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FTEC 2025의 전시장은 이전과 분명히 다른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전통적으로 펌프, 블로어, 막여과, 슬러지 처리 기술이 중심이던 이 전시회에서, 올해는 유난히 데이터센터, AI, 디지털 인프라라는 키워드가 반복적으로 등장했다. 일부 부스에서는 아예 “Water for AI Infrastructure”, “Cooling the Cloud”라는 문구가 전면에 배치되기도 했다. 물 산업의 대표 전시회에서 왜 데이터센터 이야기가 이렇게 자주 언급되었을까? 이는 단순한 유행이나 마케팅 문구가 아니다. AI 시대의 데이터센터는 이제 물 인프라 없이는 존립할 수 없는 산업 구조로 진입했다. WEFTEC 2025는 물 산업과 데이터 산업이 더 이상 평행선을 달리는 존재가 아니라, 같은 문제를 공유하는 이해당사자가 되었음을 명확히 보여주었다.
AI 데이터센터는 왜 ‘물 집약적 인프라’가 되었는가
데이터센터는 흔히 전력 집약적 시설로 인식되어 왔다. 그러나 AI 연산 비중이 급격히 증가하면서, 문제의 본질은 전력만이 아니라 열과 냉각, 그리고 그 냉각을 위한 물로 이동하고 있다. WEFTEC 2025에서 다수의 세션과 패널 토론을 통해 공통적으로 제시된 수치는 다음과 같다.
- 100MW급 데이터센터 → 하루 평균 200만~300만 리터의 물 소비
- 약 6,000~8,000 가구의 일일 생활용수 사용량에 해당
- AI 서버 비중이 커질수록 공랭식 냉각은 효율 한계에 도달
- 고집적 GPU 서버는 수랭식 또는 하이브리드 냉각 없이는 안정적 운영 불가
즉, 데이터센터는 더 이상 “전기만 있으면 되는 시설”이 아니다. 안정적인 물 공급이 전제되지 않으면 설계 단계부터 성립하지 않는 인프라가 되었다. 이 변화는 데이터센터의 입지 전략, 인허가 구조, 투자 리스크 평가까지 근본적으로 바꾸고 있다.
국가별로 현실화된 ‘물과 데이터’의 갈등
WEFTEC에서 특히 인상 깊었던 점은, 이 문제가 미래의 가설이 아니라 이미 각국에서 현실적인 갈등과 정책 대응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① 미국: 데이터센터는 늘고, 물 허가는 막힌다
미국은 데이터센터가 가장 빠르게 늘어나는 시장이지만, 갈등의 형태는 지역에 따라 다르게 표출된다. 서부·사막권은 직접적인 물 부족이, 동부·오대호권은 대형 취수(取水)와 생태 영향이 쟁점이 된다.
- 애리조나(사막권): “물 사용을 공개하라”에서 “규제로 제한하라”로
- 2025년 애리조나 투손(Tucson)은 대형 물 사용자 규제를 강화했다. 월 740만 갤런(약 2,800만 L) 초과 사용 예상 사업자는 물 보전 계획 제출 + 공적 검토 + 시의회 승인을 요구받게 됐다. “비밀 추진 + 대규모 물 사용”에 대한 시민 반발이 제도 변화로 이어진 대표 사례다.
- 같은 애리조나의 챈들러(Chandler)에서는 AI 데이터센터 캠퍼스 리조닝(용도변경) 안건이 시의회에서 만장일치 부결되기도 했다. 반대 논리의 핵심으로 물 사용·소음·지역 편익 부족이 공개적으로 언급됐다.
- 즉, 미국 남서부에서는 “물은 충분하다/부족하다”의 총량 논쟁을 넘어, ‘누가, 어떤 조건으로, 어떤 투명성으로’ 물을 쓰는가가 인허가의 본질이 되고 있다.
- 오대호권(담수권): 물이 많아도 ‘취수 규모’와 ‘지역 주권’이 갈등으로
- 2025년 12월 보도에 따르면, 위스콘신에서 계획된 마이크로소프트 AI 허브가 연간 84억 갤런의 레이크미시간 물 사용과 연결되어 지역 우려를 키우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담수권이라도 대형 수요가 생태·농업·지역 인프라 부담으로 인식되면 강한 반발이 발생한다는 메시지다.
- 같은 기사 흐름에서, 데이터센터가 “폐쇄형(closed-loop)”을 주장해도 실제 운영에서는 일정 수준의 물 사용과 열 배출(가열된 방류수 등) 이슈가 남는다는 논쟁이 같이 등장한다.
- 버지니아(집적지): ‘물’ 이전에 ‘전력·열·도시 인프라 한계’가 먼저 폭발
- 버지니아 북부는 데이터센터 초집적지로 유명하다. 2024년 기준 보고서·자료에서는 (버지니아 전력회사 Dominion 기준) 데이터센터가 전체 전력 판매의 약 21%를 차지한 것으로 인용된다. “전력망이 흔들리면 결국 냉각(물) 전략도 흔들린다”는 점에서, 물과 데이터 갈등이 전력 제약과 묶여 커지는 대표 사례다
② 유럽: 허용하되, “성능지표 (Water Usage Effectiveness, WUE)∙입지∙총량”으로 조인다
유럽은 갈등이 폭발하기 전에, 규제와 계획(urban planning)으로 데이터센터의 물·에너지 부담을 ‘관리 가능한 틀’로 밀어 넣는 방식이 강하다.
- 네덜란드(암스테르담 권역): 인프라 스트레스를 이유로 ‘모라토리엄(유예)’ 경험
- 암스테르담과 인접 지자체는 2019년 데이터센터 개발을 사실상 멈추는 모라토리엄을 도입했고, 이후 지정 구역·에너지 효율 요건 등 조건을 붙여 관리하는 흐름으로 이동했다. “도시 인프라(전력·공간·환경)의 수용력”이 한계에 도달하면, 유럽은 허가를 일시 정지시키는 선택도 가능하다는 점을 보여준다.
- EU 차원의 흐름: 물 사용도 ‘지표화’하여 공개·관리
- S&P Global은 EU에서 데이터센터에 대해 물 사용 효율(WUE) 등 지표 기반 보고 체계가 강화되는 방향을 정리하며, 향후 최소 성능 기준 논의가 이어질 수 있음을 언급한다. (여기서 중요한 건 “찬반”이 아니라 ‘숫자로 보고하고, 기준으로 통제’하는 유럽식 접근이다.)
③ 아시아: 밀도 높은 도시, 더 복잡한 문제
싱가포르와 한국은 도시 밀도가 높아 문제는 더욱 복합적이다. 싱가포르는 NEWater를 통해 하수 재이용수를 국가 전략 자원으로 격상시켰고, 산업·데이터센터 용수로 적극 활용하고 있다. 한국은 아직 미국 남서부처럼 “물 허가가 즉시 병목”이 되는 단계라고 단정하긴 어렵지만, 냉각 수요가 빠르게 커지는 것은 분명한 흐름으로 관측된다. 현재 한국은 “전력·부지·주민수용성”이 먼저 논쟁이지만, 데이터센터 냉각이 본격적으로 수랭/하이브리드로 이동할수록 물 사용과 재이용(하수처리수) 조건이 인허가·ESG·금융의 핵심 변수로 올라올 가능성이 높다.
- 한 시장조사 추정에 따르면, 한국 데이터센터의 물 소비는 2025년 744억L 에서 2030년, 1,546억L로 증가 (약 2배) 전망이 제시되었다.
WEFTEC 2025가 보여준 물 산업의 역할 변화
이러한 배경 속에서 WEFTEC 2025는 물 산업 스스로의 인식 전환을 명확히 보여주었다. 하수처리장은 더 이상 “오염수를 처리하는 비용 센터”로만 다뤄지지 않았다. 전시와 세션에서 반복적으로 언급된 하수처리장의 새로운 역할은 다음과 같다.
- 처리수는 산업용수·데이터센터 냉각수로의 활용
- 바이오가스는 도심이나 시설에서 필요한 전력·열 공급원
- 슬러지는 에너지·탄소 관리 자산
- 도심 내 하수처리 부지는 복합 인프라 개발 거점
이는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역할의 재정의다. 물 산업은 이제 환경 규제를 충족시키는 보조 산업이 아니라, 도시 경쟁력을 좌우하는 핵심 인프라 제공자로 이동하고 있다.
물과 데이터는 이미 분리될 수 없는 관계다
중요한 점은, 이 관계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데이터센터는 물 없이는 확장할 수 없고, 도시는 데이터센터 없이는 디지털 경쟁력을 유지할 수 없다. 동시에 하수처리장은 도시 안에서 가장 안정적인 물 공급원 중 하나다. WEFTEC 2025에서 반복적으로 제기된 질문은 단순했다. “왜 우리는 아직도 이 인프라들을 따로 설계하고 있는가?” 였다. '데이터센터는 물을 필요로 한다, 하수처리장은 물을 보유하고 있다, 데이터센터는 전력을 소비한다, 하수처리장은 에너지를 생산할 수 있다' 라는 단순한 구조적 사실이 이제야 정책과 산업의 언어로 번역되고 있는 것이다.
1화에서는 분절된 인프라의 구조적 한계를 보았다. 2화에서는 그 한계가 이미 전 세계적으로 현실화되고 있음을 확인했다. 이제 남은 질문은 더 구체적이다. “그렇다면 미래의 하수처리장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
다음 화에서는, 이러한 글로벌 흐름 속에서 왜 하수처리장이 단순한 환경시설을 넘어 도시의 통합 인프라 플랫폼, 즉 새로운 형태의 캠퍼스로 진화해야 하는지, 그리고 그 변화가 더 이상 이상적인 비전이 아니라 불가피한 선택이 되었음을 다루고자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