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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산가의 매력적인 컬렉션은 당연하게 보이지만, 그 안에는 늘 의도된 움직임과 전략이 숨어 있습니다. 안목을 수집하고, 공간을 기획하며, 유산을 디자인하는 이들을 위해 리치라운지는 아트 시리즈를 새롭게 선보입니다. 예술을 전략적 수집과 기획된 유산의 관점에서 읽어보며, 문화적 경험을 넘어 패밀리 오피스를 위한 전략적 문화 자산 설계의 실마리를 공유합니다.

 

최근에는 대기업 오너 가문뿐 아니라 스타트업 창업자와 같은 ‘영리치’를 중심으로 패밀리 오피스가 확장되고 있습니다. 자연스럽게 부의 세대교체도 진행됩니다. 이에 미술 시장에도 변화의 흐름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요즘 미술계에서 주목받는 키워드 중 하나는 ‘다음 세대로의 이전’입니다. 그 중심에는 영리치 컬렉터의 부상이라는 새로운 흐름이 있습니다. 이들은 기존의 미술 수요층과는 다른 시선과 전략으로 시장에 참여하며, 예술을 전혀 새로운 방식으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일찍이 팝아트의 선구자 앤디 워홀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예술 이후의 다음 단계는 비즈니스 예술이다.”

달러 사인을 캔버스에 새기고, 마트에서 볼 수 있는 세제를 나무 박스로 만들어 미술관에 전시했던 워홀은 예술을 상품화하고, 예술가 자신을 브랜드화하며 예술과 자본의 경계를 새롭게 정의했습니다. 그리고 반세기가 지난 지금, 예술은 다시 한번 새로운 의미를 부여받고 있습니다. 부의 흐름이 바뀌는 이 시점에, 예술은 단순한 감상의 대상이 아니라, 세대와 자산을 잇는 전략의 도구로 주목받고 있는 것입니다. 

 

취향보다 전략 중심, ‘기획된 유산’으로서의 미술 



예술은 감상과 보존의 대상이면서도, 동시에 취향을 대변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향유하는 이의 태도를 은유하기도 합니다. 작품을 수집한다는 것은 곧 자신의 삶과 가치관, 그리고 세계관을 시각적으로 설계하고 보여주는 일입니다. 어떤 작품을 언제, 어디서, 어떤 맥락 속에서 누구와 연결되어 소장했는지는 그 사람의 정체성과 안목을 드러내는 전략이 됩니다.

미술은 오랫동안 부유한 이들의 취향과 안목, 그리고 태도와 가치관을 대변해 왔다. Ⓒ Wikipedia

그래서 예술은 때로 자산을 물려주는 이에게는 삶의 이야기를 담은 유산이 되고, 영리치에게는 일종의 브랜딩이자 포트폴리오로 기능하게 됩니다. 단순한 취향을 넘어, 의미와 매력을 가치와 함께 담을 수 있는 자산. 바로 이 점에서 미술은 세대교체의 시대를 살아가는 자산가들에게 가장 감각적이고 전략적인 설계를 가능하게 합니다. 

자산가가 작품을 고르고 수집하는 행위는, 단순한 취향이 아니라 전략적 수집인 셈입니다. 그렇기에 미술은 ‘기획된 유산’이라는 관점으로 접근할 수도 있습니다. 취향보다 전략을 바탕으로 한 컬렉션을 만들 수도 있는 것이죠. 전략적인 설계, 기획된 유산과 같은 미술의 기능은 영리치 컬렉터의 성장과 함께 점차 확장되는 추세이기도 합니다.

2024크리스티와 소더비 등 주요 경매 하우스 집계에 따르면 전체 구매자 및 입찰자의 25~33%가 밀레니얼(MZ) 세대였다. 
 

미술 시장에서 새롭게 뻗어 나가는 가지, 영리치 컬렉터 



미술 시장의 새로운 주인공은 ‘영리치’입니다. 자산을 물려받거나 빠르게 축적한 젊은 세대는 이제 컬렉터로서의 주도권을 갖고 시장에 등장하고 있습니다. 과거 자산가들이 미술품을 수집한 이유는 비교적 명확했습니다. 그들은 주로 미술관 후원자이자 아트 애호가로서, 작품을 보존하는 것에 높은 가치를 두었죠. 국내 1세대 자산가 컬렉터를 대표하는 인물로는 일제강점기 시절, 전 재산을 들여 일본으로 유출될 뻔한 문화유산을 사들여 지킨 간송 전형필 선생, 그리고 한국 근대미술과 고미술을 중심으로 방대한 컬렉션을 남긴 삼성그룹 고(
) 이건희 회장이 있습니다.

조선 말기, 손꼽히는 부호였던 간송 전형필 선생. 그의 컬렉션은 서울과 대구에 미술관을 세울 만큼 견고한 유산이 되었다. 사진은 2024년 새롭게 문을 연 '대구간송미술관' Ⓒ대구간송미술관 제공

전통 컬렉터들이 문화유산을 수집하고자 했던 의지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지만, 영리치 컬렉터들은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젊은 컬렉터들은 부모 세대의 컬렉션을 물려받는다 하더라도, 그대로 유지하기보다 자기 취향에 맞게 재구성하는 것을 선호하기도 합니다. 특히, 과거에는 여성 작가들이 미술 시장에 거의 없었기 때문에, 다양한 작가군을 섭렵하기 위해서라도 컬렉션의 재구성은 불가피한 것이죠. 그리고 이들은 단순히 작품을 소장하는 데 그치지 않고, 컬렉팅의 과정과 경험 자체를 하나의 창조적 행위로 재정의하기도 합니다. 이런 측면에서, 경매사 크리스티의 CEO 보리 브레넌은 “영리치 컬렉터들에게 예술이 자신과 관련이 있고, 흥미롭고, 의미 있는 것이라고 느끼게 하는 경험을 만들어줘야 한다.”고 말합니다.

 

보여주는 방식부터 서사를 만드는 요즘 컬렉터들의 문법


 
영리치 컬렉터의 등장을 단순히 미술 시장의 수요 증가로만 해석하기엔 부족합니다. 이들은 작품을 고르는 기준, 예술을 소비하는 방식, 컬렉터로서의 역할까지 새롭게 정의하며, 시장의 문법 자체를 바꾸고 있기 때문입니다. NFT 아트나 온라인 아트 플랫폼처럼 기술의 발달이나 매체 변화에서 비롯된 변화도 있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예술을 대하는 시선과 컬렉팅의 방식과 목적이 진화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들은 예술을 퍼스널 브랜딩, 라이프스타일 설계, 그리고 네트워킹 수단으로 적극 활용합니다. 특히 영리치는 미술 시장에서의 태도 그 자체를 큐레이팅한다는 개념에 익숙합니다. 단순히 작품을 소장하는 데 그치지 않고, “어떤 작가를 언제부터 주목했는가”, “어떤 전시를 누구와 보러 가는가”, “어떤 갤러리 오프닝과 파티에 가는가”와 같은 행동을 통해 자신만의 컬렉팅 서사를 만드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작품을 고르고, 소장하고, 보여주는 모든 과정이 곧 컬렉터로서 안목과 전략을 보여주는 행위입니다. 오늘날에는 이 일련의 과정이 단순한 취향 표현을 넘어, 미술 시장에서 컬렉터의 영향력을 구축하는 중요한 지점으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프리즈 위크, 늦은 밤까지 이어지는 오프닝과 파티를 '호핑(hopping)'하는 영리치 컬렉터들. Ⓒ이은송

이러한 배경에서 컬렉션은 작품이 지닌 가치만으로 평가되지 않습니다. 미술은 기본적으로 ‘보이는 자산’입니다. 아무리 수장고 깊숙이 숨긴다 해도, 컬렉션이 자산으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결국 드러나야 하며, 이야기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누가, 왜, 어떤 배경에서 소장했는지가 컬렉션 전체의 의미와 가치에 영향을 줍니다. 아트 컬렉팅은 감각의 사적인 표현에 머물지 않습니다. 그리고 영리치들의 움직임은 이 점을 정확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앞으로 전 세계적으로 20년간 84조 달러의 재산이 세대를 넘어 이전될 것으로 예측됩니다. 그렇기에 X세대, 밀레니얼, Z세대를 포함한 영리치들의 취향, 가치관, 시장에 참여하는 방식은 미래의 미술 시장에서 ‘누가 떠오르고, 누가 사라질지’를 결정하는 기준이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처럼 시장이 재편되는 시기일수록, “지금 주목해야 할 작가”, “지금 사야 하는 작품”과 같은 자극적인 정보가 쏟아지며 시장에는 혼란이 가중됩니다. 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중요한 건 “무엇을 가졌는가” 보다 “왜 이 선택을 했는가” 입니다. 컬렉팅은 단기 수익이 아니라, 길게 놓고 자신의 안목과 세계관을 드러내는 방식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미술시장 패러다임 전환 속에서 어떤 기회를 탐색해야 할까



오랫동안 미술은 자산가의 취향과 안목을 드러내는 소프트 파워였습니다. 누가 어떤 작가의 작품을 소장하느냐는 곧 그 사람의 감각과 영향력을 상징하는 언어가 되었고, 이는 미술 시장에서 보이지 않는 힘으로, 때로는 노골적으로 작용해 왔습니다.

최근 이 미묘한 힘이, 더 구체적인 자산 구조 안으로 들어오고 있습니다. 글로벌 고액자산가 리포트에 따르면, 상속 이후 자산을 재배치하는 과정에서 문화예술 분야에 대한 지출이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이는 아트가 이제는 부동산현금주식처럼 본격적인 자산의 한 축으로 고려되고 있다는 신호입니다.

이 흐름은 미술관이나 문화재단 설립, 작가와의 협업, 브랜드 아트 프로젝트 등으로 구체화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아랍에미리트, 싱가포르, 한국처럼 신흥 자산가가 증가하는 지역에서 프라이빗 뮤지엄이 빠르게 늘어나며 이 흐름이 더욱 가속화되고 있습니다.

이에 발맞춰 글로벌 미술 시장의 지형 또한 변하고 있습니다. 오랫동안 뉴욕과 런던 등 서구를 중심으로 움직이던 미술 시장은, 이제 아시아로 영향력을 확장해 나가고 있습니다. 특히 아시아의 영리치 컬렉터들이 적극적으로 시장에 참여하면서 비로소 ‘글로벌 아트 마켓’의 새로운 동력이 되고 있습니다. 아시아가 미술시장의 새로운 기회의 영역으로 발전하고 있는 것이죠. 

다음 편에서는 지금 글로벌 아트 마켓에서 ‘아시아’가 왜 중요해지는지, 기존 컬렉터에게는 어떤 확장을 가능하게 하고, 새로운 컬렉터에게는 어떤 기회의 장이 되고 있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1) artnet (2025.03.). 'The Intelligence Report'
2) Art Basel & UBS (2025). 'Art Market Report 2025 by Arts Economics'
3) Art Basel & UBS (2024). 'Art Market Report 2024 by Arts Economics'
4) 데이비드 조슬릿. 『예술 이후』. 이진실 옮김. 현실문화A. 2022
SPI 리치라운지 라이프스타일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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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산을 소유의 대상이 아닌 감각과 철학, 태도와 문화까지 담아내는 그릇이라고 생각하고, 그 안에 담아낼 수 있는 콘텐츠를 만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