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이야기 주제는 시부야입니다. 도쿄도 시부야구는 주요 교통 거점이며, 1일 이용자 수가 약 300만 명에 달합니다. 신주쿠에 이어 도쿄 내 두 번째로 많죠. JR 동일본, 도쿄 메트로, 도쿄 전철, 게이오 전철이라는 네 개의 철도회사가 시부야역을 운영하고 있으며 JR 야마노테선, 사이쿄선, 쇼난신주쿠라인, 도쿄메트로 긴자선, 한조몬선, 후쿠토신선, 도쿄 토요코선, 덴엔토시선, 게이오 이노카시라선 등 여덟 개 노선이 연결되어 있어 일본 유수의 터미널 역으로 꼽힙니다. 시부야역을 중심으로 주변이 재개발되며 새로운 상업시설, 오피스빌딩, 공공공간이 차례로 탄생하고 있습니다. 각 개발 프로젝트를 중심으로 소개해 보겠습니다.
시부야의 새 얼굴을 담당하는 개발 자산들
1) 시부야 히카리에
시부야역 동쪽 출구에 위치한 복합상업시설로, 2012년에 문을 열었습니다. 쇼핑, 음식, 오피스, 극장 등 다채로운 용도의 공간이 모여 있으며, 11층에 위치한 대규모 극장 ‘도쿄 시어터 오브’에서는 뮤지컬과 콘서트가 개최됩니다.
시부야 히카리에 전경. 11층에는 극장 ‘도쿄 시어터 오브’가 있다. Ⓒ (좌측) Kakidai, Wikipedia, (우측) TOKYU THEATRE Orb 홈페이지
2) 시부야 스트림
2018년에 개업한 도쿄도 시부야구에 위치한 복합시설 ‘시부야 스트림’은 지상 35층 규모이며 오피스, 호텔, 상업시설, 이벤트 공간 등이 모여 있습니다. 시부야역과 바로 연결되어 접근성도 뛰어납니다. 이 빌딩이 화제가 된 계기는 롯폰기 힐스에 있던 Google Japan 법인 오피스의 이전입니다. Google Japan 법인은 일본에 설립 당시, 시부야 세루리안 타워(Cerulean Tower)에 본사를 두었으나 이후 성장하면서 롯폰기 힐스로 이전했습니다. 그 후 도큐는 Google의 재임차를 위해 전력을 다했고, 결국 시부야로 Google Japan 법인 본사 이전을 성공시켰습니다. 당시 도큐 사장은 기자회견을 통해 “어서 오십시오.”라는 이야기를 했는데, 이를 보던 필자는 모리빌딩 직원으로 복잡한 심정이었습니다.
시부야 스트림 건물 전경Ⓒ 江戸村のとくぞ, Wikipedia
3) 시부야 스크램블 스퀘어
2019년에 오픈한 복합상업시설 시부야 스크램블 스퀘어는 시부야역과 바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저층부는 상업시설로 고급 브랜드부터 캐주얼한 상점까지 다양한 매장이 입점해 있으며, 레스토랑과 카페도 다양해 여러 음식을 즐길 수 있습니다. 최상층에는 ‘시부야 스카이’라는 전망대가 있어 시부야 거리 풍경과 도쿄의 파노라마 뷰를 즐길 수 있어 많은 이들이 찾습니다.
시부야 스크램블 스퀘어 전경. 하층부 주변에 시부야역과 이어지는 육교가 보인다. Ⓒ (좌측) Sakura Torch, Wikipedia (우측) SPI 플랫폼 마케팅팀
시부야역과 인접한 ‘미야시타 레이어드 파크’ Ⓒ SPI 플랫폼 마케팅팀
4) 시부야 후쿠라스( SHIBUYA FUKURAS )
2019년에 오픈한 이곳은 시부야역 서쪽 출구의 재개발 프로젝트 일환으로 건설된 복합상업시설입니다. 지상 18층, 지하 4층 건물로 상업, 오피스, 호텔 등 다양한 용도의 공간이 모여 있습니다. 주요 특징은 버스터미널입니다. 시부야 후쿠라스 지하에 버스터미널 ‘시부야 마크시티’가 있어 공항 리무진이나 고속버스를 이용할 수 있습니다. 이로써 시부야에도 신주쿠 버스터미널과 같은 역할을 수행하는 시설이 생기며, 교통 편의성이 크게 향상되고 있습니다.
시부야 후쿠라스 전경. 건물에 버스터미널이 있다. Ⓒ (좌측) shimz 홈페이지, (우측) tokyubus 홈페이지
이같은 개발을 통해 시부야역 주변은 기존의 시설과 새로운 시설이 어우러지며 더욱 활기찬 지역이 되었습니다. 자연스럽게 관광객과 비즈니스맨 모두에게 더욱 매력적인 장소가 되었죠. 재개발은 앞으로도 계속될 예정이기에 새로운 시설과 서비스의 도입이 기대됩니다. 그렇다면 시부야는 왜 이렇게 발전을 거듭하게 된 것일까요?
시부야 개발을 주도하고 있는, 도큐주식회사
현재 시부야 발전에는 ‘도큐주식회사(東急株式会社)’와 ‘세이부 유통 그룹(西武流通グループ)’이 공헌하고 있습니다. 먼저 도큐주식회사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도큐’는 도쿄 급행전철의 약칭입니다. 일본 디벨로퍼는 크게 사철형(민간 철도 기반) 디벨로퍼와 부동산회사형 디벨로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사철형 디벨로퍼는 철도를 개설하고, 그 노선 주변을 개발하는 유형으로 도큐주식회사는 전형적인 사철형 디벨로퍼의 선두 주자입니다. 반면 부동산회사형 디벨로퍼는 상인이 주인이 되어 임대를 시작한 것이 시초로, 특정 지역을 개발해 가는 유형입니다. 실제 미쓰이 부동산은 니혼바시의 의류상, 모리빌딩은 미나토구의 쌀가게, 미쓰비시 지소는 마루노우치의 상인이었죠. 최근에는 공적 디벨로퍼로서 JP동일본(옛 국철)이나 UR(옛 주택도시정비공단) 등도 민영화를 계기로 두 사례를 모방한 비즈니스 모델을 재구축해 가고 있습니다.
현재는 일본 전역의 사철형 디벨로퍼의 비즈니스 모델은 비슷한 형태가 되었지만, 시작에는 약간씩 차이가 있습니다. 신사가 있는 불각(사찰)에 참배하려는 관광객을 대상으로 한 엔터테인먼트형으로 시작해, 점차 통근 노선 개발형 디벨로퍼로 성장한 형태의 시조가 도큐입니다. 일본 자본주의의 아버지로 불리는 시부사와 에이이치가 1918년 ‘전원도시주식회사’를 설립한 것이 그 시작이었습니다. 그는 에베네저 하워드의 전원도시 이론에 영향을 받아, 도시와 전원의 장점을 결합한 주거 환경을 만들고자 했습니다. 이때 철도는 도시와 전원도시를 연결하는 주요 교통수단으로, 주민의 통근과 물자 수송을 효율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반드시 개발이 필요했습니다. 시부사와 에이이치는 당시 78세로 이미 경제계에서 은퇴한 후였지만, 새로운 마을을 만들겠다는 그의 결심은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러나 철도 사업까지 직접 추진하지는 않았고, 제자인 고토 케타에게 철도 사업을 위임했습니다. 1922년 센조쿠 전원도시 분양과 함께 도큐전철의 첫 노선인 메구로카마타전철(현 메구로선)이 개통되었으며, 이 개발이 훗날 도큐로 이어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 후 1927년에는 시부야역에 현재의 도큐 토요코선이 개통했으며, 1934년 도큐 백화점이 생기며 성장을 거듭합니다. 사철 노선 이미지 No.1이자 젊은이의 거리 시부야를 만든 도큐지만,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닙니다. 1970년경 초등학생이었던 필자는 카메라는 들고 여러 사철을 타는 것이 취미였습니다. 당시에는 사철이 모이는 터미널에 있는 종합백화점의 크기가 해당 노선의 위상을 나타내는 지표였습니다. 그 당시 이케부쿠로에 있는 세이부백화점이 특히 거대했는데, 이를 운영하는 ‘세이부 유통 그룹’의 전성기 시대였습니다. 한편, 시부야의 도큐 백화점은 낡고 작다는 인상이었습니다.
1934년 도큐 백화점의 모습. 근교에서 전철을 타고 오는 유입 고객이 많았던 점으로 주목받았다. Ⓒkajima 홈페이지
시부야 발전을 지탱했던 다른 축, 세이부 유통 그룹
세이부 유통 그룹은 시부야 발전을 지탱하는 또 다른 축입니다. 원래 도큐와 마찬가지로 사철계 디벨로퍼였지만, 일찍이 서부 철도에서 독립해 독자 노선을 걸었습니다.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전성기였던 세이브 유통 그룹은 시부야로 진출했는데, 고토 케타의 아들인 고토 노부루가 있는 도큐가 이에 위기감을 느꼈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세이부 유통 그룹의 시부야 진출 배경은 고도성장시대 백화점 전쟁입니다. 당시 사철 터미널에는 철도 회사의 백화점이 있었습니다. 이케부쿠로역에는 도큐 노선이 없었지만, 1960년경에 도큐 백화점이 있었습니다. 백화점 전성기였기에 미래가 있는 곳에 뛰어드는 활기찬 시대이기도 했죠. 1968년 세이부 백화점도 시부야에 진출합니다. 역 주변에는 토지가 없는 탓에, 역에서 조금 떨어진 경사지에 백화점을 건축했습니다. 세이부 백화점은 철도가 주체인 세이부 그룹의 일원이었지만, 세이부 유통 그룹으로 철도회사에서 독립했습니다.
시부야 세이부 백화점 전경 Ⓒ Rs1421, Wikipedia
당시 세이부 유통 그룹은 츠카사 세이지가 이끌고 있었습니다. 그는 문화와 철학에 관심이 많았고 소설가, 시인으로도 활동하며 브랜드와 패션이라는 문화를 중심으로 한 지역 개발에 능숙했습니다. 개점 초기부터 이브 생 로랑 등 해외 브랜드를 도입했고, 1958년에는 패션 빌딩 ‘마루이’와 함께 DC브랜드(1970~80년대 일본 내에서 유행했던 패션 브랜드를 총칭하는 단어로, ‘Designer's & Character's’의 약어)를 선도했습니다. 세이부는 1969년, 츠카사 세이지의 동창이자 문화인이었던 마스다 도시지와 함께 새로운 문화적 상업시설 파르코를 오픈했습니다. 필자의 어릴 적 기억에도 혁신적인 CM과 이케부쿠로역에 붙은 예술적인 포스터가 남아있습니다.
1973년, 파르코는 시부야에 진출했습니다. 현재도 같은 장소에 있지만, 역에서 언덕을 올라가야 해서 입지 조건이 좋은 곳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이 언덕길을 파르코의 어원인 '공원'이라는 의미를 활용하여, 주변 상점가와 협력해 길 전체를 ‘공원거리(公園通り)’로 개칭하고 개발을 시작했습니다. 세이부 백화점과 파르코에 의해 1970년대부터 시부야는 젊은이 문화의 중심지가 되었고, 인접한 하라주쿠까지 그 영향이 확산되었습니다. 세이부 유통 그룹은 이후 세이존 그룹으로 이름을 바꾸었고, 그들이 만들어낸 유행은 ‘세이존 문화’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1970년대 시부야 파르코 백화점의 모습 Ⓒ파르코 홈페이지
한편, 도큐도 이 상황에 대응하여 1978년 당시 드물었던 홈센터 도큐 핸즈를, 1979년 패션 커뮤니티 109(현재의 SHIBUYA 109)를 오픈했습니다. 이 상황은 도큐와 세이부의 시부야 전쟁이라 불렸습니다. 이처럼 두 회사가 경쟁함으로써 시부야는 더욱 젊은이들이 모이는 거리로 진화해 나갔습니다. 하지만 도큐와 함께 시부야에 젊은이 문화를 구축한 세이존 그룹은 1990년대 버블 붕괴 후 점차 쇠퇴하며 2001년 막을 내렸습니다. 버블붕괴로 급하게 확장했던 사업이 무너진 것이 주요 원인입니다. 백화점이라는 비즈니스 모델이 쇠퇴한 것도 원인이 아닐까 합니다. 세이존 그룹의 한 축을 담당했던 시부야 파르코도 2016년 한차례 영업을 종료했고, 경영 주체도 바뀌었습니다. 이후 재개발을 거쳐 2019년 11월 22일 새롭게 리뉴얼 오픈했습니다. 새로운 시부야 파르코는 보다 현대적인 디자인과 다양한 상점 및 시설을 갖춰 시부야의 랜드마크 중 하나로 자리 잡으며, 세이존 문화의 유산이 여전히 시부야에 남아 있음을 보여줍니다.
좌측은 시부야 109, 우측은 시부야 파르코 전경 Ⓒ (좌측) Kakidai, Wikipedia, (우측) 파르코 홈페이지
시부야에 젊은이들이 모이는 이유, 드라마 때문이라고?!
젊은이들에게 시부야가 인기 있는 이유 중 하나는 도큐가 운영하는 철도 노선의 연선 주민이 많다는 것입니다. 도큐는 세이부가 사업을 확장하던 시기, 본업인 철도 사업을 중요하게 여기며 1960년대 덴엔토시선 신설을 시작했습니다. 덴엔토시선의 특징은 건널목이 없는 고속철도로, 교외에서 연선 주민을 시부야로 운송하며 전원도시이론을 구현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연선에서는 타마플라자나 아오바다이와 같은 전원도시론에 기초한 주택 개발이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나 개발이 시작되었을 당시는 도심의 맨션 붐과 만원 전철 통근에서 벗어나기 위해 교외에서 도심으로 회귀하는 움직임 등이 있었습니다. 이런 영향에 더해 1970년대 도시 개발과 철도망 확충에 막대한 투자를 진행한 것이 원인이 되며, 도큐는 재무 상황 악화와 부채 증가를 겪었습니다. 경영 효율화 요구 등 엄격한 경영 상황에 직면하게 되었죠.
이런 부정적 상황에서 도큐 연선을 구한 것은 1983년부터 방영된 「금요일의 아내들에게」라는 드라마였습니다. 당시 홈드라마 배경의 주류는 인관 관계가 잘 드러나고 다세대가 많은 도쿄의 시타마치였습니다. 반대로 지방에서 이주한 이들이 주로 자리 잡았던 교외의 신흥 주택지는 인간관계가 엷어 드라마가 되기 어렵다는 이유로 다뤄지지 않았죠. 그런 가운데 「금요일의 아내들에게」의 프로듀서는 새로운 드라마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으로 교외에 사는 3040 베이비붐 세대를 소재로 삼아, 덴엔토시선 연선에서 드라마를 제작했습니다. 이 드라마는 사회적 반향을 일으킬 정도로 엄청난 히트를 기록했습니다.
당시 일본 사회에 큰 파급력을 미친 드라마 「금요일의 아내들에게」 포스터 ⒸFilmarks
당시 가격이 급상승하고 있던 도심과 달리 교외에서는 중산층 가정이더라도 노력하면 단독주택 형태의 집을 구입할 수 있는 환경이었습니다. 젊은 세대는 드라마에 그려진 세련되고 깨끗한 집이나 카페, 여유로운 라이프 스타일 등을 동경했고, 그 결과 연선 지역의 이미지가 급격히 상승했습니다. 드라마의 스토리는 3040 기혼자의 불륜이 테마였기 때문에 도큐의 발전과 직접적 관련은 언급되지 않았지만, 도큐 내부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유명한 이야기입니다. 드라마의 영향으로 신세대 패밀리 층이 연선에 정착한 결과, 그들의 자녀나 손주들이 시부야에 모이게 된 것입니다. 이는 현재 시부야가 젊은이들의 거리로 자리 잡는데 주요 요인이 되었죠.
젊은이의 거리를 넘어 IT 거리로 진화한 시부야의 다음은?
현재 시부야는 젊은이의 거리일 뿐 아니라 IT 거리라고도 불립니다. 시부야는 어떻게 IT 거리가 되었을까요? 젊은 개발자나 행정 담당자의 이야기를 다룬 기사에서 자주 언급되는 이유는 교통의 편의성, 저렴한 임대료, 행정·디벨로퍼·성공한 IT 기업의 지원 등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조건을 갖춘 지역은 도쿄에 여러 곳입니다. 그중에서도 특별히 시부야를 IT 거리라고 부르게 된 것은 이곳에서 IT 사업을 시작하는 경영자들에게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필자는 일의 특성상 그들과 이야기를 나눌 일이 많은데, 공통적으로 하는 말은 시부야가 시대의 흐름에 민감하고, 본인들의 젊은 시절을 보냈던 곳이며, 시부야 거리를 좋아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이유로 시부야에 IT 회사들이 모이게 되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IT 회사 중에서 게임 회사들이 주로 모이는 이유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Google이 롯폰기 힐스에서 시부야로 돌아가며 그들과 일하고 교류하는 기업들이 시부야에 자리잡게 된 것이죠. 물론 Google이 시부야로 돌아간 것도 광고 사업이 성장하면서 발신력 있는 젊은이들이 모이는 중심지로 이동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지상과 지하로 여덟 개 노선이 연결된 시부야역은 2034년 완공을 목표로 대규모 개보수 공사 중이다. Ⓒ SPI 플랫폼 마케팅팀
현재 시부야역은 대규모 개보수 공사 중입니다. 1927년에 도큐가 시부야에 온 이후 100년이 되는 2027년, 도큐 시부야역의 재개발이 완성될 계획이었습니다. 아쉽게도 공사가 지연되며 2034년 완공 예정입니다. 지하철의 직통 운행이나 JR 시부야역의 개량 공사를 실시하고, 철도를 입체화한 재개발 등이 이어지며 지금의 시부야역은 마치 던전(미궁)처럼 느껴집니다. 그러나 이 같은 개발이 다양성을 창출하고 다음 시부야의 매력을 만들어내는 원동력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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