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글로벌 부동산 트렌드는 단순한 임대 수익을 넘어 문화와 콘텐츠가 흐르는 ‘문화적 자산’으로서 공간의 가치를 탐구하고 있습니다. 특히 유럽의 여러 도시들은 방치된 부지나 오래된 건물을 재생해 문화적, 사회적 가치를 담은 복합문화공간으로 탈바꿈하는 다양한 시도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부동산 자산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는 사례들을 소개하겠습니다. 공간에서 커뮤니티 운영 방식이 어떻게 경쟁력을 만들고, 재정의하는지도 살펴보겠습니다.
도시 재생형 스마트 커뮤니티 복합단지, ChorusLife
이탈리아 베르가모의 ChorusLife는 2024년에 문을 연 약 15만㎡ 규모의 첨단 스마트 디스트릭트입니다. 이곳은 베르가모 동부 방치된 상태의 유휴지였던 철도 작업장 부지를 주거·상업·문화·여가 중심의 복합단지로 변신시킨 사례입니다. 지역 정부의 지원 하에 이탈리아 폴리핀(POLIFIN) 그룹과 코스팀(COSTIM)이 주도한 공공-민간 협력 모델의 도시 재생 프로젝트이죠. 2018년 건축가 조제프 디 파스쿠알레(Joseph Di Pasquale)의 구상 아래 계획에 들어갔으며, 2024년 말부터 운영을 시작했습니다.
Chorus Life Bergamo Space Program ©Linrender / globaldesignnews.com
이 개발의 특징 중 하나는 '토지 소비 제로' 달성을 목표로 했다는 것입니다. '토지 소비 제로'는 새로운 토지를 개발하거나 확장하지 않고 이미 개발되거나 방치된 토지나 건축물을 재활용해 개발을 진행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자연환경의 훼손 없이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 내는 것이죠. ChorusLife는 이 같은 도시 재생 사례인 동시에 다양한 시설과 유기적으로 구성된 여러 프로그램도 눈길을 사로잡습니다. 일단 시설적 측면에서 살펴보면 중앙에 조성된 대형 광장을 기준으로 6,500석 규모의 아레나, 4성급 호텔(107객실), 레지던스(74세대), 8,000㎡ 규모의 도심형 스파&웰니스 센터, 쇼핑센터 등을 조성했습니다. 여기에 상점과 레스토랑, 1,000대까지 수용할 수 있는 지하 주차장, 2만㎡에 달하는 녹지 공원과 보행·자전거도로, 옥상 순환 스카이 조깅 트랙 등도 포함됩니다. 주거 공간의 경우 혁신적인 구독형 서비스 레지던스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곳에 거주하는 74세대는 월 구독료를 내고 각종 어메니티부터 생활 서비스까지 제공받는 올인클루시브형 주거 혜택을 누립니다.
Chorus Life Bergamo ©Linrender / globaldesignnews.com
공간과 공간은 코스팀이 개발한 '디지털 플랫폼(GSM, Global System Model)으로 연결됩니다. 건물마다 디지털 트윈 기술이 적용돼 에너지·안전·시설을 통합 관리하고, 사용자 데이터에 기반한 맞춤 서비스와 편의를 제공합니다. 이런 기술 인프라는 커뮤니티 공간의 운영 효율성과 이용자 만족도를 높여주어 지속적인 공간 활용도를 높이는 역할도 합니다.
(좌)중앙 광장 (우)상업시설 ©Linrender / globaldesignnews.com
‘연결, 사람 중심, 디지털 기술로 강화된 지속 가능한 공동체’라는 비전처럼 ChorusLife는 세대를 아우르는 커뮤니티 생활을 지향합니다. 단지 내 위치한 광장과 보행로는 동선 이동이라는 목적에 더해 문화 이벤트가 열리는 무대로도 활용됩니다. 젊은 층부터 노년층까지 함께 어우러지는 '3세대 어반 캠퍼스'로 명명되었죠. 이탈리아 폴리핀 그룹은 실제 2023년 ChorusLife의 소프트 오픈 이후 수만 명의 시민들이 이곳을 방문자가 아닌 커뮤니티의 일원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이를 통해 문화 프로그램 운영을 통한 공간 활성화는 지역의 문화적 갈증뿐 아니라 상업시설의 활력을 불어넣는 등 사회적 가치까지 창출한다는 사실을 확인한 것입니다.
(좌)다목적 아레나 시설 (우)휘트니스 시설 ©Linrender / globaldesignnews.com
다양한 실험을 통해 자립형 비즈니스 생태계를 구축한 ChorusLife의 운영은 민간 SPC(특수목적법인, special purpose company) Chorus Life SpA가 전담합니다. 이들은 단지 전체를 통합 운영하며 부지 내 상업 임대, 주거 임대, 호텔 및 이벤트 수익 다각화 등 다양한 수익 확보에 주력합니다. 동시에 상업 공간 임대 마케팅을 맡은 포르투갈 회사 소나에 시에라(Sonae Sierra)는 ChorusLife를 “사회적 중심지(social fulcrum)”로 만들면서도 혁신성과 지속가능성을 놓치지 않겠다는 목표하에 운영하고 있습니다. 수익과 공공성 두 가지 측면 중 어느 한쪽도 소홀하지 않는 셈이죠. 지역 사회의 긍정적 여론까지 확산되며 ChorusLife는 이탈리아 도시 재생 프로젝트의 성공 모델로 자리 잡았습니다. 이에 타 도시인 밀라노 리나테, 트리에스테 등에서 동일 모델의 개발 계획이 진행 중입니다.
ChorusLife는 민간 개발사가 개발 운영을 담당하면서도 도시의 사회적 과제 해결에 기여한 핵심 사례입니다. 동시에 커뮤니티 중심 공간 모델이 확장성과 투자 매력을 겸비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성공 모델이기도 합니다.
크리에이티브 오픈 플랫폼, Dropcity
이탈리아 밀라노 중앙역 철도 아래 숨겨져 있던 40,000㎡ 규모의 옛 물류 터널(Magazzini Raccordati)이 재탄생했습니다. 2017년 건축가 안드레아 카푸토(Andrea Caputo)가 이곳을 "건축·디자인의 수직적 문화 거점으로 바꾸겠다"라는 구상을 내놓으며 프로젝트가 시작되었습니다. 유럽에 전례 없는 새로운 어반 모델을 만들겠다는 비전 아래 민간 주도 개발이 이뤄졌습니다. 철도 자산 소유자인 그란디 스타치오니 리테일(GSR)은 지역 단체들과 협업하여 이 재생 프로젝트를 공동 기획하였고, 프랑스계 도시재생 전문회사 누드(Nhood)가 약 1,600만 유로를 투자하며 사업이 실현됩니다. 이렇게 건축·디자인 중심지 밀라노를 대표하는 오픈 플랫폼 공간, Dropcity가 완성되었습니다.
밀라노 중앙역의 마가치니 라코르다티 ⓒ immobiliare.it
2024년 상반기부터 단계적으로 문을 연 Dropcity는 총 28개의 터널 공간, 1만㎡ 이상의 면적에 전시 갤러리, 목공·금속 등 제작 워크숍, 로봇 공방, 첨단 프로토타이핑 랩, 건축·디자인 전문 도서관, 공유 오피스 및 스튜디오 등이 자리 잡은 건축&디자인 분야의 개방형 플랫폼입니다. 터널마다 각기 다른 테마의 프로그램이 운영됩니다. 동시에 터널과 터널을 연결해 방문객들은 도시 속 독특한 지하 예술 산책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즉, Dropcity는 전시, 작업, 교육, 커뮤니티 교류를 한데 묶은 새로운 유형의 “도시형 건축 디자인 캠퍼스”에 가깝습니다. 실제 2025년 디자인위크 기간에 개막한 첫 기획전 ‘Prison Times’에서는 터널 내부의 극적인 아치 공간을 활용한 설치 미술 전시와 더불어 국제 건축가·학자들의 토론회, 라디오 방송, 디자인 워크숍 등 다채로운 이벤트가 열렸습니다. Dropcity가 지식 교류와 공론장의 기능을 한 것이죠.
개발 과정부터 디자이너와 시민을 참여시키며 공간에 대한 애착과 관심을 키웠습니다. 이는 Dropcity가 완성되기도 전에 수천 명의 방문객을 모으는 원동력이 되기도 했습니다. 단순히 완성된 건물을 제공하는 것이 아닌 과정 자체가 교육이고 퍼포먼스였던 것이죠. ‘함께 만들어 가는 플랫폼’의 상징이 될 수 있었던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밀라노 시 주세페 살라 시장은 “Dropcity는 젊은 세대 전문 인력 커뮤니티를 지원하기 위해 탄생했다”라며, “국제적 창의도시로서 밀라노의 미래를 위해 꼭 필요한 도시재생 철학의 실천”이라고 평가했습니다.
(좌)Construction Assembly by Parasite 2.0 전시 (우)Motto by Ganko x Motto 전시 ©Delfino Sisto Legnani
운영 측면에서 살펴보면 Dropcity는 사적 자율성과 공적 지원이 결합한 특별 모델입니다. 공식 운영 주체는 안드레아 카푸토가 이끄는 비영리 조직으로, 공간의 관리·기획을 총괄합니다. 이들은 Dropcity를 지역 거점이자 글로벌 디자인 담론의 장으로 만드는 데 기여했습니다. 민간이 주도하되 공공의 이념을 실현하는 자율관리형 플랫폼으로 포지셔닝하며 기존 공공 주도의 경직된 문화시설과 차별화한 것이죠.
'Prison Times’ 전시 ©Piercarlo Quecchia
혼합 수익 구조를 통한 지속가능성도 모색했습니다. 28개 터널 중 일부는 스타트업이나 디자인 스튜디오에 임대해 임대 수익을 창출하고, 공공전시나 이벤트를 통한 관람객 유치 효과를 높여 사람들이 지속적으로 찾는 공간으로 만들어갑니다. 연중 진행되는 디자인 전시, 워크숍, 강연, DJ 파티 등은 밀라노의 관광 및 예술산업분야의 새로운 콘텐츠로 자리 잡아 스폰서십과 티켓 수익의 가능성도 열었습니다. 이렇게 수익적 측면을 고려한 운영을 하지만, 상업적 이윤 극대화보다 공공적 가치 실현, 주변 상권 연계로 인한 지역경제의 상생도 고려합니다.
프로젝트 투자사인 Nhood와 GSR은 Dropcity를 통해 낙후된 철도 주변 지역의 부동산 가치를 향상시키고 향후 추가 개발 여력을 확보하게 됩니다. 실제로 GSR 관계자는 “방치된 터널의 부활로 도시의 두 구역을 잇는 관계 회복이 가능해졌다”라고 말하며, 지역 사회·문화적 측면에서 Dropcity가 가진 의미를 강조했습니다. 결과적으로 Dropcity는 민간의 창의적 발상, 공공의 공간 지원, 지역 커뮤니티의 참여가 어우러져 혁신적이면서 수익성 있는 부동산 개발이라는 결과를 보여준 대표 사례로 자리 잡았습니다.
코리빙·코워킹 하이브리드 공간의 글로벌 브랜드화, The Social Hub
The Social Hub는 숙박(호텔·학생기숙사)과 업무(코워킹)를 결합하고 여가·교육 기능까지 아우르는 하이브리드 공간 브랜드입니다. 2012년 네덜란드에서 “더 스튜던트 호텔(The Student Hotel)”이라는 이름으로 시작해 2022년 The Social Hub로 리브랜딩하고 현재 유럽 전역에 20여 개의 공간을 운영 중입니다. 암스테르담·파리·바르셀로나 등 주요 도시에서 머물고, 일하고, 즐기는 모든 활동이 가능한 공간으로 포지셔닝했습니다.
최근에는 B Corp 인증까지 획득하여 ESG 경영을 표방하며 유럽 각지로 확장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2025년 초에는 포르투갈 포르투와 이탈리아 피렌체(두 번째 지점)·로마 등에 신규 허브 개장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신규로 진행하는 3개 프로젝트 모두 지역의 유휴 부지나 건물을 재생해 복합시설을 도입한 지역 재생형 개발로, 지역 커뮤니티에 공헌한다는 점을 강점으로 내세웁니다.
포르투갈에 개장 예정인 신규 허브의 외관 ©Rendering of The Social Hub Porto
The Social Hub는 일반 호텔과 달리 다양한 거주·이용 형태를 수용합니다. 곧 개장할 포르투 지점의 경우 4성급 호텔 수준에 271개 객실과 39개 장기 임대 아파트를 갖추고 있으며, 현지 젊은 층과 디지털 노마드들을 위한 프리미엄 코워킹 공간, 회의실과 이벤트홀, 지역 특색을 살린 식음료 매장, 체육관, 옥상 수영장과 바까지 구성되어 있습니다. 피렌체 신축 허브(벨피오레 지구)는 550실 규모 호텔과 600인 수용 코워킹 스페이스, 회의·행사 공간, 올림픽 규격의 옥상 수영장, 7,000㎡ 규모의 공공 루프탑 공원이 포함된 초대형 복합 단지로 설계되었습니다. 로마 허브는 옛 철도세관 창고부지에 조성되어 일부 역사건물을 리노베이션해 패션·디자인학교(Accademia Italiana) 캠퍼스와 이벤트 장소로 활용하고, 그 옆에 392실 규모의 신축 건물도 지을 계획입니다. 또한 부지 중앙에 1만㎡ 규모의 공개 녹지공원을 조성해 인근 주민 모두에게 열린 휴식 공간을 제공합니다. 이처럼 각 지역의 The Social Hub는 지역의 맥락과 필요에 맞춘 시설을 갖추고, 단순 숙박객뿐만 아니라 지역 주민에게도 서비스를 제공하는 지역 생활 인프라의 역할까지 수행하고자 합니다.
The Social Hub 내 (좌)호텔 내부 모습 (우)코워킹 스페이스 전경 ©Sal Marston
“목적 있는 경험을 제공하는 커뮤니티 중심 공간”이라는 철학을 바탕으로 The Social Hub에서 다양한 배경의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교류하도록 유도합니다. 실제 각 허브에서는 연간 200회 이상의 커뮤니티 이벤트가 열립니다. 쿠킹 클래스, 스타트업 워크숍, 빈티지 마켓, 문화 공연 등 이벤트의 구성과 주제도 다양합니다.
포르투 지점의 경우 오픈과 함께 현지 주민과 투숙객 모두 참여 가능한 이벤트 시리즈를 준비해 여행자-현지인-학생-비즈니스맨을 연결하고 사회적으로 긍정적 영향을 창출하고자 계획 중입니다. 이뿐 아니라 로컬 커뮤니티와의 연결을 위해 지역 기관과 파트너십 유치에도 적극적입니다. 로마 허브는 이탈리아나 디자인 학교를 유치하며, 지역 청년 교육에 기여할 뿐아니라 학생들이 국제적 네트워크에 자연스럽게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열어줍니다. 일부 도시는 Social Hub를 청년 창업 플랫폼으로 활용하며, 지역 자선단체와 협력해 사회공헌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도 합니다. 이같은 커뮤니티 활동은 수익과 직접 연관되지 않더라도 브랜드 충성도와 지역사회 지지를 높여 장기적 관점에서 공간의 안정적 운영에 기여합니다.
포르투갈 포르투 지점 소셜 허브 내 라운지 전경 ©globetrender.com
비즈니스 모델로도 The Social Hub는 안정적 수익을 창출하고 있습니다. 혼합 임대 및 멤버십 구조를 통해 현금 흐름을 확보합니다. 관광객에게 호텔 객실을 임대하고, 일부 객실은 대학생이나 교환학생을 대상으로 학기 단위 임대도 제공합니다. 장기 투숙객을 위한 월 임대 방식도 활용하며, 혼합 임대 모델로 운영 중입니다. 이는 변화하는 시장 상황, 계절에 따른 수요 변동 등의 리스크를 줄이는 역할도 합니다.
코워킹 공간과 회의실은 지역 창업가, 프리랜서들에게 회원권이나 시간제 이용료 형태로 대여해 추가 수익을 형성합니다. 또한 The Social Hub는 입주자와 지역주민 모두가 가입 가능한 커뮤니티 멤버십을 운영합니다. 일정 비용을 내면 코워킹 이용, 이벤트 참가, 호텔 할인 등의 혜택을 제공합니다. 지역 기반의 충성 고객층을 형성하고 지속적 수입과 공간 활성화를 동시에 달성하는 전략입니다.
전 지점은 각 도시의 특성을 살리되 통일된 철학과 디자인으로 관리되며 “국제적이면서 로컬한” 분위기를 유지합니다. 이런 브랜드 가치는 젊은 층에게 높은 인지도와 선호도를 얻는 이유가 되고 있으며, 투자 유치에도 도움이 됩니다. 실제로 글로벌 연기금과 부동산 펀드 등이 투자하며, The Social Hub는 유럽 호스피탈리티 시장의 유니콘 기업으로 성장했습니다. 이같은 결과는 커뮤니티 운영을 접목한 부동산 모델이 높은 수익성과 사회적 가치를 동시에 거둘 수 있음을 증명하는 성공 사례입니다.
커뮤니티 운영을 기반으로 한 복합문화 공간은 투자자에게 단순 임대수익 이상의 다차원적 보상을 제공합니다. 물론 초기 기획 단계에서 세심한 커뮤니티 이해와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조율이 필요하므로 전통 개발보다 복잡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브랜드, 공동체, ESG, 사회적 자본 등 비재무적 가치를 전략적으로 활용하면 공간의 장기 안정성과 수익성을 한층 높일 수 있음을 유럽의 개발 사례들이 입증하고 있습니다.
쉽지 않은 도전이지만, 성공할 경우 공간은 대체 불가능한 문화적 자산이 될 확률이 높습니다. 그렇기에 국내 유휴 공간 재생, 복합 단지 개발 등의 기획에도 좋은 인사이트로 작용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10년, 20년 후에도 지속적으로 투자 가치와 사회적 가치를 함께 높이며 사람들의 관심을 받는 공간을 계획하고자 한다면, 공간을 매개로 한 커뮤니티 구축과 문화 자산화 측면에 관심을 가져 보면 어떨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