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가치를 증명하기 위해 여전히 더 높은 마천루와 새로운 개발이 요구되는 시대입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빼곡해지는 도심 공간을 채워야 할 인구는 계속해서 줄어들고 있습니다. 확장과 성장이 멈추는 건 자본주의 경제 논리에서 일종의 사망 선고와도 같습니다. 우리가 인구 감소라는 현실을 알면서도 성장 중심의 개발 계획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OMA는 이 간극에 주목합니다. 이들이 설계 프로젝트만큼이나 리서치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유 역시 시대의 변화에 맞춰 필요한 질문을 던지기 위함이죠. 이제 도시의 생존을 위해서는 무작정 건물을 짓고 올리는 법이 아니라, 어떻게 덜어내고 운영할 것인지 묻는 태도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인구가 줄어드는 도시에는 어떤 개발이 필요할까요? 그리고 축소를 위기가 아닌 새로운 기회로 바꾸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요? 이 질문의 답을 찾기 위해 OMA 아시아 대표 크리스 반 두인을 만났습니다. 홍익대학교 건축학과와 함께 진행하는 스튜디오 'The Empty City'를 중심으로, 축소도시가 던지는 물음과 그 안에 숨은 가능성을 들어봤습니다.
홍익대학교 건축학과 스튜디오 'The Empty City'에서 오픈 크리틱을 진행하고 있는 크리스 반 두인. Ⓒ시티폴리오
Q. OMA는 ‘축소도시(Shrinking City)’, 그리고 스튜디오의 타이틀 ‘Empty City’를 어떻게 정의하고 있나요?크리스 반 두인 : 축소도시는 새로운 용어도, 새로운 현상도 아닙니다. 과거에도 여러 차례 연구되어 왔죠. 그래서 이번 스튜디오에서는 타이틀을 달리 해, 문제적 현실을 시각적으로 상상하기 쉬우면서도 강조하고자 했습니다. ‘축소도시’에서 ’빈 도시(Empty City)’로 말이죠.
과거의 축소도시는 주로 경제적, 사회경제적, 정치와 같은 외부 요인 때문에 인구가 줄어들곤 했습니다. 대개 국지적이거나 지역적인 현상에 불과했죠. 광산이나 철강 산업이 문을 닫거나, 사회주의 체제가 무너지거나, 더 나은 삶을 위해 구도심에서 교외로 빠져나가는 식으로요. 즉 과거의 축소도시는 모두 비교적 고립된 현상이었습니다.
1970년대나 2000년대 초의 연구들을 돌아보면, 그러했던 도시들 상당수가 이후 다시 인구를 회복했습니다. 말하자면 일시적인 조정이었던 거죠. 20~30년의 장기적 시야에서 보면 그렇습니다. 지금 이 상황과 다른 점이 있다면, 지금의 하락세에는 끝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인구가 정점을 찍었던 수치로 다시 늘어날 가능성은 희박합니다.
그리고 예전에는 인구 변화가 경제적·사회경제적 외부 힘의 결과였다면, 지금은 오히려 정반대입니다. 인구 변화가 경제 변화, 사회 변화, 나아가 정치 변화와 정책 변화를 불러오게 됩니다.인구는 결과가 아니라 이 모든 전환의 토대인 것이죠. 그래서 저는 축소도시가 인구수에 종속되기보다는 훨씬 더 큰 현상이라고 봅니다. 그리고 이번 스튜디오에서 특히 주목하는 건 ‘빈 도시’입니다. 도시가 물리적으로는 축소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인구는 줄어드는데 도시라는 물리적 실체는 그대로 남죠. 그래서 ‘비어 있다’는 표현이 더 적합하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영향받게 될 주체와 환경이 너무 많기 때문에 매우 복잡한 문제입니다. 저희가 지금 ’빈 도시’를 들여다보는 건 당장의 해법을 내놓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하나의 도시를 사회 전체의 축소판으로 보고 다양한 가능성과 미래를 그려보려 합니다. 한 국가 안에서 전체 역학이 어떻게 바뀔지 이해하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그래서 건축가이자 도시계획가로서 사고하고 예측할 수 있는 ‘실험실 규모’, 즉 도시 단위에서 인구 변화를 들여다보려는 것입니다.
Q. ‘Empty City’와 닮은 꼴인 ‘공실’은 상업용 부동산에서 중요하게 다루는 리스크입니다. 지방 도심의 수많은 공실 상가, 구도심의 오피스, 폐업하는 쇼핑몰 같은 곳들이 생각납니다. 이것을 ’채워야 할 문제’로 보는 관점과 ’도시와 함께 용도를 재구성할 기회’로 보는 관점이 있는데, 이 관점들을 어떻게 보시나요?크리스 반 두인 : 우선 현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인구는 양적으로도 줄어들 뿐만 아니라 구성 또한 바뀝니다. 젊은 층은 줄고 고령층은 늘고 있죠. 상업용 부동산을 포함해 도시의 여러 시스템도 적응을 해야 합니다.
모든 것을 끊임없이 재프로그래밍하고 공실을 다 채우는 건 불가능합니다. 이와 동시에 어떤 규모의 커뮤니티든 존재하기 위해서는 마트, F&B 같은 작은 규모의 생활 시설이 유지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재프로그래밍도, 임시적 기능도 필요하죠. 그리고 바로 이 지점이 이번 스튜디오의 핵심이기도 합니다. 지역이 살아남을 수 있도록 어디에서 투자를 멈춰야 하는지를 찾아내는 것이죠.
근본적으로, 모든 몰(Mall)과 상업 공간을 재프로그래밍한다고 해도 전부 다시 살아나기란 쉽지 않습니다. 이커머스와 배달만으로도 이미 공간 기반의 경제가 크게 바뀌었는데, 인구 감소의 충격은 그보다 훨씬 클 것이기 때문입니다.
부동산에서의 ‘비어 있음’은 곧 ‘부정’을 뜻하며, 이를 부정할 수 없습니다. 인구와 경제 규모 사이에는 상관관계가 있어서, 사람이 줄면 결국 경제 규모도 줄어듭니다. 그 현실을 받아들이면서 미래에 실제로 붙잡을 수 있는 부동산의 잠재력과 기회, 퀄리티는 무엇이 있을까요? 이 질문에 선뜻 답을 내기 어렵습니다. 우리가 인구 감소에 대해 가진 유일한 이미지가 ‘쇠락’뿐이기 때문입니다. 이번 스튜디오를 통해 다가올 미래를 비관적·숙명론적으로 비판하기보다는, 지금부터라도 긍정적인 측면을 찾아내 더 많은 사람이 이 문제에 접근하고 상상할 수 있게 하고 싶습니다.
질문에서 ‘기회’라는 단어가 나왔는데, 분명히 기회는 있을 겁니다. 그에 앞서 가치를 재조정해야 하지만, 그 안에도 가치와 기회는 존재할 겁니다. 단순하게 생각해 볼까요? 도시에 사람이 적다는 건 모두에게 더 많은 공간이 생긴다는 뜻이고, 오염도 줄어든다는 뜻입니다. 어느 아파트 단지에서 35%가 비어 있다면, 남은 입주민들은 더 넓은 공간을 누리게 되고, 적어도 이웃 소음은 줄어들게 될 겁니다.
지금 우리가 밀집된 도시와 아파트에서 겪는 문제들 대신, 혼잡과 교통 정체에서 벗어난 새로운 균형을 도시에 만들 수 있습니다. 모든 단점에는 늘 이점이 따르기 마련이고, 우리는 그것을 찾아내 이해하기 시작해야 합니다. 모두가 부정적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에서 잠재력을 찾기란 결코 쉽지 않지만, 바로 그 지점을 스튜디오에서 다루고자 합니다. 경제의 ’양’에서 출발한 부정적 영향이 무엇인지도 봐야 하겠지만, 어디에서 그것이 우리 삶의 ‘질’에 긍정적 영향을 줄 수 있는지도 구체적으로 논의해야 합니다.
실제 데이터 기반으로 학생들은 2050&2075년 미래의 모습을 이미지화 하고, 예상 시나리오를 제시했다. Ⓒ시티폴리오
Q. 논의를 실천으로 옮겨, 축소도시를 주제로 홍익대학교 건축학과에서 2026년 1학기 동안 스튜디오를 열게 된 구체적인 계기는 무엇이었는지 궁금합니다.크리스 반 두인 : 가장 먼저 스튜디오를 통해 업계, 더 나아가 활동의 장이 되는 도시의 미래를 파악하려는 실용적인 면이 있습니다. 순수하게 학술적인 수업으로 진행하고자 했다면 이렇게 외부 기관과 협업하고, 업계 사람들의 의견을 들을 필요가 없었겠죠. 학술 실험이나 브레인스토밍이 아니라, 실제로 일어날 일을 예측하고 대비하기 위한 작업이기도 합니다.
이제까지 OMA가 진행한 한국 프로젝트와도 연결되는 지점이 있습니다. 그동안 OMA의 활동은 대부분 서울에서, 그리고 대개 ‘건물을 설계하는’ 일에 집중되어 있었습니다. 벌써 한국에서 활동한 지 25년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한 나라, 한 문화권을 오래 경험하다 보면 상업적인 건축 프로젝트에서 점진적으로 나아가 그 문화에 더 깊이 관여하고 싶어집니다.
특히 지난 몇 년 사이 경험했던 서울 바깥으로 눈을 돌려 다른 도시들, 특히 서울보다는 작은 도시와 지역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이해하고 싶어졌습니다. 때마침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부산에서 여러 프로젝트를 진행할 기회도 생겼죠. 부산에서 협업을 하는 동안 지방정부 및 지역 전문가들과도 함께 일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이마저도 역시 ’건물’에서 출발했지만, 차츰 경사지 주거와 같은, ‘부산다운’ 주제로 확장되었습니다.
특히 경사지 주거가 흥미로웠던 건, 그곳의 역사와 함께 부산의 현재 상황, 오늘날 부산이라는 도시의 토대를 이루는 여러 지역들의 실태와 마주하게 되었고, 미래 도시 계획까지 들여다보면서 역사와 오늘, 그리고 미래의 도시 재개발 계획이 어떻게 맞물리는지를 더 잘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지난 9월에 ‘2025 부산국제건축제(BIAF 2025)’ 전시에도 참여하게 되면서 건축 프로젝트 이외에도 다양한 측면으로 살펴볼 수 있었습니다.
'2025 부산국제건축제(BIAF 2025)’의 OMA 전시 전경. Ⓒ제공=OMA
한국에서는 도시 계획이 주로 엔지니어링 분야로 여겨지곤 하는데, OMA는 마스터플랜을 오랜 시간 작업해왔습니다. 그러다 보니 디자이너의 관점에서 마스터플랜을 어떻게 보여줄 수 있을지를 고민했습니다. 지난 수십 년간 OMA의 마스터플랜들을 검토하면서 한 가지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OMA가 구축해 온 거의 대부분의 마스터플랜은 ‘도시의 팽창’을 기본으로 삼고 있었습니다. 도시 계획이란, 결국 ‘더 짓는 일’, ’성장’에 관한 것이었죠. 그런데 도시의 미래 잠재력을 보여주는 중요한 지표, ‘인구수’를 함께 놓고 보니, 확장을 전제로 한 프로젝트들은 부산의 상황을 소화해낼 수 없었습니다. 인구 수가 계속 줄어들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부산의 미래를 규정하는 가장 핵심적인 변수는 인구 변화였고, 리서치 전체를 관통하는 일관된 축이 되었습니다. 이 상황에서 부산의 잠재력은 무엇이며, 어느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그리고 어떤 마스터플랜이 의미가 있을까요? 감소세가 진행 중이기 때문에 성장 가능성에 올인하는 도시 계획과 마스터플랜보다는 현실적인 제안이 필요하겠죠.
Q. 인구가 줄어드는 현실을 마주하고, 시대 변화를 반영해 쓰임새 있는 도시를 만들고자 한 것이군요.크리스 반 두인 : OMA는 인구수와 같은 양보다는 퀄리티, 그리고 특정 프로그램에 집중한 마스터플랜에 주목하게 되었습니다. 노인 인구가 늘어날 미래, 폭발할 헬스케어 수요를 받아낼 병원, AI 시대에 필요한 자연과 수변공간(워터프론트) 같은 것에 말이죠. 하지만 충분하지 않았습니다.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프로그램을 활용해 현실을 덮어버린다는 생각에, 핵심이 되는 인구 변화를 시간의 흐름에 따라 시각화하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습니다. 1960년부터 2025년까지의 부산 인구 곡선 위에 그 시기의 중요한 사건과 개발들을 얹은 거대한 인포그래픽을 만들고, 앞으로 인구가 감소하면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 정부 차원에서는 어떻게 대응할지까지 데이터를 기반으로 추정해 보았습니다.
1960년부터 2025년까지의 부산 인구 증감을 핵심 사건과 개발 이슈와 함께 볼 수 있는 인포그래픽. Ⓒ제공=OMA
이 과정은 저를 비롯해 OMA가 눈을 뜨게 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축소도시 스튜디오를 위해 홍익대학교를 찾은 이유이기도 하죠. 당시 자료를 모으며 세 개의 핵심을 정의할 수 있었습니다.
첫째, 한국의 인구 변화를 ’미래’로 이야기하지만, 부산에서는 이미 25년째 벌어지고 있고, 그 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감소하는 도시 한복판에 있습니다. 미래를 논하는 게 아니라, 전례 없는 속도로 줄어들고 있습니다. 이걸 깨닫고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가령 2000년과 2025년 사이, 단 한 세대 만에 부산 인구가 370만에서 320만으로, 25년 만에 50만 명이 줄었습니다. 이 속도라면 앞으로 25년 후에는 100만 명이 더 줄 수도 있습니다. 이 감소세가 얼마나 이어질지 알 수 없지만 적어도 그 한복판에 있고, 이 도시는 인구의 35~40%를 잃게 됩니다.
둘째, 그렇다면 부산은 이에 어떻게 대응하고 있을까요? 놀랍게도 부산의 정책에서는 이 감소세에 어떻게 적응해나갈 것인지에 대한 통합적인 대응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오히려 일부 정책은 여전히 성장을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었죠.
가장 우려가 되는 부분은 인구가 빠르게 줄어드는 사실이 상당수 도시 계획과 정책에서는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여전히 성장과 낙관을 이야기하곤 합니다.
셋째, 조심스럽고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부산뿐만이 아니라 매일 도시의 미래를 고민하는 업계 전반, 도시계획과 건축가들에게도 이에 대응할 도구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팽창과 성장, ’더 많이’ 설계하는 데는 익숙합니다. 그런데 인구 감소에 어떻게 적응할 것인가에 관해서는 아이디어가 없습니다. 부산과 같은 국지적 감소가 아니라 국가적, 더 나아가 전세계적 감소, 인구의 감소 그 자체를 받아들여야 하는 상황에서는 특히 더 그렇습니다.
부산에서의 전시가 끝난 뒤 ‘이대로 둘 수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중요한 문제니까요. 한국은 일본, 중국과 함께 이미 인구 감소가 진행 중인 나라이고, 머지않아 다른 많은 나라들도 같은 상황에 놓일 것입니다. 부산은 전세계에서 출산율이 가장 낮은 나라의 두 번째로 규모가 큰 도시입니다. 말하자면 부산은 이 현상의 ‘페이션트 제로(최초 감염자)’입니다. 전 세계 인구 감소로 인해 영향받는, 이 정도 규모로는 세계 최초의 도시죠. 그러니 부산에서 벌어지는 일을 이해하면, 세계 다른 도시와 나라들에도 선제적인 통찰을 줄 수 있습니다.
Q. 인구가 줄어드는 현실, 축소도시를 아직도 외면하는 사람들에게 이 스튜디오를 어떻게 소개하면 좋을까요?크리스 반 두인 : 변화하는 인구라는 주제를 두고 관심이 있는 모든 부동산 시장과 공간을 다루는 전문가들이라면 이 주제를 쉽사리 지나칠 수 없을 겁니다. 우리 사회가 투영되는 실제 공간, 도시를 두고 미래에 일상이 어떻게 달라질지 더 쉽게 이해하는 과정이 될 겁니다. 홍익대학교 건축학과 학생들과 함께하는 이 스튜디오를 통해, 미래를 어떻게 빚어갈지에 관한 좋은 아이디어들을 찾아낼 거라 믿습니다. 인구가 줄어드는 변화 속에서도 긍정적 사고와 희망적인 미래가 실현될 수 있도록 말이죠. 이 스튜디오를 통해 이뤄내고 나누고 싶은 바입니다.
최종 크리틱 현장의 OMA 아시아 대표 크리스 반 두인과 구재승 건축가, 홍익대학교 건축학과 이원석 교수와 학생들. Ⓒ시티폴리오
이은송
서울프라퍼티인사이트 콘텐츠 매니저
시티폴리오 콘텐츠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도시와 건축, 공간과 브랜드가 교차하는 이야기를 기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