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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이스K 서울
한창 영화를 많이 볼 때 90년대에 개봉했던 한국 영화에 푹 빠진 적이 있습니다특히 90년대 후반은 한국 영화계가 본격적으로 산업화에 진입했던 황금기라고 불립니다게다가 지금은 잘 보이지 않는 장르인 멜로나 로맨틱 코미디 영화가 흥행하기도 했습니다그중 1998년 개봉한 <미술관 옆 동물원>이라는 영화가 있습니다독특한 제목이 여전히 기억에 남아 어느 미술관을 가든옆에는 어떤 건물이 있는지 찾아보는 습관이 생겼습니다아직 미술관 옆 동물원만큼 대조적인 성격을 가진 공간은 찾기 어렵지만마곡에 있는 서울 식물원을 방문했다가 그 옆에 위치한 미술관을 만났습니다바로 코오롱 그룹이 만든 식물원 옆 미술관인 스페이스K 서울’입니다.
한다리 문화공원 안에 위치한 미술관 스페이스K 서울’ ⓒ박지수 


빌딩 한가운데 자리 잡은 식물원 옆 미술관


반듯한 직선이 가득한 마곡산업단지 모습과 이질적인 건물이 있습니다흐르는 물처럼 유영하는 곡선의 건축물 모습이 특히 인상적입니다. 주인공은 2020 9월에 개관한 미술관 스페이스K 서울입니다미술관이나 갤러리라 하면 대체로 도심 중심 또는 외곽 근교에 모여 있지만 이곳은 수십 개의 기업과 연구 시설이 밀집해 있는 산업 단지 한 가운데에 위치하고 있습니다정말 말 그대로 빽빽한 빌딩들 중심에 있는 셈이죠덕분에 이 건물 주변은 조금 다른 세계인 것처럼 푸르른 공원과 어우러집니다

 
공원의 언덕에 둘러싸인 스페이스K 서울의 전경. 사진제공 스페이스K 서울
마곡산업단지에 스페이스K 서울이 들어선 것은 정책적인 영향이 컸습니다. 2010년부터 서울시는 마곡 지역에 기업 유치를 위해 파격적인 분양 할인 조건을 제공하고기업에는 문화 및 예술 시설 기부 건립을 유도했습니다. 이에 코오롱그룹도 마곡산업단지에 사옥을 짓고 기부채납 조건으로 공공기여형 미술관 스페이스K 서울 공간을 함께 건설했습니다향후 20년간 코오롱그룹이 운영을 맡은 후 서울시에 귀속될 예정입니다.

 

마곡산업단지에 휴식을 제공하는 곡선의 건축물


스페이스K 서울은 비교적 문화 및 예술 인프라가 적은 서울 서남부 지역에 최초로 들어온 공공미술관이라는 상징적 가치도 있습니다이와 함께 개관 당시부터 주목받은 건축물의 가치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이국적인 동시에 거대한 조각 작품 같아 보이는 건축물은 SNS를 통해 빠르게 인기를 얻었습니다스페이스K 서울은 직선과 수평만이 있는 마곡산업단지 건물들 사이에서 이와 대조적인 곡선과 아치형의 초록 언덕 세 개에 둘러싸여 있습니다. 2014년 베니스 비엔날레 건축전에서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조민석 건축가와 그가 대표로 있는 매스스터디스 사무소가 설계했습니다강준구 매스스터디스 소장이 인터뷰한 기사에 따르면 이들이 설계 시 중점적으로 두었던 건 단 2가지였다고 합니다미술관이 공공 공간인 공원 부지에 세워진다는 점과건물 자체로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줬으면 한다는 점입니다.

곡선이 눈에 띄는 스페이스K 서울의 입구 ⓒ박지수
 미술관 옥상 정원으로 올라가는 계단 전경 ⓒ박지수

설계 시 의도했던 것처럼 실제 스페이스K 서울을 방문하면전시를 보러 오지 않은 사람들도 미술관이 어떻게 생겼는지 큰 통창 유리를 통해 볼 수 있습니다미술관 옥상은 2개의 경사로를 통해 누구나 드나들 수 있으며 자연스럽게 주변 풍경을 즐길 수도 있습니다공원에서 쉬고 있는 사람도근처를 산책하는 사람도 미술관을 이용하는 셈입니다미술관이지만공간 자체로도 하나의 산책 코스이자 도시의 휴식을 담당하는 역할을 수행합니다같은 콘크리트 건물이어도 스페이스K 서울은 유기적인 곡선통창 유리와 금속의 반사로 주변을 둘러싼 직선적수직적인 콘크리트 건물들과 대비를 이룹니다공간과 기능 두 측면에서 마곡산업단지의 경직된 구조에 환기를 제공하는 장치로서도 존재하는 것이죠

옥상 정원으로 올라가는 또 다른 곡선 경사로 ⓒ박지수
1층과 2층을 잇는 건물의 곡선이 눈에 띈다ⓒ박지수


도시의 풍경으로 남는 공간스페이스K 서울


대기업이 미술관을 만드는 일을 낯설지 않습니다국내에도 다양한 기업 소속의 미술관이 존재하며해외에는 대기업과 연계된 재단이 만든 오랜 역사를 가진 문화예술 공간도 있습니다그럼에도 코오롱그룹이 마곡산업단지에 만든 스페이스K 서울은 조금 특별합니다기업 홍보의 연장선인 공간이 아닙니다기업의 사적 소장품을 위한 공간도 아닙니다코오롱그룹 내 사회공헌사무국 산하 조직으로 위치하며 되도록 많은 사람들이 이용할 수 있는 공간으로 운영됩니다.

이 같은 특징은 공간의 내부 설계와 운영 방식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미술관 설계 당시 의뢰 조건이 전시장 층고는 10m, 기둥이 없는 내부라는 두 가지였다고 합니다미술관 전시장으로 들어가서 살펴보면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층고가 점점 높아지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층고가 워낙 높고 공간 자체가 뻥 뚫려 있다 보니 단일 공간임에도 다양한 연출은 물론 큰 규모의 작품을 전시하는 데 제약이 적습니다또한 별도의 소장품 없이 공공기여의 목적으로 지어졌기 때문에 전시도 국내외 미술관으로부터 작품을 대여해 기획전 중심으로 진행됩니다건축 설계부터 공간 운영까지 사적 공간이 아닌공적인 공간으로 명확하게 포지셔닝한 것이죠

(미술관 2층에서 바라본 1층 전경 / (높은 층고 덕분에 대형 조각을 전시할 수 있다ⓒ박지수


지역 커뮤니티로 이어지는 문화 예술 공간의 역할


하나의 도시를 설계할 때 빠르고 효율적인 실행에 익숙합니다그러다 보니 이용하는 사람보다는 기능적으로 필요한 공간 중심이 되기 쉽습니다마곡산업단지 역시 뛰어난 기업들의 R&D 센터나 수많은 업무 시설상업 및 주거 단지가 들어와 있지만 지역 주민이나 현지 직장인들이 머무를 수 있는 공간은 많지 않습니다스페이스K 서울은 이러한 공백을 메우는 역할을 합니다.

공간의 역할과 기능을 넘어 세부 프로그램으로 지역과 사람의 연결고리를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미술 작품을 전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지역 밀착형 프로그램을 운영합니다미술관에서 하는 요가 프로그램, 20명 이상 단체 관람 시 건축 투어 제공근처에 있는 LG아트센터와 연계해 공연장 옆 미술관이라는 공간 투어 프로그램도 비정기적으로 진행합니다마곡 지역의 문화 예술 라이프의 기반을 다지는 것이죠

미술관 옥상에서 진행하는 요가 프로그램의 모습 ⓒ스페이스K 서울 인스타그램

스페이스K 서울은 기업이 도시에 어떤 방식으로 기여할 수 있는지이 기여가 어떻게 도시 운영과 지역 생태계에 흡수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사례입니다만들어진 이후 방치되지 않고지속적으로 콘텐츠를 기획하고 지역 주민과 직장인 기반의 운영 방식을 실현해 나가고 있습니다이는 타운 매니지먼트의 핵심과 맞닿아 있기도 합니다기업은 자산의 일부를 공공에 환원하며 도시와의 관계를 새롭게 정의합니다건축은 단순히 외관의 멋스러움만이 아니라 일상의 감각을 전환하는 장치로 작동하고 있습니다지역은 마곡이라는 신도시 개발지 안에서 민간과 공공이 협력해 도시 운영의 일부를 책임질 수 있는 가능성을 열었습니다스페이스K 서울은 그 대안이자 사례를 분명하게 증명하고 있습니다.

박지수

박지수

에디터

영화를 공부하고 다양한 IT 회사에서 에디터로 일을 했습니다. 일상에서 영감을 받을 수 있는 공간을 찾아 다니며 글을 쓰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