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는 더 이상 중심에서만 자라지 않습니다. 때로는 숲 한가운데 세워진 미술관 하나가, 지도 위의 좌표를 새롭게 정의합니다. 크뢸러 뮐러 미술관은 교외가 ‘도시의 그림자가 아니라, 독립적인 문화 지형이 될 수 있음’을 증명한 사례입니다.
“Welcome to Another World”1
크뢸러 뮐러 미술관(Kröller-Müller Museum). Ⓒ장남수
도시 밖으로 나간다는 것은, 종종 ‘무언가를 포기한다’는 의미가 되기도 합니다. 접근성, 밀도, 편의성, 심지어는 즉각적인 반응들까지도 그 대상이 됩니다. 그러나 크뢸러 뮐러 미술관(Kröller-Müller Museum)은 이 통념을 정면으로 뒤집는 사례입니다. 이 미술관은 도시를 벗어난 결과물이 아니라, 도시의 논리로부터 의도적으로 이탈한 선택의 산물입니다. 그리고 그 선택은 결과적으로 교외의 가치를 새롭게 정의했습니다.
1편에서 살펴본 ‘덴마크 루이지애나 근대미술관’이 대도시의 문화 반경을 교외로 ‘확장’시킨 모델이라면, 크뢸러 뮐러는 그와 반대로 자연 한가운데에서 독립적인 문화 좌표를 만들어낸 미술관입니다.
이번 편에서는 이 미술관이 도시 밖에 세워졌는지, 그리고 그 선택이 어떻게 도시를 넘어 하나의 국가적 문화 인프라로 작동하게 되었는지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좌)국립공원 ‘드 호헤 벨루베’ 숲에 둘러 싸인 미술관. Ⓒ크뢸러 뮐러 홈페이지 (우) 주변 도시와의 거리, 국립공원의 규모 . Ⓒ구글맵
숲을 나누지 않고 스며들 듯 이어지는 길. 크뢸러 뮐러 미술관은 ‘도시를 떠난 끝’에 도착한다.
미술관이 도시 밖에 세워진 이유
국립공원과 미술관 산책로, 조각공원의 관계를 볼 수 있는 143개의 조각과 아티스트 리스트. Ⓒ크뢸러 밀러 홈페이지
네덜란드 중부, 암스테르담과 로테르담 어디에서도 쉽게 닿지 않는 ‘드 호헤 벨루베’ 국립공원 (De Hoge Veluwe, 55㎢, 여의도의 19배) 한가운데, 크뢸러 뮐러 미술관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대도시의 외곽이기보다는, 오히려 도시의 연속이 끝난 이후에야 도달할 수 있는 장소입니다. 이 미술관을 방문한다는 것은 단순히 하나의 문화시설을 찾는 일이 아니라, 하나의 풍경과 보다 넓은 일종의 국가적 ‘선택’ 안으로 들어가는 경험에 가깝습니다.
크뢸러 뮐러 미술관은 도시 재생의 ‘첨단’이 아니라, 도시 이후의 공간, 즉 교외와 자연의 가치를 어떻게 문화 인프라로 전환할 수 있는지를 묻는 사례입니다. 루이지애나 근대미술관이 북유럽 해안의 일상적 풍경을 문화적 밀도로 끌어올렸다면, 크뢸러 뮐러는 국가 차원의 자연 보호 정책과 예술 컬렉션을 하나의 구조로 결합한 모델에 가깝습니다.
이 입지는 우연히 선택되지 않았습니다. 미술관의 설립자 헬레네 크뢸러-뮐러는, 작품을 ‘보는 행위’ 이전에 감상할 상태가 먼저 준비되어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그 준비의 시간은 도시가 아니라, 숲과 걷기, 그리고 고요 속에서 만들어진다고 판단했습니다. 따라서 이 미술관으로 향하는 과정 자체까지도 전시의 일부가 되게끔 설계했습니다. 이곳에서는 자동차보다 자전거, 빠른 이동보다 느린 접근, 목적지보다 과정이 더 큰 의미를 가집니다.
크뢸러 뮐러에 이르는 길은 ‘이동’이 아니라, 관람의 ‘전주곡’이다.
접근 시퀀스: 공원 입구 및 내부 자전거·보행 동선과 옥외 전시물과의 조화. Ⓒ장남수
미술관에 도착하기 전, 방문객은 이미 국립공원의 일부가 됩니다. 숲길을 따라 자전거를 타거나, 완만한 곡선을 그리는 도로를 지나며 풍경의 리듬에 몸을 맡기게 됩니다. 이 접근 과정 자체가 미술관 경험의 일부로 설계되어 있습니다. 이는 도심형 미술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목적지 중심’의 방문 방식과는 분명히 다른 태도입니다.
걷는 것만으로도 여유를 느낄 수 있는 미술관 산책로. 자연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노부부의 모습. Ⓒ장남수
자연을 ‘배경’이 아니라 ‘규모’로 다루는 방식
크뢸러 뮐러를 흔히‘자연 속 미술관’이라 부르지만, 이 표현만으로는 이 공간의 본질을 충분히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이곳에서 자연은 배경이 아닙니다. 자연 그 자체가 전시의 스케일을 규정하는 기준입니다.
• 건축은 숲의 흐름을 끊지 않도록 낮고 수평적으로 배치되고, • 전시실은 자연광과 그림자를 내부로 끌어들이며, • 야외 조각정원은 ‘부속 공간’이 아니라 국립공원의 보행 구조 일부로 작동합니다. • 소요하고 사색하는 그 길 위에 조각과 파빌리온, 그리고 미술관이 있습니다.
루이지애나 근대미술관이 바다와 수평선이라는 ‘풍경의 감각’을 통해 공간을 설계했다면, 크뢸러 뮐러 미술관은 숲과 대지의 물리적 크기, 그리고 그곳을 거니는 시간의 규모를 그대로 투사합니다. 이곳에서 관람은 몇 개의 전시실을 도는 행위가 아니라, 하루 전체의 이동 경험으로 확장됩니다.
작품은 놓여지고, 자연은 강요하지 않는다. 관람자의 머무름이 길어질 뿐이다.
(좌) 숲 속에 놓여지는 조각과 산책로. (중앙) 단층의 전시관과 조각 정원. (우) 움직이는 작품과 호수 풍경. Ⓒ장남수
반 고흐 컬렉션의 ‘총량’이 아닌 ‘밀도’
또 하나, 크뢸러 뮐러 미술관을 세계적으로 규정짓는 요소는 단연 빈센트 반 고흐 컬렉션입니다. 그러나 이곳의 반 고흐 작품들은 “많다”는 말보다“응축되어 있다”는 표현이 더 정확합니다.
• 초기 드로잉부터 후기 회화까지의 연속성 (유화 87점 기증, 현재 100여 점) • 실험작과 실패작이 생략되지 않은 작품 구성 • 대표작과 비대표작이 동등한 비중으로 놓이는 전시 방식 • 대표작 중에서도 단연 사랑받는 '밤의 카페 테라스' 등 전시
자연의 여운 속에서 만나는 ‘반 고흐’
빈센트 반 고흐의 대표작, '밤의 카페 테라스(1888)'와 '밤의 프로방스 시골길(1890)'. Ⓒ장남수
이는 루이지애나의 ‘동시대 미술의 폭넓은 스펙트럼’과 분명히 대비됩니다. 루이지애나가 다양성을 통해 도시의 문화 감수성을 확장했다면, 크뢸러 뮐러는 한 작가의 세계를 끝까지 밀어붙임으로써 장소의 정체성을 고정시키고 전문성을 강조하였습니다.
(좌) 중정과 하늘이 보이는 전시실의 창. (중앙) 반 고흐 전시실의 스카이라이트. (우) 숲으로 열린 복도 공간. Ⓒ장남수
길게 이어지는 숲과 조각의 풍경을 지난 뒤 실내 전시실에 들어가면, 공간은 놀라울 만큼 고요해집니다. 헬레네가 수집한 고흐 작품들은 화려하게 조명되는 대신 자연광이 들어오는 차분한 방에 걸려 있으며, 숲의 그림자가 벽면 위에 얇은 겹을 형성하여 고흐의 색을 더 깊게 만들어줍니다. 관람객이 이 방에 오래 머무는 이유는 작품이 강렬해서가 아니라, 작품과 숲의 리듬이 서로를 가라앉히기 때문입니다. 숲을 지나온 시간이 고흐의 그림을 완전히 다른 느낌의 감각으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이곳은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반 고흐 컬렉션을 보유하고 있으며, 고흐가 1890년에 사망한 이후 크게 조명받기 전인 20세기 초부터 설립자가 수집하였습니다. 보유한 작품의 양과 작품을 수집한 시점보다도 주목해야 할 부분은 바로 이 컬렉션이 미술관과 공원 전체의 성격을 규정하는 방식입니다.
실내 기획전시실: 숲이 비치는 창과 자연광이 들어오는 천창. Ⓒ장남수
실내 기획전시실: 긴 Span과 천정고가 확보된 대형 전시공간. Ⓒ장남수
이어지는 공간은 기획전시 공간입니다. 반 고흐 상설전시에 뒤지지 않을 만큼, 설립자가 기증했던 11,500점의 빛나는 근현대미술 컬렉션은 이후 꾸준히 늘어났으며, 수집과 큐레이션의 수준은 물론, 균질하게 유입되는 빛과 푸른 자연이 관입되는 전시공간의 짜임새가 훌륭합니다. 이를 바탕으로 (1) 9.1만평 부지 143개의 야외 조각과 파빌리온, (2) 밀도 높은 100여 점의 반고흐 컬렉션을 통한 특별한 상설전시, (3) 현대미술의 총아인 유니크하고 크리에이티브한 기획전시의 3박자를 모두 갖춘 유일무이한 미술관이 국립공원과 함께 그 서사가 완성되는 것입니다.
자연을 품은 전시실: 공간의 어디에나 빛과 자연이 들어오는 창이 나 있다. Ⓒ장남수
파빌리온 전시실: 숲속에 위치하여 조각과 산책로, 휴식공간을 연결해 준다. Ⓒ장남수
개인 컬렉션에서 국가 문화 인프라로
크뢸러 뮐러 미술관을 ‘자연 속 미술관’으로 꿈꾸며, 1938년 남편의 사냥터부지에 미술관과 조각공원을 설립한 것은 ‘헬레나 크뢸러-뮐러’ 개인의 열정이었으며, 이후 1951년 부지와 컬렉션 모두를 사회에 환원하는 과정을 통해 현재 미술관은 국가의 관리를 받고 있습니다.
• 미술관은 ‘드 호헤 벨루베’ 국립공원 관리 체계 안에 포함되어 있고, • 접근은 자동차가 아니라 주로 공원 내 자전거 네트워크를 통해 이루어지며, • 문화 관람은 자연보호, 환경교육, 공공여가 정책과 하나의 구조로 엮여 있습니다.
이 지점에서 크뢸러 뮐러는 단순한 미술관 건물을 넘어, 국가 차원의 문화·환경·관광 정책이 결합된 복합 인프라 시스템으로 작동합니다. ‘루이지애나’를 민간의 운영 역량으로 교외를 문화화한 사례라고 한다면, ‘크뢸러 뮐러’는 국가가 교외를 하나의 ‘문화 영역’으로 재편한 사례라 할 수 있습니다.
다양한 파빌리온과 조각작품들: 숲속에 위치하여 조각과 산책로, 휴식공간을 연결해 준다. Ⓒ장남수
장 뒤 뷔페의 야외 설치물과 사람들. Ⓒ장남수
크뢸러 뮐러의 핵심은 실내보다 야외 조각정원에 있습니다. 5,500헥타르(55㎢, 1,670만평)의 국립공원 안에서, 유럽에서 가장 넓은 조각공원(30헥타르, 약 9만평)이자,‘풍경 전체가 하나의 전시’로 작동하는 곳입니다. 사진 속 장 뒤 뷔페(Jean Dubuffet)의 작품, ‘Jardin d’émail’은 이 정원의 상징 같은 작품으로 검은 선과 흰 면으로 이루어진 이 유기적인 조형은 숲의 녹음과 극적 대비를 이루며 마치 대지 위에 놓인 거대한 드로잉처럼 보입니다. 특히, 이 작품이 특별한 이유는 작품 위를 ‘걸으며’ 감상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관람자는 바닥의 패턴을 직접 밟고, 조각의 선과 면이 만들어내는 기하학적 깊이를 자신의 보폭으로 측정하게 되며, 이러한 특별한 경험들이 모여 교외의 한 미술관을 더욱 매력적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미술관이 만든 교외의 새로운 좌표
크뢸러 뮐러 미술관은 주변에 대규모 상업 시설도, 주거 개발도 유도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지역은 어느 도시보다도 분명한 목적지를 갖게 되었습니다.
이 변화의 중심에는 미술관이라는 단일 시설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는 1편 루이지애나와 정확히 같은 질문을 다시 던집니다. 교외의 가치는 정말로 주거의 밀도나 상업 시설의 규모에 의해서만 만들어지는가? 고속도로와 지하철에 의해 연결지어져야만 하는가?
크뢸러 뮐러는 이에 대해 분명하게 답합니다. 도시의 확장은 도로와 주택이 아니라, 자연환경과 어우러진 유니크한 컨텐츠의 문화 목적지가 만들어낼 수 있다고 말입니다.
국립공원과 미술관 부지가 자전거 도로로 연결되는 지점과 카페 겸용의 휴게 공간인 파빌리온 Ⓒ빈센트반고흐예술협회 홈페이지
Epilogue. “국립공원 속 미술관에서 배우는, 교외의 미래를 새롭게 정의하는 방법” [자연을 보존하는 방식으로 문화를 설계한 국가의 선택과 개인의 사회적 기여]
① 국가의 선택 크뢸러 뮐러 미술관은 도시 외곽에 자리한 또 하나의 교외형 미술관이 아닙니다. 이곳은 그저 문화시설이 자연 속에 들어간 사례라기보다, 자연을 보존하기로 한 국가의 정책적 선택이 어떻게 문화 인프라로 귀결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드문 경우입니다. 미술관이 자리한 ‘드 호헤 벨루베’ 국립공원은 개발의 여지를 남겨둔 땅이 아니라, 국가가 명확한 판단으로 ‘지키기로 선택한 공간’입니다.
중요한 점은 이 결정이 자연 보존과 문화 투자를 대립하는 가치로 설정하지 않았다는 데 있습니다. 네덜란드는 자연을 개발의 반대편에 두지 않고, 장기적으로 관리해야 할 공공 자산으로 인식해 왔으며, 그 가치를 지속시키는 방식 중 하나로 문화 인프라를 선택했습니다. 자연을 지키는 일과 문화를 육성하는 일은 이곳에서 하나의 정책 체계 안에서 동시에 작동하고 있습니다. 크뢸러뮐러 미술관은 그 보호구역 안에 예외적으로 허용된 문화시설이자, 이 정책적 사고가 공간과 장소로 구현된 결과입니다.
② 설립자의 전환 이 구조를 가능하게 한 결정적 계기는 설립자 ‘헬레네 크뢸러 뮐러’의 Old-money로서의 수집 열정과 노블리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 실천의 귀한 선택이었습니다. 그녀가 기증한 11,500여 점의 컬렉션은 개인의 취향을 증명하는 사적 자산에 머무르지 않고, 국가 정책과 결합된 공공 컬렉션으로 전환되었습니다. 반 고흐의 대표작을 포함한 세계 최고 수준의 작품들이 도시의 중심이 아닌 교외의 국립공원 한가운데에서 관람 되도록 기획된 것은, 접근성보다 체류의 질과 경험의 차별성을 우선한 분명한 선택이었습니다.
③ 도시 확장에 대한 질문 관람객은 이곳에서 작품만을 소비하지 않습니다. 숲과 초원, 조각 공원과 파빌리온, 호수와 산책로를 오가며 하루의 상당 시간을 보내게 됩니다. 예술 감상은 자연 체험의 일부가 되고, 자연은 전시 공간의 연장이 됩니다. 크뢸러뮐러 미술관은 도시의 확장을 유도하지 않습니다. 대신 문화시설을 통해 교외와 자연의 가치를 재정의합니다. 이 사례는 하나의 질문으로 귀결됩니다. 도시는 어디까지 확장되어야 하는가, 그리고 확장하지 않기로 한 공간은 어떻게 가치 있게 유지할 것인가? 이 미술관은 자연을 훼손하지 않는 대신, 문화로 채우는 선택이 충분히 지속 가능한 해답이 될 수 있음을 조용하지만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