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붕은 있으나 벽이 없는 국립중앙박물관의 '열린마당'
이 성벽에서 가장 크게 뚫린 자리가 '열린마당'이자, 우리가 가장 잘 알고 있는 장면을 보여주는 장소입니다. 동관과 서관 사이, 건물 한가운데를 관통하는 이 공간의 아이디어는 한국 고유의 공간인 마루에서 출발했습니다. 지붕은 있으나 벽이 없고, 실내도 아니지만 야외도 아닌 곳. 열린마당이 필로티가 아니라 마루인 이유는 단면에 있습니다. 땅에 붙어 있는 것이 아니라 계단을 올라 다다르는 들어올려진 기단 위의 마당이고, 그 위를 거대한 지붕이 덮습니다.
마루가 방과 방 사이에서 집의 중심이 되듯, 이 마당은 동관과 서관 사이에서 박물관 전체의 중심이 됩니다. 엄숙한 침묵이 흐르다가도 떠들썩한 축제가 열릴 수 있는 곳. 모든 사람에게 개방되고 모든 것을 포용한다는 이름 그대로, 박물관 모든 시설 이용이 이곳에서 시작됩니다. 계단을 올라 마당에 서면, 정면으로 남산과 남산타워가 액자처럼 걸려 있는 풍경이 펼쳐집니다. 건축물이 비워낸 프레임으로 도시의 풍경을 담아냅니다.
열린마당 안쪽의 '역사의 길'로 기획된 긴 중앙홀 역시 비워두었습니다. 그 대신 유리로 마감된 천장을 통해 들어오는 햇빛이 공간을 가득 채울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관람객들은 어두운 전시실과 환한 복도를 오가며, 광활한 박물관에서도 길을 잃지 않고 작품을 자유롭게 감상할 수 있게 됩니다.
이처럼 국가를 대표하는 박물관이 가장 좋은 자리를 전시실이 아니라 빈 마당에 내어주고, 모두에게 활짝 열린 공공건축물로서의 제스처를 명확히 하고 있습니다.
마당을 먼저 놓고, 미술관을 배열하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지하로 내려간 전시장에 빛을 공급하는 것도 결국 비움입니다. 최대 한 변 30m에 이르는 두 개의 비워낸 보이드, 서울박스와 전시마당이 지하 깊숙이 자연광을 끌어내립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서울관에는 담장이 없고, 정면과 후면의 구분도 없습니다. 북촌에 놀러 온 사람은 전시를 보지 않고도 마당을 따라 미술관을 가로지를 수 있습니다. 실제로 걸어 보면 어디까지가 미술관이고 어디부터가 동네인지, 그 경계가 기분 좋게 흐릿합니다.
동선 계획도 같은 논리입니다. 기본적으로 서울관에는 정해진 관람 순서가 없습니다. 여섯 곳의 입구 어디로든 들어와, 그물망처럼 얽힌 전시장들 사이에서 관람자가 스스로 경로를 고릅니다. 앞사람을 따라 걷는 연속 동선이 아니라, 북촌의 골목을 거닐듯 길을 선택하는 방식입니다. 마당마다 성격도 다르게 계획됐습니다.
삼청길에 열린 '열린마당'에는 수령 150년의 비술나무 세 그루가 중심을 잡고, 북촌길과 만나는 도서관 마당에는 살구나무 아홉 그루를 심어 지갑 없이도 북촌을 즐길 수 있는 조용한 정원이 되도록 했습니다.
외장재인 밝은 회색 테라코타는 한옥 암키와의 곡면에서 형태를 가져왔습니다. 그리고 재료의 눈으로 보면 종친부의 기와도, 기무사의 붉은 벽돌도, 이 테라코타도 결국 같은 흙을 구워 만든 것들입니다. 낯선 재료를 새로 들이는 대신, 이 땅이 오래 써온 재료의 계보 위에 조용히 올라섰습니다.
시간 앞에서도 이 건축은 채우기보다 물러서는 쪽을 택했습니다. 공모 진행 중 대지에서 종친부 유구가 발견되자 미술관은 그 자리를 건물로 채우지 않고 비워두었고, 덕분에 정독도서관에 옮겨져 있던 경근당과 옥첩당이 제자리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등록문화재인 옛 기무사 건물 역시 철거되는 대신 미술관의 입구로 남았습니다.
여기에는 무엇을 새로 채울지보다, 무엇을 비우고 남길지를 먼저 정한 건축가의 판단이 있었습니다.
비움이 작동하는 방식
'가치'가 되는 공공건축에서의 비움
최근에는 숫자로도 확인됩니다. 아트뉴스페이퍼의 2025년 세계 박물관 관람객 조사에서 국립중앙박물관은 연간 650만 명으로 루브르, 바티칸에 이어 세계 3위에 올랐고, 서울관 역시 약 210만 명으로 35위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물론 이 숫자에는 화제가 된 전시들의 힘이 클 수도 있지만, 그 관람을 특별한 행사가 아니라 일상의 경험으로 만들어 온 것은 전시를 보지 않아도 드나들 수 있는 마당이었고, 20년간 쌓인 그 신뢰가 관람객이라는 가장 단순한 지표로 돌아오고 있습니다.
서울관에서는 조금 다른 종류의 가치가 확인됩니다. 이해관계와 역사 해석이 충돌하는 땅에서, 용도가 규정되지 않은 빈 공간은 대립하는 요구들을 중재하는 거의 유일한 답이 되기도 합니다. 개발을 둘러싼 갈등이 일상이 된 오늘의 도시에서 이것은 하나의 설계 기법을 넘어, 공공 프로젝트를 풀어가는 방법론으로도 유효할 것입니다.
공공의 비움은 시장의 기준점이 되기도 합니다. 지난 글에서 다룬 민간 저층부 개방 전략이 설득력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시민들이 이미 공공의 마당에서 열린 공간의 가치를 경험해 온 것과 무관하지 않을 겁니다.
두 국립 기관을 나란히 놓고 보면, 공공건축의 비움은 예산의 여유가 있어야 가능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가장 좋은 땅의 가장 좋은 자리를 시민의 빈터로 내어주겠다는 판단이 먼저였고, 그 판단이 20년, 12년의 시간을 지나 서울에서 가장 사랑받는 공공 공간들을 만들었습니다. 용산공원과 대형 공공 프로젝트들이 이어질 앞으로의 서울에서 좋은 계획안을 가르는 기준 역시, 먼저 공개되는 조감도에 무엇을 채웠느냐만은 아닐 겁니다. 눈에 바로 보이지 않는 가치까지 설계에 담을 수 있는지, 발주처와 이를 지켜보는 시민들의 안목이 그 답을 결정할 겁니다.
우리는 비움을 대개 눈으로 받아들입니다. 널찍한 마당과 낮은 스카이라인, 건물 사이의 여백이 주는 시원함에서 감상이 멈추곤 합니다. 그러다 보니 설계 과정에서 공들여 고안된 그 빈 공간의 기능과 효과는 쉽게 지나치게 됩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잘 계획된 비움은 풍경이기 이전에 일하고 있는 공간입니다. 빛을 지하로 끌어내리고, 동선을 열고, 충돌하는 요구를 중재하고, 도시를 건물 안으로 이어 붙입니다.
그러니 어떤 공간의 여백 앞에 서게 되면, '왜 비워뒀을까' 대신 '이 비움으로 무엇이 가능해졌을까'를 물어보시는 것도 좋겠습니다. 이 질문은 국립 기관의 마당에만 유효한 것이 아닙니다.
지금 검토 중인 계획안의 공개공지에도, 사옥 로비의 한 켠에도, 동네의 작은 공터에도 같은 질문을 던질 수 있습니다. 답이 잘 떠오르지 않는 비움이 있다면, 그곳은 면적이 부족해서라기보다, 계획의 순서에서 밀려나 있었기 때문일 수도 있겠습니다. 두 국립 기관의 비움은 그 질문에 대한 답이 얼마나 큰 가치로 돌아올 수 있는지를 20년째 증명하고 있습니다. 건축은 채워서 완성되기도 하지만, 비워서 오래가기도 합니다.

