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을 찾는 관광객들의 상당수는 여전히 명동 주변 숙소를 거점으로 삼습니다. 실제로 명동 숙박객의 동선은 청계천과 광화문을 거쳐 광장시장으로, 더 나아가 북촌까지 이어집니다. 명동을 기점으로 서울 중심부에 거대한 관광객 특화 상권이 형성되어 있는 셈입니다. 그렇다보니 명동역 일대는 관광객 수혜를 입기에 유리합니다. 광장시장도 마찬가지입니다.
명동역에서 도보로 30분, 택시로 15분 이내에 있는 핵심 관광지와 상권. Ⓒ국토교통부. 제작=시티폴리오.
명동에서 광장시장까지는 도보로 약 30분이 소요됩니다. 명동 거리를 지나 청계천을 따라 걷다 보면 자연스럽게 광장시장에 도달하게 됩니다. 광장시장은 CBD에서 가장 생동감 있는 로컬 마켓을 경험할 수 있는 곳이죠. 영국의 버로우 마켓처럼 현지의 개성이 짙은 전통시장은 국적을 불문하고 여행자들에게 매력적인 목적지가 됩니다. 대형 유통 채널이 보편화된 오늘날에도 전통시장 고유의 정체성과 매력은 대체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대형마트의 등장 이후 위축되기도 했던 전통시장은 최근 내국인 젊은 소비자층과 외국인 관광객 모두에게 매력적인 장소로 다시금 주목받고 있습니다. 획일화된 상업 공간을 지루하다고 생각하는 MZ세대 사이에서 로컬 특유의 감성으로 일종의 ‘보석 찾기’ 같은 형태로 말이죠. 앞서 소개한 광장시장의 올리브영 매장인 '올영양행' 역시 이러한 수요를 반영한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광장시장 찾는 외국인의 필수 코스, 오프뷰티
최근 한국을 찾는 외국인들의 최대 관심사는 단연 K-뷰티입니다. 시술이나 성형 같은 메디컬 영역뿐만 아니라, 일상적인 헬스앤뷰티(H&B) 분야에서도 매출과 관심이 폭발적으로 늘고 있죠. 그중에서도 최대 90%라는 파격적인 할인율, 이른바 '오프 프라이스(Off-price)' 정책으로 외국인들의 발길을 붙잡는 브랜드가 있습니다. 바로 '오프뷰티'입니다.
그동안 광장시장에서 살 수 없었던 물건이 하나 있었습니다. 바로 화장품입니다. K-뷰티의 인기는 날로 높아져 가는데, 정작 광장시장 안에는 이 거대한 뷰티 수요를 받아줄 만한 매장이 마땅히 없었던 겁니다. 이 빈틈을 공략해, 오프뷰티는 2025년 5월 광장시장 서문 바로 앞에 1호점을 열었습니다.
종로4가 사거리, 광장시장 서문 오른편에 위치한 오프뷰티 1호점. Ⓒ시티폴리오
시장에서 물건을 살 때, 상품의 퀄리티와 트렌디한 VMD보다는 저렴한 가격을 기대하기 마련입니다. 오프뷰티는 시장에서 사람들이 기대하는 이 낮은 가격을 높은 할인율로 충족시키는 도심형 뷰티 아울렛을 지향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브랜드의 정체성을 입지의 정체성과 함께 강화할 수 있는 곳에 1호점을 낸 것이죠.
현재는 광장시장에서만 2개의 매장을 운영하고 있으며, 외국인 관광객과 내국인 트래픽을 동시에 흡수해 매출을 견인하고 있습니다. 월평균 5억 원대 매출로 메가 히트를 기록하면서, 상권 경쟁력을 입증한 바 있습니다. 이곳에 위치한 매장은 입지 특성상 외국인 관광객의 비율이 70%에 가깝다고 합니다. 2025년 7월에는 인사동점을 오픈했는데, 이곳 또한 매출이 월 약 3억 원대에 달한다고 합니다.
을지로4가역에서 청계천 방향 인근 도로변에 위치한 오프뷰티 청계광장시장점. 브랜드 메인 컬러인 보라색은 복잡한 시장에서도 눈에 띄는 효과가 있다. Ⓒ시티폴리오
K-뷰티의 흥행은 국적을 가리지 않습니다. 실제 매장에서 제품을 구경하는 외국인 관광객들은 미국, 스페인, 중국, 인도네시아 등 무척 다양했습니다. 오후 4시부터는 시장 내부 상점들이 조금씩 문을 닫으면서 주변 상인분들과 일대를 방문한 내국인들의 방문이 이어졌습니다.
주변 숙소에서 쇼핑을 위해 가벼운 차림으로 오프뷰티를 방문한 가족 단위 외국인 관광객들. Ⓒ시티폴리오
귀갓길에 쇼핑을 위해 방문한 중년의 시장 상인과 주민들. Ⓒ시티폴리오
오프뷰티는 마뗑킴, 세터, 마리떼 프랑소와 저버 등 최근 MZ세대와 핵심 상권에서 탄탄한 입지를 다진 K-패션 브랜드들을 키워낸 대명화학 산하 법인 큐앤드비인터내셔날이 운영하는 브랜드입니다. 큐앤드비인터내셔날은 골프웨어를 비롯한 패션 브랜드와 더불어 오프뷰티를 통해 뷰티 브랜드를 전개하고 있습니다.
저가 뷰티 제품을 앞세운 오프뷰티의 성장 속도는 매우 가파릅니다. 2025년 5월 광장시장에 1호점을 론칭한 이후, 불과 1년여 만에 전국적으로 40개가 넘는 매장을 확보했습니다. 그중 서울에만 14개 매장이 운영 중이죠. 연내 80호점 오픈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다가오는 8월에는 몽골에 첫 해외 매장 오픈도 앞두고 있다고 합니다.
국내 및 서울 내 매장 분포 현황. Ⓒ오프뷰티 홈페이지 내 지도 재가공=시티폴리오
상품 기획, 가격 경쟁력으로 만든 차별점
빠른 성장세를 만들어낸 전략은 무엇이었을까요? 가장 먼저, 상품 기획과 가격 경쟁력에서 확실한 차별점을 구축했습니다. 정가 대비 상시 30%에서 90%까지 이르는 파격적인 할인율을 내세운 것이죠.
94% 할인하는 제품. 특히 관광객을 대상으로 한 제품들의 할인 폭이 크다. Ⓒ시티폴리오
이러한 할인 혜택은 고가와 중저가 브랜드를 가리지 않고 폭넓게 적용됩니다. 이를 위해 설화수, 샤넬, 디올, 랑콤 같은 프리미엄 브랜드부터 3CE, 닥터자르트, 메디큐브, 롬앤 등 인기 중저가 브랜드까지, 150개가 넘는 브랜드와 제휴를 맺었습니다. 이들로부터 상품을 직수입하여 중간 유통 단계를 줄이고 직접 소싱하는 방식으로 파격적인 가격을 실현하고 있습니다.
높은 할인율, 할인 행사, 저렴한 가격을 강조하는 사이니지. Ⓒ시티폴리오
저가 향수와 함께 진열되어 있는 니치 향수 브랜드 조말론 제품. Ⓒ시티폴리오
큰 폭으로 할인하면서 생긴 가품 논란에 대응하는 안내와 자료들. Ⓒ시티폴리오
입점 브랜드의 고충 해소를 통한 유통∙오퍼레이션 최적화
뷰티 제품은 트렌드가 빠르게 변하고 유통기한이 존재한다는 점에서 식품과 닮은 구석이 많습니다. 이 때문에 뷰티 브랜드사에게 재고 관리는 늘 큰 부담이 되기 마련이죠. 오프뷰티는 브랜드사의 과잉 재고나 유통기한이 임박한 물량을 전량 '완사입 직매입'하는 구조를 택했습니다. 중간 마진을 과감히 덜어낸 것입니다. 덕분에 압도적인 초저단가로 물량을 확보할 수 있었고, 소비자에게 파격적인 할인율로 돌려주는 선순환이 가능해졌습니다.
운영 비용과 마케팅 비용도 최소화하고 있습니다. 자체 온라인 쇼핑몰을 구축해 관리하는 대신, 기존 오프라인 매장과 연계한 '쿠팡이츠' 등의 플랫폼을 활용해 온라인 수요를 소화합니다. 최근에는 1주년을 맞아 지하철역 광고 등 일부 프로모션을 진행하기도 했지만, 기본적으로는 소비자들의 입소문과 SNS 후기를 통한 바이럴 마케팅으로 광고 비용을 아껴왔습니다.
쿠팡이츠에 입점한 오프뷰티 성수팩토리점. Ⓒ쿠팡이츠 화면 캡처 및 재가공=시티폴리오
오프뷰티의 지하철 내부 광고 모습. Ⓒ시티폴리오
도심형 물류창고 역할을 하는 보라색 박스
가격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비용 절감 시스템이 필수적입니다. 오프뷰티는 화려한 인테리어를 과감히 배제하는 대신, 보라색 플라스틱 박스를 적극적으로 활용했습니다. 이는 소비자에게 '인테리어 비용을 아껴 제품을 싸게 파는 매장'이라는 직관적인 인식을 심어주는 시각적 장치가 됩니다.
게다가 이 보라색 박스는 매장 안에서 실제 물류창고 역할까지 톡톡히 해냅니다. 매장 공간의 일부만 제품 디스플레이용으로 꾸미고, 남는 공간에는 보라색 박스를 층층이 쌓아 재고를 보관하는 식입니다. 그러다 맨 위 박스에 가격표만 툭 붙여놓으면 그 자체로 매대가 됩니다. 매장 공간이 판매처인 동시에, 그 자리에서 도심형 물류 보관 창고의 역할까지 동시에 수행하는 셈입니다.
창밖에서 매장 내 사람들을 볼 수 있게 낮은 박스형 매대를 창가 쪽으로, 책장형 높은 진열대를 안쪽에 배치하였다. Ⓒ시티폴리오
청계광장시장점은 매장 밖에서도 계산을 기다리는 줄이 보여, 소비자 심리 측면에서도 고심한 흔적이 보인다. 흔히 계산대에 두는 작은 매대 대신 이곳에도 보라색 박스를 비치했다. Ⓒ시티폴리오
초저가 뷰티 아울렛이 뜨는 이유
올리브영이 올리브영 베러와 같은 새로운 브랜딩과 웰니스 컨셉, 그리고 특화 매장으로 사업을 전개하는 동안, 오프뷰티는 '도심형 뷰티 아울렛'이라는 컨셉을 앞세워 신촌, 안국, 성수 등 핵심 상권으로 확장해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성장세의 배경에는 고물가로 인해 소비자의 실질 구매력이 약화된 현상이 자리합니다. 여기에 K-뷰티 제품 가격이 지속적으로 상승하면서, 소비자들의 가격 저항감과 피로도가 극에 달한 것도 오프뷰티가 주목받는 이유로 꼽힙니다.
초저가 제품에 대한 심리적 저항감이 사라진 점도 중요합니다. 2023년부터 다이소 뷰티 제품이 '갓성비'로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고, 중국의 초저가 플랫폼 테무가 젠지(Gen Z) 세대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끈 것이 단적인 예입니다. '싼 게 비지떡'이라는 인식 대신 '갓성비'가 소비의 핵심 가치로 자리 잡은 것입니다.
K-뷰티 브랜드들의 상황 또한 오프뷰티의 성장에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올리브영이 사실상 오프라인 뷰티 채널을 독점하게 되면서, 특히 신규 중저가 브랜드의 경우 올리브영 입점 자체가 허들이 되었습니다. 이 상황에서 오프뷰티는 소비자와 만날 수 있는 매력적인 대안이자 새로운 창구가 된 셈입니다. 더구나 오프뷰티가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인기가 높다 보니, 해외 바이럴을 통해 국내 소비자와는 차별화된 글로벌 확산력을 갖게 된다는 점 역시 브랜드들에게는 큰 강점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가격뿐 아니라 공간 인테리어에서도 도심형 뷰티 아울렛을 구축한 오프뷰티. Ⓒ시티폴리오
이제 겨우 첫해를 보낸 오프뷰티의 확장세는 K-뷰티의 지속적인 강세와 맞물려 거침없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간 국내 뷰티 시장의 꾸준한 성장세에도 불구하고, 오프라인 유통 채널은 올리브영이 구축해 온 영향력이 워낙 견고해 새로운 브랜드의 등장을 기대하기 어려웠던 것이 사실입니다. 왓슨스, 랄라블라, 롭스, 아리따움, 시코르, 부츠, 그리고 글로벌 공룡인 세포라까지 수많은 뷰티·드럭스토어가 스쳐 지나간 자리에 결국 올리브영만이 살아남았습니다. 최근 다이소가 초저가 정책을 앞세우고 무신사 뷰티가 신규 브랜드와 함께 영역을 확보해가고 있지만, 견고한 오프라인 망을 가진 올리브영과 격차를 좁히기엔 아직 시간이 필요해 보입니다.
국내 오프라인 뷰티 시장이 과연 어디까지 팽창할 수 있을지, 이미 임계점에 도달한 포화 상태는 아닌지 의문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역설적으로 시장에는 분명 또 다른 빈틈이 존재합니다. 문 닫은 더페이스샵 자리에서 '땡처리’ 제품을 팔던, 어디선가 한 번쯤 마주쳤던 풍경처럼 말입니다.
어쩌면 오프뷰티는 그 순간을 포착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익숙하면서도 흩어져있던 시장과 니즈를 현대적으로 재브랜딩하고, 타깃을 외국인 관광객으로 확실히 좁혀 불과 1년 만에 40여 개가 넘는 매장을 연 것이죠.
결국 우리가 오프라인 공간에서 기대하는 색다름이란 전혀 본 적 없는 낯선 무언가를 발명하는 일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오히려 지나친 경험과 시도를 다듬고, 타깃을 명확히 설정하여, 변화한 시대의 니즈에 맞춰 영리하게 튜닝해 내는 과정에서 때론 더 좋은 비즈니스가 만들어지기도 하니까요.
시티폴리오
Cityfolio
부동산이라는 그릇에 도시의 변화와 사람들의 움직임을 담아, 투자 감각을 확장하는 인사이트를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