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은 여러 문화가 섞인 복합 공간입니다. 다양한 사람들이 만나는 장소이며, 로컬이 가진 고유한 특성을 잘 모여주는 곳이죠. 이런 이유로 도시의 특징적인 생활 문화를 경험하고 싶을 때 시장을 찾으라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특히 한국의 시장은 다양성과 생동감, K문화의 새로운 보고라는 이미지를 강화하며 최근에는 글로벌 관광객들의 필수 방문장소이자 MZ의 새로운 놀이터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그곳에서 새로운 공간과 맛으로 자기만의 영역을 만들어 가고 있는 셰프가 있습니다. 타코라는 가장 대중적인 멕시코 음식을 새롭게 해석해 미슐랭 스타를 받은 레스토랑부터 시장 한편을 담당하는 길거리 스타일까지 다양하게 변주합니다. 특히 멕시코의 길거리 음식 특징을 살려 신당 중앙시장에 문을 연 라까예, 경동시장 음식 골목 한 켠에 멕시코 느낌의 선술집 컨셉으로 운영 중인 페스카데리아 등 시장을 무대로 한 활동이 인상적입니다.
그는 왜 시장에서 매장을 운영하게 되었을까요? 멕시코 음식이라는 공통점을 가지지만, 각기 다른 공간과 지역의 특징을 담아 4개의 매장을 운영 중인 진우범 셰프를 만나 F&B 영역에서 지역과의 접점을 어떻게 만들어 가고 있는지 알아보았습니다.
한국에 ‘타코’를 소개하고 싶다는 마음에서 출발
Q. 간단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멕시코 음식을 전문으로 하는 F&B 브랜드 몰리노 프로젝트 대표이자 메인 셰프 진우범입니다. 건축을 전공했지만, 타코라는 음식을 너무 좋아한 나머지 ‘한국에 타코를 팔고 싶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사업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현재 4개의 매장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F&B 브랜드 몰리노 프로젝트 대표 진우범. 멕시칸 레스토랑 엘몰리노, 라까예, 에스콘디도, 페스카데리아를 운영하고 있다. Ⓒ몰리노 프로젝트
Q. ‘타코’라는 음식과 인연은 어떻게 시작되었나요?
저는 중학교 때 미국 캘리포니아로 이민을 가서 쭉 자랐습니다. 음식을 좋아하지도 않았고 관심도 전혀 없었어요. 그런데 유일하게 맛있다고 느낀 음식이 타코였습니다. 고등학교 1~2학년 나이 때 타코를 딱 먹었는데 정말 너무 맛있었어요. 그때부터 이 음식을 알리고 싶다, 팔고 싶다, 한국에 소개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당시만 해도 한국에서 타코가 굉장히 생소한 음식이었습니다. 그래서 맛있는 음식을 같이 먹고 싶은 마음처럼, 한국에서 팔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엘몰리노에서 인기가 좋은 피쉬 타코와 투뿔 한우 타코 Ⓒ몰리노 프로젝트
Q. 대학에서는 건축을 전공하셨다고 알고 있습니다. 전공과 전혀 다른 분야인 F&B 비즈니스를 시작하신 계기는 무엇인가요?
진로에 대한 고민이 많았어요.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고민하고 있던 시기에 스타트업에서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마이챗이라는 회사인데, 로컬의 사람과 외국인을 연결해 지역을 더 깊게 여행하도록 가이드 서비스를 제공하는 플랫폼이었죠. 이 회사에서 콘텐츠를 발굴하는 일을 담당했는데, 로컬 사람들의 유입을 높여야 하는 역할이었습니다. 자연스럽게 로컬의 젊은 사업가들, 사장님들을 만나는 계기가 되었고 이때 사업에 대한 관심이 생겼습니다. 사업을 하겠다고 생각하니 자연스럽게 타코가 떠올랐습니다. 타코를 먹을 때마다 한국에서 팔고 싶다는 생각을 했으니까요. 그래서 셰프가 되겠다, 또는 멕시코 음식 전문가가 되겠다는 생각보다는 타코라는 음식을 더 자세히 알고 싶다는 마음으로 멕시코로 향했습니다.
멕시코 음식을 이해하고 새롭게 해석하다
Q. 셰프님만의 ‘타코 바이브’가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타코 파인다이닝 엘몰리노를 열면서 기존에 알려진 타코 이미지와 달리 고급화된 타코 문화를 소개하셨습니다. 이러한 선택을 하신 이유가 궁금합니다.
저는 음식을 구분하거나 좋은 음식의 기준이 없습니다. 모든 F&B 브랜드들은 추구하는 방향성이 다를 뿐, 음식의 높낮이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죠. 저에게는 그 방향성이 멕시코 음식이었습니다. 멕시코 음식이 가진 문화와 가치를 담아내면서 선도하는 지점을 만들고 싶다는 마음에 엘몰리노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성수동에 위치한 타코 파인다이닝 엘몰리노 매장 Ⓒ몰리노 프로젝트
Q. 엘몰리노에 이어 미쉐린을 받은 에스콘디도, 신당 중앙시장에 자리한 라까예, 경동 시장 선술집 페스카데리아까지 4개의 매장을 운영 중이신데요. '타코를 중심으로 한 멕시코 음식'이라는 정체성을 공유하지만 각 매장에서 경험할 수 있는 음식과 추구하는 방향성에서는 차이가 있는 것 같습니다.
저는 음식의 맛에도 이유가 있어야 하고, 음식을 이해하는 순간 마음이 열리는 타입입니다. 그래서 음식을 탐구합니다. 구현하는 스타일은 직관적이지만, 그 전에 제 안에서 완벽한 이해가 끝나야 하는 것이죠. 처음에는 타코를 제외한 멕시코 음식들이 제 입에 잘 맞지 않았습니다. 멕시코 음식 문화를 이해하는데 정말 중요한 음식들인데, 저는 맛이 이해가 되지 않았던 것이죠. 그래서 쉬지 않고 먹었습니다. 그리고 이해의 영역을 넓혀 나가기 위해 제가 잘 아는 분야와 접점을 만들었습니다. 멕시코 건축을 통해 문화와 생활 환경, 발전사 등을 이해하고 그 과정에서 어떤 음식이 등장했는지, 이 음식은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입과 머리를 동시에 집중시킨 셈입니다. 탐구를 깊게 하고, 그 기간동안 제 입맛도 변화를 겪으면서 멕시코 음식에 빠져들었습니다. 그 결과가 지금 운영하고 있는 각 매장에 구현되었죠.
아시아 최초 미쉐린 1스타를 받은 에스콘디도 Ⓒ몰리노 프로젝트
근간이 되는 가치는 공유하지만 모든 매장에 동일한 철학을 담을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각 지역의 특징, 찾는 사람들의 성향, 우리가 제공하는 음식의 종류 등에 맞춰 철학도 변주가 됩니다. 정직한 음식을 한다는 기본은 지키지만 매장마다 고유한 가치를 만들어 가는 것이죠. 목적성과 목표성에 맞춰 음식과 서비스, 매장의 분위기 등을 만들어 갑니다.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를 고민하고 그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는 공간, 음식, 사람, 서비스를 채우다 보니 방향성이 다른 매장들이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시장을 배경으로 새로운 미식 로드를 개척하다
Q. 그중에서도 시장을 배경으로 한 활동들이 인상적입니다. 시장이라는 공간에서 어떤 기회와 매력을 느끼셨나요?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를 따라 시장을 정말 많이 다니면서 시장에 있는 사람들의 방식을 어느 정도는 체득했습니다. 그런 분위기와 풍경을 좋아하기도 했고, 재미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개인적인 취향에 더해 음식과의 연결성, 음식이 가진 정체성을 더 강화해 줄 수 있는지 여부 등을 고민했던 것 같습니다. ‘타코’라는 음식과 가장 어울릴 장소를 찾은 것이죠. 그 결과 신당 중앙시장을 선택했습니다. 지금은 신당 중앙시장 주변에 있는 이모님들과 눈빛만 봐도 통하는 사이가 됐습니다. 서로가 이해하는 영역이 넓어진 거죠. 이처럼 시장은 일단 재미있고, 사람들의 삶이 담겨 있습니다. 여러 사람들이 어우러지고, 그 안에서 강한 에너지도 느껴집니다. 이런 분위기 자체가 매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신당 중앙시장에 위치한 몰리노 프로젝트의 라까예 매장 모습 Ⓒ몰리노 프로젝트
Q. 멕시코 거리 음식이라는 현지의 감성을 유지하면서 한국 시장 고객층에 맞춰 변화를 줘야 하는 부분들도 있었을 것 같습니다. 신당 중앙시장 라까예 매장을 열고 타국의 거리 음식을 한국에 소개할 때 현지화 측면에서 신경 쓴 부분은 무엇일까요?
라까예는 떡볶이를 파는 것과 같은 개념의 매장입니다. 우리가 잘하는 음식을 최대한 저렴한 가격에 판매하자는 기획이었습니다. 타코를 누구라도 즐길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든 것이죠. 그래서 호스피탈리티나 서비스의 퀄리티를 고려하기보다 실질적 가치와 바이브를 더 고민했습니다. 신당 중앙시장의 메인 트래픽 지점에서는 조금 벗어난 곳에 위치하고 있지만, 라까예로 인해 올드하고 저렴한 시장의 분위기가 젊고 감각적으로 변화할 수 있도록 만들고 싶었습니다. 길거리 음식을 시장에서 판매한다는 강한 당위성을 기본으로 하지만, 그럼에도 공간 자체는 약간의 이질성을 만들어 시장에서 만날 수 없을 것 같은 경험을 주고자 했습니다. 밖은 한국의 시장이지만, 매장에 들어오는 순간 멕시코 어느 거리에 있는 느낌을 제공하는 것이 목표였습니다.
스트릿 푸드 타코의 특징과 신당 중앙시장의 매력을 더한 매장 라까예. 캐주얼하게 즐길 수 있는 메뉴들. Ⓒ몰리노 프로젝트
Q. 최근에는 경동시장에 해산물을 메인으로 하는 멕시칸 술집 컨셉의 매장을 오픈하셨습니다. 아이템의 변화가 눈에 띕니다.
경동시장은 식기류나 제철 식재료를 알아보기 위해 자주 방문하던 시장입니다. 친숙한 공간이죠. 서울에서 이런 특색을 가진 곳은 드물다고 생각했고, 이 안에 우리 매장이 있으면 재미있는 공간이 될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그런데 타코보다는 이곳의 바이브를 담아 주변 상인들이 자주 찾고, 편하게 어우러질 수 있었으면 했죠. 그래서 선술집 컨셉을 선택했습니다. 해산물 역시 몰리노 프로젝트의 아이덴티티는 유지하면서 지역과 공간 컨셉에 어울리는 아이템이라고 생각해 선택했습니다. 스트릿 타코와 해산물은 다른 분야이지만 강한 이질감이 느껴지지는 않습니다. 시장이라는 공간이 연결되다 보니 식재료가 달라져도 아이덴티티가 약해지는 느낌이 적었습니다. 맥락을 유지하면서 새로움을 보일 수 있는 선택이자 제공할 수 있는 음식의 확장이기도 합니다.
경동시장에 문을 연 멕시칸 술집 페스카데리아 Ⓒ몰리노 프로젝트
Q. 타코 또는 멕시코 음식이라는 하나의 키워드를 파인다이닝과 거리 음식이라는 구 방향으로 확장하셨다고 생각됩니다. 음식 스타일이나 매장 운영 방식의 변화이기도 하지만, F&B 기업 대표로서 공간에 대한 접근이 달라졌다는 느낌도 듭니다. F&B에서 공간은 어떤 기능을 한다고 생각하시나요?
F&B에서 공간은 음식의 정체성을 온전히 살리면서 경험 면에서도 일관된 메시지를 전달하는 매개입니다. 지역과 공간, 음식이 연결되어야 고객은 오감이 충족된 경험을 하게 됩니다. 현지에서 음식이 가지는 맥락, 당위성을 살리면서 본질에 집중할 수 있는 공간이 필수적인 이유입니다. 선보이고자 하는 요리가 명확하다면 매장의 입지보다 콘텐츠가 어우러질 수 있는 지역을 선택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톤앤매너가 잘 맞는 공간이 오히려 사람들에게 일관된 경험을 제공할 수 있고, 오감으로 느끼는 경험 설계에 최적화될 수 있습니다.
음식을 넘어 문화를 담아내고, 글로벌 연결을 꿈꾸는 몰리노 프로젝트
Q. 음식의 맛, 장소의 특별함과 함께 일관된 퀄리티와 컨셉을 담은 콘텐츠도 눈에 띕니다.
몰리노 프로젝트는 콘텐츠를 잘 만든다고 생각합니다. 콘텐츠는 다양할 수밖에 없는데요. 음식도 우리가 제공할 수 있는 하나의 콘텐츠라고 생각합니다. 그 밖에도 우리 이야기를 영상과 사진으로 잘 담아내고, 우리가 생각하는 바를 공간 인테리어와 디자인으로 풀어냅니다. 이 모든 과정을 통해 멕시코 음식, 문화를 한국에 알리고 함께 경험하는 매개체의 역할을 하는 것이죠. 몰리노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 미국에서 함께 공부했던 필름 전공 친구에게 함께 일하자는 제안을 한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 우리의 이야기를 잘 전달하고 싶었습니다. 물론 연결되고 이어지는 것도 중요하기에 일관성 있는 콘텐츠를 만드는 것도 중요합니다. 매장별로 상충된 이야기가 아닌 하나의 주제로 각기 다른 형식과 특징을 담아내고 있다고 알리는 부분도 신경 쓰고 있습니다.
몰리노 프로젝트의 인스타그램 피드. Ⓒ몰리노 프로젝트 인스타그램
Q. 몰리노 프로젝트의 다음 비즈니스 방향이 궁금합니다.
멕시코 음식을 한국에 알렸던 것처럼 이제 한국 음식을 멕시코에 알리는 일을 하고 싶습니다. 제대로 된 한식 매장을 멕시코에서 열 계획입니다. 한국 음식을 베이스로 멕시코에 한국 음식 문화를 소개하는 매장을 열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멕시코 음식을 베이스로 에스콘디도에 담았던 방향성과 철학을 완전히 반전하는 프로젝트이죠.
국내에서는 옥수수 반죽으로 만든 진짜 또띠아를 납품하는 공장을 만드는 게 꿈이었습니다. 지금도 유효한 꿈입니다. 물론 현실적인 수익성을 고려해야 하지만 점차 가능해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투자비를 생각하면 20~30년은 운영해야 하기 때문에 꿈의 실현을 위해 계속 준비를 하는 단계입니다. 마치 로스터리 카페처럼, 또띠아를 만드는 곳에서 타코도 판매하는 매장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멕시코 음식을 매개로 여러 비즈니스의 확장도 고민 중입니다. 1층에는 라까예, 2층은 에스콘디도가 있고, 지하는 또띠아 공장이 있는 그런 매장을 늘 그리고 있습니다. 언젠가는 이룰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몰리노 프로젝트가 소개하는 타코에서 핵심이 되는 또띠아. Ⓒ몰리노 프로젝트 제공
진우범 셰프는 음식의 맛은 기본이라고 몇 번씩 강조했습니다. 맛은 기본이고, 그 맛을 전하는 방법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었습니다. F&B 비즈니스를 함에도 꾸준히 지역과 공간에 관심을 기울이는 이유였죠. 브랜드 하나가 지역에 대한 이미지를 만들고, 찾는 사람을 바꾸며, 새로운 문화를 수혈하기도 합니다. 진우범 셰프의 몰리노 프로젝트는 K문화의 대표 공간인 로컬 시장에서 이 같은 역할을 수행하고 있었습니다. 여기서 멈추지 않고 글로벌로 확장도 계획 중입니다. 특히 그의 아이덴티티를 형성하는 또 다른 키워드인 멕시코에서 한국의 음식 문화를 전파하겠다는 확고한 의지가 엿보였습니다.
로컬 시장에 구현한 타코 바이브, 멕시코 음식의 향연을 넘어 세계 시장에서 한국 바이브를 어떻게 보여줄 지 그의 새로운 도전이 궁금합니다. 진우범 셰프의 글로벌 테이스트 로드를 꾸준히 따라가며 관심을 기울여 보면 새로운 도시, 지역, 공간을 발견하게 될 수 있을 것이라 기대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