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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는 한국을 떠나 미국에서 직업도 가지고 가정도 꾸려 살고 있습니다. A씨에게는 한국에 홀로 남은 어머니가 있는데, 몇 해 전부터 치매로 요양병원에 계십니다. 다행히 어머니의 가까운 친척분이 가끔 요양병원에 들러 어머니를 챙겨 주십니다만, 어쩔 수 없는 불안감은 남습니다. 특히 요양·간병비 명목으로 인출되는 어머니의 예금이 어머니를 위해 제대로 쓰이고 있는지 의심스럽습니다. 게다가 어머니 소유의 작은 집에서 나오는 임대료도 다른 친척이 받고 있다는 말도 들립니다. A씨는 미국에서의 생업과 가족들 때문에 한국에 자주 오기도, 오래 머물기도 어렵습니다. A씨는 어떻게 하면 어머니의 재산을 지킬 수 있을까요?
 

치매 머니: 2023년 154조 → 2050년 488조


국내 65세 이상의 치매 환자들이 갖고 있는 자산(부동산, 주식, 예금 등)인 이른바 ‘치매 머니’가 2023년 기준으로 154조 원에 달하고, 2050년에는 488조 원으로 급증할 전망이라고 합니다. 규모가 생각보다 어마어마한데요, 치매 환자들이 갖고 있는 자산이 왜 문제가 되는 것일까요?
어느 누군가가 자신의 재산을 적법하게 처분하려면 처분 당시에 온전한 의사결정 능력이 있어야 하는데, 치매 환자는 온전한 의사결정 능력이 있는지 여부가 곧바로 쟁점이 되기 때문입니다. 만약 치매 환자가 온전한 의사결정 능력이 없다면, 원칙적으로는 자신의 부동산을 팔 수도 없고 예금을 인출할 수도 없습니다. 다른 누군가에게 위임장을 써주는 것도 온전한 의사결정 능력이 있어야 유효하기 때문에, 위임장을 통한 부동산 거래나 예금 인출도 안 되는 것입니다. 당연히 유언도 적법하게 하기 어렵습니다.
 

후견 제도


치매 등으로 인해 사무처리 능력에 도움이 필요한 성인에게 가정법원의 결정 또는 후견계약으로 선임된 후견인이 재산관리 및 일상생활에 관한 보호와 지원을 제공하기 위한 제도가 바로 후견제도입니다.
민법상 후견제도에는 성년후견, 한정후견, 특정후견, 임의후견 이렇게 네 종류가 있는데요, 치매와 같은 정신적 제약이 생긴 후에 법원이 후견인을 정하는 ‘법정후견(성년후견, 한정후견, 특정후견)’과 판단 능력이 있을 때 미리 후견인과 관리 내용을 계약으로 정해두는 ‘임의후견’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정리하면 ①치매 등을 대비하여 정신이 온전한 때에 미리 계약으로 후견인을 지정해 두는 것이 임의후견, ②치매 등으로 정신적 제약이 생긴 후에 본인 또는 가족 등이 법원을 통해 후견인을 선임하는 것이 법정후견(성년후견, 한정후견, 특정후견)인 것입니다.
위 사례에서 A씨는 법정후견 중 성년후견 제도를 이용하여 어머니의 재산 현황을 확인하고 재산 손실을 막을 수 있습니다. 물론 A씨가 외국에 있으므로 후견 심판 과정에서 필요한 서류를 준비하고 제출하는데 실무적으로 번거로움과 일정 지연이 발생하고, A씨 자신이 후견인이 되기는 어려워 별로도 선임된 후견인에 대한 보수가 발생하는 단점도 있습니다만, 이미 어머니가 중증 치매 상태에 있는 상황에서 어머니의 재산을 지킬 수 있는 법적인 방법은 성년후견 제도 밖에 없습니다. 성년후견 제도를 이용하지 않는다면, A씨는 나중에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에 상속인으로서 어머니 재산을 물려받아 사후적으로 재산을 확인하고 복구해야 합니다.
이상적인 관점에서는 치매 등 정신적 제약이 오기 전에 스스로 임의후견 제도를 활용하는 것이 좋겠으나, 아직 우리 정서상 스스로 미리 후견인을 정하는 것이 어색하고 또한 임의후견의 과정이 상대적으로 절차가 복잡하며 비용도 적지 않게 드는 관계로 활용률은 낮습니다.
 

신탁 제도


앞서 설명한 후견 제도는 결국 법원을 통해 진행하는 것인 반면, 법원을 통하지 않고 당사자 사이의 계약으로 비슷한 효과를 내는 것이 신탁 제도입니다.
유언대용신탁은 위탁자(고객)가 수탁자(금융기관)에게 금전·유가증권·부동산 등을 맡기고 생전에는 본인을 수익자로 지정하여 신탁재산에서 발생한 수익(이자, 임대료 등)을 받고, 사망 후에는 생전에 정한 수익자(배우자·자녀 등)에게 신탁재산에 관한 권리를 이전하는 제도입니다. 위탁자는 민법이 정한 유언장 대신 신탁법에 따라 신탁계약 형태로 재산을 관리하고 이전할 수 있습니다.
금융회사들은 유언대용신탁에 특약을 추가하는 방식으로 치매 머니 관리가 가능하게 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가입자가 치매에 걸려 의사능력에 문제가 생길 경우 가입자 자산의 일부를 대리인(예; 자녀)에게 지급해 병원비나 간병비 등에 쓸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물론 신탁계약 역시 법률행위이기 때문에, 치매 등으로 인해 온전한 의사능력이 없는 상태에서는 체결하기 어렵다는 점에 유의해야 합니다.
 
우리나라는 전체 인구 중 65세 이상 노인 인구가 20% 이상인 초고령사회에 이미 진입하였습니다. 치매 머니 역시 앞으로 계속 증가할 것임은 자명한데요, 우리나라보다 앞서 초고령사회를 맞이한 일본의 사례에서 많은 힌트를 얻어 우리나라도 치매 머니 관리에 도움이 되는 제도 개선이 활발히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황태상

황태상

변호사

숫자를 볼 줄 아는, 회계사 출신 변호사입니다. 세금, 상속, 부동산 문제를 주로 해결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