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을 소비하는 계층의 니즈가 다양해지고 주택 구입의 결정권을 갖는 연령이 젊어지는 것과 무관하지 않아 보입니다. 이런 추세에 연장선에서 ‘보통 사람의 집’으로 여겨지던 아파트가 ‘부자들의 특별한 주거공간’으로 대체되는 경향도 나타납니다. 아파트 시장의 품질 경쟁에 불을 붙이는 요인 중 하나이죠. 이처럼 다변화하고 있는 2025년 고급주택시장의 현주소를 세 차례에 걸쳐 진단해 볼까 합니다.
고급주택은 어떤 기준으로 결정될까?
‘“복권에 당첨돼 돈 걱정 없이 집을 고를 수 있다면, 어디에 살고 싶으신가요?”
이 질문에 대한 답은 개인의 선호나 기준에 따라 다양할 것 같습니다. 누구는 푸른 잔디가 깔린 조용한 저택을 꿈꾸기도 하고, 또 다른 사람은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펜트하우스를 상상하기도 하겠죠? 고급주택의 이미지는 개인의 선호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그 규모나 가격은 상상에 따라 꽤 차이가 있을 듯합니다.
‘고급주택’의 한 형태 Ⓒ셔터스톡
사람마다의 ‘고급주택’은 다른 모습이겠지만, 실제 ‘고급주택’은 명확한 기준에 따라 정의됩니다. ‘가격이 일정 금액 이상이거나’, ‘면적이 특정 기준 이상인 집’이 정의 값이라 생각하실 수 있으나, 사회적으로 ‘고급주택’애 대해 명확한 기준을 제시한 건 바로 세법입니다. 1986년 제정된 지방세법 시행령 제13조에서는 별장 및 고급주택의 정의를 구체화하며, 사치성 부동산에 대한 취득세 중과세 규정을 마련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40여 년 전이라 현재의 부동산 시장과는 괴리가 있지만, 이 기회에 ‘고가주택’의 개념과도 비교해 정리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고가주택과 고급주택은 그 기준을 정하는 법적 근거부터 다릅니다. 고가주택은 소득세법에 근거해, 실거래가액이 12억 원을 넘는 주택을 의미하죠. 보유 및 거주기간 등의 요건을 충족한 1가구1주택자라 할지라도, 양도소득세가 비과세되지 않습니다. 다만 12억 원을 초과하는 금액에 대해서만 안분하여(공통으로 사용된 매입세액 중 면세 해당 비율만큼만 불공제함) 양도세를 부과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요즘 서울 아파트 실거래가 기준으로 보면 12억 원이 과연 ‘고가’라는 표현에 걸맞은 수준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드는 게 현실입니다. 고가주택은 ‘가격’에만 근거한 규정이므로, 주택의 면적이나 부대시설 등에 대해 묻지도 따지지도 않습니다.
반면 지방세법이 규정하는 고급주택은 가격과 면적 및 부대시설 등을 포함해 구체적으로 명시하고 있습니다. 고급주택이 ‘사치성 부동산’으로 판단될 경우, 기본 취득세율에 8%를 추가해 최대 12%까지 부과하는, 일종의 징벌적 중과세 규정이 적용되기 때문입니다.
현행 지방세법상 고급주택 기준은 다음과 같습니다.
- 일반 주택의 경우, 주택 가격이 9억 원을 초과하면서
- 연면적이 331㎡(300평)를 초과하거나
- 대지면적이 662㎡(200평)를 넘는 경우
- 엘리베이터나 에스컬레이터, 수영장(67㎡ 이상) 등 어느 하나라도 설치되어 있다면,
고급주택으로 간주합니다.
- 공동주택의 경우, 주택 가격이 9억 원을 초과하고
- 전용면적이 245㎡를 초과하거나
- 복층 구조의 경우 274㎡를 초과할 경우, 고급주택으로 판단합니다.
평창동 70억 원 단독주택 vs. 100억 원 나인원한남, 둘 중 고급주택은?
40여 년 전 만들어진 사치성 부동산 기준을 여전히 적용하고 있다 보니, 가격 기준인 9억 원은 서울 아파트 평균가격에도 못 미치는 수준입니다. 따라서 현실적으로 고급주택 여부를 판단할 때 적용하는 면적이 가장 중요한 기준점으로 작용합니다. 이 때문에 실제 현실에서는 납득하기 어려운 일들이 벌어지기도 합니다. 성북동의 대지면적 662㎡가 넘는 70억 원 수준의 단독주택을 매입할 경우, 취득세 중과세율인 12%가 적용되지만 같은 금액의 전용면적 245㎡가 넘지 않는 아파트일 경우, 고급주택으로 판단하기 때문에 3%의 일반세율만 내면 됩니다(1주택자 기준).
실제 올 1월 조세심판원이 평균 거래가격 100억 원을 넘는 '나인원한남'에 대해 고급주택 취득세 중과 취소 결정을 내린 사례가 이를 잘 보여줍니다. 2023년 서울시는 나인원한남의 펜트하우스(전용 244㎡) 124가구와 복층형(전용 273㎡) 43가구 등 총 167가구를 고급주택으로 분류하고, 기존 취득세율(2.8~4%)에 8%를 추가한 중과결정을 내려 시행사인 대신프라퍼티에 약 800억 원, 수분양자들에게 약 1,200억 원의 취득세를 부과했습니다.
나인원한남은 평균 거래가격 100억 원을 넘지만, 세법상 ‘고급주택’은 아니다. Ⓒ나인원한남 홈페이지
이에 분양자들은 취득세 중과처분 취소 소송을 제기했고, 지난 1월 최종적으로 조세심판원은 주민들의 손을 들어주었습니다. 지방세법 규정에 따라 해당 주택들이 지방세법상 고급주택의 기준인 전용면적 245㎡(복층형 274㎡) 기준을 각각 1㎡씩 미달하고 지하 주차장과 창고 등은 공용면적으로 간주되므로 ‘고급주택이 아니다’라고 판단한 것입니다.
현행 지방세법상 2025년 우리나라에서 고급주택의 대명사가 되어 있는 나인원한남은 고급주택이 아니지만, 그보다 저렴한 성북동 단독주택은 고급주택이라는 거죠. 강남권 고가의 공동주택 전용면적이 245㎡를 넘지 않도록 설계하는 경우 고급주택 취득세 중과 불이익을 피해 가기 위한 ‘설계적 배려’도 포함된 결정이지 않을까요?
고급주택 기준 ⒸNH투자증권
성북동 단독주택에서 타워팰리스까지, 고급주택의 진화
그렇다면 우리나라 고급주택은 어떤 과정을 거치며 변화를 거듭해 왔을까요? 1960~70년대 산업화에 따른 경제 성장과 궤를 같이합니다. 재벌이나 정계 인사들이 성북동, 평창동 등에 마당이 넓은 2층 단독주택을 지어, 가사도우미와 운전기사 등과 함께 살 수 있도록 설계한 주택이 고급주택의 표본이었습니다. 영화 ‘기생충’에 등장했던 부잣집이 전형적인 당시 고급주택의 모습이었죠.
1980년대 본격적인 강남 개발이 시작되면서, 접근성이 떨어지고 관리가 어려운 강북의 단독주택 대신 치안, 교통 접근성이 우수한 강남의 고급 빌라(다세대 및 연립) 붐이 일기 시작했습니다. 방배동, 서초동, 청담동 일대의 연립주택(빌라) 단지가 이 시기에 생겨나기 시작했고, 서초동 ‘트라움하우스’는 여전히 공동주택 공시가격 10위권 안에 드는 고급 빌라의 전형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2000년대는 고급주택이 보다 공동주택의 형태로 진화하는 시기입니다. 한때 부의 대명사였던 도곡동 '타워팰리스'를 비롯하여 목동 '하이페리온', 분당 '파크뷰' 등은 고급 자재를 사용하고 커뮤니티 시설 및 보안 시스템을 강화한 주상복합이 고급주택의 패러다임을 바꾼 것이죠. 그러나 관리효율성이 떨어지고 부대시설의 고급성과 대중성 사이에 위치했던 주상복합은 고급주택 수요자의 니즈를 만족시키는 데 한계가 있었습니다.
2010년대는 ‘고급주택은 강남’이라는 공식을 깨뜨린 시기입니다. 한강 조망권을 내세운 용산구 한남동이 강남을 능가하는 고급단지가 될 수 있다는 인식을 확산시킨 계기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호텔 수준의 커뮤니티 시설 및 서비스를 갖춘 고급 아파트 단지인 '한남더힐’ 이후 ‘나인원한남’의 인기로 강북 고급주택의 바통을 이어주게 됩니다.
2020년대는 고급주택이 형태와 기획 면에서 다양화되는 시기입니다. 입지가 좋은 강남의 소규모 토지를 활용하여 분양심사를 받지 않는 30세대 미만의 고급화된 공동주택이 성공을 거두게 됩니다. 획일화되지 않고 여러 세대를 개발할 때의 장점을 살려, 고급스럽고 차별화된 개별공간과 편의성을 존중하되 사생활을 엄격히 보호하는 공용 공간 설계로 틈새시장 공략에 성공하게 됩니다. 청담동 엘루이호텔 자리에 들어선 대표적 연예인 거주지 ‘더펜트하우스청담’을 비롯해 ‘에테르노청담’, ‘파르크한남’ 등 진짜 부자들을 위한 고급주택의 장이 열리게 된 셈입니다.
공시가격 TOP 10에 아파트 펜트하우스도 진입
한국의 고급주택 시장은 최근 몇 년간 극적인 변화를 겪고 있습니다. 해마다 최고가 아파트 거래 기록을 갈아치우고 있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최근에는 공시가격 기준 10위권 안에 아파트 펜트하우스가 진입하면서, 아파트의 고급화 경쟁에도 불이 붙고 있습니다.
2023년 8월, 파르크한남 전용 268㎡가 180억 원에 거래되며 당시 아파트 역대 최고 실거래가를 기록했습니다. 파르크한남은 장학건설이 2020년 6월 준공한 17가구 소규모 단지로 한강 변에 위치해 영구적 한강 조망이 가능하며, 대기업 회장 및 연예인 등이 다수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2024년에는 나인원한남 전용 273.41㎡가 무려 220억 원에 거래되면서 전년의 아파트 거래 최고가인 파르크한남의 기록을 갈아치웠습니다. 2024년 기준 공시가격 1위를 달리는 더펜트하우스청담은 연예인은 물론 내로라하는 유명인들이 선호하는 곳이지요.
2024년 공시가격 1위를 차지한 더펜트하우스청담 Ⓒ더펜트하우스청담 홈페이지
NH투자증권 보고서에 따르면, 2023년과 2024년 사이 공동주택 공시가격 기준 1위에서 10위 단지에 부침이 나타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더펜트하우스청담은 2023년과 2024년 연속 부동의 1위를 지키고 있지만, 2위는 2023년 나인원한남을 제치고 2024년에는 에테르노청담이 차지했습니다.
3위부터 10위까지는 2023년과 2024년에 다소 차이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런데 일부 순위 변동이 있을 뿐, 한남더힐, 아크로서울포레스트, 파르크한남, 트라움하우스 등은 여전히 비싼 곳으로 2년 연속 10위권 안에서 존재감을 보이고 있습니다. 특히 2024년 갤러리아포레가 새롭게 진입하면서 성수동의 인기를 실감케 했습니다.
눈에 띄는 변화는 2024년에 아크로리버파크와 삼성아이파크 같은 대단지 아파트가 순위안에 들어왔다는 점입니다. ‘아파트 공화국’이라 일컬을 만큼 아파트 주거 비중이 높은 우리나라지만, 고급주택 시장에서는 아파트의 영향력이 크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제 고급주택 시장에서도 아파트가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게 되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한 일입니다.
아파트가 더 이상 대중적인 주거 공간에 머무르지 않고, 고급주택으로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부자들의 연령층이 젊어지고 니즈가 다양화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앞으로는 지금보다 더 빠르게 고급주택 시장의 변화가 예상될 것으로 보여집니다. 어쩌면 그 경계가 허물어진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