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케팅은 단순히 물건을 ‘잘 파는 기술’이나 광고·홍보 활동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그것은 소비자와의 관계를 설계하고, 제품과 서비스를 통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여 전달하는 통합적이고 전략적인 활동입니다. 이러한 마케팅의 기본 틀로 오랜 시간 동안 자리 잡아온 것이 바로 4P 모델입니다. 이는 1960년대 미국의 마케팅 학자 제롬 매카시(Jerome McCarthy)에 의해 체계화된 이론으로, 오늘날까지도 다양한 산업 분야에서 핵심 전략으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4P란 제품(Product), 가격(Price), 유통(Place), 판촉(Promotion)의 네 가지 요소를 의미하며, 소비자에게 어떤 가치를 제공하고 그것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전달할 것인지에 대한 마케팅 사고의 출발점이라 할 수 있습니다.
마케팅의 4P ©modelthinkers
이제는 부동산의 상업공간을 기획하거나 지역 정보를 수집하는 과정에서 단순히 입지나 평면적 위치 정보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역세권, 메인 동선, 코너 자리 1층 상가’라는 상권분석의 정답지 같은 단어는 상황에 따라서는 매우 위험한 오답이 될 수도 있습니다. 상권을 분석하는 과정에서는 부동산 공급자 관점의 사고가 아니라 마케팅 관점에서의 통합적 사고가 더욱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제품을, 어느 지역에서, 얼마에 팔고, 어떻게 알릴 것인가?’에 대한 문제는 단순한 판매전략이 아니라, 소비자 행동과 상업공간 활용 방식에 대한 총체적인 해석입니다. 따라서 상권 분석의 핵심은 위치선정이 아닌 바로 이 4P 전략(Product, Price, Place, Promotion)에 대한 이해에서 출발할 것입니다.
전통적인 상권분석은 사람들의 동선, 유동 인구, 지하철역, 버스정류장, 횡단보도와 같은 유인시설 등 지형 중심의 데이터에 의존해 왔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소비자는 단순히 가깝고 싸서 상업공간을 방문하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공간 중에 그들의 필요에 맞는 공간 하나를 선택해서 방문합니다. 사회가 발전하고 고객들의 선택의 폭이 넓어질수록 공간 마케팅이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상권분석이 더 이상 입지에만 머물러서도 안 되고, 4P 전략 역시 더 이상 제품 마케팅의 틀에만 머물러서도 안 됩니다. 이제는 도시의 공간구조 자체를 4P의 관점에서 재해석하고 전략화하는 일이 필요합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상업지역의 도시공간구조는 입지를 마케팅 전략과 어떻게 융합할 수 있는지를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유용한 틀을 제공합니다.
상업지역의 도시공간구조
4P 전략을 토대로 도시의 공간 구조와 상권의 작동 원리를 이해하고 수립한다면, 그 마케팅 전략은 일시적 유행만을 좇는 피상적인 활동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그러한 면에서 도시 공간에 대한 Davies의 연구1는 중요한 통찰을 제공합니다. 그는 도심 내 소매업 분포가 하나의 형태로 나타나지 않으며, 다양한 구조가 동시에 존재하고 상호작용 한다고 보았습니다. 이를 위해 Davies는 도시의 상업지구를 구성하는 주요 공간 유형을 세 가지(동심원형 구조, 선형 구조, 전문기능 클러스터)로 분류하여 설명합니다.
Davies가 설명한 도시의 상권을 구성하는 세가지 구조 ©Davies의 그림을 재구성, 조훈희
첫 번째로, 동심원형 구조(concentric zone characteristics)는 소매점의 기능과 경제적 가치에 따라 도심 중심에서 외곽으로 구획되는 공간 구성을 설명합니다. 이는 W. Burgess의 동심원 이론2에서 비롯된 개념으로, Davies는 이를 도심 소매업 구조에 적용한 것이죠. 예컨대, 명품과 같이 제품의 가치가 높은 상점은 도시 중심부에 밀집되어 있고, 중간가치의 가정용품점은 도시의 중간 지역, 일상 소비재를 판매하는 식품점은 도시 외곽지역에 분포하는 식으로 상권이 나눠진다는 것입니다. 이 구조는 도시 내부에서도 임대료, 접근성, 소비자 수요에 따라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계층적 분포를 반영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는 선형 구조(ribbon characteristics)입니다. 이는 H. Hoyt의 선형 이론3과 유사하며, 주요 간선도로 및 교통 축을 따라 상업시설이 길게 확산되는 형태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Davies는 도심에서부터 외곽으로 뻗어나가는 리본 형태의 상업지역에 은행, 카페, 자동차 수리점과 같은 특정 업종이 교통 접근성과 도심 접근성에 의존하여 형성된다고 말하죠. 이러한 상권구조는 자동차 의존도가 높은 도시에서 더 뚜렷하게 나타납니다.
세 번째는 전문기능 클러스터 구조입니다. 이는 Harris & Ullman의 다핵심 이론4(Multiple Nuclei Model)과 연결되며, 도심 내부에 독립적으로 기능하는 다양한 상권이 존재한다고 말합니다. 따라서 도시의 상권이 고급(예: 위락시설), 중급(예: 소매시장, 가구점), 저급(예: 설비소) 기능으로 나뉘어 형성된다고 보았습니다. 이러한 클러스터는 소비자 집단의 소득 수준, 소비 행태, 문화적 취향 등에 따라 형성된다고 설명했죠.
도시의 공간구조를 설명하는 동심원이론, 선형이론, 다핵심이론 모델(좌측부터) ©Google
도시 상업지역의 위와 같은 구분은 4P의 요소인 제품, 가격, 유통, 판촉에 의해 형성될 수 있음을 뒷받침합니다. 따라서 앞서 설명한 도시의 상업지구를 구성하는 세 가지 유형인 동심원형 구조, 선형 구조, 전문기능 클러스터가 도시 내의 상업지역을 형성할 때 아래의 그림과 같이 복합적으로 중첩되어 구성될 수 있다고 말하죠. 이처럼 공간의 분절성과 다핵성을 이해하는 것은 부동산 마케팅의 4P 전략을 보다 정교하고 현실적으로 설계하는 데 결정적인 기반을 마련해 줍니다.
동심원형 구조, 선형 구조, 전문기능 클러스터가 복합된 상권모델 ©R.LDavies
상업지역의 도시공간구조를 활용한 4P 전략의 응용
상업지역의 도시공간구조를 활용한 4P 전략은 다음과 같이 응용될 수 있습니다.
(1) Product(제품) 전략
먼저 제품 전략을 살펴보겠습니다. Davies는 도심 내 소매공간이 고급 소비재, 일상 소비재, 전문서비스 등으로 소비 목적에 따라 나뉜다고 주장했습니다. 예를 들어 중심부엔 고급 의류나 브랜드 매장이, 외곽엔 식료품점이나 생활편의점이 자리하는 구조이죠. 따라서 고급 소비자를 겨냥한 공간에는 고가 패션, 프리미엄 카페, 체험형 문화시설을 중심으로 임차인을 구성해야 할 것입니다. 반대로 일상적인 소비 패턴이 보이는 대중교통 허브나 주거지역 근처의 상가는 편의점, 세탁소, 잡화점, 미용실 등의 일상형 업종을 주력으로 배치해야 합니다. 즉, 입지에 따라 ‘무엇을 팔 것인가’라는 제품 전략과 임차인 유치 전략은 완전히 달라야 합니다.
고가 패션, 프리미엄 카페, 체험형 시설이 위치한 강남 도산공원 상가 모습 ©조훈희
(2) Price(가격) 전략
두 번째는 가격 전략입니다. Davies는 도시 내 소매공간이 중심지와 주변지로 나뉘며, 중심지에서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지에 따라 지가(land value)와 임대료(Rent) 수준의 차이가 발생한다고 설명합니다. 이 개념은 임대료 책정이나 임차인의 매출 분석에 있어 매우 중요한 전략적 기준이 됩니다. 도심의 중심지역은 유동 인구가 많고 상업적 노출도가 높기 때문에, 비교적 높은 임대료를 적용하더라도 매출을 통해 수익성이 유지될 수 있습니다. 반면 외곽으로 갈수록 유동 인구는 줄고, 소비자의 가격 민감도는 커지기 때문에, 중심지와 동일한 가격 정책을 적용하는 것은 상가의 수익성을 악화시킬 수 있습니다. 따라서 상업 입지의 중심성과 기능에 따라 임대료는 물론, 제품 가격 또한 차등 적용해야 합니다. 이를 무시하고 가격을 동일하게 유지할 경우, 해당 상권은 경쟁력을 상실할 위험이 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소비자가 제품의 가격을 인식할 때 이미 마음속에 기준으로 삼고 있는 가격, 즉 준거가격(reference price)이 형성되어 있는 경우입니다. 이런 제품일수록 입지에 따른 가격 차등을 두기가 더욱 어렵습니다. 예를 들어, 한식당에서 판매되는 공깃밥처럼 대부분의 소비자가 이미 "1,000원 정도"라는 준거가격을 갖고 있는 제품이 임대료가 높은 중심지라고 해서 1,000원 이상의 가격을 받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되면 고객은 중심지에 대한 인식보다는 여기서 판매하는 물품은 ‘비싸다’라는 저항감만 생길 확률이 높습니다. 이는 소비자가 실제 지불하는 금액 뿐 아니라, 준거가격과의 차이를 통해 상대적 가치를 판단하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핸드메이드 제품, 특이한 디저트, 지역 특화 상품, 고급 향수나 인테리어 소품 등과 같이 소비자의 머릿속에 고정된 가격 기준이 없는 제품은, 브랜드 가치와 공간 분위기, 판매 환경에 따라 입지 기반 가격 차등 전략이 훨씬 유연하게 작동할 수 있습니다. 결국 가격 전략은 공간의 가격에 따라 단순히 '얼마에 팔 것인가'가 아니라, 소비자의 인식 속에 존재하는 가격 기준, 그리고 그 기준을 어떻게 조정하거나 해석하게 만들 것인가에 대한 정교한 설계가 필요한 영역입니다.
신사동에 위치한 티 전문점에서 판매되는 차 한 잔의 가격. 준거가격이 형성되지 않은 생소한 제품이므로 고가 정책을 유지하는 것이 가능하다. ©조훈희
(3) Place(장소, 입지) 전략
세 번째는 Place(장소, 입지) 전략입니다. Davies는 도시 내 상권이 단일한 중심지를 기반으로 구성되는 것이 아니라, 기능별로 구분된 복수의 중심지가 공존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즉, 하나의 지역이라고 할지라도 문화 소비가 이루어지는 장소, 오피스 밀집지, 저가 쇼핑 스트리트 등 서로 다른 성격과 기능을 지닌 하위 지역들이 동시에 존재합니다.
이 개념은 행정단위 중심으로 상권을 구분하는 고정관념을 깨고, Place 전략의 패러다임이 변해야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지하철역 이용객 수가 증가하고 임대료가 상승하는 상권인 성수동 지역이라고 할지라도 서울숲 주변 상권, 연무장길 상권, 중랑천 방향 북성수 상권, 한강 변 전략정비구역 상권 등 성수동 내의 다양한 하위 상권이 존재합니다. 그리고 하위 상권별 유동 인구의 목적, 소비 성향, 체류 시간, 공간 내 동선 등 이용 행태 전반을 분석하여 하위 지역이 가진 장소의 기능을 분류하는 일이 필요합니다.
(4) Promotion(홍보) 전략
마지막은 홍보 전략입니다. Davies는 도시의 상업지역은 기능적으로 분화되어 있으며, 각 상권에는 서로 다른 목적과 관심사를 가진 소비자 집단이 있음을 설명합니다. 따라서 효과적인 홍보 전략은 단일한 방식이 아니라, 공간에 따라 세분화된 메시지 설계를 필요로 합니다. 예를 들어, 고급 소비가 이루어지는 상권에서는 브랜드의 정체성을 중심으로 한 세련된 광고 및 고급스러운 마케팅 콘텐츠가 효과적일 것입니다. 그러나 일상 소비 중심의 상권에서는 할인 행사, 전단지 배포, 지역 커뮤니티와 연계한 실용적인 프로모션 활동이 더 큰 반응을 이끌어낼 수 있습니다.
성수동 서울숲 주변 아뜰리에길에 위치한 소형 잡화점과 소형 카페 및 음식점 ©조훈희
성수동 연무장길 주변의 젊은 소비층과 팝업스토어 ©조훈희
성수동 뚝섬역에서 성수역까지 이어지는 업무용 빌딩과 지식산업센터 ©조훈희
성수동 전략정비구역의 오래된 상권의 모습 ©조훈희
마케팅의 공간화, 그리고 4P를 넘어서는 마케팅 전략의 진화
이처럼 Davies의 상업지역 분화 이론은 단순한 입지 전략을 넘어, 공간 기반의 소비자 행동 모델링을 가능하게 하며, 각 장소에서 어떤 메시지를, 어떤 방식으로 전달해야 하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방향을 제시해 줍니다. 이를 마케팅의 4P 전략과 연결해 보면, 더 이상 제품, 가격, 장소, 홍보라는 네 가지 요소의 조합만으로 정의되지 않습니다. 부동산 사업을 기획하는 사람일수록 마케팅 전략 또는 입지 분석에만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도시 속 소비자의 삶의 구조를 어떻게 읽고 해석할 것인가’라는 보다 근본적인 질문에서 사업이 출발해야 합니다. 마케팅 전략이 실질적인 효과를 발휘하기 위해서는 제품을 어디서, 얼마에, 어떻게 알릴 것인가를 넘어서, 그 제품이 어떤 지역, 어떤 소비자들에게, 어떤 맥락에서, 어떤 경험 속에서 받아들여지는가를 정밀하게 해석할 수 있어야 합니다.
Davies의 이론은 도시라는 공간 속에 숨어 있는 소비 행태의 지리적 패턴을 밝혀내고, 그 안에서 작동하는 심층 구조를 꿰뚫는 인사이트를 제공합니다. 부동산 상업시설의 마케팅은 이제 더 이상 평면적인 ‘입지 분석’에만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소비자의 시간, 이동 경로, 목적, 감정, 그리고 공간에 대한 인식을 종합적으로 분석하는, ‘소비자 유·무형 데이터와 공간의 결합’이 필요합니다. 그것이 도시 안에서 마케팅이 실제로 작동하는 무대가 될 것이며, 상권의 본질을 이해하고 전략을 수립하는 출발점이 될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