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의혁신, 화려함에 목마른 도시
자료를 좇다가 ‘다양한 높낮이의 스카이라인, 밤이면 조명으로 윤곽을 드러내는 화려한 경관. 뉴욕, 상하이, 홍콩 같은 이미지를 갖지 못해 그렇게 서러운 서울이었던 것인가?’ 이런 질문이 먼저 떠올랐다. 그러다 아름답고 창의적으로 보이는 것만이 도시의 본질인가 하는 반문이 다시 들기도 했다. 결국 도시경관이 도시경쟁력과 시민의 자부심과 무관하지는 않겠다는 이해로 이어지긴 했지만 꽤 시간이 걸렸다.
이 제도는 창의적인 디자인을 하고, 사적인 공간 일부를 누구나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개방공간으로 내어주면 사업주에게 용적률과 높이·건폐율 등의 완화를 준다. 2023년 도입되었고, 2026년 4월 운영 기준이 전면 개정되며 사업 절차 단축과 비강남권 참여 확대 등으로 좀 더 매만져졌다.4 창의·혁신 대상 건물로 선정된 건물 중 준공된 건물은 아직 없다. 공사 중인 성수동 크래프톤 신사옥이나, 선정된 뒤 인허가와 실시설계를 거치며 조금씩 디자인이 바뀐 프로젝트들이 간간이 보도되는 정도다.
건축이 창의적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결국 형태를 말하는 것일까. 곡선이거나, 하체보다 상체가 크거나, 벽에 나무가 자라거나. 사례집을 넘기다 보면 창의성이라는 단어가 어느새 '눈에 띄는 형태'와 같은 말이 되어 있다. 그리고 눈에 띄는 형태는 대개 돈이 든다.
설렘과, 반신반의
건축가들의 마음은 꿈틀거린다. '세상에 없던 디자인을 하시오.'라는 문제지를 받아 든 상태에서, 그간 구조적인 제약과 공사비 등으로 하지 못했던 디자인을 상상하게 된다. 프랭크 게리나 자하 하디드처럼 자기 표현을 중시하는 건축가라면 이 판이 꽤 반가울 것이다. 실제로 자기 표현력(?)이 강한 해외 건축가와 국내 대형 설계사무소 조합이 관행처럼 자리 잡아 가고 있기도 하다.
건축주들의 마음은 반신반의다. 용적률과 높이를 얻었다. 그런데 혁신 디자인 70점을 받으려면 외장재와 구조에 공사비를 더 써야 하고, 열린 디자인 30점을 받으려면 저층부 면적을 공공에 내어줘야 한다.5 그 돈을 회수할 수 있을까. 계산기를 두드려 보게 된다.
시민으로서는 궁금해진다. 형태에 제약이 없는 도시는 어떤 모습일까. 그리고 나는 그 도시를 어떻게 쓰게 될까.
평범한 것은 거부하는 도시, 상하이
지난 6월 상하이에 다녀왔다. 도시의 건물들을 네모난 형태로 평범하게 디자인하면 큰일 나는 법이라도 있는지, 저건 왜 저렇게 디자인했을까, 저건 또 왜? 목이 뻐근해질 만큼 올려다보고 두리번거리며 한도 초과적(?) 창의성에 기가 빨렸다.
설계 도면을 보면서 완고한 표정으로 시공자가 말한다. ‘이렇게 정형화되지 않은 형태는 시공불가능한데요.’ 이런 말을 한국 현장에서 자주 듣곤 했는데, 중국에서는 이런 말을 하면 잘리기라도 하나. 설계하는 대로 다 지어주는 건가 싶다. 아니면 설계자와 시공자가 타협한 게 이 정도? 강력한 제조업을 기반으로 건축자재 수급의 제약에서 자유로운 건설 환경도 한몫할 거 같은데 이런 장면이 상상된다.
‘이 유리 다시 교체하려면 중국 공장에 다시 주문해야 해서 배송받으려면 오래 걸려요.’
‘아, 여기가 중국이잖아!’
또 하나 주목한 점은 글로벌 스타키텍트와6 대형 설계사무소들이 상하이에 거점을 두거나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는 것이다.7 그중 자주 지목받는 곳은 프리츠커상 수상 건축가인 데이비드 치퍼필드가 이끄는 ‘데이비드 치퍼필드 아키텍츠 (DCA)’다. DCA의 스타일은 이 도시의 현란한 형태와 거리가 멀다. 이들은 어느 도시에서든 맥락에 녹아드는 쪽을 택한다. 절제가 특기인데, 너무 제대로(?) 절제한 나머지 그 절제가 장식처럼 보이기도 한다. 고난도 스킬이다.
절제가 장기인 건축가가 이렇게나 화려한 도시에서 자주 기용된다. 건물마다 개성이 이미 함량 초과라, 오히려 담백한 걸 찾게 되는 건가? 현실적인 조건 때문일 수도 있다. DCA는 2005년부터 상하이에 상주해 온 현지 사무소다. 락번드 재생사업, 웨스트번드 뮤지엄, 장위안 마스터플랜, 서가회 도서관을 수행하며 이미 자리를 잡았다.
화려한 도시가 찾은 담백한 건축가. 그가 설계한 건물은 어떨지 궁금했다. DCA의 상하이 프로젝트들을 돌아보다 서가회 도서관에서 멈춰 섰다.
서가회(쉬자후이) 도서관, Zikawei Library Shanghai
서가회 도서관은 쉬후이구가 운영하는 공공도서관이다. 1910년에 세워진 서가회 성당과 앞마당을 함께 쓰는 자리에 있다. 누가 일러주지 않으면 지나칠 만큼 차분한 생김새다. 대로변인데도 높이가 18m밖에 되지 않지만, 가만히 보면 균일한 간격의 열주가 범상치 않다.
보통 건축주가 판을 떠나면 그 건물은 애물단지가 된다. 서점을 위해 계산된 층고와 동선, 서점을 위해 고안된 입면이 남아, 그것을 물려받은 다음 주인은 남의 옷을 입은 것처럼 어색해지기 마련이다. 그런데 서가회 도서관은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상업시설로 기획됐던 건물이 공공도서관이 되면서 더 자연스러워졌다. 치퍼필드는 이 프로젝트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초기에는 서점으로 기획되었지만, 저희는 이 건물이 쉬자후이와 도시 공간 전체에 기여하는 공공성을 지닌 장소가 되기를 항상 바랐습니다. 새로 지어질 도서관이 기존의 역사적 건물 및 도시 광장과 어떻게 조화를 이룰지가 저희가 해결해야 할 첫 번째 과제였습니다."9
DCA가 초기에 설계 기준으로 삼은 것은 돈을 낸 서점 사업자가 아니었다. 이웃한 성당이었고, 오래된 기상관측소였고, 광장이었다. 건축주는 이 건물에 서점을 원했지만, 건축가는 그보다 먼저 이 자리가 성당 앞마당이라는 사실에 응답했다. 그래서 서점 사업자가 사라졌을 때 이 건물은 기본을 잃지 않았다. 애초에 딛고 서 있던 것이 건축주가 아니라 도시였기 때문이다.
쉬후이구 주변은 최근까지 고밀도 고속 개발을 거듭했고, 쇼핑센터들도 생겼다. 내가 방문했을 때도 도서관 인근에 고층 주거가 공사 중이었다. 주변이 그렇게 변하고 건물의 성격까지 바뀌었는데도, 도시 맥락을 존중하고 시민에게 공간을 열어준다는 원칙은 그대로 유효했다.
앞서 나는 화려함이 넘치는 도시가 오히려 담백한 것을 찾게 된 게 아닐지 짐작했다. 서가회 도서관 앞에 서보니 조금 다른 이야기로 읽힌다. DCA가 상하이에서 맡은 자리들은 화려함을 뽐낼 무대가 아니었다. 1930년대 건물들이 늘어선 락번드가 그랬고, 성당과 옛 관측소를 옆에 둔 이 자리가 그랬다. 함부로 다루기 어려운 자리들이었다. 화려한 도시가 담백함을 찾았다기보다, 빠르게 헐고 새로 짓기를 반복하던 도시가 그 속도를 견딜 줄 아는 건축가를 불렀다고 보는 편이 맞겠다. 형태로 눈에 띄는 대신 자리에 응답하는 것이, 이 도시가 필요로 한 창의성이었던 셈이다.
서울이 사려는 창의성
창의·혁신 정책을 설명하는 자리에서 당시 서울시 총괄 건축가10는 이렇게 강조했다. 이 사업은 공적 재원을 건축주에게 나눠주는 게 아니라고. 건축가의 위상과 도시경관의 향상이 최우선이고, 규제 완화나 용적률 인센티브는 부차적인 것이라고.
이 말을 뒤집어 보면, 이 제도에서 얻어가는 것이 저마다 다르다는 뜻이 된다. 용적률과 높이를 얻는 것은 사업주지만, 도시경관을 얻는 것은 도시이고, 열린 공간을 얻는 것은 시민이다. 서류상의 건축주는 한 명인데 이 건물을 발주한 주체는 사실 셋인 셈이다.
셋 중 사업주가 치르는 몫은 결국 돈이다. 그러고 보면 이 제도에는 한 가지 전제가 깔려 있다. 창의적인 디자인에는 돈이 든다는 것, 그래서 용적률로 그 값을 치러야 한다는 것. 틀린 말은 아니다. 나 역시 답사를 다니며 고급스러운 외장재와 곡선의 디테일을 볼 때면 감동한다. 뭔가를 해낸 사람들에 대한 경외감, 그리고 이런 걸 나도 한번… 하는 생각. 동시에 이런 생각도 한다. 프로젝트 형편에 맞지 않게 따라 했다가는, 그림으로만 남는 건축 곧 페이퍼 아키텍처를 하나 더 만들 뿐이라고.
그럴 때마다 서가회 도서관을 떠올리게 된다. 18m의 낮은 건물, 반복되는 열주, 누가 일러주지 않으면 지나칠 생김새. 그 건물이 값진 것은 비싼 재료나 어려운 형태 때문이 아니다. 옆에 성당이 있다는 사실에 응답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응답 덕분에 건축주가 바뀌고 용도가 바뀌어도 건물은 자기 자리를 잃지 않았다. 창의성은 시공비로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건축가의 판단력, 그러니까 설계 능력에서 나온다.
DCA는 지금 성수동에서 크래프톤 신사옥을 짓고 있다. 그 판단이 서울에서는 어떤 형태로 나올지 궁금하다. 그 밖에도 이 제도로 지어진 건물들이 주인이 여러 번 바뀐 뒤에도 무엇을 딛고 서 있을지, 20년쯤 뒤에 이 도시를 걸어보면 알게 되지 않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