남에 병원 터를 잡고 45년여간 터줏대감 역할
강남 개발이 막 시작되던 1984년, 이종석 원장은 역삼동 667-7번지에 갑상선 전문병원 ‘광혜내과의원’을 세웠습니다. 그 시절은 강남이 아직 개발의 초입 단계였고, 지금도 그렇듯 갑상선을 전문으로 한 내과는 더더욱 생소한 때였습니다.
“대로변에 위치한 토지 304㎡(97.7평)의 반듯한 이 땅을 보는 순간 병원 자리로 안성맞춤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더욱이 근처에 충현교회가 있어 마음의 평온함을 주는 곳이라 보자마자 계약했습니다.”라고 이종석 원장은 당시를 회상합니다. 토지를 매입한 1982년에는 지하철 2호선도 개통되기 전이라 그 주변은 허허벌판이었지만, 왠지 모르게 끌리는 땅이었다고 회고합니다.
이렇게 역삼동 667-7번지는 이종석 원장과 인연을 맺고, 지하 1층부터 지상 4층 연면적 752.32㎡(227.58평)로 지어져 지금의 광혜내과로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습니다.

광혜내과의원 건물 전경 ⒸSPI
폭넓은 연구와 임상 경험을 바탕으로 세운 갑상선 전문 병원
이종석 원장은 전남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습니다. 그 후 군 복무 중 베트남전에 참전하여 야전병원에서 근무하며 전시 의료 경험까지 쌓았습니다. 제대 전에는 한일병원 내과 레지던트로 임상 경험을 넓혔고, 이후 프랑스 피티에 살페트리에 의대에서 유학하며 세계적인 의료 기술과 지식을 습득했습니다.
국내로 돌아온 이종석 원장은 국립의료원 내과 및 핵의학과장을 역임하며 갑상선 질환 연구에 매진하게 됩니다. 자신의 의학적 철학을 온전히 실현할 수 있는 전문 갑상선 클리닉인 광혜내과의원을 역삼동에 개원하면서 이 분야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게 됩니다.

갑상선 전문의로 45년간 광혜내과의원에서 환자들을 보살펴 온 이종석 원장 Ⓒ안명숙
이 원장은 국립의료원 내과 및 핵의학과장 시절부터 갑상선 질환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외길을 걸으며, 갑상선 기능항진증과 갑상선암 조기 진단 분야에서 수많은 환자들에게 명의로 이름을 날렸습니다. 특히 프랑스 유학 시절 습득한 선진 의료 기술을 바탕으로 국내 초기 갑상선 초음파 진단 도입에 앞장서, 미세침흡인검사(FNA)의 정확도를 높이는 기법을 개발하는 데 큰 공헌을 했다고 평가받고 있습니다.
광혜내과 올해까지 진료, 자산 정리와 함께 삶 전체를 돌아보다
"갑상선 질환은 평생 관리가 필요한 만성질환입니다. 환자가 편안하게 오랜 시간 함께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합니다." 이종석 원장의 이런 철학은 광혜내과 건물 설계 곳곳에 반영되었습니다. 일반 내과와 달리 갑상선 환자를 위해 특화된 시설, 넓은 초음파실, 검체 보관을 위한 최첨단 시설, 상담에 충분한 시간을 할애할 수 있는 진료실 구조까지 모든 요소는 갑상선 환자의 특수한 요구를 고려해 설계되었습니다.

환자를 배려한 여유있는 진료 공간과 검진장비 Ⓒ안명숙
세대를 이어 갑상선 환자 가족들이 이곳을 찾았고, 45년 가까이 이종석 원장의 진료를 받아왔습니다. 환자 중심의 진료 철학은 45년간 한결같은 모습으로 환자와 이종석 원장 본인을 지켜온 근간이었습니다.

세월을 함께한 환자들의 시간이 고스란히 담긴 진료 차트 Ⓒ안명숙
매일 종이 신문을 정독하고 의학 서적은 물론, 정치와 경제 신간도 손에서 놓지 않습니다. 최근에는 블로그를 배워 병원을 소개하는 글을 정리해 온라인에 직접 올리는 일에서도 소소한 즐거움을 찾고 있습니다. 이러한 일상과 부지런한 루틴이, 80대 중반이라는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건강하고 평안한 몸과 마음을 유지하는 비결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러나 이종석 원장의 열정과 신실한 믿음조차도 비껴갈 수 없는 것은 ‘시간’이었습니다. 어느덧 80대 중반을 훌쩍 넘긴 이 원장은 아쉬움을 뒤로하고 올해까지만 진료실을 열어두기로 스스로 결정했습니다.
“늘 광혜내과를 찾아주던 환자분들 덕에 전문의사로서 보람도 있었고 저 스스로도 나이보다 더 늙지 않은 건강을 유지할 수 있었죠. 병원 문을 닫으면 환자들만큼이나 저도 서운할 것 같아 미뤄왔지만, 건강할 때 자산을 정리하는 게 가족을 위해 해야 할 저의 남은 소임입니다.”라고 이 원장은 담담하게 덧붙입니다.
역삼동 667-7번지 광혜내과, 새로운 주인을 만나 또 다른 여정을 시작해

논현로 대로변에 접한 입지로, 대중교통 접근성 또한 우수한 광혜내과의원 터 Ⓒ국토지리정보원
역삼역에서 언주역으로 이어지는 논현로 대로변에 접한 반듯한 땅이다 보니, 다시 지어도 그 이상의 가치를 기대할 수 있는 곳이라 최근 사옥으로 쓰려는 새로운 매수자와 인연이 닿았다고 합니다. 이 자산의 또 다른 여정의 시작이기도 한 셈인데요. 앞으로 어떤 역사와 삶의 시간을 담아갈지 기대됩니다.
부동산은 소유자가 바뀌면 그 쓰임도 달라지는 법이죠. 45년여간 갑상선 전문 병원으로 수많은 환자들과 함께했던 역삼동 667-7번지 광혜내과의원. 그 자취는 사라져도 이종석 원장의 열정으로 치유된 환자들의 감동은 추억의 한 페이지로 남겨질 것입니다. 아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