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역 일대는 서울을 대표하는 거리입니다. ‘젊은이들의 놀일터’라는 대표 수식어를 비롯해 수많은 리테일 브랜드 매장이 모여 있는 지역, 싸이의 강남 스타일까지 다양한 이미지를 가진 지역이죠. 대한민국 대기업 사옥이 다수 모여 있는 서울의 대표 오피스 구역이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대표 콘텐츠라 부를 키워드는 아쉽습니다. 특히 강남역 사거리, 우성아파트 사거리를 넘어서는 순간 ‘강남스러움’마저 약해집니다. 노후화된 건물과 익숙한 프렌차이즈형 리테일이 연속적으로 자리 잡은 지루한 거리가 됩니다.
그런데 이 거리에 눈에 띄는 공간이 등장했습니다. 현대자동차의 새로운 사옥, 스케일타워입니다. 이미 사옥으로 사용하고 있었지만, 최근 100% 인수를 확정 지으며, 건물 1~2층을 갤러리로 만들었습니다. 강남대로의 풍경을 변화시킬 것이라 기대를 받는 이유입니다. 시티& 나우에서는 스케일타워가 가진 땅의 역사부터 공간을 바탕으로 현대자동차가 그려가는 미래 계획까지 알아보겠습니다. 이는 토지를 매입하고 개발한 후 자산 공간 활용 전략을 세우고 실제 콘텐츠를 운영하는 것까지 이어지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현대자동차는 강남대로에서 어떤 미래를 그리고자 할까요?

건너편에서 바라본 스케일타워. 건물 1~2층이 오픈되기 전의 모습. ⒸSPI 플랫폼 마케팅팀
지금의 스케일타워가 되기까지, 땅의 손바꿈
현재를 이해하려면 과거를 알아야 합니다. 건물이라고 예외는 아닐 겁니다. 모든 결과에는 시작이 있습니다. 스케일타워가 지금의 대지면적 3,300㎡, 1천여 평의 대규모 프로젝트가 되는 과정의 시작은 미래를 그리는 부동산 개발의 좋은 사례이기도 합니다.
2019년 역삼동 831-19, 20, 21, 22번지는 한 가문에서 소유한 토지였습니다. 필지별로 약 180평 내외의 일반상업용지로, 역삼동 831-19번지 및 831-20번지 두 필지와 831-21번지 및 831-22번지 두 필지에 각각 3층의 낮은 건물이 들어서 있었습니다. 증여 및 상속을 통해 자녀 세대로 이전된 자산으로 가족 간 오랫동안 공유한 부동산이다 보니 적잖은 자금이 소요되는 개발보다는 매각을 통해 지분을 정리하는 방법을 선택했습니다.

한 가문에서 소유했던 부동산은 매각을 통해 지금의 스케일타워가 된다. 좌측이 역삼동 831-21과 22번지의 건물, 우측이 역삼동 831-19와 20번지 건물. Ⓒ2019년 1월 네이버 로드뷰 사진
우선 2019년 1월 역삼동 831-19와 20번지가 중소규모 시행사A에 먼저 매각이 되었습니다. 시행사A는 해당 부지에 오피스 개발을 계획하고 설계 및 인허가에 들어갔습니다. 이후 남은 역삼동 831-21과 22번지도 적극적으로 매각을 희망했고, 당시 매각 자문을 맡은 금융사는 좋은 땅의 장점을 최대한 살릴 수 있는 민간 입찰을 통한 매각을 결정했습니다. 입찰 결과 가장 높은 금액을 써낸 SK D&D가 우선협상자로 결정됩니다.
여기 까지만 보면 이 스토리는 지극히 평범한 개발과정 중 하나일 뿐입니다. SK D&D는 다른 업체보다 총액 기준 5~7% 이상 높은 금액을 제시했고, 대금지급 조건도 유리했습니다. 좋은 조건에 매각을 종료한 소유자들도 만족한 거래였죠. 다만 비싸게 사서 이익이 나겠냐는 등 매입에 실패한 매수 의향자들의 뒷말도 무성했습니다. 그러나 반전은 여기서 시작됩니다.
SK D&D가 보다 적극적인 금액으로 응찰했던 것에는 배경이 있었습니다. SK D&D는 이 프로젝트를 역삼동 831-21과 22번지 594.3㎡(360평)를 개발하는 사업으로 인식하지 않았습니다. 강남의 목 좋은 곳에 대지 1,000여평의 제대로 된 오피스를 짓는다면 조금 비싸게 매입한 것은 문제가 되지 않을 정도의 가치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죠. 더 큰 그림을 그렸던 것입니다. 땅의 가치를 알아보는 안목을 바탕으로 토지 매입에 전략적으로 접근한 것이죠.
이미 매입을 끝낸 역삼동 831-19와 20을 소유한 A사와도 윈윈하는 구도로 협의에 나섰고, 숙박업소 등으로 운영되었던 뒤편의 부동산도 발 빠르게 매입 협상에 돌입, 역삼동 831-8은 2019년 12월, 역삼동 831-7은 2020년 1월에 차례로 매매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처음 매입한 역삼동 831-21과 22번지를 계약한 2019년 7월로부터 6개월여 만에 총 6개 필지 3300.70㎡(998.46평)의 토지를 매입하는 쾌거를 이루면서 지금의 스케일타워를 만드는 초석을 다지게 된 것입니다. 벌써 6년 전의 일입니다.

스케일타워 지적도. SK D&D는 역삼동 831-21과 22를 매입한 후 6개월여 만에 6필지를 모두 매입하여 1천여 평의 스케일타워 부지를 마련하게 된다. ⒸSPI 플랫폼 마케팅팀(서울부동산정보광장 자료 재가공)
SK D&D의 토지 매입 전략과 부동산 개발이 바꾼 도시의 얼굴
부동산 개발은 복합적인 창조의 과정입니다. 단순하게 건물의 외관이나 기능을 바꾸는 것뿐만 아니라 그 안에서 일하고 생활하는 사람들의 삶에 영향을 미치고 변화를 만들어가기 때문이죠. 부동산 개발은 사람을 모으고 도시의 변화를 촉진하는 촉매제가 되기도 합니다. 그 규모가 커진다면 효과는 더 커지겠죠. 스케일타워 사례가 이를 보여주는 좋은 모델입니다.
도시에서 대규모 개발은 디벨로퍼에게는 로망이지만, 토지매입이나 자금 조달 등 개발을 위한 사전 단계가 여간 힘든 게 아닙니다. 더욱이 다수의 개인들이 보유한 토지를 설득해서 적정 가격에 매입하는 일은 시간과 노력이 만만치 않게 투입되는 과정입니다. 토지 매입 과정이 길어질수록 사업에 투입되는 금융비용 등의 증가로 수익성에 큰 타격을 입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나라 도심에서 민간이 큰 토지를 개발하는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것은 공공의 강제성이 부여되지 않으면 사실상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이 일반적인 정설입니다. 더욱이 재개발과 같은 재정비사업이 없는 강남에서는 불가능에 가까운 일입니다. 그러나 SK D&D는 큰 그림을 그리고 땅을 매입해 강남에 또 하나의 다른 공간을 창출할 ‘기회’를 열었습니다. 이를 이어받은 현대자동차는 또 다른 미래를 그리고 있습니다.
현대자동차가 선택한 자산의 역할
자산의 역할은 결국 사람의 선택에 따라 달라집니다. 강남대로에서 현대자동차가 선택한 것은 '연결'이었습니다. 1층을 열린 공간으로 만들어 사람들이 오갈 수 있도록 했죠. 여기서 끝나지 않고 기업과 소비자의 연결점도 만듭니다. 이 공간이 바로 1~2층에 위치한 UX스튜디오입니다. 특정 고객을 초청해 비공개로 진행하던 사용자 조사, 연구원들이 전담하던 자동차 관련 기술 개발 등에 다양한 사람이 참여할 수 있도록 바꾼 것이 특징입니다. 모빌리티 개발의 주체로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열린 공간이자 연구 플랫폼의 역할을 담아낸 것입니다. 리테일 공간으로 수익을 창출하기보다 ‘인큐베이션 허브’로 활용하는 선택을 한 것이죠.

스케일타워 1~2층에 위치한 UX스튜디오의 모습. Ⓒ현대자동차그룹
콘텐츠에서도 현대자동차의 인큐베이팅 허브이자 새로운 고객 경험을 제공하겠다는 공간의 기능과 성격을 명확히 부여했습니다. VR기기를 활용해 운전하는 동안 시선의 움직임을 분석해 차량 내 환경을 최적화하거나 4D 주행 시뮬레이션 체험 등 다양한 방식으로 경험을 제공하는 콘텐츠들이 공간을 채웠습니다. 특히 4D 주행 시뮬레이션 체험의 경우 가상이지만 운전하는 차량을 바꾸거나 주행 환경을 변화시킬 수 있어 다양한 주행 데이터를 수집하는 역할도 수행합니다. 운전자의 시선, 표정, 세부적인 습관 등이 데이터로 수집돼 모빌리티 개발에 활용되는 것이죠. UX스튜디오라는 이름에 걸맞게 사용자의 라이프 스타일을 모빌리티 내부 환경과 연결하려는 시도도 다양하게 연구되고 있습니다.

UX스튜디오 내부. 스튜디오에는 주행 시뮬레이션을 체험할 수 있는 VR 기기 등이 설치되어 있다. Ⓒ현대자동차그룹

스튜디오에서 VR 기기를 통해 차량에 적용된 UX를 몰입감 있게 경험할 수 있다. Ⓒ현대자동차그룹
이제 자동차는 단순히 이동 수단이 아닙니다. 기술의 발전으로 자동차는 가장 작은 개인공간이자 움직이는 생활공간으로 역할과 정의가 달라지고 있습니다. 이에 맞춰 자동차에 새로 반영되어야 할 기능도 다양할 수밖에 없습니다. UX스튜디오는 이러한 미래 기술을 소비자의 피드백을 바탕으로 더 심도 있게 연구하는 공간입니다. 'Your voice is our way'라는 공간의 슬로건 역시 이런 가치와 비전을 잘 나타내고 있습니다.
콘텐츠는 공간의 생명력을 결정하는 주요 요인입니다. 성공적으로 토지를 매입해 자산을 개발하고, 자산의 최적 활용을 결정해도 콘텐츠가 없으면 사람들이 찾지 않는 곳으로 남겨질 수 있습니다. 공간과 자산, 라이프스타일을 담은 콘텐츠가 공간에 꼭 필요한 이유이죠. 스케일타워는 이 같은 3가지 요소를 잘 설명하는 자산입니다. SK D&D의 토지매입과 부동산 개발, 공간 활용에 대한 현대자동차의 확고한 의지. 사람들이 관심을 기울일 수 있으며 브랜드의 가치까지 담긴 이노션의 콘텐츠 기획과 운영이 어우러졌습니다. 스케일타워만의 타운매니지먼트가 진행될 것이라 기대하는 지점입니다.
‘열린’ 자산이 만드는 차이
현대자동차의 행보는 강남대로의 다른 기업 사옥이나 오피스 건물과는 확연히 차이가 있습니다. 강남대로의 건물들은 리테일 브랜드가 입점한 수익공간이 아니면 대부분은 '닫힌' 공간입니다. 기업의 구성원들이 일을 하는 공간이니 당연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기업은 결국 사람과 만나고, 사람을 이해해야 그에 맞는 상품이나 서비스를 만들 수 있다는 관점에서 보면 소통 공간은 필수적입니다. 굳이 행사를 하거나 특별한 이들을 대상으로 하기보다 일상에서, 주변에서 접점을 만드는 것이 필요합니다. 결국 기술은 '사람'에 의해 탄생하고 활용되며, 혁신은 예상하지 못한 조합에서 이뤄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비정형의 기회를 만드는데 자산은 좋은 매개체이기도 합니다.

대로변에 위치한 자산에 사람들이 쉽게 드나들 수 있게끔 스튜디오를 구축했다. 사진은 주행 시뮬레이션을 체험하는 사람들. Ⓒ현대자동차그룹
일본은 이런 기능을 수행하는 별도의 공간들을 자산 안에서 다양하게 활용하고 있습니다. 특히 현대자동차의 UX스튜디오와 유사한 공간으로 도라노몬힐스 비즈니스타워 4층에 위치한 아치(ARCH)가 있습니다. 이 공간은 신규 사업 개발팀을 위한 이노베이션 센터입니다. 관리자가 상주할 수 있는 대기업의 신사업팀만 입주가 가능하며, 현재 200여 개의 기업이 입주해 있습니다. 운영 방식은 현대자동차의 UX스튜디오와 다르지만, 공간의 기능이나 역할 면에서는 동일한 목적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더 나은 미래의 삶을 위해, 더 발전적인 기업 비즈니스의 방향을 찾기 위해 활용되는 공간인 셈이니까요. 해당 공간이 위치한 도라노몬 지역 역시 강남역과 유사점이 많습니다. 오피스 중심 거리입니다. 다만 도라노몬힐스가 개장하고 아치를 비롯해 미래 사업 중심의 활용 공간들이 자리잡으면서 스타트업이 늘고 글로벌 워커들이 증가했죠. 이는 지역에 새로운 분위기를 만드는 역할을 했습니다.

도라노몬힐스의 아치(ARCH)는 신규 사업 개발팀을 위한 이노베이션 센터이다. Ⓒ ARCH Toranomon Hills note
이처럼 열린 자산은 지역과의 연결을 강화하고, 지역의 변화를 견인합니다. 대표성을 가진 공간의 변화는 거리 전체의 분위기를 변화시키는 계기가 됩니다. 공간을 찾는 사람들이 새로 유입되고, 지금까지와는 다른 라이프 스타일이 등장하죠. 이를 타깃으로 리테일 브랜드들이 유입되면 지역의 모습은 전혀 다른 특성을 가지고 됩니다. 공장 지대였지만 브랜드의 가치를 알리는 팝업 공간이 등장하며 젊은 층이 유입되고, 그들의 라이프 스타일에 맞는 브랜드가 다시 자리 잡으며 아이덴티티가 달라진 성수동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큰 변화도 작은 시작부터이며, 자산은 이를 구현하는 가장 좋은 도구이자 출발 지점이 되곤 합니다.
지역의 재미와 생기를 만드는 타운매니지먼트
하나의 기업이 지역을 더 나은 그림으로 만들어 가는 것도 타운매니지먼트입니다. 민간 기업과 공공기관, 지역 주민들이 함께 전략을 짜고 수행하는 것만이 타운매니지먼트의 영역은 아닙니다. 강남대로를 오가는 사람들은 이제 현대자동차의 UX스튜디오에 시선을 둘 것입니다. 자동차를 만드는 로봇에 호기심이 생길 것이고, 3~6개월에 한 번씩 달라지는 모빌리티 연관 전시에 관심을 기울이겠죠. 직접 공간을 경험하며 모빌리티와 관련된 새로운 의견을 제시하는 사람들도 늘어날 것입니다. UX스튜디오를 계기로 강남대로를 찾는 새로운 그룹의 사람들도 생기겠죠. 그들은 관심사에 따라 다른 라이프를 보여줄 것이고 이는 강남대로의 또 다른 문화를 수혈하는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문화 역시 각기 다른 성향의 사람들이 어우러지며 꽃피는 것이니까요. 브랜드의 결정과 활동에서 시작한 영향력이 결국 도시의 얼굴을 바꾸게 되는 과정입니다.
2025년 7월 3일 UX스튜디오가 정식으로 문을 열었습니다. 이를 계기로 강남대로가 어떤 콘텐츠로 채워질까요? 어떤 사람들이 찾아올까요? UX스튜디오 홍보 영상에서는 “당신이 느끼고 반응하는 것이 커다란 답이 됩니다.”라는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UX스튜디오를 찾는 이들이 내릴 답을 바탕으로 현대자동차가 바꿔 갈 모빌리티의 미래뿐 아니라 강남대로의 미래 모습도 궁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