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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의 취향이란 참으로 유구하다. 똑같이 탕수육을 좋아해도 부먹파와 찍먹파가 갈라지고 육즙 탕수육이냐 바삭 탕수육이냐의 취향에 따라 겸상 못 할 사람이 된다. 지금 생각하면 둘 다 레전드급인 건 마찬가지였는데 학창시절에 마이클 잭슨 파와 죠지 마이클 파로 나뉘어 누가 진정한 팝의 황제 마이클인가로 열 냈던 것처럼 사람들은 저마다 최애를 결정짓는 취향이 있고, 사회적으로 늘 양보하며 적당히 먹지만 누구나 가슴 속에 탕수육에 관한 취향을 품고 살아간다. 그런 의미에서 필자의 최애 탕수육은 바삭함의 끝판왕, 볶먹 탕수육 맛집 여의도 「서궁」이다. 물론 최고의 인생 탕수육은 더 머나먼 동네에 있지만 백 년에 한 번 갈까 말까 한 맨해튼에 최고의 맛집이 있으면 무슨 소용이 있으리. 마음이 동할 때는 언제든 편하게 갈 수 있고 오래 살아남아 새삼 고마운 「서궁」의 문 여는 시간에 맞춰 지방선거 투표를 마치고 비교적 한가한 휴일에 방문해 보았다.
「서궁」은 1978년에 생긴 화상(華商) 중식당으로 산동성 요리를 하는 곳이다. 2019년 봄에 현재의 깨끗하고 넓은 건물로 이전하기 전에는 근처 홍우빌딩 1층 구석에 위치한 아주 작은 집이었다. 캐치테이블이나 이런 첨단 시스템이 없던 시절, 테이블은 몇 되지도 않는데 유명세는 상당해서 붐비는 점심시간이면 가게 밖에 놓인 비좁은 의자에 불편한 정장 차림으로 또각 구두를 신고 어깨를 붙이고 앉아 차례를 기다렸다. 뉴욕 월스트리트 영화를 상상하며 여의도 증권가에 입성했던 필자의 판타지는 군만두와 탕수육 좀 먹겠다고 복도에 옹색하게 앉아 군침을 삼키면서 이미 흔적 없이 사라졌다. 수십 년 동안 한 번도 빠짐없이 내년은 쉽지 않을 거라던 경제전망 속에서 늘 뭔가를 걱정하면서도 웃고 떠들며 낮부터 소주병을 따던 그 복도의 사람들은 지금의 이 코스피 8천 시대에 어느 자리에 서 있을까. 
여의도 롯데캐슬아이비 상가 지하에 위치한 화상 중식당 서궁. Ⓒ먹장금 
일단 「서궁」의 메뉴판을 펼치면 피식 웃게 된다. 사장님이 진짜 친절하기도 하시지. 초심자의 고민을 덜어주기 위해 <베스트 인기 메뉴>라는 제목으로 오향장육, 탕수육, 군만두가 한 페이지에 엄선되어 있다. 그 뒤로 전체 메뉴가 요리부, 만두부, 식사부로 분류되어 있다. 아아 만두부라니 너무 귀엽지 않은가. 요리부에는 오향장육, 오향족발, 해물잡탕, 유산슬, 양장피, 고추잡채, 부추잡채, 당면잡채가 포진되어 있고 식사부에는 삼선볶음밥, 만둣국, 잡채밥, 고추잡채밥, 부추잡채밥, 유산슬밥, 잡탕밥 등등이 있고 만두부에는 물만두, 군만두, 통만두가 있다. 하지만 특별한 사유가 없다면 베스트 메뉴 세 가지를 고르고 볶음밥을 추가하는 것이 「서궁」의 룰이다. 선생님이 시험문제를 찍어줬는데 엉뚱한 곳을 공부하면 안 되고 잘 모르면 삼성전자, 하이닉스 반도체 대장주를 사야 하는데 혼자만 아는 옥석을 발굴하겠다고 잡주를 사고 철야기도하는 모험을 하면 안 되는 이치와 같다. 
고소한 당면잡채와 볶음밥을 함께 겻들여 먹으면 맛도 포만감도 배가 된다. Ⓒ먹장금
자꾸 숟가락이 가다가 결국 훌훌 마시게 되는 기본 찬 계란탕을 공략하고 있으면 먼저 군만두가 날라져 온다. 가게 입구에 만두전문 & 중식당이라고 자신있게 씌어있는 것만 보아도 이 집의 군만두 퀄은 기대할 만하다. 애매하게 굽거나 하지 않고 고루고루 바싹 튀겨 나오는데 만두피가 상당히 두터워서 취향을 탈 것 같은데도 최고의 군만두를 이 곳으로 꼽는 사람들이 꽤 많다.
두텁고 큼지막한 서궁의 군만두. Ⓒ먹장금
골프만 3~4인 플레이가 필수인 게 아니다. 서궁에서 2인 플레이를 하기란 쉽지 않다. 적어도 셋은 모여야 또 서궁의 자랑, 서궁의 시그니처 오향장육까지 빠뜨리지 않고 맛볼 수 있다. 선배들이 예언하기를 나중 되면 뭐 딱히 아주 맛있는 것도 아주 맛없는 것도 없게 된다고 분명 그랬는데 대체 어찌 된 일인가. 어릴 적엔 도통 무슨 맛인지 몰랐던 오향장육마저 이제 너무 맛있다. 냉채족발보다 살짝 담백하고 슴슴한 돼지살코기에 송송 썰은 매운 고추와 채썬 양배추, 고수를 올리고 마늘 소스에 듬뿍 적셔 먹으면 그 맛이 일품이다. 보통 오향장육 입문의 진입장벽이 되는 특유의 향도 강하지 않고 기름진 군만두와 달콤한 탕수육의 길티 플레저 중간에서 깔끔한 감칠맛 밸런스를 잡아주는 것이 완벽한 궁합이다.
서궁의 시그니처, 다섯 가지 향신료와 간장에 조린 오향장육. Ⓒ먹장금 
요리와 요리 사이 입맛을 정리하기에 안성맞춤인 사이드 메뉴, 삼선볶음밥. Ⓒ먹장금
그리고 마침내 영혼을 울리는 우리(?)의 쏘울푸드, 탕수육의 시간이다. 이것은 꼭 입에 넣고 씹어 보아야만 알 수 있는 크리스피의 영역이 아니다. 눈으로도 ASMR이 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궁극의  바삭함이 느껴지는 고기튀김이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달콤한 소스에 버무려져 등장했다. 솔직히 탕수육이란 음식이 홈쇼핑 밀키트부터 배달 전문, 고급 중국집에 이르기까지 아주 맛없기가 더 힘들겠지만 서궁의 탕수육만은 진짜 사랑이다. 온리 찍먹 취향인 사람은 탕수육 대신 덴뿌라를 주문하고 1천원을 추가하면 탕수육 소스를 따로 주신다. 맛은 비슷하지만 덴뿌라의 경우 소금, 후추 간을 살짝 더 하신다고 들었다. 하지만 격투기 체급 계체량을 앞두고 있는게 아니라면 역시 클래식은 볶먹 탕수육이 아니겠는가. 이왕 망한 칼로리, 탕수육 소스 좀 덜 넣는다고 대세에 무슨 지장이 있겠냐며 애써 스스로를 설득하며 흡입해 본다. 
부먹이어도 바삭하고 큼지막한 고기튀김이 일품인 탕수육. Ⓒ먹장금 
서궁에는 면 요리가 없다. 짜장면도 짬뽕도 없다. 느껴지는가 이 자신감과 기개! 그 수많은 짜장면 짬뽕 충성 고객을 과감히 버리고도 반 세기 역사를 채워가는 이 저력! 아주 작은 가게였을 적에 주방과 홀 사이의 벽에 반원 아치 모양으로 뚫린 음식 출입구로 김이 모락모락한 탕수육 접시를 받아다 주시던 할머니의 모습은 어느새 뵌 지 오래지만 아직도 그 시절 그 맛은 여전해 주어서 정말 다행이다. 
여의도 먹장금

여의도 먹장금

"세상에 맛있는 것이 그리 많다는데 늦기 전에 제가 한 번 기미해보겠습니다."

수십 년 간 여의도 증권가에 적을 두고 삼시세끼를 꾸준히 실천해 왔으며, 재건축은 참아도 공복은 못 참는 여의도 구축 아파트 주민으로서 늙지 않는 식탐과 안전 노화의 균형을 추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