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에는 부동산 사업을 하는 우리에게 곱씹을 만한 장면이 여럿 등장합니다. 극 중 회장인 아버지의 생신 자리에서 벌어진 장면은 지금의 시행사들에게 큰 울림을 줍니다. 전자회사를 운영하는 첫째 아들은 아버지께 최고의 선물을 드리겠다며 일본에서 초밥 장인을 모셔 옵니다. 그는 아버지가 초밥을 드시는 모습을 뿌듯하게 지켜보며, “역시 국산은 아직 일본에 못 미칩니다”라고 너스레를 떱니다. 하지만 돌아온 아버지의 질문은 전혀 다른 관점이었습니다.
“밥알 몇 개고?”
이 질문에 누구도 답변을 하지 못합니다. 그 모습을 보며 아버지는 초밥은 식사로 먹을 때와 안주로 먹을 때 밥알의 개수가 달라야 한다고 지적합니다. 호텔에 일식당이 있지 않느냐고 반문하기도 하죠. 아버지가 하고자 했던 이야기의 본질은 화려한 경력의 장인을 데려오는 것보다 이미 손에 쥐고 있는 공간에서 밥알 하나하나를 세어낼 정도의 연구와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었습니다.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 중 밥알의 개수를 묻는 장면 © JTBC 홈페이지
이 장면은 부동산 사업을 하는 기업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명확하게 제시합니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시행사란 ‘경기 좋을 때 재빨리 분양해서 돈을 버는 회사’로 오해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진짜 부동산 사업의 본질은 입지와 가격, 시장 상황을 예측하여 이익을 높이는 것이 아닙니다. 고객의 삶의 맥락을 세심하게 읽고 공간을 통해 그들의 경험 가치를 높이는 것이 근간입니다.
초밥의 밥알 개수가 상황에 따라 달라지듯, 부동산 개발 또한 다양한 고객군의 상황과 목적에 따라 달라져야 합니다. 레시피를 연구하지 않고 잘되는 집만 따라 하는 초밥집이 오래 가지 못하듯, 레시피 없는 시행사 또한 남들이 좋다고 하는 유행만 따라다니다가 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시행사가 연구해야 할 레시피란 단순히 건축 설계 도면과 손익 분석이 아니라 고객의 소비 행태, 체류 시간, 임대료와 매출의 비율, 좌석당 투자비와 같은 아주 작은 단위에서부터 출발합니다. 밥알 하나를 세듯 디테일을 이해하는 것이야말로 시행사의 진짜 경쟁력이기 때문입니다.
고객의 수요와 상황에 따라 변화하는 기업의 본질
기업이 오래 살아남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본질’을 지키면서도 시대와 고객의 요구에 맞추어 끊임없이 변형해 나가는 능력입니다. 세계 최초의 편의점 세븐일레븐의 출발은 얼음 판매소였습니다. 냉장고가 보급되기 전 사람들은 일상적으로 얼음을 사러 왔고, 주인은 이들에게 우유와 빵, 달걀 같은 생활필수품을 함께 팔기 시작했습니다. 얼음을 사러 온 고객의 수요를 세심하게 읽은 결과였죠. 이후 세븐일레븐은 세계 최대의 편의점 체인으로 진화했습니다. 본질은 ‘생활의 편리함을 제공한다’라는 것이었고, 그 본질을 유지하되 판매 수단과 상품군이 변화했을 뿐입니다.
얼음을 판매하던 최초의 편의점(1927년) ©7-Eleven Malaysia 홈페이지
넷플릭스의 여정도 비슷합니다. 처음에는 연체료 없는 DVD 대여 서비스에서 출발했습니다. 그러나 고객들이 더 편리하게 콘텐츠를 소비할 수 있는 방식을 고민하다가 온라인 스트리밍으로 변신했고, 나아가 이제는 자체 제작 콘텐츠까지 선보이는 글로벌 스튜디오가 되었습니다. 넷플릭스의 핵심은 ‘고객에게 새로운 방식으로 이야기를 전달한다’라는 본질이며 DVD에서 스트리밍, 오리지널 제작으로 수단이 변형되었습니다.
삼성그룹의 성장 또한 같은 맥락입니다. 1930년대 작은 무역상에서 시작한 회사가 오늘날 반도체와 스마트폰을 만드는 글로벌 제조기업이 된 것은 단순한 업종 전환이 아닙니다. “국가와 사회에 필요한 가치를 공급한다”라는 본질을 유지하면서, 시대적 필요에 따라 설탕·섬유·가전·반도체 등 다양한 사업 영역으로 변형해 온 것입니다.
이러한 사례는 기업이 성장하고 지속하기 위해 필요한 조건을 잘 보여줍니다. 본질은 지키되 수단은 변형되어야 합니다. 고객의 수요에 따라 분야는 변하지만, 고객에게 제공하는 핵심 가치는 흔들리지 않습니다. 부동산 시행사의 비즈니스도 원리는 같습니다. 개발과 이익 창출이라는 행위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삶을 어떻게 편리하고 도시를 가치 있게 만드는지가 본질이어야 합니다.
한 끗 다른 상업공간 개발을 위한 고려 사항
저희 회사는 위와 같은 관점으로 부동산 개발을 하고 있습니다. 현재는 상업공간 및 특정 타겟을 대상으로 한 세그먼트 주거 공간 개발을 진행 중입니다. 통상적으로 부동산 개발을 하기 위해서는 지가와 교통 접근성 같은 물리적 조건을 기준으로 입지를 고르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저는 조금 다른 요소를 고려합니다. 그 지역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특성과 소비 행태를 먼저 분석했습니다. 국토교통부와 지자체의 도시기본계획과 행정안전부에서 제공하는 인구 데이터 및 관광통계 데이터를 검토하여 고정적인 정주 인구와 유입되는 관광 인구가 교차하는 지점을 찾아냈습니다. 특히 고소득 정주 수요층과 관광객이 유입될 수 있는 교집합의 위치를 찾는 것이 중요했고, 이는 단순히 유동인구가 많은 것이 아니라 실제 소비를 할 수 있는 유효수요층을 찾아내는 것이 목적이었죠. 관광객의 일시적인 방문과 정주인의 반복적인 소비가 동시에 작동할 수 있는 구조를 갖춘 지역을 택한 것입니다.
개발 방식 또한 기존의 틀과 반대로 진행했습니다. 부동산은 지가와 공사비, 시행사의 이익을 산정한 후 시장 상황에 따라 분양가와 임대료를 산정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공급자 중심의 접근이 아니라 수요자 중심의 접근 방식을 택했습니다. 개발 공간을 사용할 고객이 실제 영업을 통해 감당할 수 있는 임대료 수준을 계산하였습니다. 그 임대료를 기준으로 목표 수익률을 설정한 뒤, 역산하여 투자비용과 개발 규모를 산정했습니다. 해당 공간에 필요한 좌석 수, 메뉴별 매출, 회전율을 세밀하게 시뮬레이션하여 공간이 창출할 수 있는 현실적인 매출을 도출해 적정한 임대료를 정한 것입니다.
부동산 개발 전 테이블 개수와 단가를 계산하는 과정 ©㈜투에이치파트너스, www.twohp.co.kr
이렇게 산출된 임대료를 기준으로 투자비와 금융 구조를 설계했기 때문에, 개발의 전 과정이 수요자 관점에서 출발한 셈입니다. 마치 초밥 장인이 밥알을 하나하나 세듯 좌석당 투자, 좌석당 매출, 임대료 커버리지를 꼼꼼히 검토하는 과정이었습니다. 자연스럽게 공간이 창출할 수 있는 매출을 극대화할 수 있는 구조를 고려한 설계가 진행되었죠.
실내외 테이블 수를 미리 설계하여 예상 매출을 계산했고, 주방과 서빙 동선을 단축시켜 회전율을 높였습니다. 인근 무료 공영주차장과 시유지 활용 가능성을 확인해 개발 원가를 절감하고, 고객이 그 공간을 사용함으로 인해 지불해야 하는 부담을 줄였습니다. 접근성뿐만 아니라 악취·소음 등 환경 리스크까지 검토하여 운영에 장애가 없도록 했습니다.
식당 공간 개발을 위해 악취를 모니터링 하는 과정 ©㈜투에이치파트너스, www.twohp.co.kr
이처럼 현장조사와 인허가, 시유지 협의까지 포함한 개발 전 프로세스는 단순 건축 행위가 아니라 실제 운영을 전제로 한 지역 연구에 가깝습니다. 실사용하는 단계에서도 지속적인 컨설팅을 진행했습니다. 단순히 고객 수를 늘려 매출을 높이는 방식이 아니라 음식의 레시피와 유통망을 개선해 임차인의 순이익률을 높이는 전략을 활용했죠. 원재료의 조달 경로와 조리 과정에서 불필요한 비용을 줄이고, 효율적인 유통망을 개발해 운영 마진을 확보했습니다. 음식이라는 기본 콘텐츠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점을 인식하고 다양한 문화 공연과 전시, 지역 예술가와의 협업을 통해 고객의 체류 시간을 늘렸습니다. 굿즈 제작, 시즌별 메뉴 교체, 지역 농산물과의 협업 등으로 단순한 식사 경험을 문화적 체험으로 확장했습니다. 결과적으로 고객은 “한 끼 식사”가 아니라 “머무를 이유가 있는 공간”을 경험하게 되었고, 이는 곧 재방문율과 매출 안정성으로 이어졌습니다.
장사가 잘되는 공간이라는 수식어가 붙으면 임대수익이 높아지는 것은 당연합니다. 시행사 고객의 경험을 설계하고 지역의 가치를 함께 만들어가는 연구자가 되어야 하는 이유를 확인할 수 있는 사례입니다.
임차인의 원가 절감을 위한 원재료, 레시피, 동선 제안 과정 ©㈜투에이치파트너스, www.twohp.co.kr
주거 개발의 패러다임도 변화가 필요해
기업형 임대주택 개발 역시 기존의 주거개발 패러다임과 다릅니다. 실제 주택에서 거주하는 인원은 외국인 근로자이지만, 계약 당사자는 그들을 고용한 기업입니다. 따라서 실질적인 고객은 개인이 아니라 기업이고, 공급 전략 또한 근로자의 생활 수준 향상 및 기업의 운영 효율성과 비용 절감까지 고려해야 합니다.
제가 선택한 비즈니스 모델은 대규모 신축 아파트 단지를 짓거나 분양하기보다 기업이 실제로 필요한 지역에서 기존 주택을 소규모로 리모델링하여 공급하고 운영까지 맡아서 하는 방식이었습니다. 대규모 자본 투입 없이도 수요에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고, 수요량에 따라 공급이 되기 때문에 공급자 입장에서도 필요 이상으로 많은 물량을 떠안아야 하는 리스크가 없습니다. 부동산 개발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공급자의 입장에서 얼마나 크고 화려하게 짓느냐?”가 아니라, “고객의 입장에서는 얼마나 가성비 있게 주거의 안정성과 업무의 효율성을 높여줄 수 있느냐?”입니다. 이것이 본질적 관점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운영 관점에서도 사용자의 니즈와 편의성을 최우선으로 고려했습니다. 근로자 숙소라는 아이덴티티를 명확히 인지해 인테리어와 가구 배치는 교대근무를 하는 근로자의 생활 리듬을 최적화하는 데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침실과 공용 공간의 동선을 분리해 휴식 간 충돌을 줄이고, 조리와 식사가 간편하게 이루어지도록 주방설비를 공급했습니다. 세탁·샤워 공간을 쾌적하게 유지해 근로자들이 외부 시설을 이용해서 추가 지출을 하는 것을 방지하였습니다. 이는 단순한 편의 차원이 아니라 근로자의 생산성, 기업의 비용절감과 직결되는 요소입니다. 제대로 된 숙면과 간편한 식사, 적당한 휴식이 가능해야 직장에서의 성과도 높일 수 있습니다. 수요자인 기업의 입장에서도 임대주택을 이용하면 자체적으로 기숙사를 운영할 때 발생하는 인력과 관리 비용을 줄이는 이점이 있습니다.
외국인 근로자 전용 임대주택 개발 전/후의 모습 ©㈜투에이치파트너스, www.twohp.co.kr
외국인 근로자 임대주택은 입지를 고를 때도 일반적인 주택 시장의 기준과는 다릅니다. 역세권, 학세권과 같은 전통적인 지표보다 근로자의 출퇴근 편의성과 다민족에 맞춘 식사와 휴식 공간의 접근성이 더 중요한 요소입니다. 공장이나 사업장 인근에 위치하면서도 근로자들이 퇴근 후 편히 쉴 수 있고, 입맛에 맞는 식사를 제때 해결할 수 있는 생활 여건이 최우선입니다. 또한 주택은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공간이기 때문에 정서적인 요소도 중요합니다. 화려하지 않지만 깔끔하고 편안한 인테리어, 밝고 따뜻한 색감의 조명 등을 활용해 안정된 환경에서 생활하고 있다는 만족감을 제공합니다. 이처럼 기업형 임대주택은 단순히 집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근로자와 기업을 동시에 만족시키는 ‘고객 맞춤형 주거 솔루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고객의 니즈를 면밀히 분석하고, 그에 맞게 소규모·맞춤형으로 대응하며, 생활과 정서를 함께 고려하는 모델이기 때문입니다.
외국인 임대주택 개발을 위해 동별 외국인 비중과 주변 시설을 검토하는 과정 ©㈜투에이치파트너스, www.twohp.co.kr
디벨로퍼가 작은 것에 집착해야 하는 이유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묻습니다. “부동산 개발회사가 왜 음식의 레시피까지 연구하고, 외국인 근로자의 생활 습관까지 고민해야 합니까?”, “건물을 짓고, 분양하지 않아도 돈이 됩니까?”, “운영하기 번거롭지 않습니까?” 그들의 질문은 굳이 힘들게 왜 이렇게까지 하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나 부동산 개발은 단기적 이익을 높이는 게임이 아니라,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을 위해 지속 가능한 생활 생태계를 만들어가는 과정입니다. 상업공간 개발도, 주거공간 개발도 모두 같은 철학에서 출발합니다.
그렇기에 건물의 크기나 화려한 외관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공간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경험과 생활의 질을 높이는 진짜 가치에 집중해야 합니다. 임차인이 감당할 수 있는 임대료를 기준으로 개발비를 산정하는 과정, 좌석 수와 동선을 세밀히 설계하는 노력, 근로자의 숙면과 식사, 정서적 안정을 위한 세심한 인테리어와 이벤트까지 이런 맥락에서 접근했기에 구현할 수 있었습니다.
이는 단순히 친절한 서비스 차원이 아니라, 공간이 오래 살아남기 위한 전략이기도 합니다. 부동산 사업의 본질은 고객의 지속 가능하고 안정적인 생활에 있습니다. 시대와 상황이 바뀌더라도 그 본질은 바뀌지 않아야 합니다. 고객의 삶을 깊이 연구하지 않은 공간은 처음에는 화려하게 보일지 몰라도 금세 사라집니다. 반대로, 고객의 세세한 생활 패턴과 정서까지 연구한 공간은 시간이 지나도 꾸준히 이용되고, 지역과 함께 성장합니다. 공간이 고객의 삶에 뿌리를 내리기 때문이죠.
건물을 파는 회사가 아니라, 관계를 설계하고 가치를 축적하는 회사로 거듭나기 위해사는 고객에 대한 연구를 멈추면 안됩니다.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하냐”라는 질문에 건물 하나 잘 팔아 이익을 남기는 것보다 고객과 기업, 지역이 함께 성장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자 함이라고 답하고 싶습니다. 이것이 어쩌면 디벨로퍼들이 가져야 할 가장 중요한 태도가 아닐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