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 돈 많은 젊은이들이 이렇게 많을 줄 미처 몰랐습니다."
고급주택 분양에 잔뼈가 굵은 분양대행사 대표의 일성입니다. 그들은 유명 연예인이나 스포츠 스타뿐 아니라, 회사를 매각한 사업가, 코인∙주식∙부동산 투자로 큰돈을 벌게 된 투자자, 증여나 상속으로 자산을 물려받은, 이른바 ‘금수저’ 등으로, 일명 ‘영리치’라 불리는 젊은 부자들입니다.

최고가 800억 원 내외로 최고가 하이엔드 주택으로 꼽히는 에테르노 압구정. 내로라하는 유명 연예인, 스포츠선수, 기업CEO 등이 계약해서 화제가 되었다. Ⓒ에테르노 압구정 홈페이지
하나은행이 올 초 발간한 ‘2025년 대한민국 웰스리포트’에 따르면, 2020년 대비 2024년 하나은행에 10억 원 이상 금융자산을 예치한 고객 수의 연평균 증가율은 50대 이상의 올드리치가 3%인 반면, 40대 이하의 영리치는 6%로 두 배 이상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습니다.
현장에서 만나는 영리치들 중에는 코인투자 등으로 단기간에 자산을 크게 늘린 사례가 많다고 알려져 있어, 은행 집계보다 실제 영리치의 수는 더 많을 것으로 예측됩니다. 영리치의 무기는 ‘젊음’입니다. 젊은 나이에 이미 큰 자산을 축적한 이들은 개성이 뚜렷하고, 주택을 통해 자신의 가치를 입증하고 싶어 합니다.
영리치가 많아지는 만큼, 고급주택 시장이 확대되는 속도도 더욱 빨라질 것으로 예상됩니다. 입지가 뛰어나고 상품 경쟁력이 있는 주택은 자산으로서 투자가치를 높이는 역할을 하며, ‘어디에 사느냐’가 그 사람의 자산 수준을 보여주는 지표가 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고급주택 시장의 현주소를 진단하는 두 번째 얘기를 시작합니다.
영리치에게 주택은 사회적 지위를 나타내는 지표이자 자산
많은 사람들에게 각자의 주택이 갖는 중요도가 조금씩 다르듯, 부자들도 성향과 가치관에 따라 주택을 바라보는 시선이 다양합니다. 대다수 수요자들이 집을 고를 때 주변 시세를 고려한 투자가치, 직장과의 접근성, 편의시설 및 학군 등 주변 인프라 여건 등을 따진다면, 부자들은 좀 더 디테일한 가치에 의미를 두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현장에서 하이엔드 주택 분양 마케팅을 담당하는 전문가들은 “부자들이 주택을 고를 때 중요하게 여기는 기준은 천차만별”이라고 말합니다. “평면 설계나 마감재의 수준, 방 개수나 주차대수, 조망이나 주변 환경 등 개인마다 중요한 요소가 너무 달라, 한마디로 규정짓기 어렵다”라고 토로합니다.
고급주택 중개를 전문으로 하는 빌사남펜트의 김윤은 팀장은 “코인이나 주식 전문 투자자의 경우, 집 안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기 때문에 내부 구조나 조망에 더욱 민감한 경우가 많습니다. 주택이 일터가 되기도 하고, 휴식이나 사교의 공간이 되다 보니 넓은 면적, 독립성, 편의성을 갖춘 설계를 선호하는 경우가 많다”라고 설명합니다.
최근 아파트 시장의 가격과 트렌드를 주도하는 것이 30~40대로 젊어지고 있듯, 고급주택도 영리치로 불리는 40대 이하 젊은 부자들의 니즈에 맞춰 빠르게 변화하고 있습니다. 빌사남펜트의 김윤은 팀장은 초고액자산가 중 가장 젊은 고객은 1998년생 코인투자자였다고 귀띔합니다.
자산을 드러내지 않는 것을 미덕으로 여기던 부모 세대와 달리, 자신의 사업적 성공이나 투자 성과로 자산을 키운 영리치는 주택도 명품처럼 소비하는 경향을 보입니다.
이미 명품 소비에 익숙한 이들은 희소성과 브랜드 가치의 중요성에 대해 명확히 인식하고 있습니다. 일반 소비재와 달리, 브랜드 가치를 유지하기 위해 할인 정책 없이, 판매 대상을 제한하는 방식으로 운영되는 명품 브랜드 전략처럼, 하이엔드 주택도 명품과 같은 방식으로 소비되고 있는 것입니다.
명품 가격이 쉽게 떨어지지 않듯, 입지가 뛰어난 부동산은 가치가 유지되거나 시간이 지나면서 오히려 상승하게 됩니다. 부자들은 이러한 경험을 통해 입지 좋은 부동산이 자산 보전과 증식의 수단, 즉’ 안전자산’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을 강화해 온 것입니다.
최근에는 안전자산으로서의 의미뿐만 아니라, ‘어디에 사는가’가 곧 자산의 크기와 사회적 지위를 드러내는 지표로 인식되면서, 주택의 의미가 더욱 다원화되고 있습니다. 고급주택도 점차 브랜드로 가치를 설명하는 상품으로 마케팅되면서, 구매자의 욕망을 자극하는 상품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것이 현장 전문가들의 설명입니다.
1950년대 미국 경제학자 하비 라이벤스타인(Harvey Leibenstein)이 그의 논문 《소비자 수요 이론에서 밴드왜건, 스놉, 베블런 효과(Bandwagon, Snob, and Veblen Effects in the Theory of Consumers’ Demand)》(1950)에서 소비가 가격이 아닌 비가격적 요인에 의해 결정될 수 있다는 ‘소비효과 이론’을 제시했습니다. 이 이론은 기존의 ‘소비(수요)는 가격에 의해 결정된다’라는 경제학 통념을 깨는 것이라 큰 사회적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베블런 효과(Veblen Effect)효과’와 ‘스노브 효과(Snob Effect)’입니다. 베블런 효과는 가격이 높을수록 오히려 수요가 증가하는 현상이고, 스노브 효과는 대중이 소비하지 않는 희귀한 상품일수록 더 높은 가치를 부여하고 소유하고자 하는 소비심리를 의미합니다. 이 두 효과는 일반적으로 명품처럼 희소하고 차별성 있는 소비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표현하고자 하는 심리에서 비롯되며, 오늘날 하이엔드 주택 소비자들의 태도에서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글로벌 부자, 평균 4.7채의 주거용 부동산 소유
하이엔드 주택의 변화속도가 빨라지는 것은 비단 우리나라만의 현상은 아닙니다. 글로벌부동산 컨설팅사 나이트 프랭크 2025년 보고서에 따르면, 글로벌 패밀리 오피스의 64%가 개인 주거 포트폴리오를 보유하고 있으며, 평균 4.7채의 개인 주거용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습니다. 이들의 투자 목적은 가족 사용과 유산, 자산 유지, 투자 다각화 등으로 분석되고 있습니다.
나이트 프랭크는 2024년, 전 세계적으로 1천만 달러 이상의 자산을 보유한 개인의 수가 4.4% 증가했고, 특히 북미 지역은 5.2% 성장률을 기록해, 미국을 포함한 모든 지역에서 부유층 인구가 증가함에 따라 하이엔드 주택의 수요도 점차 다변화되고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특히 두바이의 하이엔드 주택 시장이 뜨거울 것으로 예측되고 있습니다. 제한된 럭셔리 공급과 급속한 인구 증가가 강력한 성장 동력으로 작용하며, 연간 주택 가격이 5% 오를 것으로 예상되었습니다. 두바이는 특히 프라임 지역의 매물이 지난 12개월 동안 52% 감소했고 1천만 달러 이상 초고가 부문에서는 매물이 65%나 급감해, 공급 부족 현상으로 가격 상승이 더욱 가속화될 것으로 보입니다.
제네바 역시 3%의 견고한 성장이 예상됩니다. 안전한 피난처로서의 지위를 유지하면서 강한 통화, 낮은 세율, 그리고 우수한 삶의 질이 초고액 자산가들에게 지속적인 매력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2025년 제네바주의 소득세 인하 계획은 이러한 매력을 더욱 강화할 것으로 나이트 프랭크는 분석했습니다.
파리는 정치적 불안정에도 불구하고 2.5%의 성장률을 보일 것으로 예상됩니다. 약한 유로화로 영국과 미국 구매자들의 관심을 끌고 있으며, 2024 올림픽과 프랑스 총선 이후 미뤄졌던 구매 계획을 실행하려는 구매자들의 적극적인 움직임이 포착되고 있습니다.
초과 수요 두바이, 조세 피난처 제네바 상승 VS 홍콩∙싱가포르 보합
홍콩은 ‘신자본 투자 이민 제도(New Capital Investment Entrant Scheme)’가 주거 부문까지 확대되면서 5천만 홍콩달러 이상의 주거 시장이 더욱 활성화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높은 모기지 금리가 여전히 제약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어, 2025년에는 0% 성장률을 전망하고 있습니다.

홍콩의 카이탁 공항이었던 부지에 들어선 하이엔드 주거 단지 Ⓒ나이트 프랭크
싱가포르 역시 금리 하락으로 구매자들의 신뢰가 회복될 것으로 예상되지만, 현지 및 외국 구매자 모두에게 적용되는 추가구매 인지세(ABSD) 정책이 시장 과열을 억제할 것으로 보여, 2025년 가격 움직임은 상대적으로 평평할 것으로 전망됩니다.
시드니는 1%의 온건한 성장이 예상됩니다. 연방 선거, 지속되는 지정학적 불확실성, 그리고 하반기까지 이어질 것으로 보이는 금리 상황이 시장 활동을 둔화시킬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주식 시장의 호조, 제한된 매물 공급, 그리고 규모를 줄이려는 현금 구매자들의 지속적인 수요가 하방 압력을 어느 정도 상쇄할 것으로 보입니다.
이중적 양상 미국, 다시 인기 얻는 뉴욕 VS 여전한 약세 LA
미국 내에서는 지역별로 상반된 전망을 보이고 있습니다. 마이애미는 지난 5년간 84%의 급격한 가격 상승 이후, 2025년에는 0% 성장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연간 성장률이 2024년 말 3.8%로 둔화되었으며, 지난 12개월 동안 매물량이 36% 증가하면서 시장 주도권이 판매자에서 구매자로 이동하고 있습니다.
뉴욕은 3%의 성장률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됩니다. 5년간의 부진한 흐름을 딛고 뉴욕 프라임 부동산 시장이 자신감을 되찾고 있으며, 2019년 이후 처음으로 진정한 시장 확장이 예상됩니다. 재고 수준이 5년 평균보다 54% 낮은 상황이 봄 판매 시즌에 가격 지지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반면 로스앤젤레스(베벌리 힐스 및 인접 지역)는 -2%의 하락이 예상되는 유일한 시장입니다. 지난 5년간 52%의 가격 상승 이후, 재고 증가와 함께 가격 상승 동력이 약화되고 있습니다. 다만 최고급 부동산의 경우 여전히 기록적인 거래가 이루어질 것으로 예상되며, 희소성이 높은 물건에 대해서는 프리미엄을 지불할 수요도 여전히 존재합니다.

2024년 연간 프라임 주택 상승률이 가장 높았던 도시는 서울로, 18.4% 오른 것으로 나타났고 마닐라 17.9%, 두바이 16.9% 순으로 나타났다. Ⓒ나이트 프랭크
차별화된 라이프스타일 제공 여부가 하이엔드 주택의 핵심
우리나라의 최상위 부자들의 수는 글로벌 증가 속도보다 더 빠른 속도로 늘고 있으나, 그들의 니즈를 만족시키는 주택의 공급은 여전히 제한적입니다. 나이트 프랭크 보고서는 국내 부자들의 자산 증식과 투자 가능한 럭셔리 개발 확대가 한국 고급주택 가격 상승의 주요 원인이라고 분석하고 있습니다.
빌사남펜트 김윤은 팀장은 “대부분의 영리치들이 주택을 선택하는 기준은 자산의 특징이 드러날 수 있는 곳 중, 누구나 그 이름을 들으면 알 수 있는 단지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며 “많은 거래가 부모 세대에 해당하는 매도자의 주택을 영리치가 매입하면서, 자연스럽게 고급주택의 수요층이 이전되고 있다”라고 설명합니다.
현재 고급주택의 거주하는 영리치가 살고 싶어 하는 다음 단계의 주택이 제대로 공급되지 않고 있어, 향후 한동안 한국 고급주택 시장의 확장 가능성은 높을 것으로 전망됩니다. 현장의 전문가들이 바라보는 고급주택의 미래상을 통해 차세대 고급주택의 미래를 상상해 볼 차례입니다.
“앞으로도 우리나라 하이엔드 주택 시장은 더욱 확대될 가능성이 높고, 단순하게 고급화된 주택이 아닌 어떻게 차별화된 라이프스타일을 제공해 줄 수 있는가가 이 시장에서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는 열쇠가 될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