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은행에서 부동산전문가로서 첫고객으로 상담을 맡은 H고객의 일성이었습니다. 사실 저는 그날 상담을 위해 주변 임대료 시세 및 유동인구 등 많은 자료를 준비했었습니다. 준비된 부동산 전문가로서 인상을 심어주기 위해서였죠. 그러나 그 고객은 제가 반나절 들여 준비한 자료의 브리핑에 대해서는 큰 감흥을 보이지 않고, 제 손을 끌고 현장 동행 임장을 요청했습니다.
자녀에게 증여를 위해 신논현역 사거리 대로변의 빌딩 매입을 고려하던 H고객은 낮과 밤, 주말과 평일 6번 그 건물 주변을 둘러봤다고 했습니다. 사실 고객은 이미 여섯 차례의 사전 임장으로 그 물건의 상권이나 입지에 대해서는 데이터가 필요 없을 만큼 잘 이해하고 있었습니다.전문가의 의견과 시선은 어떤지를 듣고자 했던 것이었죠.
H고객이 빌딩 매입을 위해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오갔던 신논현역 주변 Ⓒ시티폴리오
대로변에 접한 해당 물건은 입지는 물론 가격도 경쟁력 있는 수준이었습니다. 다만 걱정이 있다면 지하층의 유흥주점이었습니다. 하지만 임대차 종료까지 철저한 준비를 통해 임대차 종료 및 명도를 준비한 덕에, 오히려 부담스럽게 여겨지는 임차의 단점을 가격적인 장점으로 전환할 수 있었습니다.
자녀에게 증여목적의 투자는 싸게 사는 것이 중요합니다. 결국 자산 가격 상승분 만큼을 자녀의 자산으로 이전시키는 결과로 이어져야 하기 때문이죠. 투자 결과는 물론 성공적이었습니다. 매입 5년만에 가격은 세배 올랐고 H고객과 자녀들은 매각을 통해 차익을 실현해서 더 규모가 큰 부동산으로 자산을 불려갔습니다
이미 20년도 지난 얘기지만, 당시 70살을 바라보던 H고객이 제게 알려준 부동산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투자법은 지금까지도 따르는 중요한 원칙이 되었습니다.누구나 아는 얘기지만, H고객처럼 기본기에 충실한 투자결정을 한다면 수익성 부동산 투자의 실패 확률을 최소화할 수 있습니다.
내 발로 직접 밟아보고 걸어보면서 부동산을 오감으로 느끼는 법, 가장 중요하고 기본적인 투자 첫걸음입니다. 실전라운지 두번째 이야기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은 상권 임장에 중요성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지도 앱에는 없는 치명적 리스크: 동선의 단절과 흐르는 상권
2화에서는 수익형 부동산 투자의 핵심인 '임장(현장 답사)'이 왜 물리적 실사의 완성인지를 알아보겠습니다. 이때 그럴듯해 보이는 수익률 계산보다 중요한 것은 임차인이 실제로 돈을 벌 수 있는 환경인지를 확인하는 것입니다.
많은 초보 투자자들은 흔히 "유동 인구가 많으면 장사가 잘되고 수익률도 높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진짜 실패하지 않는 투자자들은 반드시 운동화 끈을 조여 매고 현장으로 향합니다. 어떤 사람들이 그 곳을 오가고 어떤 목적으로 방문하며 얼마나 자주 오는 지, 눈으로 확인해보는 것만큼 중요한 것이 없기 때문이죠
오늘은 부동산 투자의 기본 원칙 상업용 부동산 임장(Commercial Due Diligence)의 핵심 포인트를 짚어드립니다.
유동 인구의 함정, '빨대 상권'과 '데드존'
지도상으로 완벽해 보이는 대로변 건물을 발견했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건물 앞은 늘 사람들로 붐비고 깔끔합니다. 하지만 막상 임차인을 구하려니 유명 프랜차이즈들이 줄줄이 입점을 거절합니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 실제 사례와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CASE STUDY] "사람은 많은데 결제는 없다? '통로 상권'의 비극"
[상황]: 투자자 M씨는 강남권 지하철역 인근, 유동 인구가 서울 최상위권인 코너 건물을 매입했습니다. 로드뷰로 봐도 사람들은 꽉 차 있었고 시세보다 저렴했습니다.
[현실]: 알고 보니 그 길은 직장인들의 '지각 방지용 출근 코스'였습니다. 사람들은 8시 50분에 지하철에서 내려 9시 정각까지 사무실로 '빨려 들어'갔습니다. 멈춰서 커피 한 잔 살 여유조차 없는 '흐르는 동선'이었던 것입니다.
[결말]: 퇴근길 동선은 아예 다른 골목으로 형성되어 있었고, M씨의 건물 앞은 저녁만 되면 적막이 흐르는 '데드존'이 되었습니다. 결국 M씨는 높은 대출 이자를 견디지 못하고 급매로 내놓았지만, '장사가 안되는 자리'라는 소문에 매수자마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이 사례는 사람의 숫자(Traffic)와 소비로의 전환(Conversion)을 구분하지 못해 발생한 전형적인 케이스입니다. 부동산의 가치는 단순히 사람의 수에 비례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어디서 머물고 어디서 지갑을 여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이것이 왜 치명적일까요?
임대료 상승이 불가능합니다. 임차인이 돈을 못 벌면 건물주는 절대 임대료를 올릴 수 없습니다. 임차인이 자주 바뀌거나 공실이 길어지면 수익가치를 높이기 어렵기 때문이죠.
금융의 문이 좁아집니다. 공실이 길어지거나 임대 수익률이 떨어지면, 금융기관은 해당 물건의 가치를 낮게 평가하여 대출 연장을 거부하거나 한도를 축소합니다. 매매시 대출 한도를 결정할 때도 같은 평가 금액이라도 임대료가 적으면 RTI(Rent To Interest ratio:임대업이자상환비율)도 낮아지므로 대출금액이 줄어듭니다.
밸류애드가 의미 없어집니다. 아무리 리모델링을 예쁘게 해도, 고객이 들어오지 않는 동선이라면 투입된 공사비는 고스란히 손실로 돌아옵니다. 우량 임차인(Key Tenant) 유치가 불가능합니다. 스타벅스, 맥도날드, 올리브영 같은 대형 프랜차이즈일수록 철저하게 '배후 수요'와 '소비 동선'을 분석해 들어옵니다. '흐르는 자리'라고 판단되면 아무리 월세를 깎아줘도 들어오지 않습니다. 건물의 가치를 올려줄 키 테넌트가 없으면 건물 가격 상승도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글로벌 도시락회사 스노우폭스 창업자로 회사를 매각하여 지금은 1조원 이상의 자산을 운용하는 투자자 김승호 회장이 최근 그의 강의를 통해 본인의 부동산 투자법을 소개한 내용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국내에서 1호 점포를 내기 위해 명동 입구의 목 좋은 곳의 상가를 소개받아 현장에 가보니 느낌이 좋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유가 뭔지 알기 위해 3시간 동안 해당 건물앞에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의 흐름을 보니 원인을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외부에서 유입되는 사람들의 동선이 해당 건물 정문이 아닌 뒷편으로 흐르고 있어 상권의 초입 역세권이라 입지는 좋아 보였지만, 결국 상권이 활성화되지 않고 임차인이 자주 바뀌는 상가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직접 사용할 부동산일수록 직접 가서 보고 오랫동안 머물거나 여러 번 방문해서 분위기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투자에 있어 숫자로 설명되는 상권 분석 데이터 만큼이나 실제 현장에서 상권의 흐름과 그 기운을 느끼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 고수의 TIP
1. 반드시 '대중교통'을 이용해 걸어가십시오. 부동산 앞까지 차를 타고 편하게 이동하면 절대 알 수 없는 것들이 있습니다. 실제 거주할 세입자의 입장이 되어 지하철역이나 버스 정류장에서부터 걸어가보세요. 가는 길에 가로등은 충분한지, 유해 시설은 없는지, 경사도는 감당할 만한지 직접 '내 다리'로 느껴야 합니다.
2. 시간대별로, 날씨별로 방문하십시오. 낮에는 평온해 보이던 골목이 밤에는 우범지대처럼 어두울 수 있고, 맑은 날엔 좋았던 집이 비가 오면 배수가 안 되어 물바다가 될 수 있습니다. 마음에 드는 물건이라면 최소한 낮과 밤, 평일과 주말, 맑은 날과 궂은 날 등 다양한 환경에서 체크해야 합니다.
신논현역 인근 골목 상권의 경우 낮에는 한산하지만, 저녁 시간대가 되면 유동 인구가 몰리는 것이 특징이다. Ⓒ시티폴리오
3. 동네의 '스피커'를 만나십시오. 현장의 정보는 부동산 중개소에만 있지 않습니다. 인근 편의점 사장님, 세탁소 주인, 혹은 골목에 나와 계신 어르신들과 대화를 나눠보십시오. "이 동네는 살기 어때요?"와 같은 가벼운 질문 하나에 소음, 누수 이력, 이웃 간의 분쟁 등 서류에는 없는 '진짜 정보'가 쏟아져 나올 것입니다.
4. 현장에서 상가 뒤편 '쓰레기 집하장'과 '배달 오토바이'를 확인하십시오. 건물 뒤편에 식자재 박스와 종량제 봉투가 얼마나 쌓여 있는지 살펴보세요. 그곳이 바로 임차인들의 진짜 매출을 보여주는 '숨겨진 장부'입니다. 그리고 피크 시간에 배달 오토바이가 얼마나 빈번하게 드나드는지가 그 상권의 생존력을 대변합니다.
분리배출물 규모를 통해 인근 매장과 주변의 활성도를 확인할 수 있다. Ⓒ시티폴리오
상권 분석 체크리스트 Ⓒ안명숙
안명숙
서울프라퍼티인사이트 자문위원. 부동산 마케팅 솔루션제작소 오지랖 대표
30여년 경력의 현직 부동산 자산관리 전문가. 금융권 부동산 컨설턴트, 부동산 조각투자 플랫폼 스타트업 기업 등을 거치면서 세대를 아우르는 부자들의 관심과 니즈를 분석해왔다. 부동산이 도시와 개인의 가치있는 자산으로 오랫동안 자리매김하도록 오늘도 유쾌하게 오지랖을 떨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