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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 63빌딩은 대한민국의 성장 역사와 궤를 같이해 온 서울의 대표적인 초고층 빌딩입니다. 1985년 준공 이후 오랜 시간 랜드마크로서 수많은 이들이 오갔지만, 도시가 빠르게 발전하고 다양한 핫플레이스들이 생겨나면서 상징적인 의미가 더 큰 곳에 가까워졌습니다. 누구나 한 번쯤 방문해 본 추억의 랜드마크 63빌딩이 최근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했습니다. 프랑스를 대표하는 미술관이자 문화공간인 퐁피두센터의 세 번째 글로벌 지점과 함께 리뉴얼한 상업 공간이 지난 6월 4일 새롭게 문을 열었습니다.
한강의 기적이자 상징이었던 이곳에 새로운 문화상업공간의 청사진을 그려내며, 63빌딩의 도시적 전환을 이끈 기획자들을 만났습니다. 한화생명 부동산전략파트 이충헌 부장, 염채련 대리와 함께 상업공간과 전망대를 돌아보며 리뉴얼 과정에 얽힌 자세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 총 3편에 걸쳐 공간의 정체성을 바탕으로 자산 가치를 극대화하고, 최적의 테넌트를 구성한 디벨로퍼적 전략은 무엇이었는지 짚어봅니다. 첫 편에서는 프로젝트를 총괄한 이충헌 부장과 함께 그 본격적인 기획 과정을 살펴보겠습니다.
‘빛의 상자’를 컨셉으로 리뉴얼 된 63빌딩 저층부 외관. Ⓒ시티폴리오 
 
Q. 이번 63빌딩 리뉴얼 프로젝트를 진행한 팀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이충헌: 한화생명 부동산전략파트는 한화생명에서 보유한 부동산 자산의 가치를 극대화하고 공간 콘텐츠를 기획하고 있습니다. 건축 및 공간 기획부터 설계, 디자인, 콘텐츠 개발까지 프로젝트의 전 과정을 아우르는 역할을 하고 있다 보니, 건축과 디자인을 전공했거나 부동산에 관한 다방면의 경험을 쌓은 전문가들이 팀원으로 함께하고 있습니다.
63빌딩 리뉴얼 프로젝트를 위해 공간 기획과 조닝, 동선 설계, 브랜드 유치와 테넌트 협상, 디자인 파트너사 협업, 사업성 검토까지 각자의 전문성을 바탕으로 역할을 분담하면서 2년이 넘는 시간을 함께 달려왔습니다.
저는 이번 프로젝트의 총괄 파트장으로서 63빌딩 리뉴얼 사업의 초기 기획 단계부터 공간 디자인, MD 구성, 사업성 검토까지 프로젝트 전반을 매니징했습니다. 패션, 식음, 주거 등 그간 다양한 분야에서 디벨로퍼로 축적한 폭넓은 경험을 바탕으로 이번 프로젝트에 그간의 노하우를 집약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시설 개선뿐만 아니라 공간의 정체성을 새롭게 정의하고, 63빌딩이 예술문화와 라이프스타일이 결합된 도시 콘텐츠 플랫폼으로서 기능할 수 있는 환경을 구축했습니다. 
염채련: 저는 팀에서 상업시설 MD 기획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공간의 정체성과 타깃 고객에 맞는 브랜드를 발굴하고 최적의 테넌트 구성을 통해, 공간 경쟁력과 자산가치를 높이는 업무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브랜드 유치부터 임대 전략 수립, 운영 방향 설정까지 상업시설 전반의 기획 과정을 담당하며, 공간이 지속적으로 사랑받을 수 있는 콘텐츠와 경험을 고민합니다. 상권 분석과 수익성 검토를 바탕으로 안정적인 임대수입 창출과 지속가능한 수익구조를 구축하고 있습니다.
상업시설 MD 기획을 맡은 염채련 대리, 63빌딩 리뉴얼 프로젝트를 총괄한 이충헌 부장. Ⓒ제공=한화생명 부동산전략파트 

 이선영 과장
이번 63빌딩 리뉴얼에서는 한강공원의 자연을 모티브로, 도심 속에서도 자연과 문화, 예술을 오감으로 경험할 수 있는 공간을 기획했습니다. 특히 인테리어 공간 속 콘텐츠와 사운드, 향, 미디어를 유기적으로 연결해 고객들이 일상에서 벗어나 자연스럽게 머물고, 몰입하며, 휴식할 수 있는 경험을 만드는 데 중점을 두었습니다. 우리의 경험과 기억을 만드는 중요한 매개체로서 공간을 다루고 있습니다.

박규상 과장
기획 의도를 실제 상업 공간에 구현하기 위해 필요한 설계, 시공, 운영을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공간개발 PM을 맡고 있습니다. 프로젝트 전 과정에서 일정부터 품질·브랜드 일관성을 관리하고, 테넌트 가이드라인 구축과 통합 코디네이션을 통해 자산가치와 공간 경쟁력 향상에 기여하고 있습니다.
강연정 대리
인테리어 공간 디자인과 브랜딩, 시각적 요소 전반을 담당하며, 공간이 하나의 일관된 경험으로 인식될 수 있도록 디자인 방향을 설정하는 일을 맡고 있습니다. 사용자 동선과 체류 경험을 중심으로, 브랜드 아이덴티티가 공간 안에서 자연스럽게 구현될 수 있도록 기획부터 시각 요소, 콘텐츠, 경험 전반을 통합적으로 설계합니다. 63빌딩 리뉴얼에서는 개별 공간들이 하나의 전체 경험 흐름으로 이어지게끔, 총체적인 공간 경험을 구현하는 데 집중했습니다.
3년여간 63빌딩 리뉴얼 사업을 진행한 한화생명 부동산전략파트. Ⓒ제공=한화생명 부동산전략파트   

 

Q. 63빌딩 리뉴얼은 거의 3년에 걸쳐 진행된 프로젝트로 알고 있습니다.
이충헌: 파리 퐁피두센터의 63빌딩 유치가 확정된 2023년 중순부터 63빌딩 리뉴얼 사업을 본격적으로 검토하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63빌딩은 수십 년간 서울을 대표하는 랜드마크이자 관광명소로서 확고한 위상을 지켜왔지만, 도시의 트렌드는 빠르게 변하고 있었고 경쟁 환경 역시 이전과는 분명히 달라진 상태였습니다. 여의도를 비롯해 서울에 더 높고 새로운 빌딩들이 속속 들어서면서 63빌딩 고유의 경쟁력이 점차 희석되고 있다는 위기의식과 함께, 내부적으로 변화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Q. 국내 최초 아쿠아리움이었던 ‘아쿠아플라넷 63’도 1985년에 개장해서 39년간 운영해왔지만 이번 리뉴얼을 기점으로 문을 닫게 되었죠. 당시 63빌딩 내부 시설과 F&B 매장 상황은 어떠했나요?
이충헌: 오랫동안 어린 팬들의 사랑을 받아온 아쿠아리움은 노후화가 진행되고 있었고, 전망대는 상징성과 인지도 면에서는 여전히 강점을 갖고 있었지만 고객 유치에 필요한 콘텐츠가 부족했습니다. F&B 시설인 63뷔페 파빌리온과 63베이커리는 오랜 시간 안정적으로 운영되어 왔으나, 젊은 세대와 새로운 관광객층을 끌어들이기에는 콘텐츠 감도와 공간 규모 면에서 한계가 있었고요. 특히 면세점은 코로나19 팬데믹과 사드 이슈 등 외부 변수로 직격탄을 맞으며 관광객 유입이 급감했고, 정상적인 영업 자체가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이러한 복합적인 상황 속에서도 아쿠아리움은 2016년 리뉴얼하며 가족 단위 고객과 단체 방문객의 꾸준한 발길로 명맥을 이어갔고, 전망대는 아트 전시 공간으로 전환하면서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기도 했습니다. 변화의 필요성은 누구나 공감하고 있었지만, 결정적인 전환점이 필요했습니다. 프랑스 3대 미술관인 퐁피두센터의 유치 확정은 그 전환점이 되었고, 비로소 63빌딩 전반에 걸친 본격적인 리뉴얼 사업을 추진하게 되었습니다.

Q. 새롭게 바뀐 저층부 리테일 기획 컨셉과 핵심은 무엇인가요?
이충헌: 63빌딩 GF(Ground Floor)의 핵심 컨셉은 ‘예술과 일상(상업)의 경계를 허무는 것’이었습니다. 퐁피두센터 미술관과 상업공간 영역이 분리된 것이 아닌 미술관 관람 고객의 예술적 감성이 자연스럽게 소비로 전달되길 바랐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빛과 소리, 향기, 상품, 공간 비주얼까지 공간 자체가 먼저 편안함을 느끼는 자연(Nature)의 감각적 심상을 공간 안에 담아내고, 그 안에서 여유로운 소비경험이 이어지도록 했습니다. 여기서의 핵심은 미술관과 상업공간을 각각의 영역으로 나누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맥락으로 연결해 정의하는 것이었습니다. 
미디어 아트, 플랜테리어 그리고 63 아우돌프 가든까지. 공간 전체를 관통하는 자연의 감각. Ⓒ시티폴리오
콘텐츠 구성에서도 디자인, 리빙, 문구, 다양한 미식까지 각자의 세계관이 뚜렷한 브랜드들이 모여 예술적 감성이 일상의 모든 영역으로 자연스럽게 확장되는 구조입니다. 지나치게 트렌디하기 보다는 일상에서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소비공간을 지향했고 특별하지 않아도 자꾸 다시 찾고 싶어지는 곳, 그것이 저희가 추구하는 리테일의 모습입니다.   
공간 구조적으로는 미술관과 연계된 소비 공간으로서 동선을 어떻게 유도할 것인가가 중요한 과제였습니다. 전체 평면 구조 안에서 고객들이 쾌적하게 머물면서도 상업적 기능이 충분히 활성화될 수 있도록, 전체 조닝과 그에 따른 컨셉을 수립하는 작업에 많은 시간을 들였습니다. 이런 공간 여건을 고려해 세 가지 조닝 컨셉을 설정했습니다. 
퐁피두센터 한화 출입구와 이어지는 리테일 공간 중앙 홀. Ⓒ시티폴리오  
퐁피두센터 한화 출입구에서 리테일 공간에 진입했을 때 정면으로 보이는 %아라비카. Ⓒ시티폴리오 
1. GF 공간을 63빌딩 진입경로이자, 서울을 경험하는 첫번째 레이어로 정의했습니다. 
퐁피두센터 한화 미술관을 통해 GF로 진입하면 글로벌 디자인 가구, 리빙, 디자인오브제, 엽서/문구, K-굿즈 등 예술과 일상이 만나는 문화 공간에 도달할 수 있게 됩니다. 상업공간에서 흔히 기대하는 F&B보다는 미술관 경험을 이어갈 수 있는 리테일을 핵심 위치에 배치했습니다. 이 공간을 Culture Street로 정의하고 다양한 예술문화 기반의 리테일과 프로그램이 일어나는 장소로 해석했습니다. 
라이프스타일과 리빙, 디자인 소품을 메인으로 한 Culture Street. 블랙&화이트 컬러 모티브의 소품 편집샵 로파 서울, 엽서 라이브러리 포셋. Ⓒ시티폴리오
2. 빌딩 상주직원과 외부 고객이 오가는 메인 출입구 Welcome Street는 일상적 환대를 공간으로 구현했습니다.
메인 동선답게 입구 전면에는 이번 프로젝트에서 야심차게 선보이는 하와이 커피&아사히볼 브랜드, ‘아일랜드빈티지커피’를 시작으로 이어 디저트, 샌드위치, 아이스크림 브랜드를 배치했습니다. 
여의도 시범아파트를 비롯해 주변 거주민들과 상주직원들이 일상에서 편하게 쉬고 가볍게 즐길 수 있는 공간을 구성했습니다. 한강 피크닉을 즐기는 고객을 대상으로 다양한 메뉴와 프로그램 또한 준비하고 있습니다. 
출입구 동선의 유동인구를 고려한 Welcome Street. 우측편은 아일랜드빈티지커피. Ⓒ시티폴리오 
3. Gourmet Street에서는 한국 전통 로드마켓의 활기와 문화적 미식거리를 재해석 하였습니다. 
미술관 고객과 상주직원 모두가 만족할 만한 F&B 브랜드를 선별해, 8가지 다채로운 미식공간을 구성했습니다. 메뉴 구성에 있어 일상적 방문객과 데이트 테이블 타입을 메뉴에 맞게 구성해, 방문하는 고객의 다양한 니즈를 메뉴 외적으로도 수용할 수 있게 했습니다.
8가지 다채로운 미식경험을 구성한 Gourmet Street. 조명색을 달리해 간접적으로 공간을 구분한다. Ⓒ시티폴리오
 
Q. 리뉴얼 기획 과정에서 마주했던 가장 현실적인 고민이자, 해결해야 하는 과제는 무엇이었나요?
이충헌: 여러 과제가 있었지만 가장 근본이 되는 질문 하나에 집중했습니다.
"지금의 63빌딩이 어떤 이유로 다시 선택받을 수 있을 것인가."  
단순한 시설 개선만으로는 더 이상 경쟁력이 될 수 없다는 것이 팀 전체의 공통된 인식이었고, 구체적으로는 크게 네 개의 과제가 있었습니다.
­­­‑ 첫째, 콘텐츠 차별화를 위해 전시 이후의 경험에 주목했습니다.
퐁피두센터라는 세계적인 미술관이 앵커 콘텐츠로 입점한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강력한 차별점이 되는 측면이 있습니다. 하지만 전시라는 콘텐츠도 시간이 지나면 익숙해지고, 문화 소비 방식 또한 리테일처럼 계속 진화합니다. 저희가 주목한 것은 미술관 이후의 경험이었습니다. 관람이 끝난 후 이 공간에서 어떤 도시적 경험이 이어져야 할지, 그리고 다시 이곳을 찾아오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고민했습니다.
여의도에는 이미 IFC몰과 더현대 서울이라는 강력한 복합쇼핑몰이 존재합니다. 그렇다보니 일반적인 리테일이나 F&B만으로는 63빌딩까지 방문하게 할 이유를 만들기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 특히 63빌딩이 여의도 메인 상권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는 입지적 특성도 분명한 도전 과제였죠. 그래서 경쟁보다는 다른 이유를 찾는 데 집중했습니다. 
"주변 대형쇼핑몰에서 줄 수 없는 경험은 무엇인가."
그 답은 예술과 문화에 있었습니다. 퐁피두센터를 찾는 고객들의 예술적 감성과 문화 소비 성향과 연계하여, 전시 관람 이후에도 아트 오브제, 디자인 소품, 리빙, 미식, 라이프 스타일을 통해 감각과 경험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경험 구조를 설계하고자 했습니다.
퐁피두센터 한화에서 전시를 관람한 후 뮤지엄샵을 구경하는 관객들. Ⓒ시티폴리오
‑ 둘째, 40년이 넘은 공간 구조의 한계를 극복해야 했습니다.
63빌딩은 1985년에 준공되었습니다. 당시에는 국내 최초이자 최고의 시설로 구축된 초고층 빌딩으로서 혁신 그 자체였지만, 오랜 시간이 흐르면서 동선, 층고, 인프라 등 여러 면에서 현대적인 복합 상업공간으로서의 한계가 존재했습니다. 또 기존 면세점 위치에 퐁피두 미술관을 배치하면서 상업공간의 동선 효율화, 적정 매장규모, 용도에 따른 인허가, 임대조건 등 단순히 면적의 문제가 아니라 MD부터 수익성 전반과 직결되는 사안이었기 때문에 최적의 공간 조닝을 어떻게 설계할 것인지에 대해 수많은 연구와 내부 협의를 거쳐야했습니다. 미술관과 상업 공간이 유기적으로 연결되게끔, 지금의 평면 구조를 만들기 위해 특히 공을 많이 들였습니다.
‑ 셋째, 적합한 Key 플레이어 유치에 신중해야 했습니다.
온라인 소비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면서 오프라인 시장은 상대적으로 침체되고, 브랜드들의 오프라인 확장에 대한 태도도 점점 신중해지고 있습니다. 매장의 역할 자체가 상품을 판매하는 곳에서 브랜드의 정체성과 콘텐츠를 경험하게 하는 공간으로 바뀌면서, 많은 브랜드들이 운영비 지출이 큰 고정 매장보다는 오프라인에서 경험을 제공하고 온라인으로 판매를 연결하는 방식을 선호하게 된 것입니다. 이런 시장 환경 속에서 일반적인 몰(Mall) 공간에 입점을 제안하면 브랜드 입장에서는 선뜻 결정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었습니다.
다만 저희가 추구하는 방향은 일반적인 유통 몰과 달랐습니다. 예술문화를 지향하고 라이프스타일을 경험하는 공간이라는 비전과 방향성에 공감한 브랜드들이 있었고, 그 덕분에 어려운 시장 환경 속에서도 핵심 MD 유치를 차질 없이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 마지막으로, 63빌딩의 상징성을 현시대 감각 속에서 다시 정의하고자 했습니다.
63빌딩의 상징성은 오랫동안 전망대와 아쿠아리움이 지켜왔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번 리뉴얼 과정에서 아쿠아리움이 사라지고 전망대까지 다른 용도로 바뀐다면, 사람들이 63빌딩을 기억하고 떠올릴 수 있는 상징성 자체가 사라지는 것이 아닐까 하는 아쉬움이 가장 컸습니다.
프로젝트 초기, 전망대 옥상에 올라가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때 눈앞에 펼쳐진 한강과 서울의 도시 풍경이 정말 아름다웠습니다. 그 순간 확신이 들었습니다. 이 전망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오랜 추억 속에 자리한 전망대를 지금 시대에 맞게 새롭게 정의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었습니다.
한강과 함께 서울의 랜드마크로서 40년이 넘는 헤리티지를 구축해 온 63빌딩. Ⓒ한화생명 
63빌딩은 긴 시간 동안 수많은 서울 시민들의 기억을 함께한 곳입니다. 가족과의 외식, 첫 데이트, 특별한 하루를 함께한 공간으로서 세대를 넘나드는 정서적 유대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프로젝트는 단순한 공간 리뉴얼이 아니라, 서울이라는 도시의 기억과 미래를 함께 다루는 작업이라는 책임감으로 임했습니다.
지금도 주변에 더 높은 빌딩들이 많아졌지만, 한강의 동서를 아우르는 서울의 전경을 이토록 온전히 품을 수 있는 곳은 63빌딩이 유일합니다. 저희는 이 자산을 그대로 두는 대신 디지털 기술과 AI를 접목해 새로운 도시 풍경을 공간 안에 담고자 했습니다. 서울을 방문하면 반드시 경험해야 하는 도시 콘텐츠이자, 이 도시의 현재와 미래를 가장 감각적으로 보여주는 랜드마크로서 63빌딩의 상징성을 다시 한번 정의하는 것. 그것이 이번 프로젝트의 핵심 목표 중 하나였습니다.
 
Q. 리테일 측면에서 63빌딩은 차별화에 집중하셨는데요. 이를 구체화하는 전략은 무엇인가요?
이충헌: 강력한 MD와 트렌디한 브랜드 라인업을 앞세운 주변 대형 쇼핑몰과 동일한 방식으로 경쟁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대신 그들과 시너지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 그리고 63빌딩만이 제시할 수 있는 고유한 경쟁력은 무엇인지에 집중했습니다. 이번 리뉴얼의 핵심은 퐁피두센터 한화를 중심으로 한 문화예술 거점으로의 도약입니다. 세계적인 미술관의 위상에 걸맞게, 상업 공간 역시 단순한 쇼핑몰이 아닌 예술적 감성과 취향을 소비하는 도시 콘텐츠의 집합체로 구성하고자 했습니다. 이 공간 자체가 하나의 클러스터가 되도록 말이죠. 부동산 개발의 관점에서 보면, 문화예술 콘텐츠와 리테일의 전략적인 결합이기도 합니다.
이 방향성을 검증하기 위해 해외 사례를 연구하고 직접 현장을 방문하기도 했습니다. 도쿄의 아자부다이힐즈(팀랩, 갤러리), 모리 타워(모리미술관), 다카나와 게이트시티(몬 타카나와 뮤지엄), 교토 에이스호텔 등  예술문화 콘텐츠를 앵커로 삼아 주변 리테일과 부동산 가치를 함께 끌어올렸습니다. 뉴욕 허드슨 야드의 더 쉐드(The Shed) 역시 같은 맥락이죠.
도쿄 다카나와 게이트웨이시티는 좋은 참고가 되었습니다. 야마노테선 다카나와 게이트웨이역과 직결된 이 복합 단지는 미술관과 상업시설이 단순히 같은 건물에 입주한 것이 아니라, 하나의 문화적 흐름으로 연결되어 지역 전체를 살아있는 커뮤니티 공간으로 만들어가고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그 중심에는 올해 3월 개관한 문화시설 '몬 타카나와(MoN Takanawa: The Museum of Narratives)'가 있습니다. 단순한 미술관이 아니라 전통 공연, 전시, 라이브 퍼포먼스를 통해 인류의 창조적 활동을 미래로 이어가는 다양한 '살아가는 이야기'를 제공하는 문화 실험장을 표방합니다. 전통 예능, 만화, 음악, 음식 등 일본 문화에 최신 기술을 결합한 프로그램을 분야를 넘나들며 전개하고, 개관 기념 테마 'Life as Culture'를 통해 일상의 모든 순간이 문화가 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현지 답사차 방문한 다카나와 게이트웨이시티와 내부의 문화시설 몬 타카나와. Ⓒ제공=이충헌  
특히 인상적인 부분은 이 문화 콘텐츠가 건물 안에만 머물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6층에는 무료 족욕 테라스와 다카나와 일대를 조망하는 전망 공간, 카페가 함께 자리해 있어 미술관 관람이 자연스럽게 휴식과 식사, 인접한 상업시설 뉴우먼 다카나와로 이어지는 동선 구조를 만들어냅니다.
그 흐름의 정점에 있는 것이 뉴우먼의 버미큘라(VERMICULAR)입니다. '메이드 인 재팬'이라는 세계관 아래 방문객이 재료 본연의 맛을 즐기고, 체험하고, 제품을 구매하는 일련의 라이프스타일 경험을 완성도 높게 구현하고 있었습니다. 주방용품 브랜드가 단순한 매장이 아니라 레스토랑과 베이커리를 통해 브랜드 경험 자체를 체험하게 하고, 여기에 리빙, 향수, 안경, 패브릭, 그로서리마켓까지 더해지면서 제품 판매에서 미식 경험, 브랜드 팬덤, 재방문으로 이어지는 총체적인 경험 설계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일본 식재료와 함께 라이프스타일을 경험할 수 있는 버미큘라와 아코메야. 잘 짜여진 경험 설계를 참고할 수 있었다. Ⓒ제공=이충헌  
저희가 주목한 것은 결국 이 지점입니다. 예술문화 콘텐츠가 단순히 구경하는 대상에 머물지 않고 휴식과 미식, 쇼핑까지 일상의 흐름 안에서 자연스럽게 이어질 때, 그 공간은 지역 주민들이 일상적으로 드나드는 진짜 커뮤니티 공간이 됩니다. 또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고 지속적인 재방문을 만들어 냅니다. 결국 예술문화 콘텐츠가 부동산 가치를 높이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었죠.
63빌딩도 퐁피두센터에서 시작된 예술적 경험이 리테일과 F&B, 전망대로 자연스럽게 확장되며 관광객뿐 아니라 여의도와 서울 시민들이 일상적으로 머물고 싶어지는 공간으로 자리잡는 것. 다카나와 게이트시티의 사례가 그 가능성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 주었습니다.
앞서 언급한 사례들처럼 새로운 문화예술 거점의 앵커로서 퐁피두센터 한화와 연결되어, 예술적 라이프 스타일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모여드는 문화 소비 플랫폼을 구축하고자 했습니다. 아트와 취향을 중심으로 한 리테일 지형도를 새롭게 그려나가고자 합니다.
리테일 외적으로는 유일무이한 강점에 집중했습니다. 한강은 63빌딩이 지닌 대체 불가능한 자산입니다. 63빌딩은 한강을 가까이서 파노라마로 조망할 수 있는 압도적인 뷰를 가지고 있습니다. 더현대 서울, IFC몰, 심지어는 롯데타워도 가질 수 없는 63빌딩만의 고유한 경쟁력이 있기에 서울을 대표하는 공간으로서도 자신이 있습니다.
상징성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도 이번 리뉴얼을 통해 누구나 머물고 쉬어 갈 수 있는 열린 공간을 만들고자 했습니다. 꼭 전망대나 미술관을 목적으로 하지 않더라도, 언제든 서울에서 가장 아름다운 전망을 품은 이 공간을 경험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바로 지금 이 시대와 어울리는 랜드마크가 아닐까요? 

Q. 컬처 리테일 공간으로서 퐁피두센터 한화와 시너지를 내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했나요?
이충헌: 초기 기획 단계에서 63빌딩만의 정체성을 명확히 정의했습니다. 규모로 보면 일반적인 쇼핑몰보다 작고, 오피스 아케이드라 하기엔 미술관, 전망대, 리테일, F&B 공간이 복합적으로 구성된 독특한 시설입니다. 유사한 해외 사례를 찾기 어려울 만큼 그 자체로 독보적인 구조였죠.
참고할 수 있는 해외 사례를 보면 크게 두 가지 패턴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첫번째는 미술관 중심형입니다. 파리 퐁피두센터 본관이나 런던 테이트 모던, 홍콩 M+는 미술관이 주인공이고 F&B와 굿즈샵은 관람 경험을 보조하는 시설로 존재합니다. 전시 콘텐츠의 집객력은 강하지만 상업적 확장성에는 한계가 있죠.
두 번째는 상업시설 중심형입니다. 도쿄 아자부다이 힐즈처럼 대형 리테일 공간 안에 갤러리나 전시 공간이 하나의 테넌트로 입점한 형태입니다. 상업적 집객력은 뛰어나지만 상대적으로 예술 공간이 쇼핑몰의 부속처럼 소비될 위험이 있습니다. 뉴욕 허드슨 야드의 더 쉐드(The Shed) 역시 대규모 복합개발 안에 문화시설이 포함된 구조로, 부동산 가치 제고 측면에서는 성공적이었지만 미술관과 리테일 간의 유기적 연결은 상대적으로 약했다는 평가를 받기도 합니다.
63빌딩은 이 두 가지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습니다. 미술관과 상업 공간이 대등한 관계로 공존하며 서로를 확장시키는 구조, 63빌딩이 리뉴얼을 통해 새롭게 정의한 독자적인 모델을 지향합니다. 퐁피두센터라는 미술관에서 시작된 예술적 감성이 전시 관람으로 끝나지 않고 디자인 소품, 리빙, 미식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지며 라이프스타일 소비로 확장되게끔 하는 것이죠. 반대로 리테일과 F&B를 먼저 경험한 방문객이 자연스럽게 미술관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역방향의 흐름도 만들어집니다. 미술관과 상업 공간이 서로를 목적지로 만드는 선순환 구조입니다.

나아가 궁극적으로는 소비를 넘어 예술문화 애호가들이 자연스럽게 모이고 교감하는 커뮤니티의 장으로 자리 잡기를 기대합니다. 전시, 쇼핑, 미식 그리고 전망까지 하나의 흐름 안에서 연결된 경험이야말로 기존 해외 사례들에서도 볼 수 없었던 63빌딩만의 새로운 복합문화 클러스터 모델이라고 생각합니다.

Q. 그렇다면 기획을 구체화 하는 과정, 입점 브랜드들과의 협의 과정은 어떠했나요?
이충헌: 예술문화 경험과 자연스럽게 이어질 수 있는 리테일 카테고리를 고민하면서,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를 찾는 작업부터 시작했습니다. 제가 여행할 때 자주 찾는 도쿄 나카메구로의 KINTO(리빙), 쿠라마에의 카키모리(문구), JIYUCHO(편지), 단데라이온(초콜릿) 같은 브랜드들이 떠올랐습니다. 사람들이 굳이 이런 동네를 찾아가는 이유는 콘텐츠 자체가 하나의 예술이고, 재방문을 만드는 힘을 가진 브랜드이기 때문입니다.
실용적이면서도 특유의 미니멀 디자인 리빙제품으로 유명한 킨토. 섬세한 문구팬들이 시간을 갖고 충분한 경험을 할 수 있게 공간을 마련한 카키모리. Ⓒ제공=이충헌
구매 경험 자체를 섬세히 접근하는 도쿄의 브랜드들. 1년 뒤의 나에게 편지를 보내주는 지유초, 크래프트 초콜릿 전문점 단데라이온. Ⓒ제공=이충헌

다만 국내에서는 이런 전통과 진정성을 갖춘 브랜드를 찾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동시에 또 다른 고민도 있었습니다. 이런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들이 몰이라는 공간 안에서 수익적으로 자생할 수 있을 것인가였습니다. 직접 발로 뛰며 서울의 라이프스타일 편집샵 수십여 곳과 만났습니다. 그 중에서 저희의 비전과 방향에 공감해 준 브랜드들을 하나씩 모았습니다.

핵심은 단일 브랜드의 경쟁력이 아니라 편집의 힘이었습니다. 개별 브랜드만으로는 몰 안에서 자생할 수익 구조를 만들기 어렵다는 것이 현실이었지만, 이런 브랜드들을 하나로 모아 큐레이션했을 때는 충분한 매출 경쟁력을 만들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협의 과정은 순탄하지 않았습니다. 특히 해외 브랜드의 경우 투자, 현지화, 운영 구조까지 협상해야 할 지점이 많아 더욱 신중하고 깊은 논의가 필요했습니다. 게다가 경기침체와 전쟁 같은 예측하기 어려운 외부 변수가 겹치면서 일부 브랜드의 입점이 철회되기도 했습니다. 공간의 방향성과 사업성 모두를 만족시키는 브랜드를 찾는 것 자체가 생각보다 쉽지 않았고, 프로젝트 전체를 통틀어 가장 힘들었던 순간이었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그 어려움이 오히려 더 큰 의미로 다가옵니다. 쉽지 않은 과정이었기에 지금의 결과가 더 값지다고 생각합니다.
공간 기획과 실제 구현 사이의 간극을 좁히기 위해서는 브랜드와의 수없이 많은 협의가 필요하다. Ⓒ시티폴리오
 
한 시대를 함께해 온 곳을 리뉴얼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더 많은 고민과 세심한 접근이 필요합니다. 기존 공간에 축적된 이미지와 대중의 기억이 남아있는 한편, 새로운 모습으로 또 다른 고객들을 맞이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63빌딩만의 색깔을 담은 리테일 브랜드를 선별하는 과정은 어땠을까요? 기획자들이 바라본 미래의 경험자 페르소나는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다음 편에서는 공간을 채운 구체적인 MD 기획과 함께, 공간에 실제 구현하는 과정에서 어떤 면면이 있었는지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이은송

이은송

서울프라퍼티인사이트 콘텐츠 매니저

시티폴리오 콘텐츠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도시와 건축, 공간과 브랜드가 교차하는 이야기를 기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