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클래식을 즐겨 듣는다. 특히 좋았던 기억은 2015년 여름, 런던 가족 여행 중 우연히 일정이 맞아 BBC 프롬스(Proms)를 보러 로열 앨버트 홀(Royal Albert Hall)에 갔던 경험이다. 이걸 위해 떠난 건 아니었지만, 세계 최대 규모의 클래식 축제라니 지나칠 수 없었다. 자유롭게 서서 음악을 듣는 사람들, 잔디밭에 앉아 피크닉하며 중계 화면을 보는 시민들, 클래식을 이렇게 일상처럼 즐기는 모습에 아이들이 꽤 놀랐던 기억이 난다. 클래식은 조용히 앉아서 듣는 거라고만 생각했던 아이들에게도 새로운 경험이었을 것이다.

2015년 런던 가족 여행때 다녀온 BBC 프롬스. 세계적인 클래식 페스티벌로 유명하다. ⒸSPI 리치라운지 라이프스타일팀
그런 나의 애정지점에 피아니스트 임윤찬이 들어왔다. 아쉽게도 그의 한국 공연 티켓을 구하기란 하늘의 별 따기 수준이라 매번 티켓팅에 어려움이 많다. 티켓팅을 대신해 줄 사람을 구하는 것도 쉽지 않아서 해외 공연으로 눈을 돌려 보았다. 해외에서 예매가 더 수월한 경우가 있다는 걸 처음 실감한 건 2018년이었다. 조성진의 한국 공연 티켓은 구하기가 너무 어려워, 결국 6월 일본 공연으로 조성진이 연주하는 라흐마니노프를 직관한 흥분은 아직도 새롭다. 이번에는 임윤찬의 도쿄 공연이 예정되어 있었고, 친구가 일본의 미술관을 보고 싶다고 했던 기억도 떠올랐다. 예매도 가능하니 망설일 이유가 없다. 예매 버튼을 누르는 순간, 임윤찬 콘서트를 메인 프로그램으로 한 2박 3일 도쿄 여행이 시작되었다.

반 클라이번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 역대 최연소 나이인 18세로 우승한 피아니스트 임윤찬. 클래식 매니아 사이에서 엄청난 인기를 끌고 있다. 대부분의 공연이 오픈과 동시에 전석 매진된다. ⒸIMG Artists
첫째 날, 도쿄에 왔으니 아자부다이 힐스는 가야지!
도쿄를 갈 때 호텔 선택에 고민이 많기도 하지만 또 다양한 호텔들을 선택하는 재미도 있다. 하네다 공항과의 거리, 여행 동선을 감안해 최근엔 안다즈 호텔(Andaz Hotel)에 주로 묵었다. 이번에는 같은 도라노몬 지역에 최근 오픈한 도라노몬 힐스 호텔 디 언바운드 컬렉션 바이 하얏트(Toranomon Hills Hotel Unbound Collection by Hyatt)를 선택했다. 짐을 풀자마자 도착 기념으로 향한 곳은 사푸 카페(Safu Café)였다. 도라노몬의 한적한 동네에 위치한 기쿠치 히로시 토모 미술관 1층에 자리하고 있다. 일본 정원을 바라보며 마시는 시원한 맥주 한 잔, 도쿄 여행의 시작을 알리기에 제격이었다. 저녁 무렵에는 도보로 아자부다이 힐스(Azabudai Hills)까지 산책하며 동네를 둘러보았다. 특히 스페인 대사관(Embassy of Spain) 건물이 현대적인 빌딩 숲 사이에서도 독특한 존재감을 드러내 눈길을 사로잡았다.

복잡한 도심 속 고요함을 느낄 수 있는 사푸 카페. 전면창 너머로 일본 정원을 바라보며 시원한 맥주 한 잔을 즐겼다. ⒸSafu Café
주변 지인들 사이에서 아자부다이 힐스는 서울의 핫플만큼 인기가 있는, 가봐야 하는 동네이다. 고급 주거 단지를 조성했다고 하는데, 휘황찬란 할 줄 알았던 이 동네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야외 정원에서 퇴근 후 요가를 즐기는 직장인들의 평화로운 모습이었다. 슈퍼마켓 내 식당은 만석이었지만, 대신 슈퍼마켓 델리에서 음식을 테이크아웃해 요가 하는 사람들을 구경하며 간단한 저녁을 즐겼다. 한국에 비해 훨씬 합리적인 가격과 높은 퀄리티의 신선식품들, 각종 생필품에 기분 좋게 놀랐다. 배도 부르고 ‘도쿄에 왔다!’라는 기분을 더 느끼고 싶어 긴자 식스(GINZA SIX)로 향했다. 츠타야(TSUTAYA)에 들러 책 몇 권과 즐겨보는 라이프스타일 잡지 몇 권을 구매하고, 중정에 설치된 ‘로켓을 타고 있는 고양이’ 조형물을 구경하며 첫날을 마무리했다.

휘황찬란 할 줄 알았던 아자부다이 힐스. 야외 정원에서 직장인들이 모여 요가를 즐기는 모습. ⒸSPI 리치라운지 라이프스타일팀
둘째 날, 도쿄에서 즐긴 예술의 향연
아침 일찍 시로카네다이(Shirokanedai)에 있는 중요 문화재 사찰 즈이쇼지(Zuishōji Temple)로 향했다. 전통 사찰 건축과 더불어 건축가 쿠마 켄고(Kengo Kuma)의 현대적 터치가 어우러진 공간이 인상 깊었다. 같은 건축가의 또 다른 걸작인 네즈 미술관(Nezu Museum)도 찾았다. 도부 철도 사장을 지낸 사업가 네즈 가이치로(Nezu Kaichirō)의 방대한 미술품 컬렉션을 전시하기 위해 1941년 설립된 이곳은 일본과 동아시아 전반의 예술품 6,800여 점을 소장하고 있다. 현재의 모던한 건물은 쿠마 켄고의 설계로 2009년 재개관해 자연과 건축이 조화롭게 어우러진 공간으로 재탄생했다. 미술관 카페에서 말차와 당고 세트를 즐긴 뒤, 네즈 가이치로가 거닐던 전통 정원을 천천히 걸었다. 연못과 작은 산책로가 이어지는 정원은 자연스러운 경사와 그림 같은 풍경 덕분에 잠시 도심에 있다는 사실을 잊게 해주었다.

쿠마 켄고가 지은 사찰 즈이쇼지. 건축에 고요함이 깃들어 있다. ⒸSPI 리치라운지 라이프스타일팀

6,800여 점의 소장품이 있는 네즈 미술관 역시 건축가 쿠마 켄고의 작품. 그가 지은 공간에서 당고와 말차를 즐겼다. ⒸSPI 리치라운지 라이프스타일팀

르네상스부터 20세기 중반까지 다양한 서양 미술을 즐길 수 있는 국립서양미술관. 이번 방문에서 눈에 들어온건 프랑스 화가 페르낭 레제의 작품.ⒸSPI 리치라운지 라이프스타일팀

자누 도쿄 곳곳에서 볼 수 있는 도쿄타워. 도쿄 도심을 바라보며 친구와 애프터눈티를 즐겼다. ⒸSPI 리치라운지 라이프스타일팀

아크힐스에 위치한 산토리홀. 거의 매일같이 공연이 있어 아크힐스 아케이드엔 다양한 사람들로 붐빈다. ⒸSPI 리치라운지 라이프스타일팀

산토리홀 로비. 공연 촬영이 금지되어 있어 포스터를 찍는 사람들이 많다. ⒸSPI 리치라운지 라이프스타일팀
마지막 날, 여유로운 여행 마무리
여행의 마지막 날은 도쿄도 정원미술관(Tokyo Metropolitan Teien Art Museum)에서 시작했다. 원래는 일본 왕족의 저택으로 지어진 아르데코 양식의 건물과 정원이 예술 그 자체였다. 평소에는 1층만 개방되는데 이번에는 3층까지 모두 공개되어 왕족의 삶을 엿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정원미술관의 저택 곳곳에 과거 이곳에서의 일상을 엿볼 수 있는 가구도 볼 수 있다. ⒸSPI 리치라운지 라이프스타일팀
호텔로 돌아오는 길에는 도라노몬 힐스 모리타워의 스시집에서 도쿄타워를 바라보며 점심을 즐겼다. 놀랍게도 스시 카운터의 점심 특선은 1,300엔. 합리적인 가격과 만족스러운 맛 덕분에 여행의 마지막 식사가 더욱 특별했다. 묵었던 힐스 단지는 모리빌딩(Mori Building)의 타운 매니지먼트로 유명하다는데, 실제로 머물러 보니 다양한 F&B 라인업, 조경된 산책로, 빌딩들을 잇는 브릿지와 이벤트 동선까지 정말 ‘완벽한 도시’를 경험한 기분이었다. 뜨거운 여름 햇살 아래에도 물 흐르듯 이어지는 차양과 아무나 편히 앉아 쉴 수 있는 라운지 의자가 도시를 더욱 따뜻하게 만들었다.
임윤찬의 연주를 위해 떠난 2박 3일 도쿄 문화 여행이었지만 쿠마 켄고의 건축물, 마츠카타 컬렉션의 역사, 모네와 일본의 인연까지 하나하나 새로 배우고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무엇보다 예술이 사람들에게 주는 감동과, 그것을 후세와 나누기 위해 힘쓴 선구자들의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진 여행이었다. 짧지만 마음에 풍요를 가득 채운 시간이었다.
뮤지엄 & 공연장 정보
• Nezu Museum (根津美術館): www.nezu-muse.or.jp
• The National Museum of Western Art (国立西洋美術館): www.nmwa.go.jp
• Tokyo Metropolitan Teien Art Museum (東京都庭園美術館): www.teien-art-museum.ne.jp
• Suntory Hall (サントリーホール): www.suntory.com
• Zuishōji Temple (瑞聖寺): zuisho-ji.or.jp
• Janu Tokyo: www.janu.com/toky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