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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너스클럽] 그림을 사랑한 건축가가 북한강 배경으로 지은 가일미술관

2025.05.26 07:3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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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은 삶을 담는 그릇에 가깝습니다. 하나의 자산이 가진 시간에는 한 사람의 인생  철학과 비즈니스 가치가 담길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기에 오래 한 사람과 함께해 온 자산은 매물 이상의 가치가 있습니다. 리치라운지 아너스클럽은 패밀리오피스가 가진 부동산 자산을 '소유'의 대상이 아닌 시간, 철학, 삶의 가치까지 담긴 개인의 헤리티지 공간으로 접근해 이야기를 풀어냅니다. 개인의 삶과 연결된 자산의 역할과 정체성을 바탕으로 변화의 과정을 담아내고, 전환의 순간을 기록합니다.
 

햇빛이 유난히 찬란하던 5월 초입, 오랜만에 북한강 줄기를 따라 드라이브하는 호사를 누렸습니다. 서종IC를 빠져나와 북한강로 방면으로 5분 남짓 달려 야밀터널을 통과하자, 강을 끼고 도로변에 자리한 가일미술관을 바로 만날 수 있었습니다. 가일미술관 장녀 종희씨의 초대로 강건국 관장님을 만나러 가는 길은 서울을 벗어나며 느끼는 해방감이 채 가시기도 전에 목적지에 도착한 짧은 여정이었습니다.

언젠가 읽었던 인터뷰가 떠올랐습니다. 재일교포 건축가로 이름을 날린 이타미 준(유동룡)의 딸, ITM 유이화 소장이 가장 존경하는 건축가인 아버지의 곁에서 경험을 쌓은 제자로서, 아버지의 유언대로 ‘100년 가는 미술관을 만들고 운영 철학을 이어가고 있다는 이야기였죠.

어쩐지 가일미술관 강건국 관장님과 큰 딸 종희님을 마주하며, 그 이야기가 데자뷔처럼 떠올랐습니다. 이타미 준처럼 강 관장님도 그림을 그리고 싶었지만 먹고 살기 위해 건축가의 길을 택한 것, 그리고 딸에게 자신의 생각과 감성을 전하고 싶었던 아버지의 마음은 그러했습니다.

10여 년에 걸친 건축 공사 끝에 강건국 관장이 2003년에 설립한 가일미술관 전경 ⒸSPI

 

생활고 때문에 건축의 길로, 2의 인생은 나를 위한 미술관 설계



1945
년 해방둥이로 태어난 강건국 관장은 이름에서부터 시대의 희망을 담고 있었습니다. '건국(建國)'이라는 이름은 해방된 새 나라의 시작과 함께 찾아온 그의 삶을 상징했죠. 평안북도에서 태어난 그는 어린 시절 부모와 함께 월남해 서울에 정착했습니다. 그의 유년 시절은 낯선 환경에서의 적응, 전쟁의 상흔, 그리고 가난으로 차 있었지만, 그 속에서도 예술에 대한 열망만큼은 꺼지지 않았습니다.

"학생 때 미술반 활동에 푹 빠졌어요. 그림을 그리고 싶었는데 집안 형편을 생각하니 도저히 그럴 수 없었죠. 대신 그림도 그리고 돈도 벌 수 있는 건축을 선택했습니다." 그는 홍익대학교 건축과에 진학해, 언젠가 자신의 손으로 미술관을 짓겠다는 꿈을 이루기 위해 주말도 없이 열정적으로 일했습니다.

큰 딸 종희씨가 아끼는 강건국 관장의 사진 Ⓒ강종희

대신 바쁜 일상 속에서도 그는 틈틈이 그림을 모았습니다. 스스로 '좋다'고 느끼는 작품이라면 가격에 구애받지 않고 구매했습니다. 해외 출장을 갈 때도 미술관만큼은 빼놓지 않고 방문했으며, 여행 경비를 아껴서라도 작품을 구입하곤 했습니다. 재능은 있지만 가난했던 친구들의 작품을 구매하는 것에서 시작된 그의 컬렉션은 이후 국내외 작가들의 다양한 작품들로 확장되었지만, 그는 언제나 재산적 가치보다 작품 고유의 가치와 아름다움에 더 큰 의미를 두었습니다.

가일미술관은 1~2층의 전시실과 수장고, 강건국 관장의 작업실로 구성되어 있다. 사진은 가일미술관 2층 전시실. ⒸSPI

 

십 년 넘게 공들여, 오는 이들의 아름다운 날을 위한 가일미술관건축



"
프랑스나 이탈리아엔 면 소재지 정도의 작은 마을에도 미술관이 있어 늘 부러웠습니다. 가족이나 연인들이 영화관 가듯, 가벼운 마음으로 놀러 올 수 있는 미술관을 만들고 싶었어요."

이러한 꿈을 품고, 강건국 관장은 1996년 군 생활을 계기로 인연을 맺은 가평에 부지를 마련했습니다. 미술관 부지를 고르는 데만 10, 그 이듬해부터 공사를 시작해 토목공사에 4, 건축공사 3년을 거쳐, 17년에 걸친 긴 프로젝트 끝에 2003 5월에서야 지금의 가일미술관의 문을 열었습니다.

미술관 이름인 '가일(嘉日)' '아름다운 날'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강건국 관장은 이 이름에 두 가지 뜻을 담았습니다. 하나는, 미술관을 찾는 모든 이들의 하루가 아름다운 날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고, 다른 하나는 가평군 최초의 미술관으로서 그 의미를 담아내고자 했습니다.

가일미술관 부지의 중심이 되는 두 문화시설. 지하1층, 지상2층의 갤러리(위)와 150석 규모의 아트홀(아래)이 자리하고 있다. ⒸSPI, 안명숙

1,400여 평 규모의 부지 위에 강 관장은 미술관아트홀카페주택 등 서로 다른 성격의 네 동의 건물을 조화롭게 배치했습니다독립된 건물들은 각기 테마와 스토리를 담고 있습니다. "건축물이 주변 자연환경과 어떻게 대화하는지가 중요합니다가일미술관의 건물들은 북한강과 유두산의 경관을 배경으로두 대의 쪽배를 형상화한 형태로 풍경에 자연스럽게 녹아들 수 있도록 설계했습니다."

가일미술관은 문화 인프라가 부족한 가평의 어린이들을 위해 미술 체험 프로그램을 함께 꾸준히 운영하기도 했습니다또한 2003년 개관 기념 음악회를 시작으로 코로나19 팬데믹 이전까지 총 197회의 공연을 통해복합문화공간으로서 지역 주민과 방문객 모두에게 다양한 문화 경험을 제공해 왔습니다.

 

1,400여 평 북한강 자락 땅에 미술관∙아트홀 짓고 사재 털어 20년 이상 운영



이제 설립
 22주년을 맞은 가일미술관은 새로운 변화의 시기를 앞두고 있습니다가일미술관을 만들기 시작했던 50대의 강 관장은 어느덧 80살을 훌쩍 넘긴백발의 화가가 되었습니다. "아버지의 가일미술관은 지난 20여 년간 외부의 지원 없이건축가로 밤낮없이 일해 모은 돈 40여억 원의 사재를 들여 운영해 온 공간이에요. 아버지는 이런 부담을 자식들에게 물려주고 싶지 않아 하세요." 종희씨가 우리를 초대한 진짜 이유를 알게 되는 순간입니다.

"가일미술관은 제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작품입니다앞으로도 이곳이 많은 사람들에게 영감과 위로그리고 아름다운 기억을 선사하는 특별한 공간으로 남기를 바랍니다." 가장으로서 자녀들을 위한 지원에 최선을 다했기에미안함 없이 가일미술관을 짓고비로소 진짜 나의 인생을 살았노라고 강 관장은 고백합니다.

 

비영리법인등록미술관 운영 시 취득세법인세 등 세제 혜택



가일미술관은 경기도 가평군 청평면 삼회리 
609-1번지 외 13필지 4,343(1,314)의 부지에 미술관, 공연장카페갤러리 겸 사택까지 총 네 동의 건물이 들어서 있습니다북한강과 43번 국도를 낀 계획관리지역 토지로카페에서 내려다보이는 강가 산책길은 요즘같이 햇살 좋은 날은 물론비나 눈이 오는 날에도 빼어난 경치를 자랑합니다.

주건물인 미술관은 쪽배 두 척을 형상화한 건물로 지하 1지상 2층 총면적 750(227)입니다공연장인 가일아트홀은 총 150석 규모이며, 테라스의 덱(deck)에서 강가까지 이어지는 전망 너머로 북한강과 유두산이 마치 무대 배경처럼 펼쳐집니다.

북한강을 따라 위치한 카페의 테라스는 맑은 날이나 눈 오는 날이나 방문자들의 쉼터였다. Ⓒ강종희

이 토지는 도로를 길게 끼고 북한강을 따라 입지 자체만으로도 개발 가치가 충분한 계획관리지역입니다다시 개발해도 제값을 할 땅이지만지금의 건물 그대로 활용해도 그 가치가 돋보이는 공간임에는 틀림없습니다. 50대 강 관장의 열정을 새롭게 구현할 그 누군가 이어받는다면가일미술관 건물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줄 수 있는 좋은 곳으로 자리매김하겠죠?

가일미술관에서 연결되는 북한강길 ⒸSPI
 

강 관장의 인생 3또 다른 누군가의 새로운 도전을 기대하며



문화공간은 지역사회 발전은 물론
그곳을 방문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감성을 자극하고 치유하는 공간이 될 수 있습니다
. 지자체나 기업이 미술관과 같은 문화공간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가일미술관처럼 비영리법인으로 운영되는 등록 사립미술관은 「지방세특례제한법」, 「법인세법」, 「조세특례제한법」 등에 따라 취득세재산세법인세 등의 다양한 세금 감면 혜택을 받을 수 있어 취득과 운영에 따른 세 부담을 크게 줄일 수 있는 전략 자산으로도 평가받고 있습니다.

강 관장의 장녀 종희씨는 마케팅과 홍보 전문가로서가일미술관의 불이 꺼지는 그날까지 이 좋은 경치 속에서 함께할 플리마켓 등 다양한 이벤트를 기획하고 있습니다이 멋진 공간의 완성은 결국 사람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죠. 50대에 가일미술관을 일군 아버지의 열정이이제 50대를 바라보는 딸을 향한 사랑으로 이어지길 기대해 봅니다.

강 관장님의 인생 3그리고 이곳에서 펼쳐질 또 다른 아름다운 날들을 위해 ‘Bravo your life!’
 

안명숙

안명숙

서울프라퍼티인사이트 자문위원. 부동산 마케팅 솔루션제작소 오지랖 대표

30여년 경력의 현직 부동산 자산관리 전문가. 금융권 부동산 컨설턴트, 부동산 조각투자 플랫폼 스타트업 기업 등을 거치면서 세대를 아우르는 부자들의 관심과 니즈를 분석해왔다. 부동산이 도시와 개인의 가치있는 자산으로 오랫동안 자리매김하도록 오늘도 유쾌하게 오지랖을 떨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