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유류분)와 2화(유언)를 통해 주로 상속에 관한 내용을 설명 드렸다면, 이번 화에서는 증여에 대해 얘기해 보고자 합니다. 일상생활에서는 종종 상속과 증여를 구분하지 않고 상속으로 통칭하는 경우도 있습니다만, 이 둘은 엄연히 다른 개념입니다. 상속은 어떠한 사람이 사망하면 발생하는 것이고 당사자 사이에 합의가 필요하지 않지만, 증여는 생전에 당사자 사이의 합의로 이루어지는 것이 기본적인 차이입니다.
증여와 관련한 여러 이슈 중에서도 최근 언론에서 다뤄졌던 효도조건부 증여계약에 대해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부동산 특히 서울 주요지역 아파트는 가격이 꾸준히 상승하다 보니, 증여세(또는 상속세) 절감 목적으로 일찍 증여하는 것이 좋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이런 이유에서 자산가들의 고민을 종종 듣게 됩니다. 미리 자녀에게 부동산을 증여할까 고민을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지금 자녀에게 주요 재산을 물려주면 자녀가 그 이후로는 부모를 외면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을 하는 것이지요.
이런 부분의 대안으로 고려되는 것이 효도조건부 증여계약입니다. 이는 일반적인 증여(즉, 재산을 받는 사람이 반대급부로 이행할 의무가 없는 단순한 증여)와 달리 재산을 받는 사람에게 일정한 의무(효도)를 부담시키는 증여계약을 말합니다. 만약 재산을 받은 사람이 의무를 이행하지 않으면 재산을 준 사람은 증여계약을 해제하고 재산을 되찾을 수도 있습니다.
효도조건부 증여계약을 법률 용어로는 ‘부담부 증여’계약이라고 합니다. 부담부 증여의 대표 사례로는 세입자가 있는 집을 자녀에게 증여하면서 세입자에게 돌려줄 보증금 부담도 함께 자녀에게 이전하는 것이 있죠.
효도조건부 증여계약을 체결할 때 유의할 점은 효도조건 설정입니다. 효도조건을 어떻게 설정하느냐에 따라 효도조건부 증여계약의 유무효가 달라집니다. 즉, 효도조건부 증여계약을 잘못 쓰면, 나중에 자녀가 효도를 하지 않아도 재산을 되찾아 오기 어렵다는 얘기입니다. 몇 개의 사례를 살펴보겠습니다.
A씨는 손자들에게 건물의 일부 지분을 증여하면서 손자들이 이행할 의무인 효도는 “심부름”이라고만 기재하였습니다. 이 사건에서 법원은 ‘통상 부담부 증여라 함은 수증자에게 일정한 급부를 하는 채무를 부담케 하는 증여계약으로 부담에 관하여 당사자 사이의 합의가 필요하고 그 부담의 내용을 이루는 급부는 급부로서의 일반적 요건, 즉 적법성1, 가능성2, 확실성3의 요건을 구비하여야 한다’고 하면서, 효도계약상 손자들이 이행할 의무인 효도는 “심부름”이라고만 기재되어 있을 뿐 구체적인 효도의무(급부) 또는 심부름의 내용이 전혀 없으므로, 위 법리에서 본 급부로서의 일반적 요건 즉 적법성, 가능성, 확실성의 요건을 갖추었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하였습니다.
B씨가 자녀에게 땅을 증여하면서 ‘부모가 사망할 때까지 자녀들이 부모에게 효도하지 않을 시에는 증여하였던 부동산을 언제라도 부모가 요구하였을 때는 이의 없이 소유권을 이전하여 줄 것을 약정한다’고 정한 사안에서도, 법원은 마찬가지로 위 약정 내용은 ‘효도'라는 기재 외에 자녀들이 부담하여야 하는 구체적인 급부의 내용이 없으므로 위와 같은 ‘효도 의무’는 부담을 이루는 급부로서의 일반적 요건인 적법성, 가능성, 확정성의 요건을 모두 구비하였다고 보기 어렵다고 하였습니다.
C씨는 아들에게 아파트를 증여하면서 ‘아들은 C씨를 극진히 잘 섬기고 모신다’, ‘C씨가 물질적·정신적으로 안락하게 여생을 즐길 수 있도록 섬세한 부분까지 챙기고 온갖 배려를 다한다’라는 내용의 효도의무를 이행할 것을 증여조건으로 정하였습니다. 이 사건에서도 법원은 아들이 C씨에게 극진한 효도를 다할 의무가 급부로서의 일반적 요건인 적법성, 가능성, 확실성의 요건을 모두 갖추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하였습니다.
D씨는 아들에게 여러 부동산을 증여하였는데 당시 아들은 D씨에게 '아들은 본건 증여를 받은 부담으로 D씨와 같은 집에서 동거하며 부모님을 충실히 부양한다. 아들은 위 부담사항 불이행을 이유로 한 D씨의 계약해제 기타 조치에 관해 일체의 이의나 청구를 하지 아니하고, 계약 해제의 경우 즉시 원상회복의무를 이행한다'는 각서를 작성해 주었습니다. 이 사안에서 법원은 위 내용이 부담부 증여로서 유효함을 전제로, 건강이 급속도로 악화된 부모를 아들이 돌보지 않고 같은 주택 1층에 살면서도 2층에 살고 있는 부모를 자주 찾지도 않았으며 요양시설 입원을 권유한 것은 부모를 충실히 부양한 것으로 볼 수 없다고 판단하였습니다.
E씨는 아들에게 서울 소재 건물을 증여하고 몇 주 후 ‘아들은 3년 내에 E씨에게 서울 소재 6억 이상의 아파트를 사주기로 한다’는 등의 조건을 내용으로 하는 효도약정서를 체결하였습니다. 이 사건에서 법원은, 단순증여 이후에 효도약정서가 체결되기는 하였지만 효도약정서에 ‘E씨가 아들에게 건물을 단독 증여함에 대한 조건’이라고 정하여 효도약정서가 E씨와 아들이 당사자인 증여계약에 조건을 부가하는 것임을 나타내고 있는 점 등을 고려하면, 이 사건 증여계약은 효도약정서에 정한 아들의 아파트 매수의무 등을 부담하는 것을 조건으로 하는 증여로서 부담부 증여에 해당한다고 판단하였습니다(아들이 아파트를 사주지 않아 증여계약이 해제됨).
앞서 살펴본 여러 사례를 종합하면, 효도조건부 증여계약에서 효도에 관한 사항은 그 내용을 구체적으로 확정할 수 있어야 유효함을 알 수 있습니다. 예컨대 생활비를 조건으로 정하고 싶다면 금액이나 시기를 구체적으로 정하고, 자녀들이 정기적으로 방문할 것을 원한다면 구체적인 주기를 정해야 합니다.
물론 구체적으로 정했다고 해서 모두 유효한 것은 아니고, 그 조건이 현실적으로 이행 가능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활발하게 사회생활을 하고 있는 자녀에게 매일 부모를 방문할 것을 요구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이행 가능하다고 보기 어려운 측면도 있습니다.
아울러, 가급적 증여계약 체결과 동시에 효도계약의 내용을 정하는 것이 좋습니다. 부모가 마음이 앞서서 일단 자녀에게 재산을 성급하게 증여하였다가 불안한 마음이 들어 사후에 효도계약을 체결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러한 경우에는 효도계약의 내용이 증여의 조건이 된다는 점을 분명히 하여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효도계약과 증여계약은 별개라는 공격을 받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자녀에게 재산을 증여할 때는 물론이고 나중에 자녀가 효도계약상 의무를 이행하지 않아 부모가 그 재산을 되찾아 올 때에도 증여세가 발생할 수 있으니, 효도조건부 증여를 고려하고 있다면 전문가와 충분히 상의한 후 실행하는 것을 권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