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소개
최근 한국의 MZ세대를 중심으로 '금요일 퇴근 후 중국 상하이행'이 새로운 트렌드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중국 정부의 비자 면제 정책이 본격 시행된 2024년부터 한국인 관광객의 상하이 방문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며, 이 활기 넘치는 도시에 대한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뜨겁습니다. 이러한 관심의 이면에는 상하이 시 정부 주도 하에 진행되는 대규모 도시 재개발 프로젝트가 있습니다. 상하이는 단순히 주거 공간을 확대하는 것을 넘어 노후 주택 개조, 역사 보존, 매력적인 문화 공간 조성, 최첨단 스마트 인프라 구축을 아우르는 복합적인 질적 변화 과정에 있습니다. '도시'라는 공간을 전략적으로 운용하는 중국의 방식, 특히 상하이가 어떻게 도시의 얼굴을 설계하고 관리해왔는지 주목하고자 합니다. RE:SHANGHAI 시리즈는 상하이의 이러한 변화를 공간, 브랜드, 그리고 문화라는 세 가지 렌즈를 통해 심층적으로 조명하며, 과거의 유산을 입고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상하이의 발자취를 밀착해서 담아내고자 합니다.
최근 “상하이 여행 가는데 현지인 핫플 추천 좀 해줘”라며 지인들의 연락이 자주 오곤 합니다. 직장에서도 마라탕을 점심 메뉴로 찾고, 농담으로 혈중 마라 농도를 맞춰야 한다는 이야기가 오갈 정도로 몇 년 사이 중국 식문화 콘텐츠가 일상에 빠르게 스며들었습니다. 이 같은 영향은 온라인에서도 점차 확대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더 나아가 직접 문화를 즐기기 위한 중국 여행도 늘어나고 있죠.
금융도시에서 ‘금요일에 떠나는 주말 여행지’가 된 상하이
MZ세대를 중심으로 ‘금요일 퇴근 후 중국 행’이 새로운 트렌드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지난 2024년 11월 중국이 최초로 한국인 대상으로 무비자 정책을 본격 시행하면서 한국인 관광객의 상하이 방문이 폭발적으로 증가했습니다. 시행 전인 2024년 9월 36,174명에서 시행 후인 12월에는 71,085명으로 급증했습니다.

디지털 공간에서도 상하이 여행에 대한 관심이 끊이질 않고 있습니다. 온라인 검색량 트렌드 역시 무비자 시행 시점을 기준으로 약 1.5배 증가했으며, 유튜브와 인스타그램에는 상하이 여행 콘텐츠가 연일 업로드 되고 있습니다. 특히 중국 여행에 대한 높은 만족도를 위한 꿀팁, 첫 중국 여행 리뷰 등의 제목으로 업로드 된 여행 콘텐츠들을 살펴보면 와이탄의 스카이라인과 조계지 건축물에 대한 긍정적인 반응이 눈에 띕니다.

상하이 대표 관광지인 와이탄의 빛나는 서구 스타일의 건축물과 초고층 빌딩뿐만 아니라 상하이 전통 주택 양식 ‘석고문(石库门,Shikumen)’ 단지로 이루어진 장원(张园, Zhangyuan)과 그곳과 인접한 난징시루(南京西路) 역시 주목받고 있습니다. 장원은 현재 중국 정부 주도 하에 진행되는 ‘석고문’ 단지 재개발 프로젝트가 한창인 곳입니다. 일부 완성된 공간에는 명품 브랜드들의 플래그십 스토어가 오픈하며 현지인과 관광객 모두에게 핫플레이스로 입소문이 나고 있습니다. 지난 6월 25일에는 루이비통 최초의 크루즈 플래그십 스토어가 이곳에 오픈했습니다. 도시의 새로운 매력을 엿볼 수 있는 공간으로 변화해 가는 장원을 비롯해 소개한 곳들 외에도 상하이 곳곳에는 눈길을 끄는 공간들이 다양하게 존재합니다.

과거 금융도시라는 수식어를 가졌던 것과 비교되는 부분이죠. 도시 매력도가 지속적으로 상승하고 있는 상하이의 도시적 면모는 언제 형성된 것일까요?
외국인만의 터전에서 공존의 공간으로 바뀐 ‘상하이 조계지’
상하이는 청나라의 작은 어촌 마을이었습니다. 1842년, 아편전쟁 이후 체결된 난징조약으로 인해, 상하이를 포함한 5개의 항구(상하이, 광저우, 샤먼, 푸저우, 닝보)가 개항되면서 변화가 시작됩니다. 개항 이후 상하이 안에 ‘조계지(租界地)’라는 공간이 등장하게 됩니다. 조계지는 영국인을 비롯한 외국인이 자유롭게 거주하고 상업 활동을 할 수 있는 외국인 전용 주거 지역으로 건설되었습니다. 이곳은 철저히 중국인의 공간이 아니었죠. 이는 이소룡 주연의 영화 <정무문(精武门, Fist of Fury, 1973)>에는 ‘중국인과 개 출입 금지’라는 표지판이 등장하고, 이에 격분한 이소룡이 간판을 발로 차 부수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는 당시 조계지와 조계지를 향한 중국인들의 적대적인 태도를 잘 드러냅니다.
하지만 1850년 시작된 태평천국 운동이라는 중국 내전으로 상황은 급변합니다. 약 14년 넘게 진행된 중국 대륙의 대규모 내전 속에서, 살기 위해 중국 난민들이 찾은 곳이 바로 상하이 조계지였습니다. 1862년, 태평천국군이 상하이를 세 차례 연속 공격하게 되면서 더 많은 중국 피난민들이 조계지로 몰려들었습니다. 조계지는 외국인들의 행정권 하에 있는 자치구였기 때문에 청나라의 공권력이 거의 미치지 않아, 난민들에게는 피난처이자 안전지대의 역할을 했던 것 같습니다. 조계지는 중국인이 빈번하게 드나들 수는 없는 공간이었지만, 단기간에 너무 많은 피난민이 몰려 들면서 출입을 통제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에 조계지역의 외국인들은 피난민과의 공존을 피할 수 없게 되었죠.이렇게 조계지는 다민족이 함께 살아가는 공존의 영역으로, 다양한 문화권 사람들의 삶의 터전이 되면서 새로운 발전을 거듭하게 됩니다.
상하이 조계 최초의 부동산 상품 탄생과 부동산 붐
1860년부터 1862년까지 군대가 쑤저우와 항저우를 향해 동쪽으로 이동하면서 상하이와 점점 더 가까워졌습니다. 이 시기 몰려든 피난민들로 조계지 내 중국인 숫자는 단기간에 수천명에서 수십만 명으로 늘어났습니다. 급격한 인구 증가는 곧 임대 주택 건설과 임대 시장 붐을 불러왔습니다. 이는 상하이 조계 역사상 최초의 부동산 붐이였습니다. 조계지의 관리들과 상인들은 중국인 거주자들을 위한 주택 건설에 착수했습니다. 당시 상하이 주재 프랑스 영사는 조계지 상황에 대해 이렇게 회고합니다. “오랫동안 무시당하던 프랑스 조계지의 토지 가치가 갑자기 백 배로 치솟았고 매물로 나와 있던 토지는 모두 사들이기 위해 안간힘을 썼습니다.”
부동산 가치를 본 더 많은 외국 기업과 자본이 상하이로 집중되었습니다. 단순 임대 사업에서 매매로까지 비즈니스가 확장되며 부동산 개발이 본격화됩니다. 내전이 서서히 진정되기 시작하고 청나라가 망조의 길로 가는 와중에도 엄청난 이익을 바라보고 부유층들이 대거 몰려들었기 때문에 조계지 내 개발 규모는 계속해서 확대됩니다. 이때 주거 문제를 해결하고자 등장한 주거 부동산 상품 중 하나가 바로 ‘석고문’이었습니다. 인구 급증에 따라 부동산 상품이 급증하고 가격 역시 급등하면서 도시적 인프라와 시스템도 도입되기 시작했습니다. 외국인 선거를 통해 구성된 참사회가 자치 행정을 실시하고, 조계 내 주민들로부터 세금을 징수하여 항만 건설, 도로 정비 등 공공시설에 대한 업무를 수행했습니다. 가스, 수돗물, 전기 등 서구 시스템들이 점진적으로 도입되었고 이는 훗날 상하이가 서양 문명을 받아들이며 동아시아의 주요 무역 및 금융 중심지로 성장하는데 필수적인 요소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특히 인상적인 사례는 1906년에 진행된 상하이 내 호텔 재건축 사업입니다. 1860년 지어진 회중 호텔(汇中饭店)은 1906년 재건축을 진행했고, 이 과정에서 서구의 최신 기술인 엘리베이터가 최초로 설치되었습니다. 상하이의 빠른 근대화가 물리적, 기술적 도시 진화임을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합니다.
조계지에 생겨난 상하이 문화, 상하이 모던
전쟁의 혼란이 가라앉고 1921년 상하이 프랑스 조계지에서 중국공산당이 창당되며 새로운 시대가 열립니다. 상하이는 문화적 전성기를 맞이했고 이를 ‘상하이 모던’이라고 부릅니다. 단순히 현대의 상하이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주로 1920년대부터 1940년대 중반까지, 특히 1930년대를 중심으로 상하이에서 꽃피웠던 독특한 도시 문화, 예술, 라이프 스타일을 총칭하는 개념입니다. 상하이 모던은 당시 한국에서도 널리 알려질 정도였습니다. 그만큼 1930년대는 상하이 문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시기입니다. 문화경쟁력이라는 측면에서도 손꼽히는 시기이기도 합니다.
당시 상하이에는 월분패(月份牌, 매월 한 장씩 떼어 내게 된 달력 형식의 광고 포스터)와 무도장이 흥했고, 서커스와 경극 그리고 뮤지컬 등 다양한 문화 콘텐츠를 즐길 수 있었던 ‘복합문화공간 대세계(大世界)도 있었습니다. ‘대세계’는 중요한 문화 유산으로 건물의 이름과 옛 부지가 보존되었으며, 현재는 재개관하며 상하이에서 가봐야 하는 공간 중 한 곳으로 자리잡았습니다.


상하이의 과거를 가늠할 수 있는 건축물 중에 지금까지 남아있는 대표 건축물로는 시계탑이 인상적인 ‘시엔스 백화점(Sincere Department Store, 先施百货)’과 ‘영안 백화점(Wing On Department Store, 永安百货)’을 꼽을 수 있습니다. 이는 빠른 근대화를 통해 당시의 상하이 패션과 문화가 발전했으며, 소비문화의 중심지였음을 알 수 있는 부분입니다. 서구 열강에 의해 중국 내 다른 도시보다 빠르게 근대화되며 상하이는 고유의 도시 정체성을 만들어 나갔습니다. 그 결과 현재 중국을 대표하는 트렌디하고 세련된 도시로 거듭났죠.
이렇게 빠른 진화를 보여준 상하이의 현재는 어떤 모습일까요? 그리고 상하이가 꿈꾸는 미래 도시는 어떤 모습일까요? 다음편에서는 상하이 도시 재개발과 공간의 미래를 들여다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